* 찬송가 354장 (구 394장) / 레 위 기 17 : 1 - 9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5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레위기 17장 1절 – 9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5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6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8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9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아멘!
레위기 17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 - 7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기 먹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규정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소나, 양이나, 염소의 고기를 먹고자 할 때에 반드시 먼저 그 고기를 회막문으로 가지고 가서 그 피를 번제단에 다 흘린 다음에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맘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화목제로 먼저 드린 다음에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섯 가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중에 백성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제사는 오로지 화목제뿐입니다. 화목제는 백성이 짐승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이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고 그 짐승을 잡아서 피는 번제단 밑에 뿌리고, 기름과 콩팥과 간을 덮은 기름은 번제단 위에서 태워서 여호와께 화제로 제사를 드리고, 가슴고기와 우편 뒷다리 고기는 제사장 몫으로 주고, 나머지를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먹되 하루 이틀에 다 먹고 삼일을 넘겨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소를 잡게 되면 양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 나누어서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생활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께 신세진 것이 많습니까? 예수님 덕분에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기 드실 때 감사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규정은 고기를 먹고 싶으면 반드시 화목제물로 드리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규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잡을 때에는 들이나 아무 곳에서나 잡지 말고 반드시 회막문으로 끌고 와서 제사장이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사로운 도축을 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기고 사사로이 가축을 죽인 사람은 무서운 형벌이 부과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먼저 회막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아멘! -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백성 중에 끊으신다는 것은 그를 죽이시겠다는 말입니다.
고기 좀 먹었다고 죽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 먹는 문제에 관해서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고 가혹한 형벌을 부과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답이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 하나님은 왜 사사로운 도축을 금하고, 피를 마음대로 흘리지 말고, 고기를 마음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그들이 전에 행하던 악한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행하던 - 애굽에서 생활할 때를 말합니다. 애굽에서 생활할 때에는 짐승을 잡으면 그 것을 수염소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먹는 못된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에게도 그런 풍습이 있습니다. 돼지를 먹어도 머리는 예쁜 것을 잘라 가지고 삼신할머니에게 먼저 드립니다. 그 후에 사람이 먹습니다. 이것은 숫염소에게 제사 드리던 애굽에서의 생활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살 때 행하였던 우상숭배라는 못된 습관 을 고치기 위해서는 작은 형벌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이런 엄한 규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규정은 단순히 “고기를 먹어라 먹지 마라.” 에 관한 규정이 아닌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치료하고 교정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짐승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우상 숭배로 돌아가게 되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전에 우상을 섬기며 짐승을 잡은 것이 어떠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일찍이 일어나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놀았고, 지껄이고 떠들며 노래하고 춤추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애굽에서 우상 숭배하던 버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을 미워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동에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이처럼 싫어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우상에게 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어떻게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냐?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지”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상이 와서 그것을 먹습니까? 만약 와서 먹는다면 더 잘 차려야지 그렇게 엉성하게 차려서 되겠습니까? 조상은 와서 그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방인의 제사방법이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상숭배를 하나님이 정말 미워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의문은 ‘만약에 이렇게 된다면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성막 가까이 사는 사람은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겠지만, 성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 때에는 매일 제사를 드리는 성막 주위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성막이 가까우냐? 가깝지 않느냐로 인해 그런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문제에 관한 답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신명기 12장 21절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것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멀 때에는 짐승을 잡아서 각 성에서 먹되 단지 피는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강력하게 배척하고 신앙의 구심점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뛰고 굴리며 먹고 마시는 삶이 아니라, 감사하며, 찬송하며, 의지하며,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울어도 예수 앞에서, 웃어도 예수 앞에서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절망 내지 즐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속죄와 구원으로 보기 때문에 경건과 절제 속에서 경외감을 가지는 것이 진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새 사람 되어 새롭게 살아간다는 사람이라도 옛 생활 그대로 자꾸 따라 한다면 옛 사람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성이 살아나서 새사람도 지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들어가는 대로 나옵니다. 불신자의 것을 많이 보고 들으면 죄성이 살아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사망의 몸이라고 했으며 육신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롬 7:24-25)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옛 사람의 성품을 죽이고 성령에 순종하므로 새롭게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과 그 은혜의 피 아래 거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그 능력을 덧입음으로,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죄와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