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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街の母(화류계의 어머니)
金田たつえ[카네다 타츠에]는 어머니를 여의고 생후 80일에 北海道 江差[홋카이도 에사시]에서 기생[芸者-게이샤]을 하고 있던 金田イチ[카네다 이치]의 양녀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양어머니 金田イチ[카네다 이치]는 민요 교실의 선생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たつえ[타츠에]에게도 민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양어머니를 홋카이도에 남겨두고 가수를 목표로 상경하여 민요 가수에서 엔카 가수로 전향한 たつえ[타츠에]는 「花街の母-하나마치노하하」의 가사(歌詞)를 받아들고, 화류계 생활을 해서 자신을 키워준 양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우연이었지만 그야말로 운명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쇼와47년[1972년] 12월 말에 녹음하여 쇼와48년[1973년] 6월 10일 오사카 지역에 한정한 자체 제작앨범으로 레코드 회사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오사카의 음식점 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밤늦게 술에 취한 손님을 상대로 하거나 새벽 어시장에서, 또는 매일 저녁부터 새벽 2 ~ 3시까지 많을 때는 하루에 24곳의 상점을 돌며 자신의 음반 판매 홍보를 위해 대략 일본 열도를 2바퀴 반 정도의 거리를 돌았다고 합니다.
마침내 밑바닥 홍보가 효과를 보아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팬들이 늘어나면서 4년 후인 1977년에는 전국 발매가 되고 1978년 마침내 250만장의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양어머니 金田イチ[카네다 이치]는 平成[헤이세이] 8년[1996년] 4월 28일 향년 79세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金田たつえ[카네다 타츠에]는 공양 노래로 「母恋巡礼-어머니 사랑 순례」라는 곡을 만들어 순례에 나서서 平成12년[2000년] 10월 여든여덟 군데 순례를 마쳤다고 합니다.
【花街の母】金田たつえ
하나마치노하하 - 카네다 타츠에
E
1973年6月10日 (1973-06-10)に日本コロムビアから発売したシングル。
1 ===
히토니키카레랴 오마에노코토오
他人(ひと)にきかれりゃ お前のことを
남들이 물으면 너를
토시노하나레타 이모오토토
年(とし)のはなれた 妹(いもうと)と
나이 차가 많은 여동생이라고
츠쿠리에ㅇ가오데 코타에루와타시
作(つく)り笑顔で 答える私
억지로 웃으며 대답하는 나
콘나쿠로오니 케리츠케테
こんな苦労に ケリつけて
이런 고생을 마치고서
타토에히토마노 헤야데요이
たとえひと間の部屋(へや)でよい
비록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하하토무스메노 쿠라시ㅇ가호시이
母と娘の 暮らしが欲しい
엄마와 딸로서 생활하고 싶어
~台詞 ~
이쿠라 나진다 미즈데모
いくらなじんだ水でも
아무리 익숙한 화류계라도
토시고로노 무스메노이루 히다리즈마
年頃(としごろ)の娘のいる左褄(ひだりづま)
혼기 맞은 딸이 있는 기생
스미니쿠우 고자이마스
住みにくうございます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우키나오 나ㅇ가시타 무카시모 아리마시타ㅇ가…
浮名を流した昔(むかし)もありましたが…
염문을 흘리던 한 때도 있었지만…
아아 아노히토
ああ あのひと
아아 그 사람
와타시오노코시테신다 아노히토오우라미마스
私を残して死んだ あの人を恨みます
나를 남겨두고 죽은 그 사람을 원망합니다
~이하 2,3절은 생략합니다~ ... 좀 길어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무엇이든
필요하다면, 즐거우시다면
기꺼이 하시고... ㅎ 일부러 고생할 일은 아니네요.
어려서 부터 하도 반일감정에 젖어 일본 건 쳐다보도 않았지요.
저도 늦은 세월에 노래나 가사나 시나 이해하자고 어정쩡하게 시작...
겨우 읽고 해독하는 정도입니다.
말은 한마디도 몬하는 벙어리...ㅋ.
@멍게2 남들은
내 아는 거 다를 아나요.
2님,
욕심도 적당하서요. ㅋ
사람사는거는 일본이나
한국 어딜가나
별반 거기서 거기지요.
가장없이 목구녕이
포도청이라고
삶의 애환
마음이 시큰합니다.
일본은 상당히 엇비슷한 ...
양녀를
고생하면서 키운 사랑이
감동적이며 효녀의 마음이 참 착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