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산 포구로 나가
올겨울 들어 겨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추위가 닥친 십이월 중순이다. 그제 토요일부터 이번 주 내내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 밑으로 내려가 낮에도 빙점 근처 머문단다. 지난가을부터 따뜻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올해 들어서 처음이다시피 찾아온 강추위에 잘 적응해야 할 듯하다. 어제 아침나절 날씨가 제법 추웠는데도 함안 칠북 영동에서 무릉산을 비켜 창원 북면으로 걸었다.
동장군이 물러갈 기미가 없는 십이월 셋째 월요일이다. 최근 몇 해 겨울 철새 도래지는 AI 발생을 억제 예방할 목적으로 탐조객 출입은 제한해 서식지 근처로는 접근하지 못해 아쉬움이 따른다. 주남저수지와 낙동강 하류 을숙도 일대가 거기 해당한다. 올해 들어 지나간 십일월 초순 맥도강 생태공원을 찾아갔더니 내년 삼월까지 탐조객 출입을 막아 과잉 대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가 뒤늦게 닥친 만큼 철새들도 남녘 행로를 머뭇거리다 이제 겨울을 나게 될 베이스캠프를 차렸지 싶다. 이번에는 탐조객 발길을 막지 못할 철새 도래지를 한 곳 찾아 길을 나섰다. 김해평야 남쪽 서낙동강이 녹산 배수장으로 빠져나가는 둔치도로 나가 겨울 철새들이 오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올 참이다. 월요일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나갔다.
이른 아침 아파트단지 귀여운 동박새가 날아와 먹이를 찾아 반가웠다. 다른 박새들과 달리 깃이 연녹색이라 눈에 쉽게 띄는 동박새였다. 입주민이 드나드는 출입구까지 다가온 녀석은 시멘트 바닥에 붙은 홍시를 쪼아먹으려는 속셈이었다. 아파트단지 뜰에 조경수로 자란 감이 홍시가 되어 떨어져 있었다. 피사체에 들키지 않으려고 고양이 발걸음으로 다가가 사진을 한 컷 남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보도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에는 백로와 흰뺨검둥오리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겨울 철새 흰뺨검둥오리는 날씨가 추울수록 활기차게 놀았다. 그 곁에 여름 철새 백로는 넓은 부리로 냇바닥을 휘젓고 다니는 흰뺨검둥오리를 우두커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원이대로로 나가 장유로 가는 58번 좌석버스를 타고 창원터널을 통과 율하에서 내렸다.
김해 시내에서 장유를 거쳐 부산 하단으로 가는 220번 버스로 갈아타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지선을 따라 경마장이 가까운 조만포에서 내렸다. 조만강 다리를 건너 둔치도로 드니 들머리는 도정공장이 나왔다. 낙동강 하류 가장 남쪽에서 생산된 벼를 빻은 쌀이 나올 정미소였다. 둔치도는 벼농사와 함께 겨울은 비닐하우스에 미나리를 키웠다. 민물고기를 양식하는 양어장도 보였다.
조만강 언저리 시든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강심은 쇠물닭과 오리들이 찾아와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둔치도 경작지 상공에는 맹금류에 해당하는 수리와 매들이 하늘 높이 날려 올린 연처럼 먹잇감을 찾아 선회 비행하고 있었다. 농로를 겸한 산책로를 따라 둔치도를 절반만 돌아 생곡로로 통하는 다리를 건넜더니 대동 수문에서 나뉜 서낙동강 물길이 유장하게 녹산으로 흘러갔다.
서낙동강 강변 생곡로를 따라 녹산으로 가니 장락포 모롱이 ‘항일무명용사위령비’가 나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광복이 되던 그날 오전 가덕도 주둔 일본 군영을 탈출한 한 조선 청년이 일본 헌병에 쫓기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성산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사연이 새겨져 있었다. 고향도 이름도 모르는 시신은 거적에 덮여 어디론가 실려 가고 2시간 뒤 해방을 맞았다.
녹산 포구에서 건너다보인 야트막이 바위로 솟은 노적봉 남향에는 비구니 수도 도량 수능엄사가 자리했다.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이 몇 척 묶여 있는 포구에서 서성이면서 윤슬로 반짝이는 신호대교 바깥을 바라봤다. 추위와 허기를 달랠 식당을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아 겨우 국숫집이 한 군데 보여 늦은 점심을 때우고 장유로 가는 버스를 타고 환승을 해서 창원으로 복귀했다. 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