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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삶에서 하느님을 알아 뵐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7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식별에 대한 교리교육을 이어갔다. 이날 교황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에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을 설명하면서, 하느님께서 그러한 사건을 통해 활동하신다고 설명했다. 이냐시오 성인은 다리 부상을 입은 뒤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예기치 못한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과 마주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가 주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도록 식별해야 한다.
번역 이창욱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 2.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사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식별에 관한 우리의 묵상을 이어갑시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영적 식별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말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유익한 사례 중 하나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입니다. 성인의 생애에서 걸정적인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전투에서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집에서 회복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무엇인가 읽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기사도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집에는 성인들의 전기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성인전을 집어 들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계는 기사들의 세계에 필적할 만하고 그를 압도하는 세계였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 성인들을 본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의 세계도 계속 그에게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면에서 기사들의 삶과 성인들의 삶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두 가지 생각이 서로 대등한 것처럼 보인 것이죠.
하지만 이냐시오 성인은 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성인은 3인칭으로 자서전을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사를 공상할 때에는 – 물론 기사들의 삶을 말합니다 – 당장에는 매우 재미가 있었지만, 얼마 지난 뒤에 곧 싫증을 느껴 생각을 떨치고 나면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고 황폐해진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는 일, 맨발로 걷고 초근목피로 연명해 가는 성인전에서 본 고행을 모조리 겪는다고 상상을 해보면 위안을 느낄 뿐만 아니라, 생각을 끝낸 다음에도 흡족하고 행복한 여운을 맛보는 것이었다”(『자서전』, 8항). 곧, 성인전은 그에게 행복한 여운, 기쁨의 여운을 남겼습니다.
성인의 이 체험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세상사를 생각할 때 매력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그 뒷맛이 무엇인가 공허하고 불만족스러우며 황폐해진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는 일종의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 “나는 지루한 성인전은 읽지 않을 거야” – , 받아들이기만 하면 알지 못했던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이 평화로운 느낌은 오래 지속됩니다.
두 번째 측면은 생각의 ‘귀착점’입니다. 처음에는 상황이 그다지 명확해 보이지 않습니다. 식별에는 발전 단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과정을 거치면서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경험의 결실인 식별을 위한 규칙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식별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전제를 제시합니다. “대죄에서 대죄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원수(사탄)는 노골적인 쾌락을 제시하고 감각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상상하도록 하여서 악덕과 죄들을 유지하고 더욱 키워가게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선한 영(성령)은 이성의 분별력으로써 양심을 자극하고 가책을 일으키는 등 정반대의 방법을 쓴다”(『영신수련』, 314).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식별에 선행하는 역사, 식별을 하는 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가 있습니다. 식별이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제비를 뽑는 일종의 신탁이나 숙명론 혹은 실험실에서 나오는 것을 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들은 우리가 이미 인생의 먼 길을 걸어왔을 때 발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길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인생에서 길을 조금 걸어간 시점에, 거기서 이런 물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바로 거기가 식별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아버지의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하느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인생을 쇄신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성인은 기이한 반전을 일으키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첫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를 실망시키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다지 눈부시지 않은 것에서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발견합니다. 우리도 이런 체험을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거기에 몰두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선활동을 하고, 선한 일을 하면 어떤 행복을 느끼게 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기쁨이 찾아 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체험을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기이한 반전을 일으키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곧,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려면, 특정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면,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전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듣기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나요? 잠시 멈추어 서서 이렇게 되물을 수 있나요? “내 마음은 어떤가? 만족스러운가, 슬픈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가?”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이냐시오 성인은 성인전을 읽으라고 권고합니다. 성인들도 우리처럼 살과 뼈를 지닌 인간이기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삶에서 하느님의 방식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느꼈던 두 가지 감정에 대한 에피소드, 곧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낀 감정과 성인들의 생애를 읽었을 때 느낀 감정에서, 우리는 식별의 중요한 측면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시간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인생의 사건에는 명백한 ‘우연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소한 사고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경우 집에 기사들에 대한 책은 없었고, 성인전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우연한 사고가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이냐시오 성인은 이를 깨닫게 되고, 그 시점에서 그는 거기에 자신의 모든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우연이라는 계획에 없던 사건들을 통해 활동하십니다. 우연한 기회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고, 우연히 이 사람을 만났고, 우연히 이 영화를 봤다는 등 계획에 없던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계획에 없던 사건들을 통해 활동하십니다. 심지어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책을 가야 하는데 발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럴 수는 없어요.” 이런 일은 경미한 사고죠.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거기서 인생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나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밭을 갈다가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에 대한 내용입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 닥친 행운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마태 13,44 참조). 여러분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겠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여러분에게 말을 거나요? 인생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나요?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나요, 아니면 악마가 말하고 있나요? 말을 거는 쪽은 누구인가요? 그런데 식별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데 “쾅, 쾅”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시어머니께서 오십니다. 여러분은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나요? 사랑으로 대하나요, 아니면 마음속에 다른 감정이 있나요? 식별해 보십시오. 사무실에서 일을 잘하고 있는데 동료가 와서 난데없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을 겪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십시오. 바로 거기서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게 됩니다.
식별은 이냐시오 성인이 다리 부상을 입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 심지어 불쾌한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당신을 알려주시는 표지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영원히 바꿔버리는 만남이 이런 표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여러분을 더 좋게 만드는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악화시키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조심하십시오. 가장 아름다운 실마리는 예기치 못한 일, 뜻밖의 일을 통해 주어집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에서 주님께서 활동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것이 활동하는지 가려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