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宋海) , 본명 송복희 (宋福熙)
1927년 4월27일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토현리에서 송제근과 박신자의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 부친은 숙박업체와 주막을 운영했는데 일터 따라 가족이 자주 이사했다고 한다. 재령군으로 옮긴 것은 고인이 초등학교 다닐 때다. 그가 전쟁통에 징집을 피해 고향을 떠났을 땐 가족 중 어머니와 8~9세 연상의 형님, 7~8세 연하의 여동생만 생존해 있었다.
황해도 재령. 그리운 어머니를 두고 떠나온 곳. 1950년 발발한 6‧25 전쟁 와중에 혈혈단신 남하할 땐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이번에는 조심하거라” 하며 눈물짓던 어머니와 툇마루에 앉은 여동생이 23세 청년 송해 뇌리에 남은 마지막 모습이다. 그렇게 시작된 유랑 길이 평생 그를 서민의 벗, 무대 위의 ‘광대’로 이끌었다.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 평양 국립음악학교 성악과 졸업
- 1.4 후퇴 직전 황해도 구월산 북한군 패잔병들로 구성된 빨치산들이 민가로 쳐들어올 때 잡혀가지 않으려고 재령을 떠났다.
- 피난선을 타고 도착한 부산항에서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가 군에 입대해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모스 부호로 직접 타전하기도 하였다는....
-1955년 '창공악극단' 데뷔
송해 가족, 아내 석옥이
송해가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던 한국전쟁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였던 송해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켜줬는데, 그녀가 바로 송해의 아내인 석옥이(충주석씨) 여사다.
2018년 01월 20일 83세의 일기로 타계하여 고향 함박산 송해공원에 안장되었다.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열어보고 싶다 했던 소원도 분단 77년의 한과 함께 스러졌다.
"황해도서 전국노래자랑" 그 꿈 남기고 떠난 95세 현역 MC [송해 1927~2022]
실향민 송해의 유해 는 대구 달성군 비슬산아래, 부인의 고향 마을에 세워진 송해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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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별세, 향년 95세…최고령, 최고의 MC 세상 뜨다
2018년 01월 20일
옥연지 송해공원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옥연지 일대
송해 - 아주까리 등불s
아주까리(蓖麻子피마자)
蓖
아주까리 피, 아주까리 비
아주까리 등불(1941년) / 최병호
조명암 작사 / 이봉룡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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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왠만하면 구순은 넘기나 봐요.
2님흔 보훈 가족이군요.
6월은 남다른 감정이 있겠고요.
고 송해님이 27년 생이시면 우리
친정어미니께서는 28년생 이시랍니다.
한 살 더 많으시군요.
그리고 재령이 고향 이라시더니 연백 이시라니
더욱 친근감이 가네요.
개성 태생의 어머니께서 연백으로 시집을 가시곤
곧바로 서울로 오셨죠. 아버지 직장이 서울 제약회사
다니셨으니요 .
친정아버지께서 연백 출신 이시랍니다.
이런 인연이 ~~~ 그전부터 황해도라 하시어
반가워는 했지만 연백 태생 이시라니 ㅎㅎㅎ
고 송해 님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살아오셨던 분이시죠. 하나 밖에 없던
아들이 먼저 세상을 뜨고 결국은 대구 달성
송해 공원에 묻히시며 영원히 이름을
남기셨네요.
송해님 출생지는 연백이군요.
방랑시인 김삿갓 명국환님도 연백
바람온냐도 연백...
연백 까마귀가 적지도 않아요.
개성 연백 이남땅으로 좋은 고장인데...
미수복지구가 되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