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전래동화 09-
“근데 지금 몇 시야?”
“아홉시”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여섯시,
원이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모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세 시간씩이나 기다렸는데도 전혀 지루한 기색이 안보였다.
“근데 모하고 있었어?”
“네 얼굴보고 있었지~”
“그냥 깨우지 그랬어~”
내 말에 원이는 씨익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럼 네 얼굴을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빤히 볼 수 없잖아?”
원이가 내 얼굴에 장난이라도 쳤나?라는 생각에 양호실 거울 앞에 서니
내 머리에 토끼 귀 같은 게 쫑긋하게 달려있었다.
‘잠이 덜 깻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내 머리에 하얀 털이 있는 귀가 쫑긋하게 달려있었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거울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동안 잠을 자서 그런지 헛것을 본거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내 얼굴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원이를 봤더니
원이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설마 네 얼굴에 내가 장난질을 치겠냐?”
“응”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원이는 약간의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늦었으니깐 얼른 집이나 가자”
가방을 얼른 후다닥 챙기고 원이 뒤를 쫒아갈려고 나왔더니
원이의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방금 전에 나갔는데도 원이의 모습이 저 멀리서 보여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야만 했다.
“옛날엔 나자고 있으면 얼굴에 막 그림 그려놓고 그랬자나, 것도 유.성.매.직으로”
유성매직을 강조하자 자신이 어렸을 적 했던 짓궂은 일들이 생각났는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눈을 찡긋- 윙크하며 말하는 원이,
“그건 어렸을 때고~ 지금은 어른이잖아~?”
해맑게 말하는 원이의 모습이 천방지축 꼬마애 같아 동생같은 귀여운 마음에
원이를 옆에서 꼬옥 안았다.
어렸을 땐 나보다 체구도 작았는데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키가 큰 건지
안은 채로 원이를 올려다보자 촉촉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입술에 닿았다.
우웁..
상황파악도 하기도 전에 물렁한 무언가가 내 입속으로 들어와 휘저었다.
태어나 난생 처음해보는 키스.
그래,
지금 원이는 내게 키스를 했다.
상황파악이 좀 되자 당황한 나머지 원이를 밀치고 쳐다봤다.
어느새 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고,
원이는 그걸보고 미안했는지 쉽게 입을 열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그런 태도에 더 화가났다.
미안하다고 실수였다고 하면 그냥 친구니깐 원이와의 관계유지를 위해 넘어갈 수도 있는데
원이는 한 마디의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친구를 잃어버릴 거 같은 상실감에 집을 향해 앞도 보지 않은 채 달렸다.
눈도 감고 달리니 앞에 누가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안보였다.
혼란스러움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것을 떨쳐보려고 더 속도를 내서
달리다가 누군가와 충돌했다.
“죄송합니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사과의 말만 하고 지나치려는데
부딪쳤던 사람이 내 팔을 손목을 잡고 안 놓아주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차마 보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나에게는 반갑지도 않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야, 너 왜 우냐?”
강치민,
그 녀석의 목소리를 듣자 울음이 더 터져버렸다.
이렇게 이 녀석 앞에서 울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머리에 있지만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그 녀석은 날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울음이 조금씩 그쳐가고 숨을 고르자 창피함에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내게
그 녀석이 말했다.
“야, 밥 먹으러가자”
한참을 울어 지친 터라 허기진 배에게는 아주 고마운 말이었지만
내 얼굴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지금 내 꼴은 안 봐도 안다.
분명 콧물이 눈물보다 더 많이 나와 추해 있을 테고
눈은 팅팅 부었을 거다.
밥 먹으러 가기엔 너무 추레한 모습이기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맘을 모르는지 번화가로 무작정 끌고가는 그 녀석,
너무 울은 탓에 힘도 없는지라 그대로 질질 끌고 가고 말았다.
그 녀석이 손을 놓은 곳은 음식점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거 같은 느낌에 창피해 하고 있는데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화장실 있어 씻고 와”
그 녀석도 날 데리고 댕기기 창피했는지 번화가로 들어서자마자
한 건물에서 씻고 오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얼른 세수하고 싶어서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헉뜨-
한 커플이 화장실에서 러브러브 중....
서로의 입을 맞대고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른 채,
그 커플은 키스하기 바빴다.
그 장면을 보니 원이와 키스했던 게 떠올라 문을 얼른 닫고
계단을 서둘러 뛰어 내려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흑흑...흑으..”
아파서 우는건지 아까 원이와의 일 때문에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내 눈을 자극했다.
“하여튼 칠칠맞긴”
긴 다리로 척척 다가오더니 날 세우고 내 무릎을 보는 그 녀석.
오늘 따라 싸가지 없는 이놈이 왜 이렇게 다정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린애냐? 부딪치고 넘어지고 쯧쯧”
말은 시비조였지만 그 녀석의 행동만큼은 시비조가 아니었다.
손수건은 어디서 났는지 넘어져서 빨갛게 까진 무릎을
손수건으로 잘 묶어주는 녀석.
그러더니 계단에 털썩 앉더니 나보고도 앉으라며 손짓했다.
“야, 이제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냐?”
무슨 뜻인가 싶어 그 녀석을 봤더니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을 했다.
“네가 운 이유”
그 녀석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수그리니
그 녀석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에 얹져졌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기에 그렇게 슬프게 우냐.. 나 마음아프게..”
그 녀석의 말에 당황하며 그 녀석을 쳐다봤다.
진지하고 똑바른 눈이 날 보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내 모든 게 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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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설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ㅅ;
읽으신 뒤에 흔적까지 남겨주신다면~ 소인은 행복하게사와요~♡
첫댓글 재밌네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