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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靑葡萄)/이육사(李陸史)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면사무소 이육사 시비, 시제는 '청포도'>
이 (청포도) 시의 배경은 경북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로서,
영일만과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여기에는 일본인 미쓰아가 경영하는 대규모 포도밭(삼륜포도농장 60만평)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도주 생산 공장(삼륜포도주)이 들어서 있었다.
육사는 1940년 여름 항일 운동과 구금 생활에 상한 고달픈 몸으로 이곳을 찾아 왔다.
이곳의 애국 청년 김영호(당시 35세.작고), 정의호(당시 37세.작고), 이석진(당시 40세.작고)씨 등과 만나기 위함이었다.
또 1942년 포항시 기계면의 이영우 집에서 요양했으며, 경주 동남산자락의 옥룡암에서 두어달 요양할 때도 심당 김대정선생과 이식우(전 경주고 교장) 등과 같이 포항의 바닷가와 도구의 포도밭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년의 육사는 우국 청년들과 함게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 숲 속에서 어쩌면 밀담을 나누기보다는 먼저 시상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포도송이처럼 짓푸른 영일만, 졸고 있는 듯 떠가는 돛단배, 우국 청년의 가슴을 메우는 기다림,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시의 물살이 살랑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육사는 몰래 포항에 잠입해 청년들을 만난 뒤 역시 몰래 떠난 1년 뒤 삼륜 포도원과 영일만이 청포도를 탄생시켰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포항시에서는 두개의 이육사 청포도 시비를 세웠는데
최초 1999년 12월에 호미곶 바닷가에 세웠고,
또 2013년 12월에는 동해면 면사무소내에도 청포도 시비를 세웠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 해맞이공원 이육사 시비, 시제는 '청포도'>
첫댓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지)
안녕하세요 수초님...
적막한 끝마을에
님히 오시는 발자욱 소리가
아름다워요.
'도'자로 잘 이으셨는데
댓글로 잇기보다
제목으로 달아서 이으시면 더 둏아요.
자주 놀러 오세요.
감사합니다.
@멍게2
모르면 말고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산포도 처녀~
2님의 계절이
돌아왔군요.
행복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