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익어가는 7월~
'청포도 고향'은 1968년 서라성이~~~...
A
1934년 6월 20일, 의열단 관련자로 투옥되었을 때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李源祿)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면 원촌동(現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원촌마을) 881번지에서 퇴계 이황의 13대손인 아버지 이가호(李家鎬, 1878 ~ 1941.4.26.)와 어머니 김해 허씨 허길(許吉, 1876 ~ 1942. 4. 29) 사이에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윤동주, 한용운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다.
1925년 북경 군사정치사관학교 1기생으로 졸업한 21살 이육사도 의열단에 가입하여 ,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 되어 국내에 무슨 일이라도 터질라치면 번번이 일경에게 예비 검속을 당하는 등, 무려 열일곱 차례나 투옥된 끝에 1944년 1월 16일(음력 1943년 12월 21일)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시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 향년 39세)
초강(楚剛)한 지사(志士), 빈들(曠野)의 초인(超人),
민족시인(民族詩人) 이육사(李陸史)~!
광야를 달리던 뜨거운 의지여,
돌아와 조국의 강산에 안기라.
~이육사(李陸史) 유시(遺詩)~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 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梅花 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3 (성곡동) 안동민속박물관 내
육사의 절명시
'빈들' 시비 뒷면의 비문.
격정적인 헌사를 쓴 이는 육사를 흠모한 동탁 조지훈이다.
曠野(광야)를 달리는 駿馬(준마)의 意志(의지)에는 槽櫪(조력)의 嘆息(탄식)이 없고
한마음 지키기에 生涯(생애)를 다 바치는 志士(지사)의 千古一轍(천고일철-생애)에는
成敗(성패)와 榮辱(영욕)이 아랑곳 없는 법이다.
天賦(천부)의 錦心繡腸(금심수장)을 滿空(만공)의 熱血(열혈)로 꿰뚫은 이가 있으니
志節詩人(지절시인) 李陸史(이육사) 님이 그분이다.
임의 이름은 源祿(원록)이요. 一名(일명)은 活(활)이니 陸史(육사)는 그 雅號이다.
(중략) ....
1964년은 陸史(육사) 還曆(환력)의 해이다.
生前(생전)의 知己之友(지기지우)와 同道(동도)의 後輩(후배)가
誠力(성력)을 모아 한 조각 돌에 遺詩(유시)를 새기고
겸하여 一代(일대)의 자취를 간추리는 것은
임의 높은 뜻을 길이 紀念(기념)하고자 함이다.
曠野(광야)를 달리던 뜨거운 意志(의지)여.
돌아와 祖國(조국)의 江山(강산)에 안기라.
趙東卓 撰(조동탁 찬)
金忠顯 篆(김충현 전)
裵吉基 書(배길기 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양반 상민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이나 그 전통에 따라서 위대한 피의 흐름은 대를 이어가나봐요.
예전부터 대한민국 일등 혼사는
진성이씨와 하회류씨 양가문간의 혼인이라 했어요.
안동 도산 이퇴계가문 진성이씨와
안동 하회 류성룡가문의 하회류씨
안동 권씨니 안동 김씨니 우리 나라에 양반입네가 그렇게 많은데도
진성이씨 하회류씨 양가문이 대단했답니다.
이육사, 진성 이 퇴계 14대손이군요.
@별고을 하회류씨 (풍산류씨)
를말씀 이시죠?
@지 인 네,
그렇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의 집안은
민족의 사명감으로
헌신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은 반면
척결되어야 할 친일파는
아직도 국론 분열만 조장하고 있지요.
동남쪽 끝마실
호미곳에 이육사 詩碑를 보고
왜 그 곳에 설치되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이육사가 찾은 포도밭은
포항 동해면 도구리라는데...
그러게요
포항 호미곶 공원은
포항의 관광차원으로 이용한 건 아닌지...
그 연고는 제가 확실히 알지는 못합니다.
청포도 익어가는 우물가 샘터에는 수줍은 아가씨가 기다리던곳~ 노래를 들으며 이육사 정보를 잘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감상하시어
감사합니다.
이육사 집안의
독립운동은 두고두고 후손들께 전해질줄 믿습니다
대단한 가문의
전통과 정신을 보고 느낍니다.
청포도 고향 이 노래는 우리 친정
어머니께서 흥얼 거리시는걸 들었네요.
그래서 그런지 귀에 익는 듯 하네요. ㅎㅎ
이육사님이 참으로 에국정신이 투철하신
분으로 일제 사대때 열 일곱번이나
투옥 되셨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네요.
그 시절 애국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꿋꿋이
설 수 있는 걸 보면 우리 국민은
애국투사들을 잊으면 안되죠.
물론 나라에서도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있을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를 해야 될 것 같네요.
독립운동 한다고 몸이 망가지고
그 중간에 틈나면 우국시로 국민을 위로하고...
초인적인 정신, 나라사랑 아니면 ...
감옥살이도 고문도 엄청 당하고
연세도 한창 나이 39세에...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