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출동
리그오브레전드 '진'의 시낭송
이상, 오감도 제9-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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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시제9호 총구
매일같이 열풍이 불더니 드디어 내 허리에 큼직한 손이 와닿는다. 황홀한 지문 골짜기로 내 땀내가 스며들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 내 소화기관에 묵직한 총신을 느끼고 내 다물은 입에 매끈매끈한 총구를 느낀다. 그러더니 나는 총을 쏘듯이 눈을 감으며 한 방 총탄 대신에 나는 참 나의 입으로 무엇을 내뱉었더냐.
오감도 시제10호 나비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그것은 유계에 낙역되는 비밀한 통화구다.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어서듯이 나비도 날아가리라.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
오감도 시제11호
그 사기컵은 내 해골과 흡사하다. 내가 그 컵을 손으로 꼭 쥐었을 때 내 팔에서는 난데없는 팔 하나가 접목처럼 돋히더니 그 팔에 달린 손은 그 사기컵을 번쩍 들어 마룻바닥에 메어부딪는다. 내 팔은 그 사기컵을 사수하고 있으니 산산이 깨어진 것은 그럼 그 사기컵과 흡사한 내 해골이다. 가지났던 팔은 배암과 같이 내 팔로 기어들기 전에 내 팔이 혹 움직였던들 홍수를 막은 백지는 찢어졌으리라. 그러나 내 팔은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한다.
오감도 시제12호
때묻은 빨래조각이 한뭉텅이 공중으로 날라떨어진다. 그것은 흰비둘기의 떼다. 이 손바닥만한 한조각 하늘 저편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는 선전이다. 한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이 손바닥만한 하늘이편에 방망이로 흰비둘기의 떼를 때려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 공기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묻으면 흰비둘기의 떼는 또한번 이 손바닥만한 하늘저편으로 날아간다.
오감도 시제13호
내 팔이 면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무엇에 몹시 위협당하는 것처럼 새파랗다. 이렇게 하여 잃어버린 내 두개팔을 나는 촉대세움으로 내 방안에 장식하여 놓았다. 팔은 죽어서도 오히려 나에게 겁을 내이는것만 같다. 나는 이러한 얇다란 예의를 화초분보다도 사랑스레 여긴다.
오감도 시제14호
고성 앞에 풀밭이 있고 풀밭 위에 나는 모자를 벗어놓았다.
성 위에서 나는 내 기억에 꽤 무거운 돌을 매어 달아서는 내 힘과 거리껏 팔매질쳤다. 포물선을 역행하는 역사의 슬픈 울음소리. 문득 성 밑 내 모자곁에 한사람의 걸인이 장승과 같이 서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걸인은 성 밑에서 오히려 내 위에 있다. 혹은 종합된 역사의 망령인가. 공중을 향하여 놓인 내 모자의 깊이는 절박한 하늘을 부른다. 별안간 걸인은 율률한 풍채를 허리굽혀 한 개의 돌을 내 모자속에 치뜨려넣는다. 나는 벌써 기절하였다. 심장이 두개골 속으로 옮겨가는 지도가 보인다. 싸늘한 손이 내 이마에 닿는다. 내 이마에는 싸늘한 손자국이 낙인되어 언제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오감도 시제15호
1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2
죄를 품고 식은 침상에서 잤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 의족을 담은 군용장화가 내 꿈의 백지를 더럽혀놓았다.
3
나는 거울속에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그러나 거울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내가 그때문에 영어되어 있듯이 그도 나때문에 영어되어 떨고있다.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리키었다. 그 들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내게 가르친다. 거울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금속으로 엄폐하고 나는 거울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 발사하였다.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통과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6
모형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첫댓글 이거 여름 내내 들었어..매우 오싹
와 이게 쩌리로 올라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