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엄마와 함께 동해안을 여행하다 강원 강릉 중앙시장에 들른 적이 있다.
수산물 시장 지하 한쪽에서는 거대한 김을 쏱아내며 손님이 점찍은 문어를 직접 삶아 팔았다.
동해안까지 왔으니 문어를 삶아가면 한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엄마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10여 분 문어가 들어간 찜솥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동안 시장 안을 구경하면 좋으련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8개의 문어 다리가 집에 와보니 7개인 적이 있었으며 이번엔 문어 다리를 지키고 있겠다는 것이었다.
강릉에서 삶은 뒤 집까지 몇 시간 걸려 가져온 문어가 생각보다 부드러워 놀랐었다.
어릴적 극장에서 씹었던 마른 문어 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물 속에 들어있는 문어도 질겼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어를 부드럽게 잘 삶기 쉽지 않다며 노련한 시장 상인의 솜씨에 맡기는 것이 훨씬 좋다는 엄마의 말도 기억난다.
어른이 돼 다양한 외식을 경험하면서 문어 요리의 생명은 熟成과 休止, 그리고 부드러움의 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라도에서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로 홍어가 있다면 경상도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문어일 것이다.
동해안 묵호항에서 삶아 8시간 걸리는 완행기차로 경북 영주까지 가져오면서
아주 부드러워진 문어의 맛을 찾았다는 옛 어른의 경험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큰 생선도 맛이 제대로 들 때는,
크기와 조건에 따라 잡은 뒤 하루 이틀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맛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양반이 많이 살았던 영주, 안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한양에서 몰락한 양반들이 내려와 살았다는 강원도 고성이나
경남 밀양 등 동해안 인근 당시 신분이 높았던 집안에서 상에 힘을 주었을 때는 문어가 올라갔다.
동네 아낙 손맛의 '표준지표'는 문어를 얼마나 잘 요리하는가에 달렸다.
밀양의 밀성 손씨 내림음식 '문어수란채'는 호사의 부드러움이었다.
삶은 문어를 얇게 썰어 설탕 식초 간장 깨소금 참기름 잣을 넣어 간이 배도록 두었다가
거기에 냉수를 붓고 달걀을 물속에서 부드럽게 익힌 수란을 넣는다.
시원하게 먹었던 여름음식으로 식초의 시큼한 맛과 약간의 단맛, 달걀과
합쳐진 문어의 야들야들한 식감은 진정한 부드러움의 合이다.
서울에서는 양식당 셰프들이 문어와 아보카도의 매칭을 곧잘 시도한다.
잘 익은 아보카도와 잘 삶은 문어를 함께 먹을 때,
뭐가 문어이고 아보카도인지 모를 정도로 최고의 부드러운 쾌감이 전해진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