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제목과 연과 행 다듬기
고맙습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예까지 읽어오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으라는 대로 읽어온 분들은 머지않아 훌륭한 시인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냥 시가 뭔가 알아보기 위해 읽어온 분들은 이미 상당한 고급 독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군요. ‘시’라는 몹쓸 병에 한 번 걸리면 평생 벗어나기가 어려운 법인데...
그런 병을 앓다가 정 어려운 분들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오세요. 가난한 교수라서 거창한 환영대회는 못 열어드려도 큼직 큼직하게 코생이를 썰어 안주로 내놓는 단골집에 가서 소주잔을 건네면서 계속 토론해 보자고요. 예로부터 같은 뜻을 지닌 벗이 멀리서 찾아와 한 잔 나누는 것(有朋自遠方來)은 '군자삼락(君子三樂)' 가운데 하나고, 그러는 과정에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제목 정하기와 연과 행 나누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제목 다듬기 ☺ 뛰어난 사냥꾼은 화살이 사냥감의 목덜미에 박힐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인도…
시를 처음 쓰는 분들은 '제목을 정한 다음에 본문을 쓰는가, 본문을 쓴 다음에 제목을 정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글쎄요. 저는 가제(假題)를 붙여 작품을 완성한 다음 다시 고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제목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제목은 단지 작품의 이름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그 작품을 읽도록 만드는 유도 장치인 동시에, 독서의 방향을 암시하며, 문학적 깊이를 더 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시인들은 본문을 완성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제목을 붙이는 데는 별로 신경을 안 쓰더군요. 그것은 아마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우리 관습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시인이 존재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아래 <A>와 같이 마침표를 찍고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그것에 <B>처럼 제목을 붙였다고 합시다.
<A> <B> 존재에 대한 명상 . .
이들 차이는 제목 유무뿐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데는 천양지차(天壤之差) 입니다. <A>를 읽을 때는 이것도 시인가 생각하지만, <B>를 읽을 때는 점뿐인 본문과 제목이 협동하여 존재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차라리 침묵하는 게 옳다고 해석하고,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시인의 고민을 상상하면서 감동을 받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와 같은 제목의 기능은, 첫째로 그 작품의 명칭 노릇을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기능을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지만, 아주 중요합니다. 모든 사물은 명칭으로 기억되고 비교됩니다. 그로 인해 제목이 기억되지 않는 작품은 다른 작품의 내용에 뒤섞이고, 마침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 되고 맙니다.
둘째로, 본문의 내용을 암시하면서 독서를 유도하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점이나 인터넷 카페에서 책을 고를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목을 보고 뽑아듭니다. 그리고 표지와 목차를 스쳐보고, 본문 한두 장을 읽은 다음에 구입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제목은 그 작품의 선택 여부를 결정하는 일차적 유도 장치하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본문과 함께 문학적 깊이를 만드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독자는 어떤 작품이나 책을 고를 때 제목으로부터 받은 인상으로 기대(期待)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앞에서 예로 든 ‘존재에 대한 명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존재’와 '명상'이라는 말을 주목하고, 이 작품은 철학적일 거라는 예단(豫斷)을 갖습니다.
물론 이런 예단이 잘못된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 효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임을 자각하지 않는 한 그에 의해 본문의 의미를 추론하고, 그렇게 추론하고 해석한 결과에 따라 그 작품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제목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이를 설명하기 전에 홍윤기 시인이 펴낸 『한국 현대시 해설』의 목차에 수록된 제목들을 소개해 드릴 테니, 마음에 드는 것 세 개만 골라 보세요.
○꽃두고 ○봄바람 ○벽모(碧毛)의 묘(猫) ○알 수 없어요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 ○방랑자의 마음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접동새 ○청자부(靑磁賦) ○사(死)의 예찬 ○인천항 ○봄의 선구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파초 ○손님 ○논개 ○국경의 밤 ○그 먼 나를 아십니까 ○봄은 고향이로다 ○효대(孝臺) ○어서 가거라 ○현해탄 ○모란이 피기까지는 ○태양의 풍속 ○달 포도 잎사귀 ○The Last Train ○정주성 ○청노루 ○바다의 층계 ○삼각산 옆에서 ○동양의 산 ○나비와 광장 ○목마와 숙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춘니(春泥) ○존재x ○무에 대하여 ○마카로니 웨스턴 ○해부학 교실 ○밤을 주제로 한 작품 ○출토된 울음에 의한 습작(習作) ○그대는 별인가 ○이주민촌(移住民村) 병철이 ○무령왕릉의 나무 두침(頭枕) ○한 잎의 여자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사람의 집 ○칼쟁이는 칼을 간다 ○물 속의 푸른 방 ○카알리이 레첼의 노래 ○타향, 그 저물녘에 서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위 제목들은 아래와 같이 7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⑴ 명사형 : 「봄바람」, 「달․포도․잎사귀」, 「나비와 광장」, 「존재X」 등 ⑵ 관형구형 : 「사의 예찬」, 「봄의 선구자」 등 ⑶ 부사구형 : 「꽃 두고」, 「나의 침실로」 등 ⑷ 서술구형 : 「알 수 없어요」, 「어서 가거라」 등 ⑸ 문장형 : 「나는 왕이로소이다」, 「봄은 고향이로다」 등 ⑹ 한자어형 : 「청자부(靑磁賦)」, 「벽모(碧毛)의 묘(猫)」, 「춘니(春泥)」 등 ⑺ 외국어형 : 「The Last Train」, 「칼아리이 레이첼의 노래」 등
명사형을 골랐다고요? 혹시 「봄바람」이나 「인천항」 또는 「논개」 같은 것들을 고른 건 아닙니까? 대부분의 시인들이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기에 묻는 겁니다. 이런 걸 골랐다면 자기 작품의 제목도 이런 방식으로 붙일 테니, 방법을 바꾸셔야 하겠습니다. 이런 제목은 제재의 종류만 드러낼 뿐, 시인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을 잡아끌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인천항’ 만 해도 그렇습니다. 산문인지 시인지, 산문이라면 지리적 위치를 설명한 글인지, 산업 현황을 설명하는 글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목은 또 하나의 본문이라고 생각하고 되도록 독특하게 붙여야 합니다. 아니, 본문의 어떤 구절보다 더 비중이 높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붙여도 무방할 때가 있습니다. 인천항 개항(開港) 기념 축제 때 읽을 행사시(行事詩) 같은 경우입니다. 그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싫던 좋던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골라 읽을 경우라면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도록 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명사형이라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달․포도․잎사귀 나 나비와 광장 같은 유형은 좋은 제목입니다. 그리고 소개한 책의 목차에는 없었지만, 사랑 또는 슬픔 처럼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유형도 좋습니다. 독자들은 동원한 명사들을 비교하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산만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으로 보조하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붙여야 합니다. 위 제목에서 '달․포도․잎사귀'가 시선을 끄는 것은 달빛이 내리는 포도밭을 연상시키기 때문이고, '나비와 광장' 조그만 한 나비와 거대한 도심의 광장을 대비시켜 현대문명에 포위된 자연의 모습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관형어구로 이뤄진 제목들을 골랐다구요? 안전한 선택을 했습니다. 꾸밈을 받는 명사는 관형어로 인하여 그만큼 의미가 좁아지면서 구체화되니까요.
그러나 '방랑자의 마음'이나 '봄의 선구자'처럼 밀접한 것으로 꾸미면 명사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다의 층계', '출토된 울음에 의한 습작(習作)', '한 잎의 여자', '물 속의 푸른 방'처럼 이질적인 관계로 꾸며 드러냄과 감춤을 함께 갖추도록 함께 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같은 이중 관형(冠形)은 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구어에서는 이런 어법이 허용되지만, 우리 어법에서는 베레모 위에 밀짚모자를 쓴 것처럼 보여 어색합니다. 그러므로 굳이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려면 무심코 그렇게 쓴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삼중이나 사중으로 관형하여 아예 왜곡시켜 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 부사어구로 이뤄진 제목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방식도 안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나의 침실로''나 '삼각산 옆에서'처럼 너무 의미가 드러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처럼 특수한 순간이나 특정한 장소로 만들고, 독자들이 그 의미를 상상할 수 있도록 잠재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에는 서술형과 문장형의 제목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유형을 택할 때는 두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말은 서술어 중심이라서 자칫하면 의미가 빤히 드러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너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의미가 드러나면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지고, 길면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의 목록에서 '타향', '그 저물녘에 서서'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쉼표를 찍고 일부 성분을 생략한 것은 암시적으로 만들고, 길이를 조절하기 위해서입니다.
긴 제목 이야기를 하니까 제 네 번째 시집의 제호(題號)가 생각나는군요. 아주 멋을 부리느라고 '나는 왜 비 속에 날뛰는 저 바다를 언제나 바다라고만 부르는 걸까'로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참 기발한 제목을 붙였다고 기뻐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괜한 객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대요. 나를 사랑해서 국문과에 진학하고, 대학 2학년과 3학년 때 시로 등단(登壇)한 두 딸아이마저도 '나,비,바다'라고 줄여 부를 때는 정말 후회가 되대요.
마지막으로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를 택하는 경우입니다. 젊은 독자들은 ‘벽모(碧毛)’, ‘묘(猫)’, ‘춘니(春泥)’가 무슨 뜻인지 몰라 아에 어려운 작품으로 단정하고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청자부(靑磁賦)' 같은 제목은 고루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The Last Train'이나 '카알리이 레첼의 노래'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릅니다. 젊은 독자들은 현대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장년(壯年) 이상의 독자들은 거부감을 갖습니다. 특히 '카알리이 레첼의 노래'처럼 고유명사로 된 제목은,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암호처럼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말을 갈고 닦는데 앞장서야할 시인들이 외국어를 좋아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본문 내용과 연관지을 경우, 제목은 다시 <일치형(一致形)>, <상반형(相反形)>, <무관형(無關形)>, <암시형(暗示形)>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치형은 전통적으로 채택해온 방식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제목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상반형이나 무관형은 제목과 본문이 서로 일치해야 한다는 관습에 배치되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가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는 독자들은 기만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상반형이나 무관형을 택할 때는 얼핏 보면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본문의 내용을 암시할 수 있도록 붙여야 합니다.
또 제목의 유형은 새로 만드는 <창작형(創作形)>과 작품의 어느 한 구절을 내세우는 <재활용형(再活用形)>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방법들은 창작형에 해당합니다. 재활용형은 이미 작품 속에서 쓴 구절 가운데서 골라 붙이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괜찮은 제목을 얻을 수 있어 많은 시인들이 이 방법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연에서 고르면 제목과 본문이 중복되는 느낌이 들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연작시(連作詩)의 제목을 붙이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과거에는 같은 제목에 번호를 달거나, 부제(副題)를 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1’, ‘사랑․2’라고 하거나, 제목은 그냥 두고 ‘이별’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택했습니다. 그런데, 연작시를 주로 쓰는 저의 경우, 시집으로 묶을 때 목차가 동어반복이 될 것 같대요. 그래서 부제로 달 것을 제목으로 삼고, 제목으로 달 것은 번호를 붙여가며 부제(副題)로 다는 방식을 택했지요. 그러니까, 부제로 내세울 '하늘나라 들판에서 온 전화', '심심한 날의 말장난' 같은 것들은 제목으로 내세우고, 제목으로 내세울 '다시 말의 오두막집 남쪽 언덕에서'는 번호를 붙이면서 부제로 달았습니다.
【 우리가 할 일 】 ○ 제목의 유형과 그에 따른 장단점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자기가 쓴 작품의 제목들을 고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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