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다
봄볕같이 따끈하지 않고
삼복에 살을 짓무르게 하는 불볕이 아닌
가쁜 하고
청량한 가을볕은 도통 미운 구석이 없다
겨울은 어디쯤 와있을까
기다릴 것 뭐 있나
원구씨의 겨울 그 겨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날 이후로 원구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우리 가게에 들렀다
원구씨가 오는 시간은
8시에서 9시 사이라
그 시간은 술집으로선 초저녁에 해당되어
원구씨가 첫 손님이자 이른 시간 손님이 되었다
원구씨는
11시쯤이면 돌아갔다
초저녁 시간에 와서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
춘옥이와 땡이 번갈아 드나드는 걸
빤히 지켜보다가
10시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하면
두 여자들은 너 따위 언제 봤냐는 식으로 자리를 떠나
안 돌아와도
누구를 부르거나
무얼 시키거나 하는 거 없이
조용히 있던 원구씨
한 번은 우리가 그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장사에 열중하는데
마침 화장실 다녀오는 그를 발견하고는
속으로 저 치가 이 늦은 시간에 올 때도 있네? 했을 정도다
그가 가게에 오는 횟수와 비례해서 땡이와 춘옥이의
관심도는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두어 달 지나서는 아예 그 가 오던가 말던 가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되었다
이유라면
원구씨는 전혀 가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춘옥이의 결론을 땡이가 맞받아 옳소! 그렇소! 얼룩소! 하며
장단을 맞춘 까닭이다
첫째는 말을 안 해
말이야 안하면 어때
그러나
술집이니 술은 시켜 주는데
딱 적당량을 가져오게 하고 (두 번째 왕림부터 ..)
가져 온 것은 반드시 자신이 보는데서
다 마셔라 한다고.
원구씨는
주, 법에 무지하다
어느 누가 말없이 건너다보는 눈앞에서
공짜 술이라고 덥석 덤벼 마시겠는가,
술만 억병으로 마셔 댄다고
억만금 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여 두목 춘옥의 명언..)
술, 배 따로 있는 땡이 만 놓고 봐도
무한으로 쏟아 부어도 넘치지 않고 새지도 않을 ..
대 용량의 가죽 술통을 보유한 처자로서
손님 술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서두 흥..
허나
이것도 직장이라고 마셔도 그만 아니 마셔도 그만인 술은
맛없고 미래가 안보여 못 마신다고 합의안에 서명했다
할 말이 남은 춘옥의
쐬기 박듯 하던 말
저 멍구씨는
더 이상 장사 형성에 도움이 안 되는
시시껄렁한 손님이다
초저녁 한가할 때 와주고
전혀 불러 대지 않으니
적은 매상을 올려도 그냥 두자
그리고
멍구씨는 순하긴 하되 바보도 아니고
호구는 더더욱 아니다 탕! 탕! 이렇게 ..
단란주점을 달랑주점이라고
명칭하고
날 밤을 알밤이라고 말하며
원구씨를 멍구씨라고 불러대는 춘옥이
그녀는 모친 태에서부터 세상에는
돈밖에 거머쥘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왔지 싶다
연말이라 남녀 혼합 손님까지 섞여 며칠 왁자하여
정신 줄 옆구리에 차고 이따금 꺼내보던 그날
주방과 홀을 가랑이 찢어지게 오가던 내가
잠시 쉴 틈이 있어
정신 줄을 찾아 끼고 가게를 휘 둘러 보니
원구씨 들앉아 있는 룸이 보였다
가만히 노크를 하고 들여다보니
싸구려 조명 아래서 뭔가를 적고 있던 원구씨
화들짝 놀라서 어깨를 폈다
“원구씨 뭐 하세요?
“심심하지 않으세요?
말이 없는 원구씨
그를 자세히 봤다 처음으로
추운 날씨에 버석거리는 싸구려 작업복 점퍼에
품이 넉넉한 골덴 바지 운동화
연필을 쥔 새까만
남자로서 작은 손
“뭘 쓰고 계시던데..줘 봐요
수줍게 쓰던 걸 내미는 원구씨
시 같은 글자가 가득한 수첩
“시 쓰시는 거예요?
“아님 수필? 소설? 산문?
원구씨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마주보는 원구씨 입술이 미소로 벌어진다.
“예 사장님! 저 시와 수필 소설 너무 좋아합니다.
“혹시 글 쓰는 거 좋아 하십니까?
당시 내 사정은 아이들 학비와
춘옥이와 합친 동업자금 대출로
쓰다, 읽다, 따위에서
한참 멀리 .. 떠나 있을 때였다
까짓 거 개나 줘버려라 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지쳐있었다
그런 내가 왜 그 시간
그 작고 남루한 사내
꼬질꼬질 돈 없는 손님 원구씨에게
잊어버리고 묻어버리고 살아온 내 감성을
일깨워 그를 부추겨 주는 짓을 하고 말았던가,
마침 안주 주문도 없고
나까지 들어가 다독일 단골손님도 없던 차
나는 원구씨 자리에 앉아
그의 글을 칭찬하고
글을 쓰려는 그의 감성을
나의 가벼운 혓바닥으로 한껏 치올려
주었다
말이 없다던 원구씨의 입이 터지고
그의 살아온 생애가 술상위에 쏟아진 건 순식간
사연이 홍수처럼 흘렀다
그날 원구씨는 11시를 반 넘어 돌아갔다
모르겠다. 나의 세치 혀가 원구씨
그 불쌍한 인생에 반짝 생기를 줬던가,
아니면 마약처럼 잠깐의 쾌락에 취하게 해놓고
깨어나면
더욱 비참한 현실을 보게 해서 불쌍한 그의 삶을
더 힘들게 했던가,.... 둘다 맞는 거 같다.
나는 그에게 쓸데없는 희망의 씨앗을
쥐어 줬다는 걸
세월이 흐른 다음에 알게 되었다
묵직한 아픔이 섞인 후회와 함께 ..
마지막 3편..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말없고 존재감 적은 멍구씨에게
한줄기 빛을 주셨나 봅니다..
그 빛이 어떤 아픔을 주었는지..
또한 멍구씨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춘옥씨와 땡이씨도 아직
그모습 그대로 잘 살아가고 계신지..
마지막 3편도 기대해 봅니다.. ^^*
그러니까 춘옥씨가 아니고
원구씨의 시,수필,소설을
좋아 하는 정서에 본인의
감성이 깨우첬고 원구씨에게
빠져 간다는 2편의 결론이네요^^
대화 상대가 필요했나봐요
좋아하지만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흉내내는 설익은 문학에 대한
관심과 띄워줌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대화상대
만났다고 생각해 이야기보를
풀어냈겠지요
역시
글의 전문성을 가지신 분이라
대단한 글들이 나오나 봅니다
쉽게 이해가 어렵지만
뭔가 곧 나올것 같네요
다음편을 기대해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호구엿음 운선님 주름이 좀
펴졋을낀데 영양가없는
남정네 엿네요.
어디 말벗두 없구 와로운 영혼
이엇던듯 사람들하구 쉽게
어울리지 못하구 독특한 사고
엿던 사람 같네요.
그 와중에 긴가뭄에 단비처럼
감성을 일깨워주셧어니?
그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3편이 기대됩니다
ㅁ눈물 나는 3편이 기다려지네요.
2편에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원구씨.
글을 사랑하는 분이었나 봅니다.
글을 사랑하는 이들은 임자 만나면 수다쟁이로 변하기도 할 겁니다.
아픈 사연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드뎌 멍구씨 문학적 소질을 알아줄 천사가
쨘~~`
나타나셨네요.
그러나 미리 예견된 3편 인것 같어서...
멍구씨 이야기기다릴게요..
도통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가을 햇살 아래
산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하루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