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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법회와 설법은 수행과 교화의 本分事에 정진하시는 善知識의 求道와 傳法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소개합니다. 이 선지식의 치열한 구도 교화기가 제방 스님들의 精進에 도움이 되소서 … <편집자 주>
태백산 부석사 근일스님
박희승 | 포교원 연구차장
근일스님 인터뷰는 참 극적으로 되었습니다. <법회와 설법>에서 100호 특집으로 “선지식에게 듣는다 - 고우스님편”을 하고 고우스님께‘다음에 어떤 분을 찾아뵙는 게 좋을까요?’여쭸을 때 ‘적명스님, 근일스님, 무여스님, 혜국스님 … ’여러분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에 적명스님을 두 차례 찾아뵙고 인터뷰를 하여 상당한 분량의 원고가 정리되었으나‘아직 내 공부가 들 끝나 남들 앞에 법문을 하거나 인터뷰를 내보낼 때가 아니다’하시며 <법회와 설법>에 싣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1~12월호는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 해인 불기 2548년, 서기 2004년 1월호에 “선지식에게 듣는다”편은 자연스레 근일스님 차례로 생각되어 부석사로 전화를 드렸더니 절 총무스님께서 스님께서는 요즘 외부 법문이나 신문 인터뷰 등을 일체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찌할거나? 의욕적으로 마련한 코너가 흐지부지되어선 안 되니, 궁리 끝에 포교원장 도영스님께서 평소 근일스님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시는 것을 들은 적도 있고, 두 분이 절친한 도반이라는 기억이 떠올라 원장스님께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부탁드리니 흔쾌히 전화기를 드셨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통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원장스님께서는 전화를 할 테니 일단 부석사로 가서 찾아뵈라 하셨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지난 12월 4일, 월하스님이 입적하신 그 날 사전 연락도 없이 부석사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출타 중이셨고, 평소 연락되던 총무스님도 안계시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하루 밤을 묵으며 혹시나 하고 무작정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도 소식이 없어 절을 나서려고 짐을 챙기는데 갑작스레 원주스님이 뛰어 오시어 큰스님께서 찾으신다 하셨습니다. ‘아, 오셨구나 !’급히 올라가니 글씨를 쓰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터뷰가 어렵게 성사되었습니다.
스님께 존경의 예를 올리니 어제 원장스님과 통화했다 하시며 당신께서는 요즘 일체 외부 법문도 안 나가시고 신문 기자들도 안 만나는데 원장스님과 도반 사이라 차마 끝까지 거절할 수 없어 이렇게 되었다 하셨습니다. 허락해주시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메모와 녹음을 해도 되겠는지 여쭈니 손을 내저으시며‘그런 거 하지 말고 공부 얘기니 그냥 듣기만 하라’하십니다. 인터뷰 허락도 감읍할 일인데 더 욕심내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여쭙고 듣는 데 집중하였고, 인터뷰가 끝나고 주요 말씀을 메모하여 이 원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근일스님의 공부 말씀은 필자가 듣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예전의 법문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한 것이니 혹 스님의 뜻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혹 허물이 있다면 오로지 필자의 부족함을 탓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교원장 도영스님은 호남불교를 살린 보살이지 … 내가 참 좋아하지, 원장스님을 통해 어제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노장께서 우리 은사스님 다비 때도 불편함 몸을 이끌고 오셨었지, 조문을 가려고 추모시를 썼다’고 하시며 어떠냐고 보여 주셨습니다.
老天月下
老佛靈鷲回故鄕 영취산 노불이 고향으로 돌아오니
天地萬物慈淚迎 천지 만물도 자비의 눈물로 환영하구나
月出東山知重體 달이 동산에 떠니 체가 소중한 줄 알고
下化衆生無非用 아래로 중생 교화함에 용 아닌 것이 없더라.
勤日 合掌
○ 스님,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
“좋아졌습니다. 젊은 시절 해인사에서 공부하다가 병을 얻어 10년을 고생하고, 당뇨도 생기고, 또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관절을 다쳐 왼팔을 못 쓴 적도 있었어요. 머리에는 파편 조각이 다섯 개나 들어 있어도 수술을 안 하고 버텨 보자고도 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암에 걸려 또 그렇게 고통을 겪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제가 늘 생각하는 건데 몸에 병을 지니고 있으니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리 나쁘게 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 전에 걸렸든 위암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대구 능인학교 이사장할 때인데 졸업식이다 입학식이다 꼭 나서야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일어서면 쓰러질 듯한 통증이 나도 부축을 받아가며 단상에 올라 법문을 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평소 ‘화두를 깨치면 생사를 여읜다’고 법문을 해왔는데 이 암을 내 정진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의사의 수술에 의지했어야 되겠나 싶어 죽을 각오를 하고 병원 수술 의지 않고 뜸과 정진만으로 치유를 했는데 암 말기라더니 없어졌어요, 지금은 다 완쾌되었습니다. 냉, 온탕 번갈아 하는 게 참 좋습디다.”
그래서 그러신지 스님께서는 말에 힘이 느껴졌고, 굉장히 건강해 보이셨다. 2시간 가까운 인터뷰에 조금도 피로의 기색이 없으셨다.
○ 스님 처음 선방에 가신 인연이나 선지식을 만난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저도 선지식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누가 선지식인지 도인인지 지금 스님들 중에서 거의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라도 내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됩디다. 매일 봐도 몰랐는데, 누가 도인인가 물었더랬습니다. 나는 처음에 글 많이 아는 이가 선지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많이 알아 높이 보이는 분이 어느 날 행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저렇다면 내가 더 배울 것이 뭐가 있나 하고 그만두고 선방에 참선하러 갔습니다.
처음에 오대산 가서 정진하는데 옆에 앉은 사람을 보니 한 시간을 참지 못하여 몸을 비틀고 졸고 합니다. 난 잠도 안 오고 두 시간 앉았어도 좋습니다만, 다 이것은 초심자일 때는 잘 되는 것이고 고참이 되면 잠도 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그저 선방에 앉아 있는 사람은 도인인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입승스님은 결제는 안한다고 해요. 그래서 거기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인연이 안 되는가, 하고 경포대 바닷가에 가서 울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나는 평탄하고자 바라지 않습니다.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쳐도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하고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무문관을 찾아가니 경험이 없다고 안받아 주어요. 그래서 어느 조그마한 절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되더군요. 그 선지식이 누구냐 하면 극락암 경봉스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극락암 선원에서 결제를 시작했습니다.
○ 극락암에서 첫 안거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처음에 이 사람도 공부를 해보니 안 되더군요. 화두가 전혀 안되고 시간은 지루하고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처음 안거 석 달은 선방에 들어가긴 들어갔는데 중간에 나오면 안 된다 하니 나갈 수도 없고, 다리는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화두만 되면 좋겠는데 화두는 그만두고 잠이라도 왔으면 좋았겠는데 저는 잠도 안 왔습니다. 너무 지루해서 50분도 시간이 안갑니다. 내가 어제는 무엇을 했던가, 그제는 무얼 했던가, 다겁생래 생각까지 나는데 심지어는 아버지께 4살 때 글 배우던 생각까지 나는데 그래도 50분이 잘 안갑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늘 생각하면 싱거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개미가 지나가는 것이나 보고 옆 사람 조는 것 보고 ‘아 저 놈 잘 잔다’하고, 잠이나 오면 잠이나 자지 잠은 안 오고 화두는 들리지 않고 ‘無’하라니까 밭에 무우 생각도 나고 개도 생각나고 안 되더군요.
하도 안 되어서 조실 경봉스님이 ‘이 뭣꼬’하라 하시어, 큰스님이 이 뭣꼬 하라니, 해야 되겠는데 이것도 되어야지요. 이것도 한참하니 개 생각도 나고, 無자 생각도 나고 안 되었어요. 중간에 그만둘까 말까를 갈등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또 본능적인 삿된 생각은 더 납니다. 남자는 여자 생각나고, 여자는 남자 생각나고 그럽니다. 공부하고 있으면 업식이 동하니까 더 하게 됩니다. 물이 잔잔할 때는 온갖 빛이 다 비치듯이 마음이 잔잔하니까 지난 업식이 다 떠올라 공부가 더 안 됩니다. 그래서 못 참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극락암에서 원주 소임을 맡았는데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올라가다 그만 리어카 쇠에 발이 끼어버렸습니다. 조금만 더 굴렸더라면 난 병신이 되었을 거예요. 걸을 수 없으니 업고 왔는데 병원에 가려니 너무 창피했어요. 병원에 안 갔습니다. 이 잘못이 다 내 죄업이니 창피한 노릇이었지요. 그러다 아프고 쑤실 때 화두가 되면 아픔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경봉스님께서 마음으로 관을 하라 하셔서 화두삼아 그렇게 했습니다. 아프니까 어디가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허리는 아파죽겠는데, 이 다친 것이 더 아프니까 허리 아픈 것은 다 도망가고 없는 것입니다. 변소도 업고 가야 되니, 마음으로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어떤 놈인고, 가만히 생각하니 쏙쏙 쑤셔도 ‘이것은 고기덩어리’하게 되더군요. 그래 가지고 한 철을 턱 마치고 보니 법당의 주련이 다르게 보입니다. 선방에 들어가기 전하고 후가 내 나름대로 느낌이 다르고, 글새김이 확 틀립니다. 그리고 단적으로 헐떡임이 없어졌습니다. 누구한테나 일등해야 되고 무엇이든 일등 해야 된다는 욕심이 참 많았는데 그것이 꺼졌습니다. 다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입니다.
무엇을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 무엇이 좋다는 마음이 없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구나!’했습니다. 선이야 말로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것만 해도 공덕이 한량이 없구나,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서 불안하고 돈 지키는 노예가 된다면 아무 필요가 없고,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그 무슨 필요가 있고, 근본 자리 모르면 아무 소용없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근일스님의 간절한 공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근일스님의 수행기는 스님께서 고운사 주지를 하실 때 하안거 용맹정진 시 법문으로 하신 것인데 필자가 스님께 양해를 얻어 간략히 요약하였습니다. 이 역시 오류가 있다면 필자의 허물입니다.
“ … 극락암에서 첫 안거를 마칠 때 이 공부에 대한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제하자마자 그곳에서 용맹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스님 세 분과 거사 한 분, 이렇게 해서 용맹정진을 시작했는데 한 일주일 하는데 공부 분위기가 좀 좋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어느날 불교신문을 보니까 해인사에서 총림을 한다고 해서 그곳에 가려고 하니 경봉스님께서 못가게 하시더군요.
그러나 내 마음 먹었으니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기필코 나섰습니다. 그곳에 간다고 공부가 더 되는 것은 아닌데, 그냥 갔습니다. 그때 해인사에서 총림을 해서 6시간 자는 팀과 4시간 자는 가행정진팀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가행정진반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종정을 지내신 혜암스님께서 입승을 보았는데 잠을 안자고 하시더라구요. 이 분은 정진하는 시간에는 당연히 정진하고 남들 자는 밤 12시에는 슬며시 일어나 예불하는 3시까지 계속 정진하시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저 분에게 떨어져서 되겠나 싶어서 ‘스님 저를 좀 깨워주십시오’하고 12시에 깨어서 같이 하는데 열심히 하다보면 언제 졸았는지 모릅니다. 졸아도 경책해 주는 사람 없고, 그렇게 하다보니 위장병도 생겼습니다.
당시 화두는 그냥 염화두였습니다. 방장 성철스님은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하라 하셨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이 마음, 이 부처, 이 물건 다 끄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화두가 쉽게 들려지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세고, 해제철에 어디가서 얼마를 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앉아서 하다가 안 되니까 별궁리 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 공부는 억지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억지로 해야지 순리적으로 잘 잠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는 안 됩니다. 조금씩이라도 욕심을 가져야 됩니다. 조금씩이라도 남보다 더 하려는 욕심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옆에 사람이 선지식이라 합니다. 혼자 있으면 드러누울 것도 남이 있으면 못 눕습니다. 그래서 옆에 도반이 나의 선지식입니다.
당시 나도 공부가 안 되어 어느날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만 믿고 한다고 하는데 안 되니 백일을 잠 안 자고 해도 안 되면 옷벗고 나가자, 내 청춘 다보내고 무엇하나 해서 100일간 용맹정진 결사를 했습니다. 70여명 중에서 5명만 뽑아서 졸면 죽비 치고 포행도 없이 했습니다.
그러기를 한 40일 지나니까 화두가 잡히기 시작하고, 50일이 지나니까 시간이 그렇게 잘 갑니다. 지루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마장이 옵니다. 졸면 돌아가면서 패기로 했는데 내가 졸면 안 봐주고, 공격이 전부 나한데 오는데 졸지 않는데도 패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철이면 갈 몸인데 조니 안조니 시비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부처님이 나를 경책해 주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졸지 않는데 때린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고, 공부가 안되니 그랬겠지요.
그런데 용맹정진 하기 전에 절에서 축구를 하다가 몸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용맹정진을 하니까, 피가 안돌아 썩어 온 몸을 긁으면 피가 났습니다. 그래 아파 드러누우면 또 허리가 아파 몸은 다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썩은 피가 전신으로 퍼져 눈에서까지 고름이 나왔습니다.
이때 아픈 것이 10년을 갔습니다. 선원에 안거 들어가면 옆에 앉는 분들이 고름을 뽑아주고 했습니다. 향곡스님 회상에선 도천스님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성냥으로 고름을 뽑고 나병환자들 먹는 약으로 하니까 전신에 퍼져 사람들은 문둥이병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 손만 대면 간지럽고, 굶으면 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픈 것이 선지식입니다. 이 이야기를 일일이 다 할 수는 없고,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병으로 양약을 삼아라.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뜻대로 되면 뜻을 가벼운데 두나니,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수행을 삼아라’참으로 기가 막힌 말입니다. 제 경우가 꼭 이랬습니다. 공부하는 분상에 장애 속에서 다 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가피력도 있어야지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졸다가 누가 깨워주나 해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 공부하려고 하면 다 도와줍니다. 전부가 도의 모습이고 도와주는 것인데 한 생각 잘못 일으키면 전부 장애입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되 항상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지금 화두가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앉아 있는 공부만 해도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하다가 75일쯤하고는 못했습니다. 100일을 못 채우니 분해서 죽겠습니다. 기필코 채워야겠다고 해서 해제하자마자 혼자서 백일을 채웠습니다. 그것도 단식으로 했습니다. 단식하면서 한 6일쯤 하니까 ‘아 이러다가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초조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왜 굶었느냐 하면, 성철스님이 병원에 가라고 5천원을 주는데 내 기분에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그때는 한 철 나면 300원 줄 때이니 굉장히 큰돈이었죠. 그런데 당시는 전부가 기독교병원이었잖아요. 이 귀한 돈으로 어찌 기독교 병원에 가겠습니까. 병원에서 다리를 잘라서 병신으로 사느니 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병원엘 가지 않고 뜸을 많이 뜨고 이명래고약을 붙였습니다. 고름이 심할 때면 떼어내면 썩은 피가 줄줄 흐릅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손으로 누르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굶으면 가려움이 덜하고 음식만 먹으면 간지러운 것이 더합니다. 그런 상태로 화두를 들 때 이빨을 물고 金剛座하고 서너 시간씩 있으면 그때에야 선정에 들고, 그러면 아픈 것도 가려운 것도 잊어버립니다. 긴장만 좀 풀리면 근지러워 못삽니다. 그래서 단식을 하면 낫겠다는 생각에서 했습니다.
그래서 한 보름 쯤 되니 환희가 나기 시작하는데 지금도 안 잊어집니다. 어떻게 환희가 나는지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소리쳤지만, 나는 저녁별 보고 소리친다. 아름다운 것이 꽃이라면 꽃 아닌 것이 있겠느냐, 환희심이 터지니 감당을 못하겠습니다. 변재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잘못하면 점쟁이가 될 것 같아 ‘이것 가지고 선지식이 다 되었다고는 안 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억제를 하면서 이때부터는 내 몸이 필요하고 있어야 공부하겠다 싶어가지고 일어나서 기간을 다 채우고 향곡스님 회상에 갔습니다. 법문을 들으니 이해가 다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선지식이 잘 잡아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잡아주고 인정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수좌가 성철스님께서 해제 법문에 동별당 서별당 고양이 갖고 싸운 것에 대하여 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을 찾아갔어요.
‘스님 이 번 해제 법문에 고양이 법문하셨다면서요?’
‘그래’
‘나는 그렇게 안 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
‘저는 물구나무서서 가겠습니다’
‘그래 그 첫 대답이 그럴듯하다. 옛 선지식도 그 첫 대답에 많이 속았느니라. 그 물구나무 선 도리하고 남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예, 저가 묻는 사람에 따라서 대답을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럼 내 다른 것 하나 묻지. 너가 이것만 답하면 확철대오로 인정해준다. 옛날에 보살이 큰스님될 것 같은 한 스님을 토굴을 지어서 한 10년간 시봉했는데, 10년이 되는 어느 날 딸을 시켜서 시험을 했어, 딸에게 가서 스님을 보듬고 교태를 부리면서 스님에게 ‘이럴 때 경계가 어떠합니까?’하고 물으라 했다. 딸이 시키는 대로 하니 스님이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즉, 마른 나무에 찬 바위가 의지하니 한기가 돈다라도 답했다. 이를 어머님에게 그대로 전하니 보살이 토굴에 가서 스님의 멱살을 잡고 ‘이 흉악한 속인놈을 내가 10년 동안 밥을 먹였구나. 에이 도적놈 나가거라’하며 끄집어내고 불을 탁 질러버렸다. 그런데 왜 쫓았어?”
‘지극히 그 스님을 위해서 쫓았습니다’
‘그래 어찌하면 안 쫓겨나겠느냐, 너 같으면 어찌하겠느냐 ?’
‘부지런히 해가 동쪽에 뜨니 벌나비가 춤을 춥니다’
‘그래 그 말하고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는 말하고 같느냐, 다르냐’
‘천리현격입니다’
‘틀리단 말이지?’
‘예’
‘너 아직 덜 되었구나. 너 서울 가려면 아직 멀었어. 아직 수원 밖에 못갔다. 너가 더 열심히 하면 너가 내 은혜를 못 갚을 것이다’
내 그래서 성철스님을 존경합니다. 이 때 만약 잘못 일러주셨으면 큰 일 아닙니까? 변명해 보았자 소용없습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 선지식은 못합니다.
그때부터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스님 회상으로 가서 3년 동안 공부했고, 다시 경봉스님 회상에서 공부를 더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성철스님에게 가서 ‘이제 혼자 공부해도 될 것 같으니 토굴로 들어가겠습니다’하고 9년간 토굴 생활을 지내고 고운사 주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가서 일하고 문답하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러다가 전강스님 회상으로 가는 도중 큰스님이 열반에 들었습니다. 전강스님 참 간절한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공부가 소중하고 선지식이 소중한 줄 알아야 합니다. … ”
○ 참선이란 무엇입니까 ?
禪은 근본이요, 진리요, 나이고, 叅자는 參究한다는 뜻이죠. 나를 참구한다. 나를 찾는 공부를 말합니다. 나를 찾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있습니까? 나를 참구하여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해도 <금강경>에 나와 있듯이 잠깐이라도 선정에 들고 화두를 들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습니다.
○ 스님 돈오돈수가 맞습니까, 돈오점수가 맞습니까?
頓悟頓修도 옳지 않고 頓悟漸修도 옳지 않습니다.
○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죠.
다시 한 번 말한다면, 돈오돈수도 옳고 돈오점수도 옳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왜 그러느냐? 분별지에선 돈오점수가 맞고 분별이 떨어진 입장에선 돈오돈수가 맞습니다. 이미 본래 다 갖춰져 있어 더 닦을 것도 깨칠 것도 없습니다.
○ 禪의 本來成佛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지, 禪의 입장에선 부처가 중생이고 중생이 부처입니다. 하나입니다. 중생도 이미 다 원만하게 갖춰져 있는데 迷妄에 가려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생도 본래 부처입니다. 단지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믿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생과 부처가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것도 분별심에서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왜 나오느냐 하면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나는 해인사에서 성철스님 회상에서도 공부하여 성철스님이 왜 보조국사의 돈오점수 사상을 비판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 인천 용화선원에 가니 전강스님께서 ‘성철스님이 왜 멀쩡한 보조국사를 욕하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말씀하시기에 이렇게 말씀 드렸어요.
성철스님께서 보조국사의 돈오사상을 비판한 이유는 보조국사가 초년기에 지은 <修心訣>과 <定慧結社文>에 선과 돈오점수가 혼돈되어 나타나는데 입적하시기 6개월 전에 펴낸 <節要>에서는 선과 교를 나누긴 했지만 여전히 모순과 혼란이 남아 있고, 돌아가신 뒤 유고가 나와 제자들이 펴낸 <간화결의론>과 <원돈성불론>에서는 선의 돈오돈수와 교의 돈오점수가 명백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보조국사의 <수심결>이나 <절요>를 敎宗에서는 해당되어도 禪門에서는 잘못된 견해임으로, 그 오류를 바로 잡아 見性이 곧 頓悟고 究竟覺이고 無上正等覺이라는 점을 분명히 설파하려 하신 겁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니 전강스님이 아 그렇구나 하시며 오해가 풀리셨어요.
그 다음에 성철스님께 가는 길에 전강스님이 물으셔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했더니 성철스님도 ‘잘했다’ 하시며 아주 좋아 하신 적이 있어요.
○ 화두는 누구에게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요?
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나는 처음에 無자 화두를 했는데 하다가 어느 절에 가니까 ‘스님 무슨 화두를 탔느냐 ?’하길래 ‘화두가 물건인가 타게’하니까 아무 소리도 안합디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화두는 타는 거구나 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앉아 있으면 공부인 줄 알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있어 물어 볼 수도 없고, 우리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화두를 타야 합니까?’
‘타야 된다’
‘그럼 주십시오’
‘無자 해라’
‘無자요…’
‘無자, 개가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왜 무일까 ? 그리해라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들렸어요. 그래 경봉스님 회상에 가니까, ‘이 뭣꼬’하라 하시는데 되어야지요.
이 공부는 편하면 공부가 안됩니다. 심하게 누구에게 뺨을 맞으면 안 잊어지고 분합니다. 분심이 나면 하는데 편하니까 화두가 안 됩니다. 그리고 화두를 너무 쉽게 주고 있습니다. 소중하면 안 잊어집니다. 짧은 순간에도 강한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나서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큰 충격을 받으면 강하지 않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하니까 화두도 되더라 이 말입니다. 정말 진실로 발심해서 충격을 받으면 그 순간에 화두가 될텐데 쉽게 주고 그러니까 쉽게 생각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머리숱에 불이 붙은 사람이 불끌 생각 밖에 없듯이 정말로 이 화두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 전부라고 덤비면 의정이 안 일어날 수 없습니다.
화두를 참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화두를 일러 주는 스님을 믿어야 됩니다. 믿음이 안가면 공부가 안됩니다. 부처라는 말도 믿고 ‘마삼근’하는 말도 믿는다면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부처는 마음이 부처라 했는데 어째서 ‘마삼근’이라고 하는가? 알 수 없으니 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전부를 삼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공부가 안될 수가 없으며 그냥 흐리멍덩하게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탄 화두는 힘이 없습니다. 혹 우리는 화두를 탄다는 말이 있는데 타는 화두가 힘이 없기 때문에 깨친 사람이 드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믿음, 하고자 하는 용기, 알 수 없는 의정이 있어야 합니다. 의심이라 하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신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의심은 남 불신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수좌도 봤습니다. 사사건건 사람까지 의심하는 병이든 사람도 있는데 믿음이 없는 의정은 있을 수도 없고 못써요. 전체를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 법도 믿고 화두를 일러준 스님도 믿고 화두도 믿음이 바탕에 깔려야 용기도 나고 의정도 형성이 됩니다.
○ 스님, 그렇다면 ‘本來成佛’의 禪宗의 입장에서 포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불교의 최고 이상이자 목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포교가 다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이미 중생들이 성불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가 부처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부처라 믿도록 깨우쳐 주기 위해 포교가 있는 겁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본래성불 즉 본래 다 갖춰져 있습니다. 원만하게 두루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모르고 믿지 않아 그래요. 그래서 포교란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믿도록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포교는 믿음과 보시로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포교에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말로 하는 것입니다. ‘말’이거 하나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중요합니다. 말을 바르게 잘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행동과 일치하지 않으면 실망을 줍니다.
둘째, 글로 하는 것입니다. ‘글’이것도 중요하잖아요. 법정스님 같은 분은 글을 잘 쓰니까 얼마나 포교가 되었습니까? 큰 기여를 하신 거예요. 포교는 글로도 하는 것입니다.
셋째,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행동’, 말과 글이 다 행동이지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과 글이 행동으로 일치할 때 더 영향력이 있겠죠.
넷째, 無言으로 하는 것입니다. 선에는 ‘以心傳心’이 있습니다. 꼭 말이나 글,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무엇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 있었던 ‘염화시중’의 미소 같은 게 여기에 해당하겠죠.
이 네 가지를 다 갖추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이 중에서 자기가 잘 하는 것 하나만이라도 잘 하면 좋겠죠. 물론 다 잘 하도록 노력은 해야 하겠습니다.
○ 포교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포교를 잘 할 수 있는지요?
포교의 핵심은 ‘財施, 無畏施, 法施’입니다.
財施는 보시하는 겁니다. 절에 시주하는 것도 좋고, 어려운 이웃에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누어 주면서 포교를 해야 되겠죠.
無畏施는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인데, 저는 이것을 마음 心라를 써서 心施라고 합니다. 이게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즉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자비정신이죠. 이것은 돈 없어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오늘날 여러 사회운동이 있지만, 이런 운동을 해야 합니다. 돈도 안들고 좋지 않습니까?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포교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다음에 오는 법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法施입니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이죠. 진리를 전하여 바르게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죠. 부처님 법을 알아야 생사를 해결하고 절대적인 행복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포교의 궁극적인 핵심이 되겠죠.
저는 이 세 가지를 잘 하면 포교가 잘 될 것이라 봅니다. 방법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종단에서 스님들이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스님들이 화합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단이나 절이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번에 중앙에서 스님들이 싸워서 얼마나 망신을 당했습니까? 스님들이 싸우거나 종단에 분규가 나면 포교한 것도 다 까먹습니다. 그러므로 포교 이전에 화합이 요체입니다.
화합하려면 밑에 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중하면 됩니다.
○ 스님께서는 법문도 잘 하시는 것으로 이름이 높으신데 법문하실 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면 좀 들려주시죠.
제가 잘 아는 부장 판사가 한 분 있는데 이 분은 가톨릭 신자인데 나와 인연이 되어 자주 찾아옵니다. 이 분 소개로 동양고전연구회라고 하여 법원장, 판사, 병원장 등 꽤 지위있는 명사들이 청하여 법문할 때 한 이야기인데, 인생에는 다섯 등급이 있다.
1등 인생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즉 자리이타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2등 인생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3등 인생은 자기 자신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죠. 자기 구제에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4등 인생은 착하게 사는 사람,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5등 인생은 남에게 원망받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가 이 때 법문을 듣고 있는 판사나 의사들에게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어느 등급을 살고 있느냐’고 물으니 어떤 이가 ‘4등에서 5등 사이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길래 4등, 5등으로 사는 사람들이 사람을 재판하고 생명을 다룰 수 있느냐고 야단친 적이 있습니다.
제 경험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내 방에 칼을 들고 들어와 도둑질을 다섯 번이나 한 도둑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그날따라 잠이 안와 누운 채로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 오길래 모른 채 하고 잠자는 척했지요. 그랬더니 옆방으로 가 뭘 뒤지더라고요. 그래서 아 도둑놈이 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옳거니 저놈 마음을 바로 잡아 사람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찻상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아 도둑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죠. 옆방에서 나오는데 긴 회칼을 들고 있는 거라 그래서 눈을 마주 치자 말자 ‘아이고 자네 왔는가’하고 반갑게 큰 소리로 말하고는 이리와 앉게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하니 그 도둑이 꼼짝말라고 하면서 목에다 긴 칼을 갖다 대더라고. 그래서 나는 생사를 해결한 몸이니 어디 한 번 찌르려면 찔러보라고 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더니 못 찌르고 칼을 버리고 주저앉더라고. 그래서 그 친구에게 어디서 왔고,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구해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려 한다더라고. 그래 내가 주지 월급이 55만원인데 마침 어제가 월급날이라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것으로 땅 사는데 보태라고 주면서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농사나 짓든지 아니면 절에 가서 부목을 하면서 부처님을 믿어보라고 권했지 그랬더니 얼마 뒤에 찾아와서 다른 절에 갔더니 잘 안받아 준다고 여기 있으면 안 되겠냐고 하길래 있으라 했더니 글쎄 이 친구가 또 내 방에 들어와 도둑질을 하는 거야. 그러는 게 무려 다섯 번이나 되었어. 그럴 때마다 타이르고 야단치고 그렇게 하여 용서해주고 했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는 벽을 뚫고 들어온 거야 그래서 상좌들이 이놈은 하는 수 없다고 내쫓아 버리고 말았는데….
그런데 그때 이 도둑놈을 막는다고 야간 경비를 세웠더니 당시 영주 일대 광신자들이 단군상을 없앤다 어쩐다고 하면서 이 부석사까지 훼불하는 것을 막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고 새옹지마가 되었지….
또 나는 가끔 교회나 성당에서 법문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인가 교회에서 법문을 하면서 나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밉다고 말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말하니 좀 어리둥절해지더군요. 왜 그런지 들어 보라 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했다면서 창조를 하려면 좀 잘 할 것이지 왜 生老病死의 고통을 만들어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이 되게 하였는지 밉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목사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렇다고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말했죠. 그럼 그건 누가 창조했느냐고 했더니 아무 말을 못 하더라구요. 교회에서 이렇게 해 놓으니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아 그 다음에 다시 나는 부처님도 밉다고 말했어요. 부처님은 깨달으면 혼자서 깨닫든지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닫게 하든지 해야지 괜히 혼자서 깨치고 가르쳐 나같이 부모 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게 만들어서 밉다고 말해서 웃겨주었지요.
○ 스님, 요즘 종단에선 그 무엇보다 교육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제시하시는 승가와 신도 교육의 목표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자기 수행을 잘 해야 합니다. 불교는 자기 수행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승려 교육, 신도 교육 나눌 것 없이 자기 수행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항상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자기 공부가 우선입니다. 승속 막론하고 그렇습니다. 승속 모두 수행을 잘 하면 모든 것이 따라 옵니다. 신도 교육이든 승려 교육이든 자기 수행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 주지스님들께 한 말씀해주시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될까? … 나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지 이전에 승려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그래서 믿고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지직이란 것은 수행보다 더 어렵고, 주지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잘 하든지 못하든지 간섭하지 말고 귀찮게 하지 말고 자율적으로 잘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중앙에 꼭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스님 마지막으로 새 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좋은 덕담 하나 해주십시오.
불교에서는 항상 새 해입니다.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불자의 자세입니다. 가는 해이니 오는 해이니 다 분별망상입니다. 항상 새 해입니다. 새 해에도 자기 수행을 우선해야 되겠습니다.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자기 수행에만 전념하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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