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번먼트 롸이스>
우린, 그 시절
파리나 쌀벌레가 쪽쪽 다 빨아먹어서
끈기따위나 찰기라고는 조뚜 없던 가번먼트 롸이스,
일명 정부미로 지은 밥을
누런 양철로 만든 도시락에 담아 가지고 다녔습죠.
박돈우나 배형규, 김재하 같은 변두리 민중들은
그나마 집구석에 가번먼트 롸이스 조차 없는 날이 더 많아,
허구 헌 날, 빈 벤또를 가방에 구겨 넣고 등교하곤 했습죠.
빈 벤또를 가방에 넣고 다니던 습관이 생긴 건
홀쭉해진 뱃구레를 감추고 가방이나마 불룩하게
튀어나와 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야마시' 였슴다.
어쩌다 정부미 반 보리쌀 반, 섞인
벤또를 지참하는 날,
퍼런 플라스틱 반찬통에 멸치라도 담아가는 날은 최상의 호사였슴다.
맥스웰 커피 병에 쉬어 문드러진 김치를 담고,
깍두기 국물이 질질 흐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삼양라면 빨간 봉지를 고무줄로 달달 돌려 봉인한 후
책가방 깊숙이 넣고 다니던 생생한 기억. ㅠ.ㅠ
선경옥이나 임경임 이정해 태윤서 윤지영
이혜실 이혜정 진정숙 남정현 강경희 임진숙
최뽁렬 서영순 김윤숙 효선이 배영숙 원영남
변순자 이미자 안명희 안현주 유자경 이윤재
이현옥 태수훅 조인숙
김빙경 김연년 김태호 루드빅
얘네들은 꽤 먹음직스러운 고급 반찬을 거의 매일 싸왔을 검다.
그들은 더불어 한 달에 70원을 내야 먹을 수 있는
서울우유 한 병씩을 늘 손에 쥐고 마시고 있었습죠.
어느 날, 손에 우유를 움켜쥐고 마시던 김태호가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다소 심한 ‘야지’를 넣다가 냅다 쥐어박히고 말았슴다.
야지롱대는 꼼앵이를 한 대 줘 박고 나니
뒤에서 담임 슨상님께서 흘겨보고 계시드군요.
아차, 싶었으나 날린 주먹을 거둘 수는 없었슴다.
그러나 결국 슨상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슴다.
슨상님은 사태 파악이 꽤 빠른 냥반이었슴다.
김태호의 반칙성 야지롱이 명명백백했기 때문임다.
정현주 남상연 신인숙 안금희 구혜림 곽영인
김동협 김명점 김옥히 박선희 윤석란 이영희
이현수 장세헌 전경자 조경희 조영애 한춘화
허정희 홍정옥 강따현 전형미 김경녀 박부용
박혜영 김춘희 전창숙 서창순 홍성은 김해숙
이이화 김영옥 그리고,
김태일 김기재 박준영 이충현 백세돌 이성룡
정유인 정회동 최현석 어윤한 김규두 곽준식
차산동 김맹규 박선식 박강수 최원영 변순현
이동삼 정원후 김상영 박재량 공뽕섭
이들은 그런대로 중급 도시락을 지참하고 다녔을 검다.
다만 그들 도시락에는 나처럼
누런 짠지를 채 썰어, 고춧가루에 버무려놓은 투박한 반찬 대신
기름기 잘잘 흐르는 계란프라이를 밥, 위 아래로 이층을 지어 얹어 놓았으며
게다가 사탕가루 살짝 넣고 볶은 죽방멸치 조각들을
알흠답게 지참하고 있었습죠.
.
.
.
비 간간이 흩뿌리는 날,
공장에서 건강식으로 나온 찰기 없는 보리밥 먹다가
갑자기 어린 날 점심시간 생각이 났슴다.
dondon -
첫댓글 오랫만에 흔적봅니다.
새삼스레 옛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음이~.
서울우유 유리병도 그립고 ㅎㅎ
더운날 몸건강히 지냅시다~^^
인생, 추억 값으로 산다 합니다 ~~~ ㅎ
초딩 때, 월 70원 내고 서울우유 마시던 기억 나여?
@dondon ㅎㅎ 저렇게 이름 다불른건. .
모두 보고싶단 소리죠?
보고픈이들 보고 살아야하는데~^^
참~서울우윤 매달은 못마시고
가끔~ㅎㅎ
@물결 가끔이라도 마신 거면, 행복한 겁니다 ㅎㅎ
당시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이란 걸 늘 했죠?
올 때마다 2천원이 기본이고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은 3천원
와이료를 효과적으로 주는 엄마는 5천원도 불사하셨는데
선생님께 그 잔 쇳가루를 못 드려, 허구헌 날 왕복 싸다구에
치도고니를 맞기 일쑤였고 ~~~ 일헌 빌허머글 !!!
방갑심더!
오랜만이지요?
이름한번 불러줬을뿐인데 우찌 이케 방가웁고 고마운지요 주름살 하나둘 늘기전에
옛시절 돌아보며 부댓겨 보는것도 나쁘지얂을터
어느계곡 물놀이며 어느운동장 발야구하며 웃던 그어느날이 그립니더!
아흐흙 ~~~ 그 시절, 언늠 다시 돌아가야지요 !!!
물놀이, 둘레길 트레킹, 교정 나무 아래 앉아 쌀국수 끓이던 추억 !!!
덥다~^^
난 그 재밌는추억에 한번도 못끼었네
물장구도 발야구도 못해봤어~~ㅠㅠ ㅎㅎ
근데 사실 다 안좋아하는거야 ㅋ
강냉이빵은 기억 나는데..
아껴서 동생들 가져다 준다고 항상 가져오던 기억이 나네.. ㅎ
서울우유는 나도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도시락에 계란말이는 항상 있었지..
마당 한귀퉁이에 닭장이 있었거던..
토끼도 .. ㅎ~
다인이네 부자였네 ~~
퇴끼도 키우고, 닭도 치고 ㅎㅎㅎ
나도 중간은 아닌뎅 ㅎㅎ
책보라고 아실랑가?
허리에 차고 대각선으로 매고 하는 책보
거기다 검정 고무신
추석날 새신 사달라고 하기 위해 돌에다 빡빡 문질러댓던....
저희 계통에서 정부미 가번먼트 롸이스는 공무원을 말합니다ㅎㅎ
우리는 당연히 일반미 퍼스트 클래스 롸이스ㅎㅎ
책보 알지요 ㅎㅎㅎ 허리에서 어깨까지 비스듬히 울러메고 다니던 ~
우린 그래도 서울에서 흰 고무신을 신고 다녔슴다.
흰 고무신이 검정 고무신에 비해 얼마나 잘 떨어지고 또
기어코 쌔벼가는 놈들이 있어 남아나질 않았죠.
고무신 잃어버리고 집에 가는 날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슴다. 켤켤
@dondon 난 고무신 신고 학교 간 기억은 없는데....우리 어렸을때 고무신 신고 놀았었나??????
암튼 돈 덕에... 가물가물한 옛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잠시 행복하다
@이혜정 고무신에 고무줄 놀이에 고무로 만든 야구공 놀이까정 ~
게다가 집 나가려면, 부산 가서 태화고무 공장 간다고 하지 않았어?
고무 공장 가서 힘힘하면 뽄드 마시고 취하고 ㅎㅎ
돈아...난 울엄마가 도시락 밥위에 계란후라이 같이 주는게 젤로 싫었어 그런날은 항상 굶었지
배급 받는 옥수수빵... 무지부러워 하며... 그 옛날 내가 젤로 부러웠던건 방학때 시골 다녀 오는 친구들..
내 어린시절은 참 재미 없었어...
우리 혜정이는 엄펑 부자였는갑다 !!!!
우리 동네에 마루꾸박스가 엄펑 큰 동급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에 가면 노상 과자라든가 사탕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그 집을 내 집 드나들듯 했지 머여 !!
그 어린이 지금 무얼 하고 살까, 초딩 동창들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 하는 이가 엄쪄 !!!
방학에 시골 다녀오던 애들 부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럴 ~~~
꼭 저런 사람이 있어요!!ㅎㅎ
운전기사하고 파출부 정원사 월급줄 돈이 없어서 맘 고생 무지했다는사람
옥수수빵 찢어 우윳병에 넣고 설탕넣어 퍼먹던 생각이 나네.
고학년때는 울 엄니가 점심시간에 따끈한 밥해서 갖다 주시곤 했는데...참 정성이셨는데도 고마움도 모르고...
덕분에 어린시절 추억에 잠시 머물어본다.
헉 엄니가 점심을 해다 주셨다고?
이 집은 더 부자였네 ~~~ ㅎㅎ
유리병에 신김치 유일한 반찬이었는데
이 냥반아 ~~~ 그 유리병이 멕스웰 커휘 병이여 !!!
@dondon 울집은 울엄니가 어디서 얻어왔는지
거버 이유식병
@윤서 윤서는 반찬통이 엄펑 작았네 ~~~
거버 이유식 병하고 멕스웰 커휘 병하고는 차이가 컸쥐럴 !!!
@윤서 거버 이유식병!! ㅋㅋㅋㅋㅋㅋ
일헌~~ 그 소소한 기억을 아직까지도 다 가지고 있었다니 ᆢ소중한 옛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돈우의 소소한 사유에 매우 큰 공감을 ~ ^^
도요개 ~~~~
소소한 거 방치하다가 잘못하면 머리에 노랑모자 씁니다 !!!
물 푸러 다닌 단 소리죠 켤켤 !!!
@dondon ㅋ~학실히 뇌세포가 둔해졌음이야~ 우리노랑모자 안쓰려면 소소하자 ㅎ
@도요새 소소하게 기억하고 대대하게 行하며 巨하게 취하고 나면 거기가 무릉도원일게요 ~~~!!!
ㅎㅎ정말 옛날 일이네
그때 그시절 나의 아버지는 종로 5가 약재상에 다니실때라 늘 아버지의 옷에서는 약재냄새가 나곤해서 자다가도 아버지가 머리맡으로 지나가시면 벌떡 일어나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센베과자를
받아먹었던 기억이 나네
그시절 나는 왜그렇게 밥이 먹기 싫었던건지, 늘 남겨서 엄마한테 혼난게 부지기수 였었다
거기에 옥수수빵에 병에든 흰우유는 나한테 고역이였었더랬다
통째로 들고오는날엔 종아리에 불이 나는건 불보듯 뻔한거였고 그게싫어서 같이오던 짝꿍에게 주다가 동생년이 엄마한테 일러서 또 혼나고~~
난 그시절 정말 난 밥먹는게 싫어서 꽤나 엄마한테 혼이난 기억이 대부분이였네
새삼 내 아버지가 그립다
ㅎㅎㅎㅎㅎ
인숙쓰 얘기는 일면, 배 부른 자의 트림 소리같지만
인류 역사는 언제나, 싫은 건 싫은 거유 ㅎㅎ
건재약방 다니시던 아부지 옷깃 ~~~~ 그 정취 그 내음
모두 잊을 수 없는 모럴이라, 잊으면 안 됩니다... ㅎ
그 옥수수 빵에 흰 서울우유 병, 입술에 묻은 흰 우유는 언제 봐도 잊을 수 없는 것.
우리 다시 그 시절을 맞을 수 있으면
마시기 싫은 우유는 모올래 ~~~ 내게 패스 해줘요 !!!!
난 옥수수빵은 좋은데 우유 먹는게 고역이었어....대부분 버렸지만... 그 기억으로 양주 마시기전 까지는 흰 우유는 안 먹었음
당근 그러지요~~
그럼 혼나지도 않고 좋지요~~
쌀 수확이 적어 배고픈 시절 농촌진흥청에서 볍씨 종자 개발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
우리 외삼촌이었고요... 저는 지금과 달리 어린시절은 비교적 유복했네요
아버지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더랬죠..
매달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를 읽었고..
전교생 구두신은 사람이 저 혼자여서 부끄러워 구두 집에두고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기억.
시골 생활이다보니 집안 형편보다 먹거리는 시골스럽긴 했죠.
돈 내고 먹던 빵은 왜그리 맛있던지..
덕분에 어린시절 추억해봅니다
히~~ 난 엄마가 성당 다니면 새소년이랑 기타 어린이 잡지 구독 시켜 준다해서 성당 열심히 다닌 기억 있음...
어릴때 언니 따라 만화방 엄청 갔음...
ㅎㅎ 칸츄리 소녀였군요 ~~
아부지하고 학교를 같이 다녔으면, 아이들 생활기록부에 <가> <나> <다> <라> 도장도 찍었을 거고
음악시간엔 늘 풍금 두들겼을 거고
가정방문 나온 슨상님들에게 삥도 안 뜯겼을 거고 ㅎㅎ
오호 ~~ 어깨동무
난 아부지 덕으로 <소년경향>을 구독했던 기억이 ~~~
@이혜정 우유를 버린 어린이, 그니가 다니던 학교는 어디였수?
미아리 어디쯤인가? ㅎㅎㅎ
정부미..... 정겹고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나는 벤또조차 없었고.. 그저 숟가락 하나 지참하고 끝!!
더더구나 쌀 은 구경도 못 해본 시골 변두리 출신입니다.
산골 출신인 나는 도시락 반찬이라곤
울할매가 감자를 채썰어 밥위에 살짝 찐후 양념해서 싸주던 기억이 나네여
요즘을 기름에 감자 볶음을 해먹지만
그땐 식용유도 엄첨 귀하던 산골이라 그정도도
호강이 였슴다 ㅎㅎ
돈우님 덕에 타임머신 타고 어린 시절
잘 다녀 왔네요 감솨 ^^
공 선생, 이화 ~
두 분 오리지널 컨츄리들은 가정방문 나오신 슨상님께 드리는 천원짜리 지폐를 못 드려
왕복 싸다구 경험해 본 적 있슈?
칸츄리에서는 고구마나 보리쌀도 주고 그랬다는데 ㅎ
ㅎㅎㅎ 오랜만~^^
제대로 찾지도 않는 나를 중급 도시락에 끼워 주어서 고마워요~
벤또 반찬 말고 따뜻하기로 치면 나도 고급 도시락에 낄 수 있었는데 아쉽네~
학교 담이 우리집 담이었던지라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 담 아래 서면
엄마가 뜨거운 도시락을 넘겨 주셨었는데~^^
오홍 ~~ 학교 담베락이 집 담베락이라 !!
어째 매일 지각헸을 거 같은 상상이 ~
원래 가차운 데 사는 어린이가 지각을 밥 먹듯 한다능 ~
학교와 집이 가차우면 친한 어린이들이 들러 가느라 디글거리기 마련이었습죠 ㅎㅎ
올만에 와보니재미있는 추억거리가 하나있네... ㅎㅎ~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깡촌 시골뜨기가 처음으로 서울구경을 했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구로동(?) 한국타이어 건너편. 하루종일 봐도 30원인(나갔다 오면 안됨) 만화가게에서 모강지가 아프도록 빠져있던 일...
판자집 한쪽방, 밤새도록 이를 빡빡갈며 온 방안을 뱅글 뱅글 돌아댕기던 쥔집 아들놈 때문에, 한숨 못자고 쳐다만 보고있던일...
영등포시장에서 처음 먹어본 짜장면의 환상적인 맛과 쫄깃함...(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름. 사주는걸 먹었기 때문)
중 1 때면, 영등포 짱께집 짜장면이 70원 이었지럴 ~
구로동 출신이구먼 ~ 강남, 강서, 신림, 대림, 장훈, 문일, 성남, 영등포 ~ 하나 골라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