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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조금 꺼림칙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최근 죽음의 문제, 특히 품위 있게 죽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앵커: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른바 웰빙도 좋지만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웰다잉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죽음학회도 생겼습니다. 이진성 기자입니다. ⊙유언장 낭독: 내가 임종 시 고통이 있을시에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라. ⊙기자: 한 교회가 마련한 유언장 미리쓰기 프로그램입니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죽음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어 참가자들의 호응이 큽니다. ⊙김윤국(56세): 어머니랑 이런 자리를 같이 하게 됐는데 다음에는 자식들도 같이 참석해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서점가에도 바람직한 죽음을 다룬 책들이 눈길을 끕니다. 필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여 삶을 인간답게 마무리할 것을 조언하는가 하면 죽음의 사회적 의미를 정리하거나 생명연장에 대한 옹호론과 반대론을 소개한 책도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죽음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도 처음 결성됐습니다. 의학과 종교학, 인류학, 복제학 등 각계 학자들이 죽음이 지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살폈습니다. 특히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윤영호(국립암센터 삶의질 향상연구과장), :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고 완화시킬 수 있는 그런 치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시점에 이르렀을 때는 의학적으로는 자연적인 죽음으로 인식해야 됩니다. ⊙기자: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높이는 문제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이진성입니다. [문화] 이진성 기자 <2005.6.6> |
<죽음이 어디서 너를 기다릴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니 어디에서나 그것을 예상하라. -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이 세상에 제일 두려운것이 있다면 그건 미지의 세계인 죽음일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우리들이 다 알고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3년전 2002년 3월 21일 대구에 지하철 대형 참사 사건이 있었다. 한 사람의 잘못이 얼마나 큰 죽음을 불러 일어난지 우리는 모두 다 알것이다. 부상자와 실종자를 제외한 사망자가 130명에 이른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우리랑 같은 또래인.. 10대인 한 남자.. 19년이란 긴 시간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합격한 한 학생이었다.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기로 치하철을 타고 갔는데. 기쁨도 잠시 죽음으로 간것이다. 이 사람에게서 어떤 기분이 드는가? 어른들. 아이들. 보다 우리랑 같은 또래이기에 실감이 날것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의 죽음으로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갑자기 돌아 오지 않는 그 순간. 그 아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목표를 이루었으나 대학도 입학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 너무나 끔직하고 무섭기에 우리는 죽음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가상세계이기에 더 두려워 하는것이다.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것이 이치고. 자신의 행복을 누리다가 죽는것이 사람들의 소원일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것은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갑자기 내 자신이 몇 십년간 이루어낸 꿈을 이루었는데 예기치 않은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고 생각해보아라. 이 세상에서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지게 될까봐, 아니 잃어 버리게 될까봐 우리는 인간이기에 두려워하며 무서워 하는것이다. 죽음..죽음뒤에 있을세상. 흔희 천국과 지옥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무슨 일들이 펼치지 우리는 모른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려운것이고 죽음 뒤의 미지의 세계를 알수 없기에 더 두려운것이라고 할수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죽음이 뺏어 갈까봐 두렵고 무서운것이다.
2. 왜 우리는 영웅의 죽음 앞에 열광하면서, 삶의 연장에 환호하는가?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백 년의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이미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간 뒤에는 백 년의 무덤을 보전하기 어렵다. -명심보감 ->
영웅의 죽음은 우리들이 우러러보는 존재이고 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받친 위인들이기에 우리들이 죽음에 열광한다. 한마디로 너무나 많은 가르침을 주었기에 목숨을 받친 사람들을 열광해야 하는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위인들을 있었기에 우리들이 있었던것이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편하로운 삶을 살고 있는것이다. 각 지방마다 위인들의 묘가 있듯이 그 들을 우러러 보는건 그 들이 인간이기보다는 인간을 넘어서 무엇가의 업적을 남겨 두었다는것이다. 자신이 아닌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셨기에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불면의 이순신. 장보고를 다룬 해신등이 인기를 끈건 위대한 인물들이었기에 그들을 존경하며 만족하게 된다. 역사가 잘못 평가되면 시청자들이 역사왜곡이라고 반발이 일어나듯 우리에게는 그만큼 대단한 존재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편한한 삶을 살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인들의 업적으로 그를 존경하기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삶의 연장에 환호하는걸까? 그건 우리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건 사람들의 욕심이고 바람이다. 만약 위인들이 더 삶이 길었다면 더 많은 업적들을, 또한 후손들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남겨 두고 가셨을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기에 더 살아보고자 하는건 우리들의 끝없는 바람이기에 삶의 연장에 환호하게 된다.
3. 왜 우리는 오래 살고자 하는가? 오래 살게 되면, 아니 영원히 오래살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삶은 짧지만 죽음은 결국 인생을 영원하고 신성하게 만든다. - A.A.프록터 "죽음까지의 일생" ->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것이다. 하나를 하면 두개를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이기에 그렇다. 각자에게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꿈을 이루고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남은건 무엇이 있겠는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자하는것은 사람들의 바람일것이다. 만약 오래 살수있게 된다면, 그런 시대가 온다면 난 무엇을 하면 이세상에 살겠는가? 이루지 못했던 목표들을 찾아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갈것이면. 내 자신이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것. 후회하며 잘못했던것들을 뉘우치면서 살아갈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제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아는건 '삶의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앞에서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일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알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인생을 마감했을때 나를 존경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옆에 있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고자 한다. 우리들이오래 살고자 하는건 , 긴 시간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하고자 하는것들을 다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고자 한다. 오래도록 자신의 길, 꿈, 목표, 행복을 찾아서 살고 싶어하는것이다. 과학은 급속 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언제가는 장수의 시대에 올것이라고 본다. 춘추전국시대에 진시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불로장색약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 어리석었지만 훗날에는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우리 가까이에 불로 장색약을 접할수 있는 시대가 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한번이라는것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삶이 죽음이 있기에 끔직하지만 죽음이 없다면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죽지 않고 우리는 오래 살고자 하는건 죽음이 두렵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누리기 위해 오래 살고자 한다.
첫댓글 [4]뭔가 독특하게 주제를 잘 표현 하셨네요. 잘읽었습니다.
[3]각 질문별로 인용문구를 넣은 것이 독특합니다
[4] 많은 자료를 인용하셔서 자신의 생각을 잘 나타내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 자신의 주장을 잘 표현 하신 것 같습니다.
[3] 프록터의 말에 동의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