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인 이유는,
원래 감정 조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 힘든 미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부정적 감정들에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내 감정을 정복하고자 하는 게 대다수 감정적인 사람들의 꿈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감정 조절을 위한 노력과 훈련을 일상화시켜야만 해요.
이번 글에서는,
과거의 불가 철학 및 현대의 심리학과 뇌과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감정 조절 기법 중,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세 개의 방법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게,
감정 조절이라 함은 애당초 감정이 덜 일어나게끔 조절하는 것(X)이 아니라,
일어난 감정이 곧바로 행동화되지 않게끔 조절하는 개념(O)에 가깝다는 겁니다.
아예 무감정한 기계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전자는 애초에 불가능한 접근이고,
그나마 후자가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감정을 컨트톨할 수 있는 루트인 건데,
이마저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원래, Emotion의 어원 자체가,
E(이끌다), motion(행동), 즉,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의 심리적 기제 자체가,
감정이 일어나면 그에 대응하는 반응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라는 소리죠.
원래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이런 식의 전개가
구석기 시대에는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었던 정답에 가까운 패턴이었지만,
더이상 포식자에게 공격 당할 일도 없고, 육체적 생존이 최우선시되는 환경도 아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감정적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할 만큼의 문제 행동이 되어 버렸죠.
이렇게, 사회 생활을 하며 부정적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다 보니,
① 그게 은근히 주변 사람들에게 "수동 공격적 행위"로 표출되거나,
②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그동안 쌓여 온 화가 폭발하거나,
③ 착한 사람들은 이도 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면서 홧병이 생기거나
등등
부정적 감정이 행동화되거나 또는 내면에 또아리를 튼 채 알박기를 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 곧 현실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실체화되는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
원래, 감정과 그에 따른 반응 행동 사이에는 틈이 없습니다.
(감정→행동)
그래서 화가 나면 보통 그 즉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감정 조절의 대가들은 감정과 행동 사이에 "틈"을 만들어 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틈을 "마음의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이 마음의 공간은 이를테면, 깔대기(filter) 같은 겁니다.
(감정→마음의 공간→행동)
부정적 감정이 곧바로 행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깔대기 같은 마음의 공간을 거쳐 정화된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따라서, 감정 조절의 핵심 포인트는 이 마음의 공간을 어떻게 잘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 심호흡
과학자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장기가 "폐"라고 설명합니다.
이말인즉슨,
짜증이 나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다른 신체 기관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오직 폐만은 내가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소리죠.
폐의 컨트롤은 "심호흡"을 통해서 가능해지는데,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행위를 통해,
횡경막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순간적으로 높아지는 체내의 산소 농도를 시그널로 삼아,
우리의 뇌는 지금이 안정된 상황이라는 기계적인 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차차 들끓던 감정이 가라앉으며 차분해지는 것이죠.
즉, 몇십초간의 심호흡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 내며 일종의 버퍼링 역할을 해 주는 겁니다.
두번째 방법) 타자화
회사에서 팀장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여러분을 갈구고 있다면,
조용히 심호흡을 들이키면서 여러분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식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이, 나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속 상황(X)이 아니라,
무명자라는 대상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속 상황(0)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죠.
'이 곳은 싸이코 같은 직장 상사가 아무 죄 없는 회사원 A씨를 갈구고 있는 현장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마치 쓰레기를 무차별적으로 내뱉고 있는 쓰레기통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쓰레기를 주워서 굳이 여러분의 주머니에 담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던져지는 쓰레기를 무시할 수 있다면,
곧 그 사람 주변은 쓰레기로 가득차 모든 사람들이 그 쓰레기통 같은 X를 피하게 될 테니까요.'
마치 다큐멘터리 성우의 톤으로 지금 상황을 머리 속에서 중계해 보세요.
이러한 타자화는, 나와 지금 이 상황과의 심리적 거리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내가 느낄 수 있는 부정적 감정의 농도를 낮추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 우리의 뇌는 단순해서, 스스로를 3인칭 타자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치 남 일을 구경하는 것처럼 해당 상황에 대한 감정적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세번째 방법) 심상화
상상의 힘은 의외로 강력해서,
옛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곤 하였습니다.
(ex. 구멍에 대고 말해선 안 되는 비밀을 말한 뒤 그 구멍을 봉인함으로써,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함)
이게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이,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미 많은 실험들을 통해 이러한 심상화(상징화)의 효과가 증명되었는데,
가령, 한 실험에서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고민들을 종이에 적어 봉투에 봉인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경감되었으며,
그 봉인된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만으로 다시 한 번 스트레스가 경감되었고,
그 쓰레기통 속의 내용물들을 불태우는 것만으로 또 한 번 스트레스가 경감되었습니다.
(ex. 증오 대상의 사진이나 저주 인형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이걸 스트레스 상황에 활용하면,
팀장이 나에게 갖은 욕을 퍼부을 때,
상상 속으로, 내 감정과 행동 사이에 어떤 상징적인 공간을 팍 하고 끼워넣는 겁니다.
이를테면, 제 경우에는, 상상 속에서 불현듯 법당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짜증→불국사 법당→행동
상상이지만, 내 감정과 행동 사이에 법당이라는 공간이 껴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과 행동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효과가 생기며,
부차적으로, 법당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상징성으로 인해,
짜증이라는 존재가 법당을 거쳐 마치 교화되고 정화되는 것만 같은 기분은 덤으로 얻어지게 되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후하후하 심호흡부터 습관화 해야겠네요
심호흡부터 ^^ 늘 감사합니다 ^^
위의 두가지는 종종 했었는데 효과가 컸어요!
늘 고마운 글 감사합니다~~~♡
제가 화나 짜증이 많지 않은데 타자화와 상상을 많이 쓰고 있었던 거였내요. 폐도 잘 한번 사용해보겠습니다.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