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스 리처즈는 전설적 밴드 롤링스톤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59년 담배를 피우느라 조례를 빼먹는 바람에 학교에서 쫓겨났던 문제아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기본적인 음악적 재능은 타고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건반에 재능이 있었지만,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연주해 돈을 받는 수준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20세기 대표 록밴드를 만들게 됐을까.
#2. 스웨덴의 '테트라 팩'은 오늘날 우유나 주스를 담는 종이팩을 만들어 음료 패키징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람들이 음료를 점점 더 밖에서 이동하며 마시면서 혁신의 대명사인 테트라 팩도 위기에 직면했다. 테트라 팩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위의 두 가지 사례의 답은 모두 다름 아닌 '그룹 싱킹(Group Thinking)'이다.
롤링스톤스는 키스 리처즈 혼자만의 음악적 재능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믹 재거라는 뛰어난 동료로 인해 그의 음악적 재능이 불후의 히트곡 'As Tears Go By'의 탄생으로 연결됐다. 이 둘을 주방으로 밀어넣고 곡을 완성하기 전까지 나오지 말라고 윽박질렀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앤드루 루그올덤 덕분에 롤링스톤스를 성공시킨 명곡들이 나왔으며 50년 넘는 세월 동안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창조적 지성은 음악과 같은 예술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혁신 기업의 대명사 테트라 팩은 전 세계 주스와 우유의 패키지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지만, 이동하면서 음료를 마시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 싱킹'을 활용했다.
자신들의 지성(Intelligence)에 만족하지 않고, 보스턴의 디자인 컨설팅업체 컨티넘(Continuum)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 과정에서 테트라 팩은 컨티넘의 직원들과 힘을 합쳐 함께 리서치를 하고 끊임없는 토론을 거쳐 현재와 같은 동그란 플라스틱 뚜껑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룹 싱킹'이 창조적 지성의 핵심이라는 주장을 체계적으로 펼친 사람은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브루스 누스바움 교수다.
누스바움 교수는 매경MBA팀과 인터뷰하면서 "사람들은 재능이 있는 특별한 한 천재가 '아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을 경험한 후 전에 없는 창조를 해낸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 모두에겐 이미 창조적 능력이 잠재돼 있는데 이를 분출시키기 위해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이 그룹 싱킹"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창조적 지성의 핵심은 결국 그룹싱킹이라고 했다.
▶테트라 팩은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다. 테트라 팩이 컨티넘에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서 끝났다면 다른 기업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트라 팩은 그저 도움을 요청하고 결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해결 방안이 나올 때까지 컨티넘 직원들과 함께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프로토타입을 개발했으며 개선 작업을 해나가면서 위대한 혁신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창의력이나 창조에 있어 집단이 논의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시리어스 플레이(Serious Play)'를 했다는 점이다. 이 시리어스 플레이에서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뢰감도 창조에 필수다.
테트라 팩은 현대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함께 수십억 달러짜리 제품을 다시 디자인하는 '어려운 게임'을 했지만 신뢰를 가지고 꾸준한 소통과 논의를 통해 혁신적 해결 방안을 내놨고 대성공을 거뒀다. 최고의 창조적 그룹싱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싱킹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리가 보통 접하는 것은 1인 리더십과 카리스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기업을 보며 사람들은 언뜻 한 명의 천재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이들 기업을 만든 사람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혹은 세 명이다.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뿐 만 아니라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스 등 공동창업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구글 역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함께 만들었다.
애플도 예외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 혼자 만든 게 아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리더'라고 부르는 '아웃사이드 인물(Outside Person)'이 주로 조명을 받고 카리스마를 뽐내지만 내부에서 업무 진행을 이끌어가는 '인사이드 인물(Inside Person)'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한 명이 아닌 다수의 힘이 합해져야 제대로 된 창조가 가능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1명의 천재는 없다
-결국 단 1명의 천재는 없는 것인가.
▶창조성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운 키스 소여 박사는 애초에 창조성이 개인적 프로세스라는 전제를 부정했다. 그는 창조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협업(Collaboration), 즉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 나온다. 협업을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주면 창조적 그룹싱킹이 분출된다.
-창조적 그룹싱킹을 분출시키는 사회적 환경은 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지배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이 한 시대에, 한 국가에서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피렌체는 부유한 도시국가였고, 덕분에 예술품 수집에 대한 욕구가 높았다. 훌륭한 화가가 많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서로 모여 다니며 작업하고 상대에게 비평과 조언을 들으려 해 지성의 집단화가 이뤄지며 창조성이 더 많이 발휘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실리콘밸리나 디자인 메카인 뉴욕이 비슷한 예다.
창조는 모두에게 있다…꺼내기 위한 도움이 필요할 뿐
-지식 발굴은 창조적 지성의 제1능력으로 제시됐다. 창조를 위해 발굴해야 하는 지식엔 어떤 것이 있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꺼내는 건 창조엔 도움이 안 된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지금 필요하냐'고 물으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대답한다. '창조'를 위해선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영속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의미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 꿈이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가 말한 '보다 높은 수준의 욕구(Higher Order Wants)'다. 이를 찾기 위해선 사람들의 삶, 문화, 그리고 비즈니스 속을 파고들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이런 발굴 지식을 연결시키는 구체화 작업을 할 수 있느냐다. 스티브 잡스가 서예를 취미로 배운 건 지식 발굴이지만 이를 맥(Mac)의 활자체에 적용한 것은 구체화다.
-발굴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틀을 깨고, 다시 짜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 중 '틀짜기'와 '재(再)틀짜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사례가 있다면.
▶소니와 애플이다. 1980년대 소비자 가전제품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보유하며 혁신적인 제품을 내놨지만 엔지니어적 혁신이었다. 소비자들은 쓸데없이 많은 버튼과 기능이 들어간 VCR나 라디오 등을 구입해야 했다. 20~30개 버튼 중 2~4개만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런 틀을 깬 게 소니다. 기존 지식 중 버릴 것은 버리고 간소화했다. 기술을 다 제품에 넣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은 경험을 부여한 '틀짜기'의 대표 사례다. 애플은 '재틀짜기'를 한 기업이다. 애플은 엔지니어의 개발을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않은 거의 최초의 기업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조차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애플은 디자인을 기반으로 소비자 중심의 제품을 선보이는 '재틀짜기'를 했다. 가전회사로선 파격적인 일이다.
-이런 창조적 지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퍼뜨리는 작업이 '중심잡기(Pivoting)'라고 주장했는데.
▶나는 중심잡기라는 용어를 '스케일링(Scaling)'으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케일링이라는 것은 성장, 확대를 의미한다. 새로운 무엇인가가 창조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상품성이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젊은 운동선수를 발굴해내 이들을 잘 키워내는 스포츠 코치, 무명 작가를 알아보고 창조의 힘을 더하게 하는 큐레이터들이 바로 '스케일러'들이다. 기업은 이런 '스케일러'들을 항상 내부에 둬야 한다. 그래야 창조의 힘을 더 극대화할 수 있다. 비공식적으로 일하게 해도 좋다.
무작정 노력하는 '몰입'보단 '구현'에 집중하라
-지식 발굴, 틀짜기, 즐기기, 만들기, 중심잡기라는 창조적 지성의 5가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저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몰입'보다는 '구현'에 집중하라는 말도 했다. '1만시간의 법칙'처럼 오랜 시간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오랜 명제와는 조금 다른 주장이다.
▶창조적 지성을 발휘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에 몰입을 하거나, 무엇을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몰입(Immersion)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구현(Embodiment)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맬컴 글래드웰의 '1만시간의 법칙'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몰입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지만, 창조는 1만시간을 투자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1만시간은 창조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구현은 어떻게 실현해낼 수 있나.
▶구현은 몇 가지 점을 이을 때 나타난다. 특히 젊은 층은 단순히 2개나 3개 점을 이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곤 한다. 이게 바로 창조의 구현이 아니고 뭔가. 아마존은 제프 베저스가 저가의 책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 플랫폼에서 선보이고 싶어해서 나왔다. 저렴한 가격의 책이라는 한 개의 점을 인터넷이라는 다른 점과 이은 것이다. 페이스북은 여학생에 대한 정보 공유와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두 개의 점을 연결해 탄생했다.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집카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들은 '몰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다른 요소를 결합해 의미를 구체화하고, 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은 창조를 구현하는 가장 좋은 도구
-이런 창조와 혁신을 손에 잡히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파슨스에서 가르치며 본 사례를 소개한다면.
▶암치료 전문병원인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이터링(MSK)이 파슨스대 학생들에게 환자들이 화학요법을 받는 방법을 다시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던 적이 있다. 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은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에 와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방을 쓰며 1시간가량의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다시 집에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구토를 하거나 메스꺼움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에 파슨스 학생들은 이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인터뷰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식을 발굴'했고 치료 과정에 변화를 줬다. 하나의 거대한 병원에서 위압적 치료를 받기보다는, 병원을 소규모 지역병원 방식으로 분할해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는 방식으로 전환하길 권했고, 치료 환경도 마치 스타벅스와 같이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로 바꾸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MSK는 이 조언을 따라 '지역 화학요법 병원'을 설립했으며 대히트를 했다. 파슨스 학생들의 '시리어스 플레이'로 몇 가지 모델을 내놓고,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뉴욕이라는 도시 전역에 소규모 지역병원을 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디자인의 힘이다. 패션만이 디자인이 아니다.
▶▶ 한국기업에 충고…'패스트 폴로어' 전략 더 안통해
브루스 누스바움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산업디자인 기술 자체는 상당 수준이지만, 그 디자인 속에서 한국만의 정서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큰 창조를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는 한국 기업의 디자인 문제점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genuine authenticity)'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누스바움 교수는 "한국의 산업 디자인 수준이 북유럽이나 미국에 뒤진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문화를 디자인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아름다운 한국의 청자ㆍ그림 목공예 음식 등 문화가 한국 산업디자인에 녹아들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까지 한국이 써온 '패스트 폴로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각 분야 미국ㆍ유럽ㆍ일본의 선두주자를 모방하고, 이를 더 저렴한 비용에 빨리 제조해 좋은 제품을 선보였지만 이제는 모방할 기업이 남아 있지 않다"면서 "애플이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한국 기업들은 모방할 대상을 잃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는 오히려 한국 기업에 절호의 기회"라면서 "최초로 모방을 하지 않고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금처럼 외국 기업에 자문을 구하는 정도에 만족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문을 구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면서 "한국과 문화가 다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직접 뛰어들어 외국 회사들이나 컨설팅업체와 함께 '시리어스 플레이'를 해야 한다. 테트라 팩이 한 것처럼 말이다"고 충고했다.
■ he is…
브루스 누스바움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는 디자인, 창조성, 혁신 전문가다. '비즈니스위크'에서 디자인 부문 편집위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 혁신 및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디자인경영원의 '존 F 놀란상'을 수상했으며 '패스트컴퍼니'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