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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을 돕던 두 명의 실험 조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에디슨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우리는 해답을 얻기 위해 700번이나 실험을 했는데, 아직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700번이나 실수를 거듭했으니, 우리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자 에디슨이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네. 자네들은 이제까지 자네들이 실험한 700가지 방법으로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답]을 얻은 것이라네. 그러니까 이제 자네들은 자네들이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지.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실수라고 생각하지 말고, [배웠다]고 생각하게나.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실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승자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자신의 뼈아픈 실수로부터 가장 값진 진리를 배운 사람이 있다면, 아마 사도 베드로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 중, 가장 결정적인 때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향해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요한복음 21장 17절을 보십시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날 밤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나약함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를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통해 오순절 성령 강림의 놀라운 역사와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자신의 실수에서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런 모습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이나 실수까지도, 참으로 주님의 뜻 안에서, 선한 것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십니다(롬 8:28).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답게, 실수로부터 값진 교훈을 얻으며 사는 지혜로운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로 인해 주저 앉아 있지는 않으십니까? 요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 이제 11월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해도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 한해가 어찌 이렇게 빨리 가는지요. 힘써 부지런히 주의 일을 하며 달려온 이 해를 모두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기도속에서 점검하며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면서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제가 찬양하는 마산과 진해 해변공원에 각종 타이틀을 만들어 축제, 기념, 추도 등의 이유로 행사공연이 너무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못쓴 예산들을 쓰기위해 안달이 난듯 합니다. 지자체가 이런 행사로 쓰는예산이 심각한 수준인 듯합니다. 이런 행사로 야외에 나가 찬양하는 사역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역을 위해 장비를 싣고 다니는 제 차량이 노후되어 (뉴카렌스 2006년식, 28만키로) 계속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곳을 수리해야 하는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중고차로 사서 근 10여년을 많은 장비를 싣고 다니며 사역에 쓰임 받은 참으로 고마운 녀석입니다. 중고차라도 말썽 없이 장비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자량을 후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쓴 나물도 먹어라 성경 : 출 12:5-10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출 12:8, 9) 요즘에 보면 영양가 있는 야채나 나물들을 말려서 보관하곤 합니다. 추운 겨울에 이것들을 꺼내서 물에 불려 볶아먹기도 하고 무쳐먹기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한 말린 야채나 나물들은 영양분이 결핍되기 쉬운 겨울에 좋은 반찬이 됩니다. 예전에 저는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은혜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인천 어느 교회에서 하도 부흥회를 해 달라고 졸라대서 하나님도 간청하면 들어주시는데 '가 줘야지'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저에게 와서 부흥회 해달라고 조르며 말하기를 '한 천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예배당이니까, 천명 이상은 집회하게 할테니까 꼭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고 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 금년 5월말에 개척이 되었고 사유지 땅에 장사하다 그만 둔 판자집 예배당인데, 천명이 무엇업니까? 백명도 아닌 약 60명 정도가 모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 날 낮시간에 한 30명이 모였길래 본 교회 교인들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6명이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출발하기 전까지도 문제없다고 저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을 해서 부흥회를 해달라고 했으면 화가 안났을텐데 거짓말을 해서 저를 데리고 간 것이 사기당한 것 같아서 분했던 것입니다. 가끔 제 자신이 겸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작은 교회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할 때가 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첫날, 저녁 설교를 하고 나서 숙소에 들어갔는데 날씨는 몹시 추운데 윗풍이 센 싸구려 여관방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데 거짓말한 그 목사가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옛날 선교사들은 식인종한테도 가서 전도하고, 공산국가에도 가서 전도하다가 고문도 당하고 죽기도 했는데, 이것쯤이야 못 참으랴 하는 생각을 했는데도 그 젊은 목사에 대한 괘씸한 생각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을 바로 잡아주셔야 복음을 잘 전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고기만 먹지 말고 쓴 나물도 먹어라'하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양고기만 불에 구워 먹지 말고 쓴 나물도 먹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보잘 것 없는 종이 예수님을 태운 당나귀가 덩달아 호산나 찬양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 때문에 큰 교회에 다니면서 훌륭한 대접과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몇몇 교회에서는 제가 헌금할 일이 많아서 그랬는지 후한 사례비를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맛있는 고기만 먹었지 맛없는 쓴 나물은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이 있은 후에 금식 기도까지 하라는 은혜를 받아서 금식하면서 부흥회를 은혜 중에 잘 마쳤습니다. 물론 사례비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 나갈 때, 언제나 맛있고 달콤한 고기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쓴 나물도 아울러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의 건강에도 좋습니다. 우리영혼도 쓴 나물을 먹어야 건강하고 영력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도 먹기 좋아한다고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것만 많이 먹으면 결국 이가 썩고, 밥도 잘 안먹고, 건강에도 해롭습니다. 먹기 싫은 쓴 나물도 잘 먹어둬야 육신도, 정신도, 영혼도 건강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잘 아시는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의 종살이를 끝내고 애굽에서 탈출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 말씀인데, 이 말씀은 도한 죄악된 세상에서 마귀의 종노릇을 하던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아 천성을 향해 떠나는 성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흠없는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받으신 사실을 먹듯이 내 심령에 믿음으로 받아 드리라는 것이요, 물에 삶아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이념이나 철학이나 자유주의적 신앙을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이며,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예수님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 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몽땅 믿어야지, 예수 그리스도를 토막토막 나누어서 자기에게 필료한 어느 부분만 믿으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하게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룩을 없애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다음에 누룩과 같은 죄, 불의, 위선,. 사악한 것들을 내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린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집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임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내 죄를 대속해 주시고 이어 주심을 믿고 예수님의 피를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쓴 나물을 섞어 먹어야 한다는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쓴 고통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만 달콤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죄로 통한 애통함과 고통도 느껴야 합니다. 죄와 싸우고 피흘리기까지 투쟁하는 고통과 번민이 따라야지 맛있고 향기로운 것만 먹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는 하나도 끊거나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언하랴'하는 번민과 투쟁을 경험했듯이 우리도 이런 고민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계 10:10에 보면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달콤한 맛만 즐기면 안됩니다. 말씀을 받아먹고 소화시켜서 뼈가 되고 살이 되려면 쓰디쓴 고통과 고민의 맛도 보아야 합니다. 귀로들을 때에는 즐겁지만 그 말씀대로 살고 실천하려면 쓰디쓴 고통과 투쟁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실 때에 "재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자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시고, 잠시 후에 또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결단을 내리시고 십자가의 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아담은 자기 뜻대로 하기 위해 달콤한 선악과를 따 먹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죄악과 사망 권세를 짓밟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의 쓴 잔을 마셨던 것입니다. 2. 수치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큰 교회만 다니면서 좋은 대접 받고 창찬과 영광만 받았는데, 오돌오돌 떨고 금식까지 하면서 몇 십명 놓고 부흥회를 할 때 영광대신 꼭 수치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통하여 더 기도하게 되었고 더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겸손의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칭찬과 영광만 항상 받으려고 해선 안됩니다. 수치의 쓴 나물도 때로는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칭찬과 존경만 받게 사하지는 않습니다. 수치와 욕을 당하는 쓴 나물도 반드시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쓴 나물을 먹을 줄 알아야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과 존귀를 내려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침 뱉음을 당하시고 귀신이 들린 사람이라고 비난도 받고 무수한 매를 맞기도 하셨으며 강도들 틈에서 강도와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 만민의 구주가 되게 하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하셨던 것입니다. 쓰디 쓴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이는 결코 달콤한 영광의 면류관이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제가 감리사를 꼭 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보나 꼭 감리사를 한 번 거쳐야 된다고 권유를 해서 출마를 선언했더니 보기 좋게 낙선이 되어서 쓴 수치의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감투 싸움이 그렇게 심한 줄 모르고 전화 한 통 안했으니, 꼭 해야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도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사실 감독이건, 감리사건, 박사 학위건 별로 흥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교회를 부흥시키고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족한 사람인데, 그것마저도 칭찬과 영광만 받고 교만해질까 봐 하나님께서 멋지게 쓴 나물을 먹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그 당시에는 먹고 소화시키기 어려웠지만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에도 칭찬만 해서도 않됩니다. 때로는 책망도 하고, 잘못했다고 매도 때려야 성격과 인격이 원만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아픈 매로 때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사 51:7,8에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널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애 3:30-33에 "때리는 자에게 빰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지디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욕을 받을 때에 쓴 나물을 먹듯이 실컷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고 때가 되면 풍부하게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환난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항상 맛있고 달콤한 고기만 먹으려고 들면 안됩니다. 쓴 나물을 반드시 섞어 먹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쾌락과 평강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쓴 나물도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 건강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쾌락만 좋아하지 말고 고난도 먹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6.25 사변 때,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포로가 되었는데, 한국 군인은 잘 안죽는데, 미군은 잘 죽어 나가더랍니다. 왜냐하면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게만 살던 사람들이라 고생을 못참고 잘 죽더랍니다. 고생을 많이 한 한국 사람은 좀처럼 잘 죽지 않고 그 고난을 잘 견디어 내더랍니다. 하나님은 고난으로 연단받은 살말과 민족에게 큰 사명을 맡기시지, 온실의 화초같은 사람에게는 중대한 사명을 맡기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난의 쓴 나물을 잘 먹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사 45:7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도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으므로 낮만 계속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먹어야 축복받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몸에 육체의 가시, 사단의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겸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바다를 향해하는 사람이 어떻게 항상 고요하기만을 기대하겠습니까? 폭풍이 불고 풍랑도 이는 법입니다. 고요하고 평안할 때는 단맛을 보며 줌 쉬라는 것이라고 깨닫고 폭풍이 불고 풍랑이 일면 그 바람과 물결을 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라는 것인가 보다 하고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쓴 나물을 잘 받아먹고 소화시키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유모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