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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프리미엄 家電시장 | |||||||||||||||
3~4년 전만 해도 드럼 세탁기, 兩門型(양문형: 2 door) 냉장고(문이 좌우로 두 개 달린 냉장고) 등 국내의 대형 고급 白色家電(백색가전:냉장고, 세탁기 등 주로 흰색으로 이뤄진 家電제품) 시장은 제너럴 일렉트릭(GE), 월풀 등 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진 수입 외제품이 시장의 95%를 장악했다. 현재 드럼 세탁기와 兩門型 냉장고 시장에서 외제의 시장 점유율은 5%로 떨어졌다. 국산 트롬 세탁기(LG), 지펠 냉장고(삼성)에 떠밀려 퇴출당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이 외제를 마다하고 국산 家電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국산이 디자인과 성능, 기술력 등 여러 면에서 수입 외제품보다 월등한 데 비해 가격은 수입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家電시장에서 외제를 몰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LG의 트롬, 삼성의 지펠에 이어 2002년 8월 삼성전자가 선보인 「하우젠」(Hauzen) 브랜드다. 하우젠이란 독일어로 집(Haus)과 중심(Zentrom)의 합성어로서 「생활의 중심」을 상징하는 의미. 국산 브랜드에 독일 이미지를 차용한 이유를 묻자 鄭國鉉(정국현) 삼성전자 상무(디자인 경영센터)는 『독일제인 몽블랑 만년필이 세계 名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프랑스 이미지를 차용한 것과 같이 독일이 상징하는 신뢰성, 견고함, 匠人(장인)정신 등을 브랜드에 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우젠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에 각각의 이름을 부여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에어컨, 세탁기, 김치냉장고 등 몇 가지 제품을 통칭하는 통합 브랜드다. 하우젠은 또 지금까지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家電제품보다 한 단계 진보된 기술과 디자인을 적용한 프리미엄 家電제품이다. 브랜드 탄생 1년 후인 지난 10월 삼성전자는 『하우젠은 각 제품의 판매 비중이 30~4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하여 애니콜(휴대폰), 지펠(냉장고)에 이어 삼성전자의 대표 브랜드로 정착했다』는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리서치의 조사 결과 하우젠 브랜드 호감도가 78.3%로 급상승했으며, 브랜드 非보조 인지도가 하우젠 드럼세탁기 64.7%, 하우젠 에어컨 47.8%, 하우젠 김치냉장고 37.3%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삼성전자 측은 하우젠이 짧은 기간에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드럼 세탁기와 김치냉장고의 경우 경쟁사보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델에서 선발주자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선 것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백색家電은 삼성전자의 母胎(모태)나 다름없는 분야지만 반도체, 휴대폰, IT제품 등에 밀려 존폐의 기로에 서는 등 鷄肋(계륵)과 같은 존재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 외환위기가 닥쳐 삼성이 구조조정과 빅딜로 사업부분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때 그룹 수뇌부는 이익이 나지 않는 백색家電을 매각, 혹은 포기하려 했다. 삼성이 주춤거리는 사이 경쟁사인 LG전자는 대대적인 투자와 신제품 개발을 통해 국내외 백색家電 시장을 장악했다. 삼성전자가 뒤늦게 백색家電에 시동을 걸어 인력 충원과 기술개발을 시작했고, 드디어 「하우젠」이란 프리미엄 브랜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우젠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이자 앞서가던 LG전자도 적지 않게 경계하는 눈치다. 한동안 모기업의 공중분해로 어려움을 겪던 대우일렉트로닉스(舊대우전자)도 고급 家電시장을 노리고 신제품을 속속 발표하면서 백색家電 시장이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인 공학박사도 세탁기 개발에 참여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하우젠 드럼 세탁기 라인은 전자제품 공장치고는 소음이 심한 편이었다. 라인 곳곳에서 자동工具를 든 앳된 얼굴의 생산직 사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세탁기 라인은 부피가 크고 중량도 많이 나가는 제품의 특성상 품질관리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직원이 남자였다. 여러 개의 작업라인 중 한 라인에서는 내수용 드럼 세탁기가, 건너편 라인에서는 수출용 세탁기가 조립되고 있었다. 전요성 과장(삼성전자 리빙사업부 제조1그룹)은 『생산에 투입된 인력은 대부분 高3 학생들』이라고 했다. 高3 학생들이 인턴으로 입사하여 일을 하다가 졸업 후 삼성전자에 정식으로 취업하거나 다른 회사로 가기도 하고,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단다. 그는 『하우젠 드럼 세탁기가 히트를 치면서 전년도에 비해 물량이 두 배 이상 늘어 야간작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생산라인 한쪽에서는 생산제품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세탁기 안에 빨래가 투입되자 통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귀를 기울여도 통이 돌아가는 소음이 거의 나지 않아 지금 빨래를 하는 건지 동작이 멈춘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최근 들어 세탁기 시장은 통이 위로 세워져 있는 기존 세탁기에서 통이 옆으로 뉘어져 회전하는 드럼 세탁기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우젠 드럼 세탁기 개발을 담당한 張鳳安(장봉안) 수석연구원의 설명에 의하면 세계에서 연간 세탁기 판매 대수 5600만 대 중 드럼 세탁기가 2000만 대로 38% 정도. 국내의 경우 2001년에는 드럼 세탁기 비중이 2%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30%, 2004년에는 35%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세탁기 시장이 드럼형으로 이전하는 이유는 드럼 세탁기가 기존 세탁기에 비해 물·세제·에너지 사용량이 현저히 적으면서도 세탁 능력은 뛰어나기 때문. 기존 세탁기는 세탁물이 완전히 물에 잠겨야 세탁이 가능했지만, 드럼형은 세탁물이 물에 젖기만 하면 세탁이 가능하여 국내 세탁기를 모두 드럼형으로 바꾸면 동강댐 두 개를 건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張鳳安 수석연구원은 『하우젠 드럼 세탁기는 세탁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에 사용하는 진동 방지용 스프링을 채택했고, 빨래가 한 곳으로 몰릴 때 이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액체 밸런싱 기술, 모터 소음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접목시킨 결과 해외 톱 브랜드들의 세탁시 소음이 58~62dB 정도인 데 비해 하우젠 드럼 세탁기는 53dB 정도로 소음을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하우젠 드럼 세탁기 개발에 100억원의 개발비와 45명의 인력을 투입했으며, 개발 과정에서 13개의 국제특허를 획득했다. 흥미로운 것은 제품 개발에 일본 기술진이 참여했다는 사실. 일본 東京大 공학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의 리빙사업부 개발팀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스즈키 세이이치로(鈴木成一郞)씨는 자신이 하우젠 드럼 세탁기 개발 과정에서 진동과 소음 분야, 그리고 세탁물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알고리즘 개발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리빙사업부 개발팀에는 스즈키씨를 비롯하여 일본인 엔지니어 다섯 명, 중국인 엔지니어 다섯 명이 근무 중이라고 한다. 名品을 지향하는 기술과 디자인 소비자들은 「名品」 하면 경험이 풍부한 匠人들이 시간과 비용을 초월하여 手製로 물건을 만드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좁은 국토에서 많은 사람이 부대끼는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名品 개념의 생산 패러다임을 고집하다간 시대의 흐름에서 낙오할 우려가 크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匠人정신을 논하는 것이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韓龍外(한용외) 삼성전자 사장(Digital Appliance Network 총괄사장)은 『단군 개국 이래 한국산 제품 중 세계 시장에서 名品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삼성 애니콜이 거의 유일하다』면서 『하우젠을 통해 국산 家電제품도 세계 시장에서 名品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과 디자인, 제품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韓사장은 또 『현재 세계 家電 시장에서 삼성, LG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해외 경쟁사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라면서 『한국의 고급 家電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삼성이 이처럼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는 하우젠 브랜드에 지금까지의 家電제품과는 다른 고급 기술이 많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張鳳安 연구원은 『하우젠 세탁기에는 빨래를 삶지 않고도 99.9% 살균이 가능한 은나노 기술, 절전기술 등이 적용되어 全세계 어느 제품과 경쟁해도 자신 있는 名品』이라고 말했다. 은나노 기술은 한국화학시험연구원에서 살균력을 검증받아 「살균(S)마크」를 획득했다. 일본인 엔지니어 스즈키씨는 『일본에서도 이런 개념의 세탁기는 없었다』면서 『현존하는 全세계의 모든 세탁기 중 하우젠 드럼 세탁기가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하우젠 에어컨은 여름에는 냉방용으로, 나머지 세 계절은 공기청정기로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기능, 그리고 실외기 한 대로 여러 대의 에어컨을 연결하는 홈 멀티 시스템, 측면에서 바람이 나오는 방식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우젠 김치냉장고도 국내 최초로 쌀 저장 전문실, 맞춤 전문 숙성실, 음성 안내 기능까지 채택했다고 한다. 김치냉장고 개발팀은 김치를 전문으로 담그는 「아줌마 부대」가 동원돼 무김치, 물김치, 배추김치를 4계절별로 담그고 김치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킨 후 맛을 테스트했으며, 식품개발연구소, 김치박물관, 유명 대학의 김치연구소와 합동 연구를 하기도 했단다. 하우젠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디자인의 차별성이 큰 특징이다. 에어컨의 경우 실내 분위기에 따라 제품의 색상을 수시로 바꿀 수 있도록 패널 교체 시스템을 적용했고, 인테리어 개념을 도입한 디자인 등 기존 제품과 차별화되는 아이디어가 주목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백색 위주의 단조로운 색상이었던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컬러를 하늘색, 붉은색, 금색, 녹색, 회색 등 원할 때마다 바꿀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김치냉장고는 언뜻 보면 이것이 家具인지 김치냉장고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이처럼 흥미로운 기술과 디자인이 접목된 결과 유럽 현지의 판매조직은 유럽 현지에서 5~7kg(세탁물 투입 용량)짜리 드럼 세탁기가 500유로(약 65만원)에 판매되는 데 비해 10kg짜리 하우젠 제품은 1500~2000유로(약 195만~260만원)에 판매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한국 家電제품이 디자인 혁명 주도 최근 들어 세계 家電시장의 話頭는 한국이다. 權赫國 삼성전자 상무(시스템 家電사업부 국내마케팅 팀장)의 설명에 의하면 全세계에서 고급 家電제품을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정도라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 등의 家電 메이커는 내수에 집중하면서 활력을 잃었고, 중국은 아직도 내수 저가제품 위주라서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權상무는 『라스베이거스 家電쇼 등 해외 유명 家電제품 전시회에 나가 보면 디자인 혁명, 기술 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 家電제품』이라면서 『3~4년 전만 해도 국산 家電제품이 외제와 경쟁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우리와 LG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한 결과 물 절약, 절전기능과 같은 환경보호 측면, 냉각속도 등 기능 측면은 물론 사용의 편리성, 디자인 면에서 해외 경쟁사를 앞서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물 간 분야로 취급하던 국산 백색家電이 세계 시장에서 큰일을 낼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名品은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경험, 꾸준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02년 3월23일)는 「名品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년이 필요하다. 이런 브랜드를 몇 개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우젠은 이제 탄생 1년에 불과한 신생 브랜드지만 제품에 투영된 기술과 품질, 디자인은 세계 名品으로 꼽히는 해외 유명 제품보다 앞서간다는 것이 삼성 측의 입장이다. 韓龍外 삼성전자 사장은 『하우젠 브랜드는 국내 시장에서 그 가능성을 먼저 테스트한 다음 본격적인 해외 마케팅을 시작할 예정』이라면서 『수출이 본격화되면 세계적인 家電 名品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세탁기 라인 취재를 마치고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는데, 변기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자는 비데를 보면서 이 회사가 외부고객 만족에 앞서 내부고객인 직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생산직 사원들을 위한 이런 배려들이 우리 제품을 세계 名品으로 끌어올리는 작은 씨앗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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