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대전문화관광해설사(회장 문경혜) 40여 명은 전남 장성군에 자리한 필암서원(筆巖書院)을 찾아 현장 연수를 실시했다. 1590년에 지역 유학자들이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학문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 시설이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사립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현재 670여 개 서원 중 대표적인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황룡강과 문필천이 만나는 장성군 기산리에 세웠던 서원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1624년 필암리 증산에 다시 세우고, 1662년(현종 3년) ‘필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672년 현재 자리로 옮기고 김인후의 사위 고암 양자징을 추가로 배향하였고, 1871년(고종 8년) 서원철폐령에도 남은 전남 유일의 서원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여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1545년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에 돌아와 성리학 연구와 후학양성에 정진하였다.
이선숙 해설사는 “청절당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던 건물이며 편액은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이고, 확연루는 서원의 출입문으로 선비들이 시를 짓고 휴식을 취했던 건물로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입니다. 우동사는 서원의 사우로 북쪽에 김인후 선생, 동쪽에 양자징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편액은 주자의 글씨를 집자하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유물전시관에는 하서 학술재단에서 기증한 유물 20종 3,798점 중에서 붓, 벼루, 책장 등의 유물과 초서천자문, 봉심록 등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보물 제587호 소속 노비를 기록한 ‘노비보’, 양자징의 축문과 관련된 14책 64매도 전시되었다. 서원의 내력과 지방교육제도 및 당시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묘소 입구의 신도비는 선생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비로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으며 1742년(영조 18년)에 세웠다. 전᛫후면에 각 19행, 양 측면에 각 8행, 모두 54행, 1행 54자의 내용이다. 동국 18현의 학자로 도학과 절의, 문장을 갖춘 그의 생애와 행적을 알 수 있다.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고 사료로 역사적, 학술적, 향토사적 가치가 크다. <구항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