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서울대 수석으로 입학한 장승수는 싸우꾼이었다.장승수는 키 160cm에 몸무게55kg이 안돼는 체격이었다.그래서 우리반에 이런애가 있었나 할 정도로 특징도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장승수가 싸움꾼이 된때는 고등학교2학년 때였다. 단지 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유나 명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을 했다. 고들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지나며 담배를 패우기 시작했고 2학년이 되자 잘나가는 아이들에 끼어 뒷자리에 끼어 않았다. 2학년이 되고 한달이 되지 않았을때 친구가 양담배를 가져와 아르바이트를 했다. 장승수도 큰맘먹고 담배를 500원을 주고 샀다.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친구에게 담배를 맡겼다. 그런데 다음날 그친구가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피워버렸다는 것이었다. 화가난 나머지 친구와 싸움을 하고 말았다. 장승수는 화가 난데다가 친구에게 맞기 까지 해서 분하였다. 어느날 뒷자리에 앉아있는 장승수에게 어떤 아이가 시비를 걸어왔다. 그래서 장승수는 그아이에게 주먹을 던졌다. 그아이와 싸움을 한 장승수는 승리했었다.그리고 얼마후 동네 형을만났다. 같이 포크레인 운전이나 해보자는 것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 300명중 40등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장승수의 성적으로는 어디 대학교에 원서를 내볼곳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장승수는 그 대학 안가겠다고 하며 그곳을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일도 해보았다. 물수건을 배달하고 공장에도 가보고 그러면서 돈을 벌었다. 장승수는 다시 학원에 갔다. 그리고 대입종합반에서 반편성 시험을 보았다. 서울대반, 연고대반,....,세반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시험에서 연고대 반에 붙었다. 장승수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연고대 반에 붙은 장승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장승수는 공부를 하며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실전 시험에 장승수도 같이 보았다. 동생과 함께 보았다. 장승수와 그 동생은 집에 와서 답을 맞춰 보았다. 장승수의 점수는 282점 꽤 높은 점수였다. 학겹자 발표날이였다. 동생은 합격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승수의 이름을 부르고는 탈락입니다 이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그 당시 어려웠던 가정시절 때문에 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느정도 돈을 번다음 다시 학원에 들어갔더니 그전 해의 좋은 성적 때문에 학원비를 면제 받았다. 5월 말에 모의고사를 보았다. 학원전체에서 2등 이었다. 2학기 성적은 50위에서200위 권에 해당되었다. 그런데 1993년에 졸업한지 몇년이 지나면 내신의 등급을 새로 준다는 것이었다. 1월에 서울로 올라가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1년이라는 공백이 너무 큰것인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예전에 다니던 대전으로 다시 내려와 다니던 일신학원에 갔다. 3월에 모의고사를 치르고 175점을 맞았다. 이번시험은 1교시를 끝내고 나니 10점을 까먹고 나는것 같았다. 시험이 끝났다. 선생님이 성적을 적어 내라 해서 혹시 몰라 180점으로 적어 내엇다. 그리고 나중에 발표가 나오고 183.7정도가 나온것이다 혼자 점수준 것보다 훨씬 많이 나온것이었다. 그리고 장승수에게 인터뷰를 권했다. 어떻게하면 공부를 잘할수 있었냐고 였다. 장승수는 그에 대한 대답은 누구나 다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공부도 할수 있다고 답하였다. 한참지나고 일어나는 시간은 7시였다. 학원 수업시간에도 혼자 자습을 하고 담배를 밖에서 피우며 공부를 하던가 반에 가만히 공부하던경우가 있었다. 초가을 이었다. 공부를 하는데 파동을 몰라 짜증이 날 정도였다.
과학자 들에 의하면 인간도 전체 뇌용량의 2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배움의 즐거움을 공자는 언제 들어도 새로운 영원한 진리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