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에선 우선 여차장의 근무조건이 소상히 공개됐다. 차장들은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승강구에 '서서' 일했다. 출퇴근시간엔 산더미 같은 장정들을 '배치기'로 버스에 밀어 넣고 행선지를 고래고래 '외치느라' 목이 쉬었다. 이따금 승객들과 요금이나 서비스 문제로 대판 '싸움을 벌였고' 어린 학생들까지 "차장X"이라며 '욕하는 걸 들어'줘야 했다.
버스요금을 안내고 타는 승객과 '말다툼'을 하다 머리채를 잡히고 흔들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하류 인생으로 취급 받는 게 서러워 기숙사에선 밤에 훌쩍이며 우는 차장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뿐인가. 일부 치한들은 승객들에 밀리는 척 몸을 기대며 더듬기까지 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70년 당시 그들이 받는 일당은 고작 540원. 1편에서 밝힌 77년 차장의 일당 3,400원의 5,6분의 1수준이었다. 한 달 10,800원을 받았지만 식대 4,500원을 제하면 실 수령액은 6,300원에 불과했고 외상이 있으면 2,000∼3,000원 손에 쥐기 빠듯했다. 17∼23세 꽃다운 나이, 한창 몸치장을 하고 멋 부릴 때지만 그 돈으론 얼굴화장품 하나 사기도 부족했다. 하기야 근무 중 화장품은 바를 수도 없었다. 온몸으로 승객과 부딪혀야 했기 때문이다. 행여 직장인의 흰색 셔츠에 입술 루주라도 묻혔다가는 그 집 부부싸움에 잡혀가 증언할 각오를 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