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팔달령에 있는 만리장성
★만리장성 [萬里長城]
북경에서 서쪽으로 75㎞ 떨어진 곳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로 만든 만리장성 사방으로 통하고 편리하다는 뜻인“사통팔달” 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만리장성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중국의 역대왕조가 변경방위를 목적으로 쌓은 긴 성벽.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 연(燕)나라 등이 쌓은 것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흉노의 침략에 대비하여 크게 증축하고 이후 청나라 때에 오면 군사적인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본토와 만주, 몽고를 구분 짓는 정치적, 행정적인 경계선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동쪽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자위관(嘉峪關)까지 일만 화리(华里)에 달하여 만리장성이라고 칭하고 있다.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팔달령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산세가 험준한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성벽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만리장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32대 1대당 6명 싣고 쉴 새도 없이 7~8분 거리를 운행하며, 걸어서는 만리장성 까지 3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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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장성의 유적 주요 부분은 14세기의 명장성(明长城)으로 2009년 4월 중국국가측회국(中国国家测绘局) 및 국가문물국(国家文物局)은 만리장성이 동쪽 호산장성(虎山长城)에서시작으로 서쪽 자위관(嘉峪关)에 이르기까지 전장은 8,851.8km이며 이중 인공성벽의 길이는 6,259.6km, 성벽의 평균 높이는 6~7m, 고도의 폭은 4~5m라고 발표하였으나 실제로 호산산성은 고구려시절의 천리장성 끝 박작성이며 이를 만리장성에 포함시킨 것은 동북공정의 일환에 따라 고대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왜곡된 행위로 한국 사학계로부터의 반발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놀랍게도 그 같은 관점은 역사적으로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한 중국의 황제들은 몽골 기마 민족과 고구려 무사들의 기개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침공에 벌벌 떨며 전전긍긍(戰戰兢兢)하다가 그토록 거대한 성(城)을 쌓게 된 거랍니다.
몽골과 고구려 기마 부대에 대한 콤플렉스가 만리장성을 탄생시킨 것이지요.
만리장성은 너무도 명백한 공한증(恐韓症)의 상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고대 한국(韓國)에 대한 공포(恐怖) 증상(症狀)이 그토록 미련하게 긴 토성
(土城)을 쌓게 만든 근본 원인이란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고구려 민족의 후손들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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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국 만리장성 여행|작성자Phone Player
★▲ 왜곡된 관광용 만리장성
만리장성에 대한 치명적 오해
두어 달 동안 중국을 유람한 적이 있습니다. 약 10년 전 어쭙잖은, 중국 여행기. <중국에 가니 만리장성은 없더라.>를 출간한 동기가 됐답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에 대하여 한 말씀 올리죠.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찾아가는 만리장성은 모형, 즉 이미테이션에 불과합니다.
진짜 만리장성은햇볕에 말린 흙벽돌과 단단한 돌을 섞어 만들어진 토성(土城)입니다.
따라서 관리와 보존이 힘들다는 이유로 여간해서 실제 만리장성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한국 고위 정치인 중에 몇몇 사람만 만리장성 실물을 구경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이 진짜 만리장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구경하고 돌아오는 만리장성은 가짜입니다. 돈맛을 알게 된 중국 사람들이 거액을 들여 거대한 관광용 시멘트 상품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인들은 그 가짜(?) 만리장성을 구경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곤 합니다.
그뿐인 줄 아세요? 한국인들은 만리장성을 마주할 적마다 거대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스포츠나 경제 분야 등에서 중국을 이길 경우 <만리장성을 뛰어넘었다>고 외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중국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의미로 그 말을 쓰곤 한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놀랍게도 그 같은 관점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한 중국의 미련한 황제들은 몽골 기마 민족과 고구려 무사들의 기개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침공에 벌벌 떨며 전전긍긍(戰戰兢兢)하다가 그토록 거대한 성(城)을 쌓게 된 거랍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몽골과 고구려 기마 부대에 대한 콤플렉스가 만리장성을 탄생시킨 것이지요. 그럼에도 한국 언론사의 기자(記者)들마저 <만리장성을 뛰어넘었다>고 소리칩니다.
<만리장성>을 거대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로 오해한 결과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절대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고구려 기마 민족에 대한 중국 한족(漢族)의 전전긍긍이 만리장성으로 연결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전전(戰戰)>이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이란 <몸을 움츠리고 조심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또 한 번 강조하죠. 만리장성은 너무도 명백한 공한증(恐韓症)의 상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고대 한국(韓國)에 대한 공포(恐怖) 증상(症狀)이 그토록 미련하게 긴 토성(土城)을 쌓게 만든 근본 원인이란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고구려 민족의 후손들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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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앉아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볼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회워들돌보면서어르신은구경하셧나요
어른신을뵈면참좋은곳구경하니
너무감사합니다
언재나건강하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