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위기 배과
죤 로렌스 라는 분이 1937년 자신의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마요 클리닉 이라는 큰 병원으로부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고강도 엑스레이 치료를 시도하여 어머니 암을 치료하고 어머니는 그 이후 15년을 더 사셔서 만 83세까지 사셨습니다.
출처 영화 트레일러
작년 영화 오펜하이머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를 5월 30일 비행기에서 처음 원본 다 시청하였습니다.
그 영화 중에 오펜하이머의 친구로 키가 크고 은테 안경을 낀 사람이 어니스트 로렌스입니다. 그는 최초로 방사선 가속기를 발명하여 물리 입자를 연구한 공로로 1939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실제 맨하탄 프로젝트에도 우라늄 농축 과정에서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죤 로렌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바드 의대를 졸업하였지만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친형인 어니스트 로렌스를 따라 버클리로 이주하여 물리학과 방사산의학을 같이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죤 로렌스가 자기 어머니를 치료한 고강도 엑스레이가 친형의 어니스트 로렌스 팀 연구원인 데이비드 슬론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습니다.
죤 로렌스가 방사선 암 치료를 한 이후 아들을 암으로 잃은 백만장자올 기부를 많이 한 윌리엄 다너가(Williuan Donner")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여 버클리에 "다너 연구소" 을 만들어 연구를 지속하였습니다.
그는 물리학 연구와 방사선 의학 연구 업적으로 엔리코 페르미 상과 미국 방사능 학회로부터 콜드웰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선구자로 시도한 방사선 치료로 암에서 회복되어 생명을 연장한 분들이 수백만이 넘을 것입니다.
P. S.
1982년부터 1989년까지 버클리에서 생물룰리학 박사 과정을 받아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 연구 과정에서 봉급을 받던 곳이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원이었고 연구실이 다너 연구소 3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너 연구소가 위 존 로렌스의 선두적인 연구를 휠리엄 다너가 지원하여 설립되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죤 로렌스님에게 다시 존경의 말씀 드립니다.
그 때 버클리 대학원 진학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세포간 신호전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질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해명하여 노벨상을 받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4명 손주와 놀기 좋아 하는 평범한 할아버지입니다. ㅎㅎ
첫댓글 공석환이 생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하여 "첨단학문에 도전해서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앞서가서 국내에 정착하지 못했나?
기냥 카이스트에서 꾸준히 연구에 집중했었더라면....
사정은 잘 모르지만 ㅎㅎ
과학 어느 정도 하다가 좌절이 와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인도네시아 여행 재미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내년에 친구들 3,4명 모아서 나장향에게 연락해 보아야 겠다.
@5/공석환 이번 여행에 많을 걸 느꼈네. 무더위에 몸이 예전같이 따라주질 않으니 힘들게 다니는 것은 자제하는 분위기.
친구들 잠자리와 식사. 그리고 여흥을 신경써준 나장향한테 고맙고 너무 미안하더라.
함께한 친구들도 서로를 생각해주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흐믓 했네만~
소화, 척추.관절 질환에 특히 신경을 써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야 겠다고 생각한 여행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