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부회장 나갈래
“아빠, 나 회장 됐어.”
전화로 들려오는 큰딸 다솜이의 말이 하늘을 날았다. 내 마음도 덩달아 기쁨의 나래를 폈다. 다솜이가 5학년 2학기가 시작되는 지금 학급 투표에서 당당히 회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다솜아. 정말 축하해. 기도하는 회장이 되어야겠지? 아빠가 기도할게.”
나는 전화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집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동생인 1학년 다빈이는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아싸! 아빠. 우리 외식할 껀수 생겼어. 언니 회장 되었으니까 말야.”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활발해진 다솜이와 다빈이를 보면 그저 힘이 난다. ‘당연하지’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다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전교어린이 부회장에 나갈거야. 괜찮지?”
옆에 있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얘가, 얘가...”
나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다솜아. 네가 원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해도 되지. 멋있는데 우리 딸! 기도하는 전교 어린이 부회장! 네 덕분에 연희초등학교가 행복해질거야.”
그 날 밤 다솜이와 다빈이가 잠든 시각에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보, 나는 다솜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 내가 다솜이 클 때 아빠 노릇을 잘하지 못해 더 그런 마음이 생기네. 우리 기도하며 밀어주자. 더욱이 하나님께서 다솜이를 얼마나 많이 바꾸어 주셨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거야.”
7만원 짜리 사진을 찍고
내가 다솜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은 다솜이가 이 세상에 나오고 네 살 가량이 될 때까지 나는 세상 속에 묻혀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신앙과 술에 걸쳐 사는 양다리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면 어린 다솜이의 머리맡에서 아내와 부부 싸움을 일삼았었다. 주눅 든 다솜이는 네 살이 될 때까지 말을 잘 하지 못했고, 극히 소심한 아이였다. 이런 다솜이가 이렇게 활발해지고 학급 회장에 선출되고, 게다가 전교 부회장에까지 나가겠다는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격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내 말에 공감하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우리 온 가족은 모두 며칠 남지 않은 다솜이의 어린이 부회장 출마에 온 신경을 쏟았다. 먼저 선거 벽보 홍보물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공약 사항도 제시되어야 했다.
아내는 다솜이의 사진이 없어서 예전에 다솜이를 찍었던 사진관을 방문했다. 필름을 재현상할까 해서였다. 그런데 사진관 아저씨는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이런 사진은 새로 잘 찍어야 한다며 네 판을 다양한 모습으로 찍었다. 머리를 묶고, 또 풀고, 웃으며 과묵하게 말이다. 그러더니 7만원을 받았다. 싼 것이라고 하면서...
“제가 찍은 사진 때문에 국회의원 되신 분도 있어요. 꼭 될 겁니다.”
다솜이의 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우리는 가족회의 결과 웃으며 머리를 묶은 사진을 내걸기로 했다.
공약 사항은 다솜이의 생각대로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다솜이는 세 가지를 내세웠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사랑이 넘치는 학교, 둘째, 인사를 잘하는 예절 바른 학교, 셋째, 휴지 쓰레기 없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선거용 벽보는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넌 하나님을 믿잖아
회장은 6학년만 입후보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솜이는 말했다.
“아빠, 나 이번에 부회장... 만약에 안 되어도 내년에 전교 회장 나갈거야.”
‘잘 한다 우리 딸!’
이런 적극적인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 너무 감사했다. 이 아이가 정녕 그렇게 소심했던 다솜이인지 믿기지 않았다.
입후보 한 결과가 나타났다. 회장 후보는 일곱 명인데 부회장 후보는 다솜이를 포함해 딱 두 명이었다. 두 명 중에 한 명. 희한한 일이었다. 매년 부회장 후보도 6-7명씩 되었다고 하는데 금년에는 어찌된 일인지.
그런데 다솜이의 경쟁자는 만만치 않은 아이였다. 아내가 말했다.
“여보 그런 아이 있잖아. 무슨 일이든지 잘하는 아이. 그 아이는 다솜이하고 1,2학년 때 같은 반이었거든. 말 잘하고 공부 잘하고 예쁘고 정말 한 마디로 똑 소리 나는 아이야. 게다가 나의 주장 발표 대회 때 학교 대표로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라고... 정말 강적을 만났네. 아마 그 집에서는 우리 다솜이는 상대도 안 될거라고 만만히 볼 것 같은데...”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 아이는 교회 나가는 아이인가?”
“아니, 안 나갈 걸.”
“그럼, 뭐! 다솜이는 하나님 믿는 아이잖아.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솜이가 질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중요한 것은 다솜이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선거에 나가는가 하는 거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딱 맞는 일을 우리가 하면 좋아하시고 또 기도에 응답하시는 거잖아. 걱정하지 마. 하나님은 다솜이를 축복하실거니까.”
다솜이와 여러 후보자들의 홍보용 벽보가 학교에 붙었다. 동생 다빈이가 말했다.
“아빠, 언니 것이 제일 좋아. 멋있어.”
마치 자기가 입후보 한 것처럼 다빈이는 더욱 신이 났다. 게다가 목사님이신 장모님과 장인 어른께서 일부러 연희초등학교까지 가셔서 다솜이의 선거 벽보를 붙잡고 기도하고 오셨다고 한다. 못말리는 5대째 믿음의 집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솜이는 밤 늦게까지 연설문을 썼고, 그것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선거가 있는 다음 날 나는 출근하기 전에 다솜이를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며 격려하고 기도했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예레미야 1:8-9)
전교 부회장이 되었어요
드디어 선거날.
다솜이는 차례가 되어 방송실에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쓴 다솜이의 연설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이번에 연희초등학교 어린이 전교부회장에 나온 최다솜입니다. 여러분 제 이름은 최다솜입니다. 제 이름 ‘다솜’의 뜻은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제 이름처럼 우리 학교를 사랑이 넘쳐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무척 소심한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의 사랑으로 저는 이렇게 활달해지고 여러분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대목을 하루 전날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솜이의 어린 시절만 생각하면 부족한 아빠로서 짝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솜이가 너무나 잘 크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기 때문이다.
다솜이의 연설이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학교에서 순간순간 기도했다. 3학년 아이들과 성경공부를 하다가 같이 기도했고, 수업 시작 기도를 할 때는 학급 아이들과 같이 기도했다. 어찌 될까 하는 마음보다는 하나님의 강한 역사하심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오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다솜이가... 부회장이 됐어...”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어쩔 줄 모르는 감격으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부회장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이 일을 통해 다솜이가 얼마나 하나님께 귀한 딸로 성장하고 있는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말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여보, 불과 세 표 차이야.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 다빈이가 이렇게 되었다면 이렇게 기쁘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다솜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변하다니, 나 지금 케잌 사가지고 벧엘 유치원 가는 길이야. 가장 먼저 가야할 것 같아서. 그리고 어금주 선생님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 그리고 이종선 집사님이 얼마나 생각나는지. 살아계신다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내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아니 듣고 있는 내 머릿속이 그러했다. 다만 감사, 은혜라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고 그것은 하염없는 눈물로 흘러 내렸다.
사랑과 기도로
어금주 선생님은 다솜이가 다섯 살 때 벧엘 유치원에 나갈 때 담임을 하셨던 분이다. 다솜이는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 그 선생님 가슴팍이나 무릎에 앉아 하루를 보내곤 했다. 사랑이 넘쳐나는 그 선생님의 정성과 기도로 다솜이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종선 집사님은 내가 섬기는 평화교회의 사찰 집사님이었다. 나와 아내가 무척 방황하고 있을 때 어린 아이면서도 한숨을 푹 내쉬는 다솜이를 보며 기도가 필요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매주 안아 기도해주시던 집사님.
아빠, 엄마가 딸을 위해 기도해주지 못하던 그 때 유치원에서, 교회에서 기도해주시던 그분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다솜이가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종선 집사님은 수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때 집사님은 다솜이에게 선물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수 짠 속곳을 다솜이에게 남겨놓으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종선 집사님 보기 어려우면 아들이 있잖아. 봉화 집사님께 감사하다고 말하면 되지... 일단 유치원에 다녀 와.”
정봉화 집사님은 이종선 집사님의 큰 아드님이다. 나와 함께 청년부 교사로 수고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귀한 분이다. 어머니의 기도로 이렇게 신실하고 충성된 자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분이다.
아내는 유치원 입구에서부터 울며 선생님들께 기쁜 소식을 알렸고, 간식을 드시려 했던 선생님들은 다솜이의 소식을 접하고는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특히 어금주 선생님은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아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더욱 힘내셔요. 저희 부부가 부족한 아빠 엄마일 때 선생님들이 우리 다솜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잘 살펴주셔서 오늘의 기쁨이 있는 거니까요... 혹시 다솜이 같은 아이가 있다 해도 지치지 마시고 잘 키워주세요.”
원장 선생님은 도리어 찾아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표했고 어금주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아내와 함께 다솜이를 위해 울며 한 번 더 기도했다.
사랑이 넘치는 학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다솜이를 통해 하실 일이 기대된다. 그것은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다솜이의 몫이 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학교로 만들고 싶다는 다솜이의 비전은 곧 하나님이 허락하신 비전이며 그것은 곧 나에게 주신 비전이기도 하다. 우리 다솜이 다빈이가 몸담고 있는 연희초등학교와 내가 몸담고 있는 영훈고등학교, 그리고 이 땅의 학교가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기를 소망하며 이 시간도 눈물로 기도한다.
노하우는 안돼요
2005년 9월 1일부터 이틀간 학교에서 축제가 열렸다. 영훈고 기독학생들과 신우회 선생님들은 첫날 저녁에 공연이 예정되었다.
2000년도, 기독교반이 공인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장기자랑 코너로 축제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교 신자 교장선생님을 기독학생들과 찬양 가운데 춤을 추게 만드셨다.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했고 더욱이 끝날 무렵에는 상까지 주셨다.
“영훈고 기독학생회 우수상!”
그리고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훈고 기독학생회는 가스펠반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공인되었다. 기독교반이라는 이름이 종교성이 강해 이사장님의 거부감을 자극해 허락하지 못한 통보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지혜를 주시며 응답하신 것이 가스펠반이었다. 그 해부터 기독학생들은 정식으로 아니, 학교 지원금 10만원까지 받으며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찬양과 워십, 율동, 연주를 통해 말이다. 해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은혜를 부어주셨고 간증을 주셨다.
아이들과 나는 그 동안의 노하우를 경계하고자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항상 현재형이어야 하고 또한 현실이라는 맥락에서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찬양이나 율동의 연습 시간보다 말씀과 기도, 나눔의 시간을 더 갖고자 했다.
기도부터 시작하고
학교 근처 신성교회를 빌려 연습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다. 신앙이 다른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던 선영이, 학원 때문에 고민하는 희재, 몸이 지속적으로 아파 힘들어하는 근주, 공부 때문에 축제를 안 하겠다고 돌아서버린 광원이 등등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시험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금년에도 어김없이 더욱 기도를 시키기 시작했다. 나부터 무릎을 꿇어야 했다. 개학과 동시에 아침작정기도 일주일에 들어갔고 아이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금년에도 영광 받기를 원하셨고, 우리에게 겸손함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개인의 기도 제목과 함께 공통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했다.
학교를 인수, 운영하기 위해 50억을 놓고 기도하게 하신지 일 년이 넘어섰다. 학교 설립의 비전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학교 앞의 선교센터를 놓고 기도하게 하신지도 일년이 넘어섰다. 영훈학교가 기독교학교가 되어도 학교 안에서의 복음 전파뿐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가능한 센터를 만들어 문화를 누리며 복음을 접하게 하는 장소를 두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또한 10월에 있을 영훈고에서의 학원아버지학교를 위해 기도하였다. 이제는 학교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회복도 동시에 일으키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이다.
비가 온다네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학교는 초긴장이었다. 아이들과 나 역시 날씨를 놓고 기도해야만 했다. 하나님을 멋지게 찬양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날씨를 달라고... 그러나 비가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으며 기도했다. 몇 번씩 확인하는 학교측의 날씨에 대한 고민, 그리고 대책은 급기야 무대 위에 비닐 천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이 있었다. 날씨로 인하여 축제가 무산되거나 방해 받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들었던 것이다.
축제의 첫날, 간헐적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근길에 김선생님을 만났다.
“최선생님, 어쩌죠? 이렇게 비가 온다면 축제 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하고 우리 아이들 기도하고 있잖아요. 괜찮을 겁니다. 같이 기도해주세요.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행사니까 날씨가 좋아야 하잖아요.”
믿음이 없는 선생님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나와 헤어졌다.
몇 년 전에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는 작정해서 기도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무색케 하며 하나님께서는 좋은 날씨를 허락하시는 쪽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날씨를 바꾸어 주셨어요
드디어 저녁 공연이 시작되었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우산을 쓸 정도도 아니었고, 공연에 방해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기독학생들의 공연과 신우회 선생님들의 깜짝 공연도 무사히 마쳐졌다.
더욱이 기독학생들의 공연에는 몸이 불편한 근주도 무대에 섰다. 연습을 할 때부터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온 근주를 붙잡고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다른 것이 아닌 찬양하는 자리이니까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고 그렇게 근주를 아름답게 사용해달라고 기도했다. 근주는 아픈 상태에서도 열심히 찬양하며 율동을 했다. 그 모습은 아픈 사람같지가 않았다. 은혜로운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며 근주는 말했다.
‘선생님, 저 하나도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
다음 날 아침 그 김선생님을 또 만났다.
“최선생님, 정말 비가 안 왔네요. 하나님이 막아주셨나 봐요. 제가 들었는데 먹구름이 수유리까지 오다가 미아리를 피해 갔다고 하네요. 정말 선생님과 아이들 기도 덕분인가 봐요. 우리 학교를 피해간 거잖아요. 신기하네요. 오늘도 괜찮겠지요?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기분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선생님. 하나님께서 우리 영훈고를 얼마나 축복하시는데요. 멋지게 잘 끝날 거예요.”
현숙이의 축제 간증
9/1일 축제를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막상 끝나고 나니깐 서운하고 좀 시원한 맘이 든다. 솔직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고, 무대 위에 섰을 때 과연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 것이며 내가 그곳에 설 용기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갈등했다.
방학 때도 그래서 연습에 빠진 날이 며칠 있었지만^^;
어쨌든 개학을 하고 학교에 가니 다시 연습이었다. 방학 때 배우지 않아서 많이 어렵고 시간도 좀 걸리고 내심 힘들었지만 결국 축제가 다가올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았다^^ 그래도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떨치기 힘들었지만 동아리 사람들과의 많은 기도와 오랜 연습시간 그리고 정말 올라가지 않으면 많은 후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올라가기로 맘은 먹었어도 떨리는 맘은 진정하기 어려웠지만 무대에 올라가니 막상 무덤덤하면서도 떨렸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나에게 정말 용기를 주신 것 같다. 아무도 보이진 않던 객석에서 친구가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서 있었고 또 예상치 못했던 친구가 나에게 힘을 내라며 문자도 주고 직접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으셨으나 나에게 용기를 주신 하나님 ㅜㅜ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잠시나마 하나님을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무대에서 내려온 후 난 정말 많이 울었다.. 많은 이유들이 섞여있었던 나의 눈물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감동이 다시 밀려온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서로 많이 시험에 들었지만 함께 기도하며 말씀으로 뭉친 우리 YSCA 가족들이 난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가올 찬양제가 기대된다. 그때는 또 어떤 식으로 쓰임 받을까??
감사해요
날씨마저 바꾸어주시며 찬양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기도하게 하시고 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영훈축제를 통하여 마음껏 올려드리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기도로 마음을 합해주신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지속적으로 영훈고의 복음화와 신우회 선생님들 그리고 기독학생들의 헌신을 놓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샬롬!
첫댓글 할렐루야!!! 축하 드리고 다솜이와 동행하는 주님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평안카페에 감동적인 글 올려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형제님과 다솜이의 가정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