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 노반석주의 쥐
마중물
고운사 산문으로 들어선다. 선계에 들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다. 하늘에 닿을듯한 고운사는 대문장가 최치원 선생이 중창하고 수도했던 절이다.
대웅전의 부처님께 삼배 올린 후, 주지스님이 거처하는 고운대암에 이르렀다. 수상쩍은 석물하나가 뜰 앞에 서 있다. 노반석주다. 노주석이라고도 불리며 야간법회 때 주변을 밝히기 위해 횃불이나 등불을 피워두는 받침대로 쓰인다. 보통은 대웅전이나 탑 앞에 세워져 있는 노반석주가 웬일인지 주지스님의 처소에서 음전하게 자리하고 있다.
바투 다가서서 노반석주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하대석에 길쭉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불을 피울 수 있도록 쟁반 모양의 상대석을 얹은 구조다.
상대석 가장자리에는 연꽃 문양이 희미하게 피어있다.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기둥에도 무엇인가 양각되어 있다. 빛깔도 기어가는 방향도 다른 쥐였다. 위로 올라가는 쥐는 검은색이고 아래로 내려오는 쥐는 흰색이다. 모양새로 봐서 검은쥐는 무언가를 갈구하며 낭떠러지 기둥을근근이 오르는 듯하고 내려오는 흰쥐는 깨달음을 이룬 해탈의 모습이다. 얼른 보면 해학적이다. 하지만 그저 재미로 조각하지는 않았을 터, 필시 어떤 사연을 품고 있으리라.
불교에서 불빛의 의미란 무엇이던가. 무명을 깨우쳐 주는 광명의 상징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석등을 돌며 기도하는 것도 빛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노반석주의 쥐도 밝아지기 위해 불빛을 향해 오르는 것이리라. 검은 털이 희게 될때까지 정진하여 도를 이룸으로써, 내려올 때는 저토록 밝게 빛나는 모습이리라.
불빛을 향해 오르는 쥐의 간절한 마음이 가슴을 파고든다. 십여 년 문학에 몸을 담고 있지만 선뜻 내어놓을 만한 작품 하나 없다. 일만시간의 법칙으로 치자면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시간임에도 아직 글 한편 완성할 때마다 끙끙몸살을 앓는다. 문학마당에서 보낸 세월로 인해 글을 보는 눈은 눈썹 위로 올라가 버렸고 쓰는 손은 따라주지 못하니 이 또한 고통이다. 수련에게으름을 피우면서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르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번뇌 망상이 걷잡을 수 없이 들끓을 때면 글을 당장 접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한동안 글쓰기를 외면하고 지내다 보면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것처럼 가슴 한편이 바위에 짓눌리는 듯하다. 8부 능선에 서서 마음을 거두고 아래로 내려가기도, 깔딱고개를 넘기도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던 차에, 저 노반석주의 쥐를 보니 등짝에 죽비를 얻어맞은 듯하다. 나도 뜻을 이룬 흰쥐가 되고 싶다.
이곳에서 정진한 최치원 선생은 단지 천재라서 후세에 길이 남는 석학이 된 줄 알았다. 선생이 12세에 당나라 유학길에 오를 때, 그의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급제를 못하면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했다. 그는 6년 만인 18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빈공과에 급제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작품을 저술했다. 그는 자신이 천재라서 남들보다 먼저 벼슬길에 오르고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이 백의 노력을 할 때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고 선생은 타고난 천재이면서도 끊임없이 면학 정진했던 것이다.
나는 문재도 아니요, 문학소녀도 아니었다. 인생에 단풍 들려고 할 때까지 문학동네와 아무 연관이 없는 사업을 하면서 살았다. 웬만해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나이 불혹을 지날 때, 친구의 손에 붙잡혀 문학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왕청스럽게도 나는 그만 글 세계에 홀랑 빠져버렸다. 글의 가, 나, 다, 라를 익히고 성긴 거미집 같은 글을 지으면서 한동안 문학의 재미를 누렸다. 하지만 몇 년 열을 올리다가 고지에 닿아보지도 못한 채 지갑이 불룩해지는 일에 그만 마음을 뺏기고 문학 주변 행사에만 바삐 쫓아다니느라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니 글이 탄탄하게 짜여질 턱이 없었다. 겉보기에만 문학활동이 열심인 나에게 가족들은 말하곤 했다. 이제는 글 쓰는데 도가 통하지 않았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겸연쩍어 몸둘 바를 모르면서도 글쓰기 수련은 뒷전이었다.
나는 언제쯤 득도하고 내려오는 쥐가 될 수 있을까. 도를 깨우쳐 만족스러운 작품 하나 아니,매끄러운 문장 하나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 최치원선생은 천재임에도 남이 백의 노력을 할 때 천의노력을 기울여서 뜻을 이루지 않았던가.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마음을 기울여야 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검은 쥐가 털이 하얗게 되는 시간을 통해 광명을 찾았듯이, 내머리도 서리가 허옇게 내릴 때까지 수련을 멈추지 않아야 하리.
손으로 가볍게 이마를 친다. 이제야 노반석주가 주지 스님의 처소에 좌정한 의미를 알겠다. 옛 선비들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대들보에 상투를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가면서까지졸음을 쫓으며 면학정진하였다. 굳게 서원을 세워 수행 정진하는 스님도 마구니의 유혹에 흔들릴때가 있으리라. 그럴 때마다 스님은 저 노반석주의 쥐를 바라보면서 가슴의 들메끈을 조여 맬 것이고 마음을 모아 수행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스님은 틀림없이 열반을 이룰 것이다.
마음속에 저 노반석주를 세워두어야겠다. 딴생각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노반석주의 쥐를 떠올리며 수련할 것이다. 노반석주를 향해 마음모아 합장한다. 해탈을 이루어 하산하는 쥐에게 빙의된 나를 본다.
문학신문 2023 신춘문예 여행 수필준당선작
2014년 수필세계 등단 시흥문학상 외 다수 수상, <타법> 출간(대구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당선소감>
지난가을, 문학회에서 의성 일대로 나들이를 떠났다. 맨 처음 둘러본 곳이 고운사였다. 고운사는 조계종 16교구의 본사로써 60여 대소사찰을 거느리고 있으며, 문학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소재를 곳곳에 숨겨두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재는 '노반석주'였다. 왜소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은 곳에 자리한 이 석등과 마주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필력의 한계를 느껴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내밀어 준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리라. 그 이끌림으로 석둥에 양각된 쥐에게 동일시를 느끼며 글을 정리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당선의 기회를 부여받으면서 끝없이 정진하여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