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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09
#.1 씬. 한강변. (밤)
준석 : 내 뺨을 찰싹 때리며 모기를 잡는 이상한 여자가 자꾸 머리 속을 헤집어서......성가셔요.
윤희 : (굳어지고)
준석 : 수학 여행 때 말고는 해 뜨는 걸 본 적 없다고 하는 게으른 여자가 떠올라서
피식 거리느라 잠을 설칩니다.
윤희 : ......아, 늦었다.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택시 타고 갈게요. (일어서는데)
준석 : (앉으채 윤희의 팔을 잡는)
윤희 : (그런 준석을 멍한 시선으로 보는 표정)
준석 : (보는)
윤희 : (어색하게 웃으면서) 무지....덥죠?
준석 : ......
윤희 : 더위 잡수셨나보다. 여기 앉아서 정신 좀 챙기시고 오세요. 저 먼저 갈게요.
(손 뿌리치고 빠르게 뛰어가는)
준석 :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2 씬. 버스 안. (밤)
윤희, 멍하니 앉아있는.
윤희 :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는. 그러다 자신의 손을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3 씬. 동네 길. (밤)
윤희, 걸어가는데, 앞에 걸어가던 수찬.
수찬 :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윤희 : (생각에 잠겨 고개 푹 숙이고 걸어오는)
수찬 : (기다리는데)
윤희 : (고개 숙이고 오다가 수찬과 부딪히는, 고개 들고)
수찬 : 술 먹었냐?
윤희 : ......
수찬 : 허구헌날 너도 참.....
윤희 : 저기 있지.
수찬 : 뭐가?
윤희 : ......
수찬 : 뭐가 있는데?
윤희 :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 생각이 나서 자꾸 잠을 설친다고 하면....
수찬 : (픽 웃으며) 왜? 누가 너 때문에 자꾸 잠을 설친다고 하디?
윤희 : 나 말고. 다른 사람 누가 있는데......
수찬 : 돈 필요한 거야.
윤희 : 뭐?
수찬 : 언 놈이 또 너한테 수작 거는가 본데, 그거 작업 멘트거든.
우리 같은 전문가가 보기엔 그건 아마츄어들이나 쓰는 멘튼데.
왜 있지? 내가 너한테 첫사랑 어쩌고 했던 거. 그거나 그거나 비슷한 수준의 멘트거든.
좀 있어보면 돈 얘기 시작 할 거다.
윤희 : (한심하게 보면서) 내가 댁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냐? (걸어가면)
수찬 : (옆에 따라가면서) 너 주먹 세잖아. 그냥 날려버려. 그런 놈은 초장에 싹을 밟아야 하거든.
윤희 : (버럭) 아, 따라오지마.
수찬 : (버럭) 너하고 나하고 같은 집에 살잖아?
#.4 씬. 윤희의 집 전경. (밤)
예슬 : (E) 이모, 왜 그래?
#.5 씬. 예슬의 방. (밤)
예슬, 윤희 침대에 누워있는.
윤희 : 내가 뭐?
예슬 : 왜 자꾸 떼굴떼굴 굴러? 침대가 꿀렁거려서 잠을 못 자겠잖아.
윤희 : 알았다, 자라, 자. (돌아눕는. 그러다 자신의 손을 잡았던 준석의 모습이 떠오르고.
다시 옆으로 홱 돌아누우면서) 아, 뭐지? 뭐지?
예슬 : (벌떡 일어나며) 이모?
#.6 씬. 미희의 방. (밤)
미희, 침대에 누워 자고 있으면. 예슬 베개 들고 들어오는.
예슬 : (미희 옆에 들어가 눕는)
미희 : (자다가 놀라서 눈 뜨고) 누구야?
예슬 : 엄마. 나.
미희 : 왜 왔어?
예슬 : 이모 때문에 못자겠어, 자꾸 뭐지뭐지 하면서 떼굴떼굴 굴러.
미희 : 왜 또 사고 쳤대?
예슬 :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미희 : (예슬 끌어안으며) 네 이모는 대체 왜 그런다니?
#.7 씬. 선우의 방. (밤)
선우, 이불 위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문 여는 윤희.
윤희 : 엄마? 엄마?
선우 :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윤희 : 엄마?
선우 : 왜?
윤희 : 집에 청심환 같은 거 없어?
선우 : 자다말고 청심환은 왜 찾아?
윤희 : 가슴이 울렁거려서 잠이 안와.
선우 : 너 또? 뭐야?
윤희 : 뭐가?
선우 : 누구한테 돈 뜯겼어?
윤희 : 내가 뜯길 돈이나 있어?
선우 : 언제는 네가 돈 있어서 뜯겼냐? 너 또 카드로 돈 뺐지?
윤희 : 아, 됐어. (나가버리는)
선우 : 너 한번만 더 사고 치면 쫓겨날 줄 알아?
#.8 씬. 예슬의 방. (밤)
윤희, 들어와 침대에 앉는. 머리 쥐어뜯으며.
윤희 : 더위 먹은 거야, 더위.....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라구.
#.9 씬. 회사 전경. (아침)
#.10 씬. 준석의 사무실. (아침)
윤희, 메모지만 보면서 보고하고 있는.
윤희 : 4시에 서울 호텔에서 바이어하고 약속 있으시구요. 오늘 스케줄은 여기까집니다.
준석 : (보는)
윤희 : 그럼. (고개 숙인 채 돌아서 나가려는)
준석 : 커피 안줍니까?
윤희 : (보지 않고) 아, 네, 죄송합니다. 깜빡 했습니다. (나가는)
준석 : ......
#.11 씬. 비서실. (아침)
윤희, 커피잔을 들고 나오는데. 미나 앉아있고.
혜미 걸어오는.
혜미 : 차 한 잔 더 부탁해요.
윤희 : 네.
#.12 씬. 준석의 사무실. (아침)
준석, 혜미 앉아있는.
혜미 : 이번 호에 팀장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싶은데요.
준석 : 왜요?
혜미 : (미소 지으며) 팀장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직원들이 많으니까요.
준석 : 사양하겠습니다.
혜미 : 제가 부탁드리는 데도요?
준석 : 말 주변이 없습니다.
혜미 : 그냥 편하게 1시간 정도만 내주시면 돼요.
윤희, 커피 두 잔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는.
윤희 : (준석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 피하며 커피잔 내려놓다가 그만 잔을 떨어뜨려 깨고 마는)
죄, 죄송합니다. (당황해서 얼른 손으로 깨진 조각을 주우려고 하는데)
준석 : (톤 높여서) 정말 왜 그래요? 조심 좀 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윤희를 밀치고 깨진 컵을 줍는데, 그만 손을 베고 만다.)
윤희 : 어, 어떡해요? (준석의 손을 잡으며) 제가 할텐데.....(순간, 혜미를 의식하고 얼른 손을 놓는)
준석 : (혜미를 보는데)
혜미 : (어색한 표정 수습하고 일어서서 인터폰 누르는) 청소 아줌마 좀 불러주세요.
(윤희에게) 의무실 가서 소독약 하고 밴드 좀 가져오세요.
윤희 : 알, 알겠습니다. (나가는)
혜미 : (돌아와서 앉으며, 준석의 손을 잡아 들여다보며) 많이 베진 않으셨네요.
준석 : ......
혜미 : 부하 직원 이렇게 챙기시는 상사 분은 드무실 거예요.
정윤희씨가 모시는 분한테 이쁨 받는 복은 타고 났나봐요. 회장님도 그러셨다던데....
준석 : (어색하기만 한 느낌으로)
시간 경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구급약 통.
혜미, 준석의 손 소독하고 밴드를 붙이는. 그 옆에 물끄러미 서있는 윤희.
청소 아줌마, 깨진 컵 쓸어 담아 나가는.
윤희 : 죄송해요. 제가 조심성이 없어서....
혜미 : 그러게요. 앞으론 좀 차분해지셔야겠어요. (준석 보며) 놀라게 하셨으니 인터뷰 해주셔야 겠는데요.
(미소 지으며) 점심시간에 시간 좀 내주실 거죠?
준석 : ......
#.13 씬. 여자 화장실. (낮)
윤희, 손을 씻고 있는.
들어오는 혜미.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윤희 : 팀장님 엉겁결에 그러신 거예요. 저 다칠까봐 그러신 게 아니구.....
혜미 : (가소롭다는 듯이 보면서) 설마 질투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윤희 : 그게 아니구.
혜미 : (자르며) 또 모르죠. 당신이 내 연적이 될 만큼 근사한 여자였다면.....
윤희 : (싸늘해지고) 난 당신 같은 사람이 너무 이상해요.
사람이 아니라 얼음 같아 보인다구.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요.
혜미 : 당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전부 가지게 될 사람에 대한 질투심 아닐까요?
윤희 : 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팀장님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구요.
그런데 당신이 팀장님을 바라보고 있는 눈길을 보면 섬뜩해.
혜미 : 설마 올려다보지 말아야 할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건가요?
윤희 : ......
혜미 : 안됐네요. 그러다 목 부러지면 본인만 손핼텐데.
윤희 :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나가버리는)
혜미 : ......
#.14 씬. 레스토랑. (낮)
준석, 혜미 마주 앉아있는.
혜미 : (메모 하면서) 중책을 맡고 계시니 스트레스도 심하실텐데 어떻게 푸세요?
준석 : ......
혜미 : 준석씨?
준석 :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나 보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혜미 : (보다가 미소 지으며) 그렇게 꼭 깍듯하게 대하셔야 해요?
#.15 씬. 감자탕 집. (낮)
윤희, 감자탕 앞에 놓고 멍하니 앉아있는.
열심히 먹는 수찬.
수찬 : (먹다가 보고) 웬일이냐? 네가 먹는 거 앞에 놓고 고사를 다 지내고?
윤희 : 맛있는 사람이나 열심히 드셔.
수찬 : 솔직히 말해봐라? 너 작업에 걸려든 거지?
윤희 : 뭐?
수찬 : 언 놈이냐?
윤희 : 헛소리 말고 먹기나 하라니까.
수찬 : 내가 친구로써 충고하는 건데. 마음 아프더라도 새겨들어라.
남자인 내가 보기에 너.....상처 받지 말고 들어라. 여자로 안보이거든.
윤희 : (노려보는)
수찬 : 여자 안 가리는 내가 보기에도 그러면 딴 놈들은 어떻겠냐?
너 같은 여자애한테 껄떡거리는 놈이 있다면 그건 목적이 있다는 거거든.
워낙 굶은 놈이라서 어떻게 한번 자빠뜨려보자.....
윤희 : (뼈다귀 하나로 수찬의 입을 막아버리는)
#.16 씬. 레스토랑. (낮)
준석, 혜미 커피 앞에 놓고 앉아있는.
혜미 : (메모지 가방에 집어넣고) 정말 소설 한편 써야겠네요.
제 마음대로 기사 썼다고 나중에 뭐라고 하지 마세요. 준석씨가 워낙 협조를 안해 줘서 그런 거니까요.
준석 : 우리.....
혜미 : (보면)
준석 : 결혼 서둘지 맙시다.
혜미 : (굳어지는)
준석 : 일어나죠. (일어서는데)
혜미 : 서둘지 않아요. 기다릴 뿐이지. (일어서는)
준석 : .....
혜미 : .....
#.17 씬. 회사 복도. (낮)
강형사, 희섭과 얘기하고 있는.
강형사 : 신경 좀 써주십쇼.
희섭 :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워낙 옛날 일이라 자료가 없어서요.
강형사 : 그런 비싼 시계를 10개 구입한 자료가 없다는 게.
희섭 :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부서 통합도 있었고.
강형사 : 살인 사건에 유일한 단서라서 그렇습니다. 꼭 좀 알아봐 주십쇼.
#.18 씬. 여행사 대리점. (낮)
덕길, 서류 받고 있는.
덕길 : 수고 하쇼잉.
#.19 씬. 길. (낮)
회사차 타고 달리는 덕길.
#.20 씬. 여행사 건물 앞. (낮)
덕길, 회사차에서 내리는.
강형사 걸어오는.
덕길 : 강형사님?
강형사 : 여기 취직하신 줄 알았는데, 택배로 바꾸셨나보네.
덕길 : 그것이 아니고. 대리점 간에 서류 배달 일도 맡고 있어서라.
강형사 : 아, 네.
덕길 : 근디 참말로 자주 오서요?
강형사 : 단체 여행 계획을 제가 맡고 있다는 거 아실텐데.....
#.21 씬. 미희의 사무실 앞. (낮)
수민, 쥬스 준비하고 있는.
미희 걸어오는.
수민 : 사장님?
미희 : (보면)
수민 : 그 형사분 또 와서 기다리고 계세요.
미희 : 또? 그 양반 왜 그렇게 자주 오신다니?
수민 : 제가 보기엔요, 사장님. 딴 맘이 있으신 거 같아요.
미희 : 딴 맘? 뭐?
수민 : 사장님한테요.
미희 : 나? (그제서야, 오라 하는) 어쩐지. 눈은 높아서....
#.22 씬. 미희의 사무실. (낮)
덕길, 강형사 얘기하고 있는,
미희, 수민 들어오는.
미희 : 오셨네요?
강형사 : (일어서며) 네. 워낙 규모가 큰 여행이라서 의논드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미희 : (묘하게 미소 지으며) 그러시겠죠? 그런데 양덕길씨는 왜 들어와 있어요?
덕길 : 거시기 쉬는 틈을 타서 강형사님께 수사 진행 상황 좀 알아 볼라고라.
미희 : 양덕길씨가 무슨 보조 형사예요?
수민 : (각자 앞에 쥬스 놓아주고 나가는)
덕길 : 그것이 아니고, 저가 워낙 그 사건과 깊이 관련이 있다본께.
(강형사에게) 긍께 지금꺼정 아무 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 그것이네요?
강형사 : (미희 앞에서 체면이 상할까봐) 아니죠. 자료가 없다 뭐다 하는 거 보면
뭔가 구린 게 있다는 감이 오거든요.
덕길 : 구린 거라면 어떤 것이?
강형사 : (미희 보면서) 제가 형사 생활 20년 동안 는 거라곤 감 밖에 없는 사람인데,
이번 사건엔 뭔가 엄청난 음모가 있다는 감이 오거든요.
미희 : 요즘은 과학 수사가 발전 했다고 하던데?
강형사 : 감 없는 과학 수사는 앙꼬 빠진 단팥빵이다가 제 수사 철학이거든요.
특히 이번처럼 엄청난 음모로 시작된 살인 사건에 있어선....
덕길 : 저가 수연이를 좀 알아서 드리는 말씀인디요.
갸가 그렇게 엄청난 음모에 관련 되고 그럴만한 애는 아닌디.
강형사 : 영화 너무 안 보셨나보네. 원래 엄청난 음모란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기본이거든요.
특히 연수연씨처럼 평범한 사람이 관련되기 십상이구요.
미희 : 저기요. 여기가 여행사지. 수사본부가 아니거든요.
두 분이 수사에 대해서 하실 얘기가 많으신 거 같은데 그런 얘기는....
강형사 : (자르며) 한 200명쯤 한꺼번에 타는 비행기가 있을까요?
#.23 씬. 사무실. (낮)
영재, 들어오는. 희섭 일하고 있는.
영재 : (서류 들고 희섭 앞으로) 찾았습니다.
희섭 : (보면)
영재 : 시계 구입 자료 말입니다.
희섭 : (놀라서) 그, 그걸 어디서?
영재 : 자료실 창고에 있는 거 겨우 찾아냈습니다.
희섭 : 그, 그랬어.
영재 : 형사가 자꾸 드나드는 것도 성가시고,
또 저도 살인 사건에 그런 게 왜 관련 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요.
희섭 : 그랬구만.
#.24 씬. 고사장 사무실. (낮)
고사장 :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그 옆에 서있는 희섭.
고사장 : 그 사람 쓸데없는 짓을 했군.
희섭 : 워낙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서. 그냥 덮어버리려고 하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고사장 : ......
#.25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선우, 보경, 하니 냄비 상자에서 꺼내보고 있는.
선우 : 어이구, 좋긴 좋네.
보경 : 요즘 이 냄비 한 셋트 안 가진 집이 없다니까요.
선우 : 그래도 너무 비싸서.
윤희, 수찬 들어오는.
윤희 : 다녀왔습니다.
수찬 : 다들 여기 계시네요.
보경 : 취직 하셔서 그러신가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요.
수찬 : 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하니 : 백교수님, 아니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하나.
선우 : 우린 미스터백이라고 불러.
하니 : 미스터백 입에서 그런 말 나오니까 너무 이상해요. 궁상스럽고. 예전엔 절대 그런 말 안하셨는데.
수찬 : 사는 게 궁상스럽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윤희 : 근데 이게 다 뭐야?
선우 : 이번에 큰 맘 먹고 장만했다.
윤희 : 우리 집에 냄비 많잖아. 언니 결혼 깨질 때마다 들고 온 살림이 어딘데.....
선우 : (윤희 쥐어박으며) 이, 이 주책.
하니 : (깔깔거리며) 윤희씨 그러는 거 우리가 모르나요 뭐.
보경 : 윤희씨 혼수 준비 하신다고 쌈짓돈 푸셨어. 윤희씨는 좋겠네.
수찬 : (웃으며) 데려가겠다는 남자가 있어야 말이죠.
윤희 : (발끈) 누가 댁더러 데려가라고 그랬어?
수찬 : 난 친구로 걱정 되서 하는 말이다. 얘가 왜 성질을 버럭 버럭 내고 이러나.
보경 : 어머, 어머, 두 사람 꼭 사랑싸움하는 거 같네.
윤희 : 누가요? 이 인간하고 제가요? 제가 약 먹었대요?
수찬 : 그러는 난 약 먹었냐?
보경 : 점점. 예슬 할머니, 이 참에 아예 데릴사위로 들이세요. 미스터백.
선우 : 아이고, 왜들 이래? 이 사람들은 원래 저러면서 놀구 그래.
예슬이랑 고니 노는 거나 진배 없어.
#.26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냄비 닦아서 상자에 넣고 있는.
윤희, 예슬 그 앞에 앉아 고구마 먹으면서.
윤희 : 이런 건 뭐하러 사, 그냥 돈으로 주지.
선우 : 왜? 돈 주면 복권 사려구?
윤희 : 엄마는. 그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예슬 : 할머니? 전요. 이런 거 안 사주셔도 돼요.
선우 : 왜? 우리 예슬이 것도 이모 시집보내고 나서 차근차근 준비해주려고 하는데.
예슬 : 저는요, 할머니, 제가 벌어서 준비해가지고 갈 거예요.
키워주신 것도 고마운데 그런 것까지 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윤희 : 너 지금 나 뭐 먹으라고 하는 소리지?
선우 : (윤희 쥐어박으며) 조카 철 든 소리 하는 거 들으면서 하는 소리 하곤.
이모가 우리 예슬이 반만 따라가도 이 핼미는 걱정이 없겠다.
예슬 : 할머니 저 공부 할게요. (일어나 들어가는)
선우 : 아이고, 신통방통한 내 새끼. 좀 보고 배워라, 이모라는 게.
윤희 : 엄마가 그러니까 예슬이 저 콩알만한 것도 이모를 만만하게 보는 거잖아.
선우 : 너. 그리고.....
윤희 : 그리고 뭐?
선우 : 언니가 먼저 침 바른 물건 넘보면 천벌 받는다.
윤희 : 기가 막혀서, 내가 설마......
선우 : 네가 워낙 남자 구경 못하고 사는 물건이라서 하는 소리야.
윤희 : 엄마, 나 엄마 친 딸 아니지?
선우 : 아닌 거 알면 됐구.
#.27 씬. 창고. (낮)
덕길, 수제비 떼어 넣고 있는. 수찬, 씻고 욕실에서 나오는.
수찬 : 또 수제비야? 쌀 사온 거 있잖아.
덕길 : 너랑 나 월급 탈 때꺼정은 아껴 묵어야제.
수찬 : 우리 생각만 해. 고니는 한창 자랄 나이잖아. 성장기에 얼마나 잘 먹어야 하는데.
덕길 : (물끄러미 보는) 너가 사람이 되간다.
수찬 : 내가 언제는 짐승이었냐?
덕길 : 유전자 검사니 뭐니 할 때 너 사람 아니었다.
고니, 전과 들고 들어오는.
덕길 : 예슬이가 빌려주더냐?
고니 : 야. 갸가요. 인간성이 참말로 좋아요. 김치국물 같은 것만 묻히지 말라고 하던디요.
수찬 : 뭔데?
고니 : 전과요.
수찬 : 넌 없냐?
고니 : 야.
수찬 : 형은 애 전과도 안사주고.
고니 : 아부지 월급 타시면 사주신다고 혔어라. 지는 당분간 빌려봐도 된당께요.
수찬 : 이게 얼마나 한다구. 하나 사줘.
덕길 : 야가. 집에 돈 그림자도 안보인지가 은젠데.
수찬 : 그래도 애 공부 할 책은 사줘야지. (지갑 꺼내 열면, 달랑 천 원짜리 한 장이다.)
#.28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수찬, 윤희 서있는.
수찬 : 삼 만 원만 빌려줘라. 월급 타면 갚을게.
윤희 : 삼만원도 없어?
수찬 : 전철 패스 사고. 아 그냥 좀 빌려주라.
윤희 : 돈 맡겼어?
수찬 : 맡겼으면 달라고 하지, 빌려달라고 하겠냐?
윤희 :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 돈 빌려 쓰고 그래 버릇하면 안돼.
수찬 : 그냥 좀 빌려달라니까. 고니 전과 사야 한단 말이야.
윤희 : (보다가 들어가려고 하면)
수찬 : 좀 빌려달라니까.
윤희 : 지갑 가져와야 할 거 아냐.
#.29 씬. 동네 길. (낮)
수찬, 전과 들고 걸어오는. 정숙, 장바구니 들고 걸어오는.
수찬 : 장 봐오냐?
정숙 : 말 좀.
수찬 : 뭐?
정숙 :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그러는데? 나 너하고 그냥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라니까.
수찬 : 버릇이 되서 툭 튀어나오는 걸 어쩌냐? 대학 동기라고 툭 터놓고 살면 편할텐데.
정숙 : 나 너하고 편하고 싶은 생각 절대 없거든.
대한 : (E) 뭐해?
정숙 : (놀라서 돌아보는)
대한, 걸어오는.
정숙 : 이제 와?
대한 : (수찬과 정숙 예리한 눈길로 번갈아보는)
정숙 : 그냥 인사 했어.
대한 : ......
수찬 : 안녕하십니까?
대한 : 아까 회사에서 봤잖아요.
수찬 : 아, 네, 동네에서 뵈니까 또 반가워서....
정숙 : 덥지? 고생 했어. 들어가 콩국수 해줄게. (얼른 대한 팔짱 끼고 걸어가는)
수찬 : (쟤가 왜 저러나 하는 눈길로 보는)
#.30 씬. 대한의 집 거실. (낮)
정숙, 장바구니에서 장 봐온 거 꺼내고 있으면.
대한, 물마시면서.
대한 : 그 친구하고 정말 아는 사이 아니야?
정숙 : 아니라니까, 그런다.
대한 : 근데 인사를 뭐 그렇게 길게 해. 내가 걸어오면서 한참 봤는데.
정숙 : 날씨가 어쩠네 저쩠네 하면서 말이 길어져서 그랬어.
대한 : 날씨 얘긴 왜 하는데? 더운 거 다 아는 거고, 덥죠 한마디면 끝나는 거 아냐?
정숙 : 같은 동네 살면서 그렇게 돼? 이 동네가 좀 유난하더라구. 남의 집 젓가락이 몇 갠 지도 아는 동네래.
대한 : 그래서 젓가락 몇 개냐고 물어봤어?
정숙 : 안 씻을 거야?
#.31 씬. 창고. (낮)
고니, 전과, 동화책 들춰 보고 있는.
덕길, 설거지 하면서 슬쩍 슬쩍 돌아보고.
고니 : 동화책꺼정 뭐하러 사셨대요? 예슬이헌티 빌려보믄 쓰는디.
수찬 : 넌 뭐든 예슬이한테 얹혀가려고 그러냐?
고니 : 아부지가 없을 땐 그렇게 살아야 헌다고 하셨어라. 그죠, 아부지?
덕길 : 아무리. 그런 거이 다 처세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찬 : 좋은 거 가르친다.
덕길 : 제비짓 갈치는 것보담 나아 야.
수찬 : 그 제비 소리.
덕길 : 소리다. 나의 미스테이크여.
고니 : 아따 아버지, 영어 좀 하시네요.
수찬 : 넌 저게 영어로 들리냐?
고니 : 아부지, 캄보디아 갔다 오셔서 영어가 좀 느신 거 같어라.
덕길 : (킬킬거리며) 니가 봐도 그래부냐? 리알리?
고니 : 야. 캡이랑께요.
수찬 : (킬킬거리는 덕길과 고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32 씬. 영재의 집 거실. (낮)
영재, 하니 피자 시켜놓고 먹고 있는.
하니 : 왜 안먹어?
영재 : 더워서 그런가 입맛이 없네.
하니 : 밥 먹고 싶어서 그래?
영재 : 아, 아니야.
하니 : 오늘은 밥 하려고 했는데, 피부가 너무 꺼칠꺼칠 하잖아.
그래서 관리 좀 받으러 갔는데, 예약 안하고 갔더니 한참 기다리게 하잖아.
영재 : 됐어, 됐어, 관리 받아 그런가 윤이 자르르 하니 보기 좋다.
하니 : 자기, 계속 신경 쓰는 거지?
영재 : (보면)
하니 : 변부장님 승진하고 나서 자기 밥도 잘 못 먹고 밤에도 자꾸 깨고 그러잖아?
영재 : 나 때문에 잠 설쳤구나, 자기.
하니 : 그렇게 신경 쓰여? 하긴 나도 배가 아픈데 자긴 오죽하겠어.
나도 이번에 자기가 올라갈 줄 알았는데.
나 솔직히 그동안은 자기가 먼저 올라갈 줄 알고 은근히 영이 엄마 무시하고 그랬는데.
영재 : 미안해, 내가 못나서 자기 눈치 보게 만들고.
하니 : 그래도 난 믿어. 이번엔 밀렸지만 다음엔 꼭 될거야.
먼저 부장 되면 대순가. 능력 없으면 바로 밀리는 거지.
영재 : 나 솔직히.....자기한테니까 말이지만, 정말 이해가 안된다. 내가 변부장한테 밀린다는 게.
변부장 무능한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구.
하니 : 알아, 알아. 자기 자존심 상한 거. 학교 때도 수석만 했던 사람인데
그 마음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주겠어.
영재 : 자기야. 사랑해.
하니 : 나두.
#.33 씬. 대한의 집 거실. (낮)
대한, 정숙 콩국수 먹고 있는.
대한 : (빤히 보고 있는)
정숙 : 왜?
대한 : 사랑한다니까.
정숙 : 안다구.
대한 : 그럼 뭐라구 대꾸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정숙 : 안다구 했잖아.
대한 : 나도 사랑한다든지, 뭐 그런 리액션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구.
정숙 : 국수 불어.
대한 : 당신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지가 언젠지 알아.
정숙 : .....
대한 : 2003년 3월 1일 이후로 없었어.
정숙 : 그런 것도 기억하고 살아?
대한 : 그날이 내 생일이었으니까.
정숙 : 부부가 살면서 매일 사랑해, 사랑해 해야 하는 거야?
대한 : 예의 아닌가?
정숙 : 예의 지켜서 마누라 눈탱이 밤탱이로 만드니?
대한 : 그거야 내 사랑이 워낙 커서....
정숙 : 제발 국수 좀 먹자.
#.34 씬. 예슬의 방. (낮)
예슬 숙제하고 있으면, 윤희 거울 앞에 앉아있는.
윤희 : 예슬아?
예슬 : (숙제만 하면서) 응?
윤희 : 이모가 예쁘니?
예슬 : (돌아보고)
윤희 : 키도 크고, 다리도 쭉 뻗은 게 괜찮긴 하지?
#.35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반찬 만들고 있으면, 미희 그 옆에서 주워 먹고 있는.
예슬 : (방에서 나와 다가오는) 이모가 더위 먹었나봐요.
선우 : 왜? 또 무슨 헛소리를 하길래?
예슬 : 자기가 이쁘냐고 물어요?
미희 : 미친 거 아냐?
선우 : 더위 먹은 거 맞다, 저 물건.
#.36 씬. 준석의 집 거실. (낮)
준석, 들어오면, 혜미 기다리고 있는.
준석 : (보는)
혜미 : 또 왔어요.
한여사, 남자하고 방에서 나오는.
한여사 : 수고 하셨어요.
남자 : 네.
한여사 : (준석에게) 왔니? 혜미가 중국인 안마사 분을 모시고 왔구나.
혜미 : 시원하세요?
한여사 : 그래. 아주 시원하구나.
혜미 : 저 그럼 가볼게요. (남자에게) 가시죠.
한여사 : 왜 저녁 먹고 가지.
혜미 : 아니예요. 이 분이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모셔다 드려야 해요.
한여사 : 내가 괜히 나 때문에 고생 하는구나.
혜미 : 고생은요. 일주일에 한번씩 모시고 올 테니까 시간 좀 내주세요, 어머니.
한여사 : 나야 늘 집에 있는 사람이니 상관없다만 네가 고생이지.
혜미 : 그럼. (인사하고, 남자와 같이 나가는)
한여사 : 애가 보면 볼수록 싹싹하고 좋구나.
#.37 씬. 준석의 방. (밤)
준석, 책 보고 있으면, 들어오는 한여사.
준석 : (일어서는)
한여사 : (앉고)
준석 : (앉는)
한여사 : 다음달 초쯤이 어떨까 싶은데. 네 약혼식 말이다.
준석 : 말씀 드렸잖아요,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다구.
한여사 : 넌 반나절 시간만 내면 되는데 무슨 여유 핑계를 그렇게 대.
준석 : 전.....
한여사 : (보면)
준석 : 고혜미씨가 저와 맞는 사람인지 확신이 없습니다.
한여사 : 난 네 아버지와 잘 맞아서 혼인 한 거 같니?
준석 : ......
한여사 : 맞춰가면서 살면 되는 거다.
준석 : 저도 어머니 아버지처럼 살길 원하세요?
한여사 : ......
준석 : 어떤 모습을 보여주셨는지 잘 아시잖아요?
한여사 : 그 나이에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반항은 탈렌트 애랑 속 썩인 걸로 끝난 거 아니었냐?
준석 : 속을 썩긴 하셨어요?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시구요?
한여사 : 이런 일로 부모 관심 끌려고 할만큼 철없는 나이는 아니잖니?
(일어서며) 준비할테니 넌 그렇게만 알고 있거라.
준석 : 몰아붙이지 마세요. 그럼 예전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여사 : 딱 한번이었다. 이젠 나도 늙어서 널 다시 받아줄 기운 같은 건 없구나. (나가는)
준석 : ......
#.38 씬. 길. (밤)
달리는 준석의 차.
#.39 씬. 리조트. (밤)
준석, 빈 리조트 바라보며 서있는.
윤희와 함께 왔던 모습이 떠오르고.
#.40 씬. 전철 내. (아침)
엄청난 사람들 부대끼며 전철에 오르는.
그 틈에 끼어 전철에 타는 수찬, 희섭, 윤희.
윤희, 수찬의 등을 밀며 어거지로 타려고 하는.
수찬 : 다, 다음 차타면 안 되냐?
윤희 : 다음 차는 비었을까봐.
수찬 : 야, 야, 숨막혀.
윤희 : 안죽어.
#.41 씬. 전철역 앞. (아침)
수찬, 희섭, 윤희 맥이 빠져서 걸어나오는.
수찬 : 난 며칠 했는데도 정말 적응 안 된다.
윤희 : 배가 불렀지.
수찬 : 근데 부장님은 집에 차도 있으시면서 왜 전철 타고 출 퇴근을 하세요.
희섭 : (어색하게 웃는)
윤희 : 사모님이 애들 픽업 하러 다니시잖아?
수찬 : 그래도 아버지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희섭 : 내가 뭐 중요한가, 애들이 제일이지. 난 그래, 남자 인생 별 거 없다.
새끼 낳으면 새끼가 내 인생이고, 새끼한테 살점 내주면서 살다 가는 거다.
수찬 : (멍하니 보는)
윤희 : 안가?
수찬 : (눈물이 글썽해진)
윤희 : 안 가냐구?
수찬 : 메모지 좀 줘라.
윤희 : 메모지는 왜?
수찬 : 저 말씀 적어두게.
#.42 씬. 비서실. (아침)
미나, 책상 정리하고 있으면, 윤희 급하게 걸어오는.
윤희 : 팀장님 아직 출근 안하셨죠?
미나 : 네.
윤희 : (얼른 걸레 들고 준석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43 씬. 준석의 사무실. (아침)
윤희, 걸레 들고 들어오는데.
윤희 : 엄마야.
준석,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는.
윤희 : (뒤 돌아보며) 출근 안하셨다고 하더니....(준석 앞으로 걸어가는)
준석 : .....
윤희 : (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준석 : (잠든 채로)
윤희 : (걸려 있는 준석의 상의를 내려 준석 위에 덮어주는)
준석 : (눈 뜨는)
윤희 : (당황하는) 에어컨 때문에 추우실까봐.....
준석 : .....
윤희 : 퇴근 안 하신 거예요? 박미나씨는 출근 하시는 거 못 본 모양이던데.
준석 : 일찍 나왔습니다.
윤희 : 주무실 거면서 뭐하러 일찍 나오세요?
준석 : (몸 일으켜 세우며) 리조트에 내려갔다가 집으로 가기도 그렇고 해서 여기 와서 잤습니다.
윤희 : 몇 시에요?
준석 : 그때가 세 신가....
윤희 : 세 시부터 이러고 주무셨다구요?
준석 : 인터넷 검색 좀 하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윤희 : 허리 안 결리세요?
준석 : 아직 허리 결릴 나이는 아닙니다.
윤희 : 어린 애도 앉아서 자면 허리 결려요.
준석 : (웃고) 커피나 좀 주죠.
윤희 : 파스 사올까요?
준석 : 저 허리 튼튼합니다.
윤희 : 아, 제가 언제 부실해 보인다고 했어요?
#.44 씬. 회사 옥상. (아침)
윤희, 준석 서있는.
윤희 : 헛둘 헛둘, 허리 운동.
준석 : 나 허리 괜찮다니까요.
윤희 : 국민 체조 순서에 있는 거거든요. 뭐 찔리는 거 있으세요?
허리 부실해 보인다고 누가 그런 적 있냐구요? 아님, 진짜 부실한 건 아니세요?
준석 : 젊은 여자 입에서 남자 허리 얘기가 왜 자꾸 나옵니까?
윤희 : 지금 그쪽으로 유도 하신 거 팀장님이시거든요. 자 허리 돌리시고.
준석 : (웃으면서 윤희 따라하는)
#.45 씬. 회사 복도. (낮)
혜미, 걸어가면, 뒤에서 걸어오는 수찬.
수찬 : 점심 드셨습니까?
혜미 : 아, 네.
수찬 : 그럼 커피 한잔 사주시죠.
혜미 : 저....회사에선....
수찬 : 저랑 친해 보일까봐 신경 쓰이세요?
혜미 : (어색하게 미소 짓는)
수찬 :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여사원1,2 자판기 앞에 서서 얘기하고 있는. (2회에 나왔던 비서들)
여사원1 : 나 아침에 커피 마시러 옥상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잖아.
여사원2 : 왜?
여사원1 : 유준석 팀장하고 정윤희가 체조하고 있드라구.
여사원2 : 체조?
여사원1 : 둘이 분위기 좋더라구.
여사원2 :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인가? 왜 둘이 좀 묘하다고 그러잖아?
여사원1 : 나도 에이 말도 안돼,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좀 이상하긴 하드라.
여사원1, 2 걸어가면.
혜미 : ......
수찬 : (혜미 표정 살피고) 절대 아닙니다.
혜미 : (보고)
수찬 : 정윤희 제가 잘 아는데, 유준석 팀장이 관심 가질 그럴 타입이 절대 아니거든요.
혜미 : 제가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저 그렇게 얕은 사람 아닌데.....(걸어가는)
수찬 : ......
#.46 씬. 회사 사무실. (낮)
대한, 서류 보고 있는.
대한 : (굳어지면서, 주먹을 쥐는)
영재 서류 내려놓으며.
영재 : 퇴근 전까지 마무리해서 줘요.
대한 : (생각에 빠져 굳어있는)
영재 : 위대한씨?
대한 : (놀라서) 네?
영재 : (의아하게 보는)
#.47 씬. 회사 앞 길. (낮)
윤희, 걸어오면. 수찬 뒤에서 걸어오는.
수찬 : 퇴근 하냐?
윤희 : 보면 몰라.
수찬 : 넌 왜 아침부터 유준석 팀장하고 옥상에서 펄쩍 펄쩍 뛰고 그러냐?
윤희 : 그거 어떻게 알아?
수찬 : 어떻게 알았으면? 여직원들이 수군거리고 그러드라.
너 혼삿길 막히려고 왜 그러냐? 유준석 팀장한텐 아무 영향 없지만, 넌 아니잖냐?
가뜩이나 결격사유 많은애가 그런 스캔들에까지 휘말리면 어쩌려구 그러냐?
대체 너란 앤 생각이 있냐 없냐?
윤희 : 뭐라고들 수군거리는데?
수찬 : 그건 신경 쓰이냐? 그리고 혜미씨 생각 안하냐?
혜미씨가 그런 소문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 가뜩이나 여리디 여린 사람인데?
결혼 상대자가 너같이 허접한 애하고 .....
윤희 : (뺨을 때리는)
수찬 : (놀라서 보고) 너, 넌 대로변에서.....
윤희 : 나 허접한 거 알거든. 그래도 친구라면서 댁까지 그래야 해? (걸어가 버리는)
수찬 : (따라가면서) 윤희야? 윤희야? 정윤희?
#.48 씬. 동네 술집. (낮)
윤희, 수찬 앉아있는.
수찬 : (윤희의 잔에 술 따라주면서) 미안하다구. 미안하다니까.
윤희 : (술 마시는)
수찬 : 난 진짜 네가 걱정 되서 그런 거야.
윤희 : 고혜미가 걱정 되서 그런 거 아니구?
수찬 : 물론 혜미씨 마음 다친 것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니말대로 내가 니 친군데 니 걱정이 더 되지, 혜미씨 걱정이 더 되겠냐?
윤희 : 입에 침이나 바르셔.
수찬 : 자식, 눈치는. (입에 침 바르고) 그런 스캔들에 휘말리지 마라.
너도 사회생활 해봐서 알겠지만 우리 사회가 여자들한테 얼마나 각박하냐?
처녀애가 상사하고 그렇고 그런 소문 있었다 하면 가재 눈으로 보기 십상인데.
윤희 : 난 상대도 안 된다 그거지?
수찬 : 뭐?
윤희 : 우리 팀장님 같은 사람한테는 상대도 안 된다 그거잖아?
수찬 : 그거야.....(퍼뜩) 너 저번에 누가 누구 때문에 잠 설친다 어쩐다 했던 거 혹시 그 자식이냐?
윤희 : 왜 욕은 하는데?
수찬 : 뭐, 뭐야, 그럼 그 자식이 너한테 작업 건 거냐?
윤희 : 뭐 눈엔 뭐만 보인다구.
수찬 : 어쩐지, 혜미씨네 왔다가 느네 집에 들어갔던 것도 그렇구.
집에 데려다 주고 어쩌고 하는 것도 그럼....
윤희 : .....
수찬 : 윤희야? 야, 친구야? 그건 정말 아니거든. 그 자식 이제 보니 선수네.
나도 소문 다 들었어, 그 자식 예전에 이미란이랑 스캔들 있었다며?
이미란이 데리고놀다가 버려서 이미란이가 홧김에 은퇴하고 아버지뻘 되는 재벌 회장한테 간 거라면서?
윤희 :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수찬 : 너, 완전히 그 자식한테 뻑이 같구나?
윤희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수찬 : 그 자식 너 데리고 노는 거야? 왜냐? 왜 어떤 남자가 봐도 자빠드리고 싶지 않은 너한테 작업을 거느냐?
이유는 딱 한가지다.
윤희 : 한가지 뭐?
수찬 : 신기하니까. 너무나 완벽한 혜미씨 같은 사람하고 결혼할 건 정해졌지.
인생이 무료하거든. 그래서 신기한 너한테 찝쩍거리는 거야.
윤희 : 내 친구 맞냐?
수찬 : 그럼 네가 보기엔 뭐 같냐? 진짜 너한테 마음 있어서 그러는 거 같냐?
윤희 : .....
수찬 : 봐, 봐. 너도 대답 못하는 건, 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거 아냐.
윤희 : 내가 그렇게 허접해?
수찬 : (보다가 마음이 짠하고) 꼭 그런 건 아니야. 네가 임자를 못 만나서 그렇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너 좋다는 놈도 어딘가엔 있겠지. 하지만 그런 눈 가진 놈이 흔치 않거든.
유준석 그 놈은 절대 아니구.
윤희 : 놈, 놈 하지마.
수찬 : 너 그 놈한테 많이 맛이 갔구나.
윤희 : 난.....
수찬 : (보면)
윤희 : 그 사람을 보면......가슴이 자꾸 쿵하고 내려 앉아.
수찬 : (애잔하게 보는)
윤희 : 나 허접한 거 알아. 팀장님 상대는 절대 아니란 것도 알아.
그래, 난 싫지만, 고혜미 같은 여자가 나보다 훨씬 수준이ㅡ높다는 것도 알아.
아는데, 자꾸 팀장님 눈을 보면 어쩌면.....어쩌면.... 해진단 말이야,
그래서 가슴이 자꾸 쿵 하고 내려앉는단 말이야.
수찬 : 그러지 마라. 너 심심풀이 땅콩으로 살고 싶냐?
윤희 : ......
#.49 씬. 윤희의 집 거실. (밤)
윤희 들어오는.
선우, 연속극 보고 있고, 예슬 선우 어깨 주무르고 있는.
미희, 누워서 얼굴에 오이 붙이고 있는.
선우 : 또 펐냐?
윤희 : (시무룩한 표정으로 욕실로 들어가는)
선우 : 그렇게 술이 좋으면 술 도매상 하는 남자나 물어오던가?
미희 : 엄마는 술 도매상 하는 남자가 술꾼 여자 좋아하진 않지?
예슬 : 할머니 전요, 어른 되도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예요.
선우 : 어이구, 내 새끼, 어찌 이렇게 이쁜 소리만 할까.
미희 : 내가 낳았잖아.
#.50 씬. 윤희집 욕실. (밤)
윤희, 세수 하고 거울 보면서, 눈물 글썽한 눈으로.
윤희 : 정윤희, 심심풀이 땅콩으론 살지 말자.
#.51 씬. 창고. (밤)
덕길, 곰인형에 눈알 붙이고 있는.
고니 그 옆에서.
고니 : 저도 헐게요.
덕길 : 너는 공부나 하라니께.
고니 : 지도 좀 도와드리고 싶은디.
덕길 : 너는 공부 하는 게 도와주는 거랑께.
고니 : 고람 지 예슬이네 잠깐 갔다와도 되겄어요?
덕길 : 늦었는디 뭣하러?
고니 : 인터넷으로 조사 혀야 하는 게 있구만요.
덕길 : 고람 싸게 댕겨와.
고니 : (나가면)
수찬, 세수 하고 나오는.
덕길 : 돈도 없으면서 뭔 돈으로 술은 마시고 다녀쌌냐?
수찬 : 윤희가 샀어.
덕길 : 뭐여? 윤희씨가 너한테 왜 술을 산디야?
수찬 : 인생 상담 좀 했다.
덕길 : 너헌티 뭔 인생 상담을 할 게 있어서?
수찬 : 그런 게 있어.
덕길 : 너 또 첫사랑 어쩌고 해싸믄서.
수찬 : 전설의 고향 하냐? 그게 언제적 일인데? 친구잖아, 친구.
덕길 : 나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부러. 천사 같은 윤희씨가 너겉은 놈허고 친구 먹고 사는 것도.
수찬 : 난 뭐 악마냐?
덕길 : 나가 보기엔 그랴. 넌 모든 여자들헌티 악마 겉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수찬 : 나 인생관 바뀌었다니까.
덕길 : 너가 그렇다니께 그런가보다 허긴 허는데, 윤희씨하고 친구 먹음서 옆에서 알쩡거리는 것이
나가 볼 땐, 저 놈이 인생관이 완전히 바뀐 놈은 아니다 싶어.
수찬 : 그러는 형이나 헛물켜지 마셔.
덕길 : 내가 뭔 헛물을 켰다고 그랴?
수찬 : (벌렁 누우면서) 아무리 정윤희가 허접해도 형 짝은 아니란 소리야.
덕길 : (발로 걷어차면서) 왜 곰 눈깔은 깔고 눕고 지랄이여?
#.52 씬. 대한의 집 거실. (밤)
정숙, 무릎 꿇고 빌고 있는.
대한 : (런닝 차림으로 흥분해서 서있는) 왜 속였냐구?
정숙 : 당신이 또 이럴까봐.
대한 : 내가 속이면 모를 줄 알았어?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왔는데 모르는 사이라구?
동네 사람일 뿐이라구? 대학원까지 같이 다녔는데?
정숙 : 당신이 이럴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친구 사이라고 해?
대한 : 내가 신입사원 서류 보고 확인 안했으면 끝까지 속이려고 했겠지?
그리고 나 몰래 눈 맞추고 히히덕거리면서?
정숙 : 아니라니까. 히히덕거리긴 누가 히히덕거려? 그냥 학교 다니면서 얼굴만 아는 사이야. 정말이라니까.
대한 : 그렇게 얼굴만 아는 사인데 왜 속였냐 그거야? 뭔가 캥기는 게 있으니까 속였을 거 아니냐구?
정숙 : (빌던 손 풀고 털썩 주저앉으며) 진짜 못살겠다. 더는 못 하겠다구.
그래,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 이렇게는 숨 막혀서 못 살겠다구.
대한 : 뭐야? 믿는 구석이 있다 그거지? 왜 그 놈이 이혼하고 오라고 하디?
#.53 씬. 대한의 집 마당. (밤)
정숙, 울면서 뛰쳐나오는.
#.54 씬. 동네 길. (밤)
정숙, 신발도 못 신고 뛰어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정숙 : (돌아보고 놀라는)
선이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55 씬. 희섭의 집 거실. (밤)
희섭, 보경 앉아있는.
희섭 : 애를 그렇게 닦달을 하면.....
보경 : 당신도 그 지지배 하는 소리 들었잖아?
지 입에서 재능이 없다는 소리가 어떻게 나오냐구? 지 밑으로 들어간 돈이 얼만데.
희섭 : 저도 부담스러우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가 죽으라고 저 뒷바라지는 하는데, 엄마 기대에 못 미치는 거 같으니까.
보경 : 그럼 더 죽자고 해야지. 어디서 뛰쳐나가 뛰쳐나가길.
영, 빠꼼히 문 열고.
영 : 엄마, 내가 나가서 누나 찾아볼까?
보경 : 찾아보긴 뭘 찾아봐. 집 싫다고 나갔는데. 너도 알아서 해. 너도 집 싫으면 나가. 그럼 그 걸로 끝이니까.
엄만, 집 싫다고 나간 자식 찾아다니고 그러는 사람 아니야.
영 : 난 안 그래, 엄마.
보경 : 들어가서 공부나 해.
영 : (문 닫고)
희섭 : 좀 살살해. 애들이 주눅이 들어서 더 그러잖아.
보경 : 무서운 게 없어서 집도 뛰쳐나가는데 주눅이 들긴 무슨 주눅이 들어.
#.56 씬. 슈퍼 앞. (밤)
정숙 : (선에게 아이스크림 내미는)
선 : (받고)
정숙 : 넌 왜 나왔니?
선 : ......
정숙 : 그래, 아무 말 말자. 너도 사정이 있겠지.
선 : 발.....까졌어요.
정숙 : (내려다보면. 발이 여기 저기 긁혀있다,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아. 이젠 아픈 줄도 모르겠다.
선 : .....
정숙 : 넌 갈 데 있니?
선 : ......
정숙 : 나 지갑도 안 들고 나와서 찜질방 같은데도 못 가는데.
선 : 들어가야 해요.
정숙 : (보면) 그래, 나도 들어가야 해. 사는 거 참 고단하지?
선 : 네.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57 씬. 희섭의 집 앞. (밤)
정숙, 선 걸어오는.
정숙 : 그냥 들어가서 무조건 잘못 했다고 그래.
선 : 아이스크림 고마웠어요.
정숙 : 우리.....또 그렇게 만나진 말자.
선 : (미소 짓는)
정숙 : 들어가.
선 : 아줌마두요.
#.58 씬. 희섭의 집 거실. (밤)
문 앞에 서있는 선.
보경 : 들어오긴 어딜 들어와. 싫다고 나갔으면 그만이지.
선 : 잘못 했어요.
희섭 : (선의 어깨 다독이며) 들어왔으니까 됐다.
보경 : 되긴 뭐가 돼? 나가. 집 싫다고 뛰쳐나가는 딸년 나도 필요 없어.
선 : 잘못 했어요.
희섭 : 잘못 했다잖아. 들어가라. (다독여서 방으로 데려가는)
보경 : 왜 그래? 당신?
희섭 : 그만 좀 하라니까.
보경 : 당신이 그렇게 맨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러니까 애들이 그 모양인 거야.
희섭 : (선 방에 넣고 문 닫아주는)
보경 : 애들 잘못 되면 다 당신 때문인 줄이나 알기나 해.
#.59 씬. 대한의 집 거실. (밤)
대한, 앉아서 소수 병 째 마시고 있는.
문 열고 들어오는 정숙.
정숙 : 왜 안주도 없이 깡 술을 마셔?
대한 : .....(눈물 주르르 흘리는)
정숙 : 갈 데가 없드라. 우리 엄마 아버지는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는지 이럴 땐 정말 너무 서운하다.
오빠 집 가서 올케 언니 눈총 받기도 싫구.
대한 : 사랑해.
정숙 : (눈 감고) 알아.
대한 :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숙 : 우리 병원 한번 가보자. 응?
대한 : ......
정숙 : 당신 치료 받아야 해.
대한 : (일어나서 다가와 와락 정숙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며) 나 정신병자 아니야.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당신 사랑하지 않으면 나 이러지도 않아.
정숙 : (멍한 눈길로 천정 올려다보면서) 그래. 그거 알아서 끝도 못 내겠다.
#.60 씬. 대한의 집 앞. (아침)
정숙, 대한 옷 털어주면서.
정숙 : 잘 다녀와.
대한 : 전화 할게.
수찬, 걸어오는.
수찬 : (인사하는)
대한 : 아이고. (수찬 손 덥썩 잡는)
수찬 : (당황하는)
대한 : 왜 진작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사람하고 대학 같은 과 동기시라구?
수찬 : 아. 네.
대한 : (손 잡아 흔들면서) 전 그것도 모르고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이 사람이 어제서야 얘길 하지 뭡니까.
수찬 : 아, 네. 네.
대한 :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 이 사람 친구 분이시면 저하고도 친구 아니겠습니까?
수찬 : (정숙을 보면)
정숙 : (어색하게 미소 짓는)
#.61 씬. 준석의 사무실 옆 휴게실. (낮)
윤희, 식사 준비하고 있는.
준석 들어오는.
준석 : (앉고)
윤희 : 그럼 식사하세요.
준석 : 왜 같이 안 먹어요?
윤희 :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준석 : ....
윤희 :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나가는)
준석 : .....
#.62 씬. 회사 복도. (낮)
수찬, 걸어오다가 비상구 문으로 나가는 윤희를 보는.
#.63 씬. 회사 옥상. (낮)
윤희, 앉아있는.
수찬 : (다가오는) 점심 안 먹냐?
윤희 :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구?
수찬 : 점심 안 먹냐구? 나 구내식당 갈 건데.
윤희 : 그럼 가서 먹어.
수찬 : 그 놈 때문에 먹보가 식음까지 전폐하는 거냐?
윤희 : 놈, 놈 그러지 말라니까.
수찬 : (옆에 앉으며) 그러고 싶지 않은데 너한테 수작 거는 거 아니까 절로 놈 소리가 나온다.
윤희 : .....
수찬 : 너 있지. 상태가 아주 나쁜 건 아니야.
윤희 : 참 많이 위로 된다.
수찬 : 위로 하려고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어젯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꼭 신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기도 해. 너 삐딱하게 보면 그런대로 괜찮아.
윤희 : 차라리 욕을 해라.
수찬 : 성격 그래, 욱하는 건 있지만 괄괄하니 뭐 좋게 보면 시원시원하다고 할 수도 있고.
생긴 거,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너도 때 빼고 광내면 그런대로 봐줄만 할 거 같구.
주책 떠는 거,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귀엽다 해줄 수도 있을 거 같구.
윤희 : 눈물겹게 고맙다.
수찬 : 그러니까 제발 밥도 못 먹고 그러지 말라구.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짠해서 못 살겠다.
윤희 : 왜 그러는데? 돈 더 빌려줘?
수찬 : 넌. 사람이 진심으로 그러면 좀 받아주는 맛이 있어야지.
윤희 : 남자들 나한테 진심 없다는 거 다 알아.
수찬 : ......
윤희 : 고등학교 때 미팅 나갔는데, 어떤 놈이 나한테 무지 잘해주더라.
빵도 사주고,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 진짜 감동 했어.
근데 우리 집 앞에서 뭐라고 했는줄 알아?
수찬 : 뭐라던데?
윤희 : 너 앞으로 또 미팅 같은 거 나오면 죽는다.
수찬 : 뭐 그런 개자식이.
윤희 : 수많은 남자들을 위해서 오늘 지가 총대 맨거라나 뭐라나 하면서.
수찬 : 넌 어떻게 그렇게 남자 복이 지지리도 없냐?
윤희 : 나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해봤는데.....
수찬 : 봤는데?
윤희 : 여자들은 그래도 나 좋아하는 사람들 꽤 있거든.
수찬 : 그래서?
윤희 : 성전환 수술 할까?
수찬 : (맛 확 가고)
윤희 : 근육 좀 키우면 그런대로 먹히지 않겠냐? 전직 제비 입장에서 보기엔 어때?
#.64 씬. 고사장 집 거실. (낮)
영자, 선우, 보경, 하니 모여 앉아 차 마시고 있는.
선우 : 웬일이시래요? 집까지 불러서 점심에 차 대접에?
영자 : 앞으론 내가 더 바빠질 거 같아서 바빠지기 전에 밥이나 한번 먹자는 거죠 뭐.
보경 : 왜요? 뭐 바쁜 일 있으세요?
영자 : 사돈 될 분한테서 약혼 날 잡았다고 연락이 왔지 뭐예요?
하니 : 어머, 어머, 언제요?
영자 : 다음달 첫째 토요일이요.
하니 : 그럼, 진짜 시간 없으시겠네요.
영자 : 그러게 말이야. 워낙 어려운 집안으로 보내려니 준비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
사위 될 사람은 성격이 푸근하니 맨몸으로 보낸다고 해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왜 저번에 예슬이네서 차 마시고 간 것만 봐도 알잖아요? 우리 사위 성격은.
보경 : 그러게요. 사장님 댁에서 그렇게 대접을 잘받고 나오셨으면서도
예슬이할머니 얼굴 생각해서 차마시러 들어가시는 거 보고 제가 놀랬잖아요.
선우 : 내가 언제 들어오시라고 했나? 차 한잔 먼저 달라고 해서 오시라고 한 거지.
영자 : 그게 다 어른 생각하는 마음 때문 아니겠어요.
보경 : 얼마나 좋으세요? 그런 사위를 얻게 생기셨으니.
영자 : 우리 혜미 복이지 뭐. 그나저나 같이 혼기 찬 딸 둔 입장에서 예슬이 할머니가 마음에 걸리네요.
빨리 작은 따님도 좋은 짝 만나서 여의셔야 할텐데.
선우 : 아, 갈 때 되면 가겠죠.
#.65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벌컥 벌컥 물 들이키면서 수화기 드는.
#.66 씬. 비서실. (낮)
윤희 : (핸드폰에서 귀 떼면서) 갑자기 어디서 사내놈을 끌고 와?
#.67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 (전화) 동네 창피해서 못살겠어. 연애 한번 못하고 허구헌날 술 푸고 다니는 꼴
동네 사람들 보는 것도 창피하고.
#.68 씬. 비서실. (낮)
윤희 : (핸드폰) 그러기에 좀 쓸만하게 나아놓지 그랬어?
선우 : (E) 남들 있는 거 없이 낳아놨냐? 내가? 잔말 말고 내일 선 세껀 잡아놀 테니까 알아서 해.
준석 걸어오는.
윤희 : (준석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무슨 선을 하루에 세 껀 씩이나 봐? 한 껀도 제대로 못해내는데?
선우 : (E) 껀수라도 많아야 그 중에 하나 걸려들 거 아냐?
윤희 : (그제서야 앞에 있는 준석 보고) 아, 끊어.
준석 : (사무실로 들어가는)
윤희 : (핸드폰 보면서) 딸 망신은 엄마가 다 시키면서.
#.69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앉아있고, 윤희 들어오는.
윤희 : 퇴근 하셔야죠?
준석 : 약속 있습니까?
윤희 : .....
#.70 씬. 의상실. (낮)
준석, 앞서 들어오면, 윤희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오는.
윤희 : 여, 여긴 왜?
직원 다가와 인사하는.
준석 : 유준석입니다.
직원 : 아, 네.
준석 : 전화로 부탁드렸던.....
직원 : 네, 준비해놨습니다.
시간 경과.
커튼 걷히면. 윤희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입었던 땡땡이원피스와 같은 원피스) 입고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준석 : (미소 지으며 보는) 오페라 볼 때 입었던 옷은 좀 과하다 싶어서. 어깨 좀 펴 보죠.
윤희 : (어색하게 어깨 펴는)
준석 : 구두도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직원 : 아. 네. (준비한 구두 윤희 앞에 놓는)
준석 : 신어 좀 보죠.
윤희 : (단화 벗고, 구두 신는. 높아서 비틀하고)
직원 : 귀여운 여인 영화 보고 말씀하신 디자인으로 준비했는데, 구두는 화면에 잘 안 보여서 고생 했어요.
준석 : 수고 하셨습니다.
#.71 씬. 동네 길. (밤)
준석의 차 멈추는.
윤희, 준석 차에서 내리는. 윤희 옷가방 들고.
준석 : 찾아올 수 있겠어요?
윤희 : 네.
준석 : 그럼 내일 거기서 보죠.
윤희 : .....
준석 : 대답 안합니까?
윤희 : 저 저한테 왜 이러시는지.....
준석 : 그건 아까도 물었고, 대답도 했는데요. 평생소원이라니 풀어주고 싶어서 그런다구.
윤희 : .....
준석 : 그럼 내일 봅시다.
차에 올라타고 떠나는.
그 모습 멀리서 보고 있는 수찬.
윤희 : (멀어지는 준석의 차를 보고 있는)
#.72 씬. 윤희의 집 마당. (밤)
윤희, 멍한 느낌으로 평상에 앉아있는.
수찬 들어오는.
수찬 : 넌....내가 그렇게 정신 차리라고 충고 했는데. 그 놈 차를 왜 또 타고 오는데?
혜미씨 사는 동네라는 거 뻔히 알면서 너 태우고 오는 거 보면 그 자식 진짜 나쁜 놈이다.
혜미씨가 결혼 안하겠다는 말 못할 사람이라는 거 알고 그러는 거잖아? 여자에 대한 배려도 없구.
윤희 : 어쩌면....
수찬 : (보면)
윤희 : 그 사람 진심 같기도 해.
수찬 : 미쳤구나, 니가. 아주 단단히 맛이 갔어.
윤희 : 나 평생소원이 귀여운 여인에 줄리아 로버츠처럼 남자한테 에스코트 받으면서 뮤지컬 보는 거거든.
수찬 : 근데?
윤희 : 내일 그걸 해주겠대, 그 사람이.
#.73 씬. 창고. (밤)
수찬, 뒤척이는. 고니, 덕길 잠들어 있는.
수찬 : 아, 또라이 같은 기집애. 아, 멍청한 기집애.
덕길 : 아, 잠 좀 자장께. 너 여자 많이 아는 것은 알것는디, 밤새 몇 기집애나 들먹일거여?
수찬 : 아, 정신 한오백년 없는 기집애.
덕길 : 아니, 너가 알던 기집애들은 어째 그리 다 한결 같디야?
멀쩡한 기집애랑 사귄 적은 없는 거여?
#.74 씬. 미희의 방. (밤)
윤희, 미희의 화장대에서 화장품 골라내고 있는.
미희, 들어오는.
미희 : 너 뭐해?
윤희 : 이게 팩이지? 바르고 있다가 떼어내면 되는 거지?
#.75 씬. 예슬의 방. (밤)
윤희, 팩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선우, 예슬, 미희 보고 있는.
선우 : 진작 좀 그렇게 신경을 썼으면 좀 좋아.
선을 보러 간다고 해도 부스스 하니 뛰어나가니 늘 맨날 퇴짜를 맞은 거잖아.
미희 : 니가 급하긴 급했나보다.
예슬 : 이모, 나이가 있잖아.
선우 : (미희 툭 치면서) 저 물건이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했는가보다. 옷하고 구두도 사왔어.
미희 : 무슨 돈으로? 너 또 내 카드로? 아닌데, 요즘은 저 인간 때문에 카드 문자 서비스 해놨는데.
엄마? 저 인간 카드 다 압수 해놨잖아?
선우 : 어떻게 샀는진 몰라도 사왔어. 그냥 둬라. 저도 투자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어떻게 장만해 온 모양인데.
(침대 옆에 걸터앉으며) 팔 좀 들어봐.
윤희 : 왜?
선우 : 팔 없는 원피스던데 털 뽑아야 할 거 아냐.
#.76 씬. 윤희의 집 전경. (밤)
윤희 : (E) 아, 아파.
선우 : (E) 참아. 이만한 고통도 없이 시집 갈 거 같아?
미희 : (E) 꼭 잔치 전날 돼지 털 뽑는 거 같네.
#.77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수찬, 나무 가지 치고 있으면, 윤희, 선우 나오는.
선우 : 정말 같이 안가도 되겠어?
윤희 : 된다니까.
선우 : 2시간 단위로 잡아놨으니까 시간 늦지 말고.
첫 번째가 괜찮다 싶으면 뒷 약속은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들러붙어? 알았지?
나머진 엄마가 다 해결 할테니까.
윤희 : 알았어, 알았다구.
선우 :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윤희 : 무슨 군사 작전 해?
선우 : 내가 오죽하면 딸 시집 보내려고 군사 작전까지 하겠냐?
윤희 : 갔다올게. (하이힐 신고 삐딱거리며 거의 기다시피 해서 나가는)
선우 : 그러기에 빼쪽 구두도 좀 신어 버릇하지? 저. 저.....살살 걸어가.
윤희 : (힘겹게 걸어 나가는)
선우 : 이거야 마음이 안 놓여서. (그제서야 수찬 보고) 아이고, 미스터백이 수고 하네.
그렇지 않아도 가지 좀 칠까 했는데.
수찬 : 선보러 가나봐요?
선우 : 응. 오늘 세 껀이나 있거든.
수찬 : 같이 가시지 그러셨어요? 다른 데로 새지 않게?
선우 : 지가 다른 데로 새긴 어디로 새? 죽을려고 빽을 쓰는 거지.
#.78 씬. 극장 로비. (낮)
준석, 팜플렛 들고 서있으면.
윤희, 엉거추춤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준석 : (미소 짓는)
윤희 : 늦었죠?
준석 : 무지 힘들어 보이네요.
윤희 : 좀 걸었더니 이젠 괜찮아요.
미란 : (E) 자주 보네요.
준석, 윤희 돌아보면.
우아한 차림으로 서있는 미란.
미란 : (다가오는) 준석씨 이런 데도 취미가 있는지 몰랐어요.
준석 : .....
윤희 : (인사하는)
미란 : 우리 회사에서 후원한 뮤지컬이라서 왔는데, 여기서 준석씨보는 건 의외다.
우리 그이가 출장 중이시라 난 혼자 왔는데.
준석씨 (윤희 보면서) 동행 있는 거 보니까 보기 좋네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인사하고 걸어가는)
윤희 : 그냥.....갈까요?
준석 : 들어가죠.
#.79 씬. 극장 내.
VIP 석에 앉는 준석과 윤희, 옆 VIP 석에 앉는 이미란.
윤희 : 어머, 어머, 진짜 이런 데가 있구나. 난 우리나라엔 없는 줄 알았는데. 어머, 어머, 의자 진짜 좋다.
준석 : (윤희에게 오페라글라스를 건네는)
윤희 : (감동해서) 이런 것까지 준비하셨어요?
불이 꺼지고 음악이 시작 되는.
윤희 : (오페라글라스 들고 줄리아 로버츠가 한 것처럼 이리 저리 흔드는)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이렇게 하거든요.
뮤지컬이 진행 되고....
윤희 : 어머, 어머, 진짜 너무 근사하다.
(입술 모아서 휘파람 불고. 삑삑 소리가 요란하고. 잘 되지 않자 입으로 소리 내는)
옆 VIP 석에서 힐끔거리는 사람들, 저희끼리 수군거리고.
전혀 눈치 없는 윤희, 혼자 감동해서 훌쩍거리고. 수건에다 팽하고 코 풀고.
진짜 줄리아 로버츠하고 똑같이 할 거 다 한다.
준석 : (웃으며 이 쪽을 보고 있는 이미란을 보면서 서서히 표정이 굳어가는)
윤희 : (팔까지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준석 : (더욱 차가워지고)
뮤지컬이 끝나고.
윤희 : (벌떡 일어서서) 앵콜, 앵콜.
준석 : (차갑게 식어있는)
#.80 씬. 극장 로비.
준석, 걸어 나오는데, 윤희 바쁘게 따라 나오면서.
윤희 : 같이 좀 가요.
준석 : (그러거나 말거나 앞서 걷는데)
윤희 : (푹 하고 넘어지는. 하이힐 굽이 부러진. 고개를 드는데,
웃고 서있는 이미란, 준석 차가운 얼굴로 돌아보고 있는)
미란 : 재밌는 분과 동행을 하신 거 같네요.
#.81 씬. 길. (밤)
준석의 차 안.
윤희 : 제가.....뭐 실수 했나봐요?
준석 : .....
윤희 : 한마디도 안하시고....
준석 : ......
차 세우는.
윤희 : (보면)
준석 : 약속이 있어서 집까지 못 데려다 주겠네요. 미안해요.
윤희 : ......
차에서 내리는 윤희. 멀어지는 준석의 차.
윤희 : ......
#.82 씬. 동네 길. (밤)
윤희, 절뚝거리면서 걸어오는.
수찬 : (E) 뭐냐?
윤희 : (고개를 들면)
수찬 : (한심하게 보고 있는) 데이트 하러 신난다고 나가서 왜 그러고 오냐구?
윤희 : ......(보다가 눈물을 뚝 떨어뜨리는)
수찬 : (굳어지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