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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립 지음 『인간본성의 역사』 첨언 (1)
팔경산인 박희용
제4부 역동적 자아
(1) ’역동적 자아‘에 대한 단상 : 1800년대부터 인간관과 인생관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21세기의 현란한 물질문명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다고 해서 인간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물질문명은 의식주의 발전이다. 의식주가 아무리 발전해도 알몸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우주 지구 지연 속에서 알몸으로 존재하다가 홀로 사라지는 인간, 다시금 인간과 그 삶에 묻는다. 2025. 11. 11
(2) 4부의 서설을 읽고 든 단상 : 관찰자인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과학자, 인문과학자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관찰 도구가 다르다. 안경과 현미경, 확대경이 다르다. 근본적인 인간 본성은 알몸으로서의 인간에게서 가감 없이 나타난다.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인간 본성은 깊이 감추어진다. 관찰자는 다른 사람도 관찰하지만 자기 자신 관찰이 우선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타인을 관찰하고 재단한다. 인간 족속이 현재 80억이다. 멀잖아 100억이 된다. 바글바글댄다. 지구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이 분기한지 약 20만 년이다. 동물 중에 인간의 수가 가장 많다. 그러면서 지구를 독점하여 과소비하고 있다.
1. 마르크스의 휴머니즘
(1)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란 말에 대한 단상 : 저자는 제목을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라 하며 ’휴머니즘‘을 붙였다. 6.25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은 마르크스에 대해 ’反휴머니즘‘이란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휴머니즘‘을 붙였을까? 그 의도가 무엇일까.
마르크스 이론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따라 2025년 현재 북한에는 전주김씨 왕조가 3대 세습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이 장기집권을 하고, 중국은 시진평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들 중에 시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도 있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말할 때의 이유는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상은 인류 문명사에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인류 문명사가 曲流와 直流를 반복하면서 흘러가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의 사상도 절대적 사상을 독점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생각이 짧았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새로운 형태의 왕조 건설의 이론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도 ’휴머니즘‘이란 말이 붙을 수 있겠는가?
(2) 460p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그의 위대함을 과학자와 혁명가, 두 가지의 큰 얼굴로 묘사했다.
[첨언]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이전의 몽상적 공산주의와 달리 ‘과학적’이라 하지만, 그 말은 잘못 붙였다. 생물학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접목시키는 등 그냥 논리가 좀 더 우수할 뿐이다.
(3) 엥겔스는 하이게이트 묘소에서 행한 조사에서 과학자로서 마르크스의 업적은 “인류 역사의 발전법칙을 발견”한 데 있다고 술회했다.
[첨언] 맞는 말이다. 21세기 왕조국가 건설의 이론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만들었으니까.
(4) 461p 급기야 그를 숭배했던 급진적인 엘리트들은 20세기 역사의 한쪽 면을 지배함으로써, 마르크스 사후 세기를 ‘프로콘Procon 마르크스‘의 시대로 만들었다.
[첨언] 엘리트는 엘리트인데 ’급진적인‘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급진적인 그들에게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슨 수단과 방법이라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혁명을 위해서는 대량학살도 악이나 범죄가 아니다. 그 결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이 세워졌다. 이 독재에 반대하는 자들은 혁명의 대의에 반대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엄혹한 숙청의 대상이다.
(5) 461p 다양한 개념들로 구성된 마르크스 이론은 인간, 사회, 그리고 역사에 관한 총체적 분석과 전망을 제공한다.
[첨언]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독선적, 독단적 요소가 다분하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혁명의 주력은 프롤레타리아이지만, 지도부는 고급 엘리트이도록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구해주려고 했다. 구해주는 주는 고급 엘리트들이다. 구해주는 과정에서나 구한 후의 관리는 고급 엘레트의 몫이다.
프롤레타리아는 혁명 중에는 무력을 행하는 군중 역할을 부여 받았다. 혁명 완성 후에는 목장주와 양치기의 지시에 잘 따르는 순한 양떼로 변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양은 무리에서 도태된다.
(6) 461p 마르크스를 전기와 후기, ’두 얼굴‘의 사상가로 보는 해석가들은 인간 본성을 인간종의 고유성, 즉 ’유적(類的) 존재‘의 속성으로 설명하는 청년 마르크스(Young Marx)와 자본주의적 계급구조 및 사회변혁과 결부된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조건에 대해 주로 논구했던 성숙기 마르크스(Mature Marx)를 대비시킨다. 후기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지 않고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춘 존재, 즉 인간 본성을 가변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로 상정했다고 해석함으로써 논란을 야기한다.
[첨언] 군 복무기의 청년들은 ’유적 존재‘의 속성대로 행동한다. 원시시대에 외부 세력의 침략에 맞서 부족의 모든 청장년이 전사가 된 것과 같다. 그러나 제대하고 사회인이 되어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면, 역사적 존재의 속성대로 자신과 가족의 생활과 안녕을 위해 활동한다.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고의 폭을 넓힌다.
군 복무기의 청년들에게 유적 존재는 외부의 강압이고 역사적 존재 의식은 잠재되어 있다. 외부적 강압이 사라지면 역사적 존재 의식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렇게 인간은 유적 존재와 역사적 존재의 두 가지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7) 462p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특정한 목표를 향해 주체적 의지로부터 사회변혁의 필연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첨언] 무서운 생각이다. 당연한 말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무서운 노림수가 들어있다. ’특정한 목표‘를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으로 한다면, 모든 인간은 교육과 교양, 훈련과 단련을 통해 목표 달성에만 돌진하는 기계적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요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정신적 요소에 의거한다. 정신은 가소성과 가변성을 갖는다. 한때 세뇌는 곧 씻겨진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나 일부 인간들은 세뇌되어 꽁꽁 언 두뇌의 얼음이 녹지 않는다. 항상 겨울의 심리 상태를 유지하다가 죽는다. 그들을 일러 광신도라 한다. 2025년의 한국 사회에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꼴통들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극좌꼴통이라는 세뇌자들이 있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인간 본성의 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적 관계 속이다. 한 인간 스스로의 자각이나 좋은 친구와 스승으로부터의 가르침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긴장된 사회적 관계의 움직임에 따른 피동적 본성 변화이다. 인간 본성의 변화를 말하는 목적은 인간이 유적 존재로서 사회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절대 논리를 도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무서운 생각이다.
(8) 467p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을 해명하는 작업을 위해 헤겔에게서 노동과 소외의 개념을 빌려온다.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이자 비밀‘인 『정신현상학』의 주된 성과를 노동과 소외의 개념으로 꼽는다.
“헤겔 『정신현상학』의 최종적인 성과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자기 산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대상화를 대상의 상실(탈대상화)로서, 소외 및 소외의 초월(외화와 외화의 지양)로서 파악한 데 있다. 따라서 (헤겔의 위대성은)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객관적(대상적) 인간을 … 그 자신이 행한 고유한 노동의 결실로 파악한 데 있다”
헤겔은 노동을 인간의 자기 생산적 행위로, 그리고 타자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로 파악했다. 헤겔에게 “노동은 인간이 즉자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이다”. 즉 노동과정은 인간이 소외된 가운데 현현되지만 인간이 타자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의식의 발전 안에서이다.
[첨언] 원문 한 페이지 안에 노동, 자기 생산적 행위, 소외, 타자적 존재, 즉자적 존재, 의식의 발전 등의 말이 서로 얽혀서 난맥상을 보이지만, 핵심은 헤겔과 마르크스가 보는 노동의 개념이 차이를 가진다는 점이다. 헤겔은 아직 노동을 순수한 면에서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을 넘어 소외까지 본다. 그리하여 이러한 노동과 소외를 역사 발전의 중요한 기제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의 소외‘란 물질 생산과 소비의 범람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즉 소외되고 소외를 벗어나기 위해 외화에 탐닉하면서 자신을 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물질의 범람 속에서 익사한다. 물질 과잉이 노도의 가치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소실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소외는 현대의 대량생산 현실에서 야기되고 있는 현상이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의 노동 현장과는 다르다. 산업발달 초기를 산 헤겔(1770~1831)에게 노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자기 생산적 행위로 개인적 문제였다. 그러나 산업발달 극성기에 산 마르크스(1818~1883)에게 노동은 생존과 자본, 권력이 얽힌 사회적 문제였다. 그러므로 노동의 소외 문제가 헤겔에게는 미약했지만 마르크스에게는 강력했다.
마르크스가 분노했던 ’노동의 소외‘란 생산자인 노동자가 그 물질을 소유하지 못하고 낮은 임금을 받으며 자본에 혹사당하는 불합리한 현실이었다. 현대에 말하는 노동의 소외와는 차원이 다르다.
노동은 생존의 도구이다. 노동 없이 인간은 ’유적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고 악인 것은 불합리하고 불의한 ’노동의 소외‘이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다. 마르크스도 불합리하고 불의한 노동의 소외를 제거하기 위하여 ’공산당 선언‘을 썼을 것이다. 문명과 노동의 충돌로 인하여 파업, 혁명, 전쟁 등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에도 문명과 노동의 길항은 계속될 것이다. 이 길항을 순조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소외 문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9) 468p 헤겔철학에서는 “오로지 정신만이 인간의 참된 본질이며, 정신의 진정한 형식은 사유하는 정신, 즉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정신이다”. 헤겔은 ’자연의 인간성, 즉 인간의 산물인 역사에 의해 생산된 자연의 인간성을 그 안에서 추상적 산물로, 그리고 정신적 요소이자 사유적 존재’로만 이해함으로써 인간성에 내재된 물질적 토대의 구체성을 간과했다.
[첨언] 환언하면, 헤겔은 정신만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했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므로 인간성도 자연에 의거하고,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자연, 즉 물질적 토대의 구체성을 갖는다는 유물론과 유물사관의 관점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자연, 인간성, 인간, 역사의 개념이 구분되지 않고 혼합되어 쓰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동급이다. 그러나 인간성과 역사는 자연과 인간보다 발전된 개념이다.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다르다. 자연 속의 인간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물질적 존재이지만, 그 인간 속의 인간성이 문명을 만들고, 그 문명이 축적되어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그 영리한 헤겔이 인간성의 물질적 토대를 간과할 리가 없다. 헤겔이 ‘인간성’에 내재된 물질적 토대만 간과했지, ‘인간’에 내재된 물질적 토대는 인정하지 않았겠는가. ‘인간성’은 정신적인 면이다. 그래서 헤겔은 물질적 토대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헤겔이 역사의 운동에 대한 추상적이고 논리적이며 사변적인 표현을 발견했을 뿐이지, 이미 전제된 주체로서의 인간의 진정한 역사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물질적 토대’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인간과 인간성, 역사를 독단하고 있지 않는가. 마르크스는 그 물질적 토대의 영향이 인간을 넘어 인간성에까지 미치고, 나아가서는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을 갖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토대의 영향이 인간까지는 절대적이지만 인간성 차원에 들어서면 절대성을 잃고 상대성이 된다. 인간성이 발휘하는 다양한 정신적 능력으로 인하여 문화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물질적 토대가 인간을 넘어 인간성까지 완전히 점령했다면 현대의 인류는 원숭이와 고릴라, 침팬지 수준을 결코 능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토대를 이용하여 생존을 도모함과 동시에 인간성에 뿌리를 둔 사고력을 발휘하여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찬란한 현대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자연, 물질적 토대, 인간, 인간성, 역사의 개념이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각자 차이점을 가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물론과 유물사관이 어떤 맹점을 갖는지 알 수 있다. 헤겔이 정신면을 강조하는 관점이었다면 마르크스는 물질적 토대면을 강조하는 관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