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 어느덧 이제 20여년이 된 것 같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철없던 전도사 시절부터 아직도 철이 덜 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해 온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의 신앙 생활속에 큰 계기가 주어졌던 시점이 두 세 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찬양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빠른 비트의 찬양보다 느린 비트의 찬양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면서 부르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성경에도 찬양의 고백을 담은 기도 시들을 보면 울음이 깃든 찬양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이 깃든 찬양들이 눈물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끝부분에 가서는 감격과 감사와 기쁨으로 끝마쳐집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 대부분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 신앙의 의미를 일깨워준 찬양은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구세군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토요일 학생들의 모임에 통기타와 피아노에 맞춰서 배워 따라 부르던 이 복음찬양의 가사가 내 영혼에 희미한 빛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신앙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하고 예수님을 내 개인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목회자로서, 구세군사관으로서 전적 헌신을 결심하게 만든 때가 추수감사절이었는데 무디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자신은 돈이 없어 헌금을 못하지만 자신의 몸을 주님을 위해 드리겠다며 헌금함에 자신의 생애를 드렸던 예화를 들으며 나도 나의 전부를 주님을 위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날 특별찬양을 하던 선배가 부르던 찬양이 찬송사 185장인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는 찬송의 가사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고 자비석에 나아가 울며 회개하고 기도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찬송은 소명의식이 흐려져 도망치던 요나처럼 방황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신학교로 행하게 했던 찬송이기도 합니다.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 찬양은 정말 특별한 영적인 추억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찬양을 부를 때면 그 기억이 나를 새롭게 하곤 합니다. 찬양의 힘은 부족한 저의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주었고, 길을 정하고 푯대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찬양속에 역사하셔서 각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오늘 헌신하는 찬양대원 모두는 이런 영적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찬양 하나 하나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의 영혼을 충분히 어루만지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벽재건이 완성되고 그 성벽 완공을 기념하는 낙성식이 열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헌당식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찬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찬양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전역에서 모여들었는데 레위인, 제사장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 사람들로 인해 성벽 봉헌식은 그야말로 은혜가 넘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한 역할이 크게 세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즐거이 감사하며 찬양의 소리를 내게 하는 사람들었다.(43절)
2. 하나님의 전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40절)
3, 성전을 향하여 앞장 서 가는 사람들이었다.(36-39)
찬양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부녀자들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백성들이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찬양대가 앞장서서 전진하며 백성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힘을 붇돋우웠고, 성전을 향해 올라오는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즐거움 마음으로 성전에 올라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에 서서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양대의 찬양이 없는 예배와 찬양대의 찬양이 있는 예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찬양대는 성경에서 예배를 돕는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찬양대원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할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하는 찬양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이곳에 앉아 있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여러분의 음성을 통해 예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영적인 힘을 공급하는 사명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찬양대에 줄을 서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 앞서서 전진만 한 게 아니죠. 하나님의 전에 서 있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소리를 내게 하고 자신들은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먼저 찬양했고, 먼저 기뻐했고 감사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찬양하는 사람들로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모셔오면서 엄청난 찬양대를 동원했습니다. 다윗은 이 광경은 구경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그 찬양하는 무리에 섞여서 춤추며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같이 예배하며 기뻐했습니다. 왕이 입었던 베 에봇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먼저 예배하며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왔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여주는 찬양하는 사람들은 예배자들이었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 듣고, 함께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배를 안드려도 되는 특권층이 아니라 먼저 예배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워주고 돕는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찬양대 헌신예배를 드리는 우리 찬양대원 모두가 일평생이 예배자로 서 있는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든 진죽교회 성도들이 이 찬양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큰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을 되찾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오는 발걸음들이 가벼워지고, 돌아가는 발걸음에 생기가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게 되는 축복을 얻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