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시 [議政府市]
유물·유적
선사유물로 마제석검이 금오동에서 발견되었다.
불교문화재로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한 비룡사(飛龍寺)터에 중창된 쌍룡사(雙龍寺)가 있고, 1395년(태조 4)에 무학(無學)이 창건하고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중건한 호원동의 회룡사(回龍寺)에는 회룡사 오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회룡사 석조(경기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회룡사 신중도(경기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회룡사노주 등이 있다. 이외 호원동의 약수선원목조보살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도 있다. 또한, 639년(선덕여왕 8)에 해호(海浩)가 창건한 뒤 여러 차례 중건한 호원동의 망월사(望月寺)에는 망월사 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망월사 천봉당태흘탑(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망월사 천봉선사탑비(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유교문화재로는 장암동에 노강서원(경기도 기념물, 1977년 지정)과 서계박세당사랑채(경기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하석박정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금오동에 효민사(孝愍祠), 민락동에 송산사지(경기도 기념물, 1977년 지정), 호원동회룡사 경내에 백범사(白凡祠) 등이 있다. 송산사는 조윤(趙胤, 호는 宋山) 등 고려 말의 여섯 충신의 절의를 추앙하여 1798년(정조 22)에 세웠으며, 백범사는 김구(金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이다. 능묘로는 용현동에 정문부장군묘(경기도 기념물, 1977년 지정), 고산동에 신숙주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85년 지정)가 있고, 금오동의 능묘군에는 정빈민씨묘(靜嬪閔氏墓)·인성군묘(仁城君墓)·해원군묘(海原君墓)와 해원군신도비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에는 양주군에 속해 있었던 관계로 의정부 관내에는 교육기관이 없어 이웃 주내면의 양주향교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도봉서원(道峰書院)에 교육을 의존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9년에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에 양주소학교가 개교하였다가 1919년에 의정부동으로 이전하여 현재의 중앙초등학교가 되었다. 그 뒤 송양(松陽)·의정부·호암(虎巖) 등 많은 초등학교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43년에 4년제 의정부농업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뒤에 의정부중학교와 의정부농업고등학교로 분리되었고, 의정부농업고등학교는 현재 의정부공업고등학교가 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9개교, 고등학교 16개교, 특수학교 2개교와 신한대학교, 경민대학교가 있다. 문화제행사로는 회룡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민속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천보산(天寶山, 337m)정주당(定州堂)에서 행해지던 ‘정주당놀이’를 들 수 있다. 이 놀이는 유래가 깊은 것으로 약 3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는 조선의 여인들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강요해왔고 마침내는 왕족의 처녀들까지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수모를 겪어야 하였다. 그러던 중 당시 금오동에 살고 있던 왕족의 딸이 청나라로 잡혀가다가 평안도 정주땅에 이르렀을 때, 오랑캐에게 욕된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편이 낫다고 결심하여 가파른 벼랑에서 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하였다. 이에 수행하던 노복들이 시신이나마 거두려 하였지만 찾지 못하고 족두리만 겨우 건져와서 금오동 선영(先瑩)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곳을 지금도 족두리산소라 부른다. 이 일이 있은 뒤 조정에서는 그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큰당·작은당·색시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정주당놀이는 이때부터 이 고장의 민속놀이 겸 동제로 전승되어왔는데, 이른 봄 화창한 날을 골라 마을사람들은 비명에 간 왕족여인의 넋을 위안하고 풍년과 무병·재수를 빌며 고사를 지낸 다음 놀이를 벌이면서 하루를 즐겼다. 제수는 백미로 지은 밥과 생미역으로만 끓인 국을 쓴다. 제일이 되면 마을주민들은 아침 일찍 당 앞에 모여 제를 지내고 농기를 앞세워 꽹과리·날라리·북·장구·징 등으로 농악을 연주한다. 마을주민들은 이 농악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면서 횃불을 들고 천보산 능선을 여러 차례 왕복한다. 6·25전쟁 이후 한때 이 놀이의 전승이 중단되어 당제만 지내며 마을의 수호신으로만 받들었는데, 1985년부터 민속놀이로 재현되어 주민의 화합과 전통을 다지고 있다.이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특별한 동제는 없다.
2023-08-1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