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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6월 둘째 주 일요법회를 맞이합니다. 다가오는 6월 지장재일과 다섯째주엔 백중 입재도 있으므로 사무국에서는 지장재일 및 백중 기도 접수를 하고 계십니다.
현관에서는 법회보를 나누며 형제들을 맞이하시고, 엘리베이터 봉사팀은 분주하게 지하 4층 보광당을 오르내리며 안내를 하고 계시니 혜담 스님께서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시고 보광당으로 .가시고 계신 모습이 평화로운 일요 법회 아침 풍경입니다.
떡과 생수를 보시하고 배분하고 계시는 송파 22구, 23구, 24구, 25구법회 보살님들 곁에서는 지홍 스님 대각사 이사 건에 대한 서명을 하고 계신 불광 형제분들. 보광당 내에는 법당 안내팀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봉사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일요법회를 시작하기 위해 천수경을 독송, 타종 후, 추담 사회자님이 법회 시작 멘트로 부처님 전에 헌향, 헌다를 올립니다.
오늘도 일요 법회에 참석하신 불광형제분들은 보광당 가득히 앉아 효림스님의 법문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금주의 법문 : 효림 스님(경원사 주지)
금주의 법어 : 법신은 모양이 아닙니다.
노래 준비하셨어요? 오늘 먼저 노래 한 곡 한번 불러보세요. (노래 : '여시아문')
우리가 지금 금강경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모든 경전의 공통점이 제일 첫 구절에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이러히 나는 들었습니다”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소천 스님은 금강경을 한글로 처음 번역을 하셨던 분인데, 그리고 전국에 다니면서 금강경을 강의하시고 광덕스님과 같이 금강경 독송 운동을 하셨던 소천스님도 처음에는 여시아문을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로 번역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번역하시면서 ‘이와 같이’를 ‘이러히’ 이렇게 번역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소천스님께서 번역을 하셨지만 역시 보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하는 것이 참 좋은 번역인 것 같아요.
중국에 가면 당나라 때 수도였던 장안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지금은 시안이라고 말해요. 시안 서쪽 그러니까 우리 말로 하면은 서안이죠. 그 도시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도시에 가면 대안탑(大雁塔: 불경 및 다른 소중한 문서와 예술품 보관을 위해 건립한 탑, 높이 62M)이라고 하는 큰 탑이 있습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예요. 아주 어마무시하게 큰 탑이 있는데 우리가 이제 지금 읽고 있는 이 금강경은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을 유행본으로 읽고 있습니다.
근데 반야심경 있죠. 이 반야심경은 또 누가 번역한 거냐 그것은 현장이라는 스님이 번역하신 거예요. 나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걸 연구해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어요. 내 느낌이에요. 구마라습은 번역할 때 법화경이나 이런 데 보면 관세음보살 이렇게 돼 있죠. 관세음보살 이것은 구마라습 번역이예요. 그런데 현장은 관세음이라고 안 하고 관자재라고 했습니다. 반야심경에는 관자재보살 이렇게 되어 있죠.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할 적에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아,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 반야심경이란 경전은 아주 압축되고 압축된 것인데, 그 압축된 경전에서 더욱 압축해서 이해하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오온이 공함을 비춰봤다.’이렇게 요약됩니다. 우리 몸은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온(五蘊). 근데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이 말 자체도 철학적으로 살펴보면 너무나 심묘한 철학입니다. 일찍이 인류 문화사에 이 인간의 체계를 오온으로 이해하는 철학이 없었습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5개가 모여서 하나의 인격체를 이룬다는 거예요. 하나의 인격체. 그런데 이 색수상행 여기까지는 하나의 껍데기고 제일 마지막 요 식(識)만 가지고 하나의 철학 체계로 발전시킨 것이 유식(唯識)이라는 철학인데, 이 유식이라는 철학을 인도에서 가지고 와서 중국에 전해 준 사람이 누구냐. 현장이라는 사람이에요.그 대안탑이 그 현장이라는 스님의 위대성, 그 스님이 중국에 와 그 불법을 전해 준 그 공덕, 이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이에요. 한 승려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세운 탑이 대안탑입니다.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걸 얘기하면 유럽에서는 로마 그리스에 아테네 등을 꼽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도시가 당나라 수도 장안입니다. 장안. 지금도 가보면 아주 화려하고 아주 엄청난 문화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참고사항 저는 가봤습니다. 안 가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가보신 분은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좀 섞인 것 아닌가 하시겠지만 안 가보신 분들은 모르잖아요.가 보면 탑이 중심에 있어요. 그 탑 하나. 그 승려의 공덕을 기리는 탑을 중심에 가운데 놓고 그 주변에 대자은사(大慈恩寺)라고 하는 절이 형성되어 있어요. 대웅전 뒤에 대웅전보다 더 높은 탑을 쌓아서, 탑도 그냥 바닥에다 쌓는 게 아니고 기단을 아주 엄청나게 높게 해 가지고 그 위에다가 또 아주 높은 62m 정도 되는 그런 탑을 쌓아서 한 승려의 공덕을 그렇게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그 현장이라는 스님의 역경 사업을 그렇게 높이 찬양을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왜 내가 이 얘기를 하는가 하는 것은 조금 후에 설명하기로 하고 또 노래 한 곡 듣고 법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노래의 노랫말이 너무 심오해 가지고 스님이 오히려 법문을 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오온(五蘊)이 개공(皆空)하다. 오온이. 니체라는 사람이 ‘신은 죽었다.’고 얘기 했는데신이 죽기는 왜 죽어. 니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원래 신은 없다 이 소리예요. 신은 죽었다. 왜 죽었냐. 이제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그거는 나의 사상과 나의 철학으로 인해서 신은 이제 사라져 갔고, 힘만 사라진 게 아니라 니체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있었던 철학과 사상은 싹 다 죽었다 그런 선언이에요. 그 사람 말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 책에 보면 하도 난해해서 그리고 또 번잡해 가지고 무슨 말인지 읽어 봐야 잘 이해도 안 가고 그런 건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압축해서 얘기하면 그런 겁니다. 그런 건데, 오온이 다 공하다. 이렇게 위대한 선언이 없어요.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맥락이 안 맞는 것 같을 수도 있지만 한번 들어봐 봐요. 제가 시를 하나 썼습니다.
허각지인봉각세(虛殼之人逢殼世): 껍데기 같은 사람이 껍데기 세상을 만나서
각리무실충허상(殼裏無實充虛像): 실다울 것도 없는 그 껍데기 속에서 허망한 허상으로 채우
고 있다.
인중속각활각리(人衆束殼活殼裏): 사람의 무리들은 이 껍데기에 구속이 되어서 껍데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점가위귀각(世上漸加爲貴殼): 세상은 점점 더 껍데기를 귀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이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계신 분들을 내가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대다수 세상 사람들이 다 껍데기에 구속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껍데기.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이러잖아요. 누가 얼굴이 곱상하게 잘 생기면 아이고 저거 인물값 하네. 아니, 클 때부터 부모로부터 또는 친구들, 옆에 주변 사람들이 잘생겼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하니까 마음이 우쭐해져 가지고 나는 잘생겼구나 그래 가지고 콧대가 높아져 버린 거죠. 자기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미지가 생겼단 말이야. 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이 생겼어. 그래 가지고 평생 그냥 자기 얼굴 잘생겼다는 그 기분에 고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보세요. 내가 그동안에 누차 얘기해 온 바입니다. 천만 원짜리 명품백을 하나 딱 들었어.내가. 딱 들고 이렇게 길거리에 이 팔에 걸치고 어깨를 쫙 돌리고 고개를 쳐들고 기분이 업이 돼 가지고, 길거리에 걸어가는데, 대다수의 사람이 그 사람이 천만 원짜리 백 들고 가는 줄 몰라요. 의식 안 합니다.공연히 자기가 그 백 들었다는 그 기분에 취해 가지고 그냥 이렇게 가는 거야. 나도 이런 거 하나 팔았어. 아니 이건 내가 실제 경험한 거예요. 어떤 사람이 자꾸 와 가지고 같이 차를 마시는데 앞에서 여자가 아니고 남자인데, 구두를 자꾸 이렇게 바닥에다 자꾸 쳐. 그래서 내가 자꾸 왜 발로 바닥을 치냐. 나중에 자주 그래서 안 하던 습관이 생겼네. 왜 그 구두를 가지고바닥을 자꾸 마룻바닥을 자꾸 치냐 그러니까, 이 어떤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스님 모르셨어요? 이 구두 한 300만 원 줬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구두를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서 내가 ‘여보시오. 구두를 자랑하지 말고 당신의 아름다운 인품을 나한테 자랑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게 다 껍데기라 이 말이에요. 나중에 이제 본문을 읽을 건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껍데기가 잘 생기면 덕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껍데기도 잘 생기고 그 속에 들은 알맹이도 좋으면 엄청 좋은 거 아니에요? 이거는 내가 경험한 게 아니고 어디 영상에 봤는데 좋은 포장을 해서 어떤 사람이 선물을 보냈어요. 그 포장을 뜯으니까 또 포장이 또 뜯으니까 또 포장이 든 계속 100번을 포장을 뜯었는데 그 속에 보니까 아무것도 없었어. 지금 우리가 그런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겹겹이 장식하는 껍데기로 나를 장식해놓고 있는데 그 속에 자꾸 뜯어 갖고 들어가 알맹이를 들어가 보면 그 속에 감동을 주는 뭔가 들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알맹이가. 없는 거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얼굴이 잘생기면 굉장히 덕을 많이 봅니다. 얼굴 하나 잘생긴 것 가지고 아니 출세를 할 수도 있고, 얼굴 하나 잘생긴 것 때문에 결혼도 잘할 수 있고, 얼굴 하나 잘생긴 것 때문에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어요. 요즘 영화배우나 뭐 이런 애들 보면 얼굴 하나 잘생긴 거 갖고. 기사에 보면 연기가 발바닥이라 이래. 나는 어떻게 하는 연기를 발바닥 연기라 하는가 내가 몰라 가지고 누구한테 물어보니까 연기를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더라고. 얼굴은 잘생겼는데 연기는 발바닥. 발바닥 연기를 하는 거야. 그래도 그 배우가 인기가 있는 거예요. 왜?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광고에 한 번 나가면 나중에 연기도 하는 게 발바닥 연기이니까 연기를 못해. 그래서 영화 한 두 편 찍고 안 하잖아요. 근데 가끔 한 번 광고에는 나오거든.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영화 찍는 것보다 광고 몇 편 찍으면 수익이 더 좋으니까.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사는 그런 배우들이 있어요. 내가 누구라고 이렇게 딱 찍어서 하면 그 사람이 나한테 명예훼손이라고 할 거니까 얘기는 안 하고 그런데, 그 잘생긴 얼굴에 아름다운 인격까지 갖추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얼굴이 못 생겨도, 얼굴이 못 생겨도 그 안에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고 있으면 그게 더 좋은 겁니다. 얼굴이 잘생기고 천만 원짜리 명품 백을 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다 우러러 볼 텐데,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천만 원짜리 명품백 들고 아주 훌륭한 브랜드가 있는 좋은 패션 옷을 착 입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데, 그런 사람이 그 속에 그거보다 더 비싸고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알맹이는 텅비었거든. 텅비었어요.
영화 같은 데도 보면 그런 잘생긴 영화 배우를 내세워서 사람들이 모이는 데 1등 미인이 갔거든. 차를 마시면서 서로 담소를 할 거 아니에요? 담소를 하는데 이제 시사적인 담소를 하는데 소위 말해서 이 골이 비어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망신을 당하는 그런 영화도 있어요. 내가 옛날에 그런 영화를 하나 봤어. 제목을 잊어먹었는데 그렇다는 거예요.그래서 빈 껍데기의 사람이 빈 껍데기 세상을 만나 가지고 사는 겁니다. 세상도 껍데기야. 이 세상이 그런데, 아까 그 현장 스님의 대안탑. 그 탑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탑이 주는 거룩함, 그것도 껍데기죠. 그런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는 그 껍데기 속에 현장이라고 하는 중국 역사에 미친 아름다운 공덕이 있잖아요. 그분의 업적이 있는 거야.
그러니 그 업적도 없이, 돈 많은 절 주지 좀 했다고, 내가 어느 절이라고 얘기할 거는 없어. 어마무시할 정도로 돈이 많으니까. 돈 몇 억 들여가지고 비석 하나 크게 세우는 거는 별거 아니잖아요. 사리탑 어마무시하게 크게 세우고. 어느 절이라고 얘기할 거는 없고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아주 유명한 본사입니다. 산도 좋고 아주 절도 좋은 그런 절이 하나 있어. 내가 그 절에 가서 보고 뒤로 자빠질 정도로 놀래버렸어. 연대적으로 딱 보니까 이 스님이 제일 먼저 죽었어. 그런데 사리탑을 엄청 크게 건립해놨더라고. 그 스님보다 내가 보기에는 덜 훌륭할 것 같은 스님인데 그 스님이 좀 뒤에 죽었거든. 그런데 그 앞에 죽은 스님보다 더 크게 했어. 또 옆에 있는데 이 스님은 그 스님보다 또 더 크게 하고 사리탑을 부도탑을 크게 세운 것의 최후의 승자는 누구냐, 가장 늦게 죽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걸 알았다니까. 거기 가서. 그래서 나도 사리탑을 크게 세우려면 늦게 죽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사리탑이 뭣입니까? 사리탑이. 또 중국 얘기를 내가 할게요. 육조 혜능의 제자, 남악 회양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어요. 이 스님은 불교사에 그런 큰 업적이 없어요. 사실. 그런데 이 스님이 왜 중요한 스님으로 우리 불교사에 등장하느냐. 제자를 하나 잘 둔 거야. 그 제자가 누구냐? 마조라고 하는 스님이에요. 마조. 성(姓)이 마씨예요. 육조 스님은 뭐예요? 여섯 번째 조사 스님이라고 육조잖아요. 옛날 스님들 이름이 재미있어요. 본인이 그렇게 지었다기보다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주는 건데 그 스님은 이름이 도일이야. 근데 성이 마씨라서 도일 스님이라 안하고 마씨 조사 스님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마조(馬祖) 스님이야. 이 마조라는 스님이 어마무시하게 큰 스님이거든. 이 제자를 놓으니까 어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남악 회양이 불교사에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스님이 됐어요. 근데 가서 보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름 없는 스님의 부도탑 같아. 요만해. 조만한 거. 음달지인데 거기다가 이렇게 딱 하나 세워져 있더라고요.
근데 그 남악 회양 스님의 업적의 하나, 마조 스님 앞에서 기왓장을 드르륵드르륵 갈았어요. 마조 스님 참선한다고 이래 앉아 있는데, 갈았거든.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시끄럽게 스님 왜 거기 뭐 하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기왓장을 간다.’ ‘그 기왓장을 왜 내가 참선하는 앞에서 그렇게 자꾸 시끄럽게 갈고 있습니까?’ ‘이걸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아니 동(銅)을 갈아서 그 면을 만들면 그 면에 얼굴이 비취잖아요. 그래서 옛날에 그걸 동경(銅鏡)이라고 그러는데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기왓장을 아무리 간다고 얼굴이 비치겠습니까?“그래 스님, 아니 어떻게 기왓장을 가지고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그러니까 이 스님이 뭐라는 줄 알아? “그래, 그러면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채찍으로 소를 때려야 옳으냐 수레를 때려야 옳으냐?” “그거야. 당연히 소를 때려야지요”. “그래 너, 그러면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냐?” “아니, 마음의 번뇌를 끊으라고 그랬지. 앉아서 무조건 폼만 잡고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느냐?” 그걸 마전(磨塼)법문이라 그래요. 전이라고 하는 건 벽돌 전자, 마는 뭐냐 간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벽돌을 갈았다는 법문,이 법문 하나로 남악 회양 선사는 위대한 선사가 된 거예요.
불도(佛道) 수행이 껍데기를 화려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이겁니다. 껍데기를 화려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종교라는 게 아니 불교 뿐만 아니에요. 아니 그렇다고 우리가 알맹이가 화려한 게 있는데 그 알맹이 화려한 것을 그 공덕을 찬양하고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뭐예요? 껍데기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껍데기를 완전히 무시해 버려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또 노래 한 곡 듣고 이어 가겠습니다. (노래: '내가 만일')
점점 갈수록 노래 내용이 더 심오해집니다. 참고사항으로 내가 시인입니다. 나는 어디 가서 내가 참선하는 선객(禪客)이다. 다른 거는 자랑 안하지만, 내가 선객이다. 이거는 내가 항상 자랑합니다. 그리고 시인이다. 선시를, 참 훌륭한 선시를 한번 써보고 싶어서 시인이 됐는데 아직까지는 못 썼어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말 여러분들이 들으면 감동을 하고 깜짝 놀랄 만한 그런 시를 멀지 않은 날에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금강경 원문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제26, 한문으로 된 걸 먼저 한번 읽겠습니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提, 於意云何)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부(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언(須菩提言)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불언 수보리(佛言須菩提)
약이삼십이상관여래자, 전륜성왕(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轉輪聖王)
즉시여래(卽是如來)
수보리백불언(須菩提白佛言)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불응이삼십이상관여래(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이시 세존 이설게언 (爾時 世尊 而說偈言)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참 감동스러워요. 선시를 쓰려면 이런 시를 하나 써야 되는데, 이제 사구게가 뒤에 하나 나왔잖아요. 한글로 번역된 걸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수보리야 너의 뜻은 어떠하냐?
32상으로서 여래를 보겠느냐?
수보리 말씀드리되 그렇고 그렇습니다. 32상으로서 여래를 보겠습니다.
부처님은 32상 80종호를 갖추고 계시다. 이게 무슨 말이냐. 32상, 80종호 이거 다 일일이 얘기할려면 어렵잖아요. 미간 상간에 이 구슬을 하나 박아놓았잖아요. 원래 구슬이 아닙니다. 이게 이제 하얀 털이야. 백호. 흰털이 여기에 딱 있다는 거예요. 눈썹도 잘 생기고 눈도 잘 생기고 코도 잘 생기고 입도 잘 생기고 이 소리입니다. 잘 생기셨다는 거야. 근데 그러다 보니까 이제 부처님 경전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 사진을 하나 착 찍어놨던가. 누가 그 당시에 부처님 모습을 보고 초상화를 하나 딱 그려가지고 지금까지 왔으면 부처님이 요래 생겼구나 이렇게 딱 우리가 알 수 있는데 천만 다행으로 그 당시에 사진을 아무도 안 찍어놨어. 또 옆에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래 그려 놓은 게 없어졌어요.그리고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법문을 직접 들은 성문들은 이 조각 같은 걸로 불교를 형상화할 때 부처님 발을 이렇게 집어 놓는다든지 부처님 자리는 비워놨습니다. 보리수나무를 딱 만들어 놓으면 그 밑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고 해서 자리만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매우 천만 다행입니다. 왜냐면 그 당시 설문대로 하면 내가 보니까 이렇게 부처님이 안 생기고 이렇게 생겼던데 매우 까다로웠을 건데 불상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나타나기 시작한 거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난 상당히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된 거예요? 부처님이 남기신 설법을 들어보고 부처님의 행적을 살펴볼 때, 인류 역사상에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있었던가 그리고 또 경전 내용에 이렇게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얼굴 이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각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그걸 나타내는 겁니다. 그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때요? 석굴암 부처님, 경주 불국사 위 석굴암 부처님 있죠. 참고사항으로 그 옛날 소천 스님이 불국사 주지를 하셨다고 합니다. 근데 내가 어릴 때 시자를 하면서 들어 보면, 실제 실질적인 주지는 누가 했느냐, 광덕 큰스님이 하셨다 그래요. 그러면서 그 후에 그러면서 사형 사제 되시는 분, 능가 스님이라고 계세요. 그 스님이 이제 그 석굴암 주지를 하시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살았다 이런 얘기를 하시고 그러는데 그거는 여담으로 하는 얘기고.
하여튼 불상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장 아름답게, 불상도 만드는 전문가가 있잖아요. 그래 이게 어떤 분이 만들었는지 아주 잘 만드셨어요. 우리 불광사 보광당 불상도 잘 만드셨는데.그러나 32상 80종호를 다 갖춘 부처님을 아무리 거룩하게 만들어도 그건 껍데기다. 이건 불교가 아니면 이런 얘기를 못해요. 이게 뭐냐 하면 여래를 보겠느냐 하니까 수보리가 “부처님도 얼굴이 거룩하고 참 저는 부처님 얼굴을 볼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근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만약 32상으로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니라." 전륜성왕도 부처님하고 같이 32상 80종호를 갖추었다. 경전에 그렇게 돼 있어요.
근데 이건 우리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어요. 그래 그럼 얼굴 잘 생긴 걸로 부처님이라 할 것 같으면 영화 배우 아무개도 그럼 부처님이겠네? 맞죠? 얼굴이 잘생긴 걸로 하려면 저기 어디 가보니까 누구도 얼굴이 잘생겼던데 그러면 그 사람도 부처님이겠네 이 소리예요. 수보리야 나는 얼굴이 비록 잘생기기는 했으나 얼굴 잘 생긴 걸로 내가 부처님이 아니다 이 소리예요.그런데 여기에 효림이 하나 더 보태자면 무슨 얘기냐 하면, 그러나 잘생긴 불상 하나를 대하면 거기서 신심이 나잖아요. 아무 불상도 없고 한데 가서 좀 기도하고 해라. 그러면 신심이 안 나죠. 불상을 쫙 거룩하게 모셔놓고 거기 가서 절을 해야 신심이 쫙 나오고 좋단 말이야.
설악산 봉정암, 내가 설악산하고 인연이 많이 있어서 젊을 때부터 많이 살았으니까 거기 봉정암에도 그 어느 해 한겨울에 눈이 쌓여 있는데 혼자서도 밥 끓여 먹으면서 내가 기도를 한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또 그리 멀지 않은 때에 백담사에서 교수사도 하면서 젊은 스님들 대상으로 선에 대한 강의도 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산이 삐쭉삐쭉하게 생겨가지고 험상궂게 생겼잖아요. 그게 멋있는 거야. 설악산의 매력이 그래요. 사람들이 불자거나 불자가 아니거나 1년 365일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몰려들잖아요. 아니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현장 스님이 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시안에 그 대안탑을 거룩하게 세워놓으니까 그거 하나 보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가지고 발 디딜 틈이 없이 몰려가서 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온 많은 사람들 중에는 껍데기만 본 사람이 있잖아요. 현장이 남긴 반야심경을 독송할 줄 알고 더 가서 마하반야잖아요. 반야(般若). 광덕 큰스님의 사상의 핵심이 뭐냐? 반야(般若) 사상입니다. 성철 스님은 중도. 중도 많이 이러잖아요. 중도가 반야요. 반야가 중도라. 선사들이 무심 무심 그러잖아요. 무심이 반야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삼매 삼매 염불삼매에 들어가면 그게 반야야.
근데 마하반야바라밀. 이거 우리 맨날 독송하잖아요. 그게 현장스님이 번역한 건데 그래서 아니 껍데기를 무시하지 말아라 이 소리예요. 그러나 더 귀중하게 껍데기를 훌륭하게 만들면서 알맹이 그래서 진짜 중요한 거는. 우리 사람의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겼어. 그런데 느낌이 그 사람 보면 아이고 뺀질뺀질해가지고 참 정나미 없게 생겼다. 아니 어떤 사람 얼굴이 예쁜데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저 사람 눈빛을 보니 참 순하고 어질구나. 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네.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속에 있는 것이 얼굴로 표현됩니다.
알맹이를 충실하게 해라. 성형외과 가서 돈 있는 사람 성형 하지 마라 이러면 성형외과 의사가 나한테 와서 스님 우리 영업 방해한다고 이럴지 모르겠는데, 아니 나이 들어 가지고 피부 곱게 하려고 피부 마사지 하러 간다고 제가 어디 가서 마사지 숍에 가서 비싼 돈 주고 그렇게 마사지하는 시간에 부처님 경전 한 번 더 읽어서 내 마음을 아름답게 하자 이러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고 감동합니다.
수행을 한 것이 얼굴에 드러나고 그러느데, 효림은 아직 수행이 덜 돼가지고 얼굴에 그런 게 잘 안 드러나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오늘 법문을 하다 보니까 한 번 더 죄송한 생각이 드네요. 저 스님 얼굴 껍데기 보니까 참 감동스럽네 이래야 되는데 그 껍데기로 여러분들을 감동 못 드려서 죄송하다 이런 뜻이에요.
수보리 부처님께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의 뜻을 알 것 같으면, 제가 부처님 뜻을 이렇게 살펴서 보니까 응당 32상으로는 여래를 보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수보리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부처님이 여기에서 게송을 하나 딱 지었어요. 이게 금강경 게송 가운데, 사구게 가운데 대표적인 게송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가 인구
에 많이 회자되는데 그거는 사구게 안에 많은 사람이 포함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게송으로 얘기하는 거는 아닙니다. 금강경에는 이 사구게라고 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지금 이것이 금강경의 대표적인 게송의 하나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만약 형색으로 나를 보거나(내 생긴 걸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찾으려 한다면(야 저사람, 말을 청산유수처럼 번드리하게 잘하네. 내용은 없어. 내용은 없는데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으로 부처님을 구한다는 말이지요),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사도(邪道) . 내가 이런 말을 자꾸 거듭해서 하지마는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경전 내용이 이래 돼 있잖아요. 아니 벤츠 타고 다니는 놈 보고 큰스님이라 하고, 아니 금란가사라고, 하얀 가사를 입고 꾸며 가지고. 요즘 큰 스님들이 금란가사 입는 게 유행이더라고. 내가 보니까. 내가 존경하는 어떤 스님이 있어. 근데 제자들 어디 돈 많은 절에 주지되었다고 금란가사를 하나 해다 주더라는 거야. 요즘 염색이 발달돼 갖고 진짜 금이 아닌데도 물을 번쩍번쩍하게 들이는 그런 옷감이 있어. 가격이 얼마나 하는 건 모르겠어. 그래서 내가 스님이 그 옷을 입는 걸 내가 보게 되면 나는 다시는 스님 안 보겠습니다. 그렇지. 세상 사람들이 다 이런 걸 입는다고 나조차 이런 걸 입어서 되겠어. 그렇다고 없앨 수는 없고 뭘 어떻게 해야 되겠나? 다른 스님한테 선물로 주십시오. 어떤 스님한테 선물을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 하더래요. 그런데 천하 사람이 다 입어도 임효림은 절대 그런 옷 안 입습니다. 껍데기 너무 장식하면 안 좋다는 거예요.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 이 마무리를 해야 되겠는데 전에 이제 내가 젊은 시절에 그 어느 기업에서 나를 초청해 갖고 강의를 해달라고 그래요. 설법이 아니고 강의를 그래요. 내가 불교 홍보하러 온 거는 아니고 이거 부처님 게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무리로 이 게송 하나 설명해 줄 테니까 한번 들어봐라. 돈 많이 벌었다. 그게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느냐. 껍데기. 그게 돈 버는 데 취해 가지고 바빠서 당신들이 놓치고 있는 게 뭐냐. 그 속에 알맹이를 채우지 못한 거 아니냐. 이거보다 더 불쌍한 게 어디 있노. 대체 삶의 목적이 뭐냐? 똑같은 말로 하자면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돼서 목적이 뭐냐. 출가의 목적이 금강가사 입으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잖아요.정말 다 떨어진 누더기 입고, 몸에서는 쉰내가 풀풀 나지만 마음속에 하나 챙기고 있는 알맹이가 있다. 이게 수행을 제대로 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불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에 열심히 다니고 부처님한테 와서 하는 것은 껍데기를 충족시키자는 건 아니에요. 지금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노래 한 곡 더 남았어요.
진짜 좋은 노래를 하나 했는데 마무리하겠습니다. 뭐냐 하면 나는 기복 신앙을 무시하지 않아요. 왜 그러냐. 아니 부처님한테 가서 절을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라 그러잖아요. 대학 입시시험 친다고 고3 엄마들이 와가지고 밤새도록 기도하잖아요. 기복을 빼놓고 너 기도 열심히 해봐라. 그러면 안 해. 그러니까 뭔가 미끼를 줘야 된단 말이에요. 미끼. 그게 기복이에요. 그 계기를 마련해 주니까 그냥 막 정신없이 기도를 열심히 하거든.
그렇게 기도를 해서 부처님한테 복도 받고 삼매를 맛본단 말이야. 그런 것으로서 기복을 무시하지 않듯이 부처님을 거룩하게 조성해서 법당을 장엄하는 것은 그걸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처님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방향을 보라고 하는 거예요. 방향. 이것으로 오늘 마칩니다. 끝으로 노래 한번 하십시오. 불광 노래. 우리는 불광에서 빛나고 불광은 우리를 빛내리. 이 구절이 저는 마음에 들어요. 누가 썼는 가는 잘 모르겠는데.(노래 : '불광') (청명거사님 녹취)
♬ 기타 박민수 님의 반주에 가수 자권님의 노래 : 여시아문, 서른즈음, 내가 만일, 뒤이어 부른 '불광' ♬
마음 하나를 깨끗이 하는 이들이여 우리들이 부처님의 빛이로다.
부처님의 빛 불광 불광 우리는 불광에서 빛나고 불광은 우리를 빛내도다.
누구든지 마음 하나를 깨끗이 하면 누구든지 부처님의 빛이 됨이로다.
마음이 깨끗하면 불광 불광 우리는 불광에서 빛나고 불광은 우리를 빛내도다.
마음 하나를 깨끗이 하는 이들이여 우리들이 부처님의 빛이로다
♬ 찬탄곡 : 무소유의 노래( 덕신 작사, 김회경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갈 곳이 어디메뇨 머물 곳은 어디런가 대가사와 바루 한 벌 바랑에 넣었으니
번뇌의 봇짐인가 수행의 도구인가 수행자의 구도 행각은 걸림이 없어라
가진 것도 없었으니 버릴 것도 없다네 무소유에 집착하면 소유가 아니런가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바랑 메고 길 나서는 나그네의 당당함에 무소유의 소식을 찾을 수 있었네
삼독의 고삐는 풀어서 놓아주고 해탈의 속박마저 벗으려고 하는구나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마음은 풍요롭고 머물지 아니해도 발걸음은 가벼워라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발원문 낭독 : 송파 23구 명등 향원성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법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시는 법회 식구들을 배웅하시는 법당 안내팀의 봉사 모습입니다.
법회가 끝나고 법등끼리 둘러 앉아 생일 맞이하시는 분의 파티도 함께 하시는지 케잌에 초를 켜고 노래도 부르는 구법회도 있으니 주변이 다 즐거운 마음으로 법등 모임을 갖고 계시는 불광 형제들의 모습입니다.
보광당 일요 법회가 끝나고 대웅전에서는 금강경기도가 장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2시. 어느분들이 배치를 해도 너무도 완벽하게 빈틈없이 법회 준비를 해주시는 청정 봉사팀 입니다.
지난 주에도 화광사, 조계사에서 1인 시위 정진을 해주셨고, 토요 법회 때 우리의 사실 전달을 위해 불광형제의 지속적 시위.
오늘은 봉은사 백고좌대법회 지홍 스님 법사 초청을 규탄하는 시위수행정진이 봉은사 앞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00분 이상의 불광형제들이 동참하셔서 더운 날씨에도 시위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봉은사 백고좌대법회 법사 초청으로 법문하시는 지홍 스님. 과연, 불광 사태의 중심에 계신 지홍 스님께서는 저 법상에 앉으실 때 마음에 걸림이 없으셨을까요?
봉은사 시위에 동참해 주신 형제 여러분 찬탄드리며 우리들의 一心으로 불광 정상화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법회일지 작성하신 마음님, 법문 전체 풀어쓰신 청명거사님, 곳곳에서 사진 찍고 자료사진 챙기신 지일심보살님과 많은 불광보현행자님들 덕분에 청정한 불광의 역사는 오롯이 기록됩니다 감사합니다 _()()()_
효림스님 감로법문 감사드립니다.
불보살님의 화연으로 처처에서 행원
수고하신 덕분에 법회일지를 편집완성
너무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_()_
불보살님들!
편집 , 사진 올린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효림스님 금강경 법문도 개인적으로
매번 마음에 와닿은 부분이 많아
다음 법문을 기다리게 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기타 박민수님 가수자권님들께서도
노래가 너무 좋아 계속 듣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감사와 찬탄에 박수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