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스무하룻날 정기휴무일을 맞아
황금들판과 조홍감을 보러 새벽에 강화도로 달렸다.
드넓은 황금들판의 풍요로움과
감나무에 때 이르게 투명하고 빨간 연시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걸 머릿속에 연상하며 달리니
차안에서 벌써 마음이 설레며 조바심이 나고 바빠진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는 예보가 듣긴했지만
조금 내리다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왔으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참으로 하느님도 무심하시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한달에 두번 쉬는 황금 휴무일인데...
카메라가 비에 다 젖어도 개의치 않고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막으며 발발거리고 댕기며
찍고 다녔더니 친구가 전화를 해서 가로되 미친눔이란다.
그 녀석은 미친눔의 친구다.
황금 들판에 벼가 다 베이지고
황금 자국만 남아도 운치가 있어 좋다.
가로수로 미류나무가 심어졌고
멀리서 봐도 좋고 달리는 차안에서도 보기에 좋고
여름에 농사짓다 미류나무 그늘 아래서 새참을 먹어도 제격일 것이다.
미류나무의 잎은 가늘고 긴 잎자루 끝에
큰 잎이 달려 있어서 가는 바람이 불어도
크게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음악을 들려주니
나무밑에 돗자리 깔고 편하게 누우면 저절로 자장가를 불러준다.
비가 오지 않고 빛이 좋았다면 더욱 운치가 있었을텐데 아깝다.
외따로 떨어진 바닷가에 수형좋은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올해는 감을 많이 열리지 않아 조홍감이 몇개만 달렸고
잎만 무성하다 대부분을 떨군 것 같고 가는 실가지가 무수히 많다.
감나무는 해걸이를 하며 감이 달리니
내년에는 틀림없이 많은 감이 달릴 것이다.
광성보라고 하는 곳에 왔다.
사적 227호며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중의 하나로 고려시대부터 축조하여 내려 오다가
효종 9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지금의 광성보 축조를 완성했다고 한다.
구한말 1871년 신미양요때 통상조약을 요구하는
미국 극동함대와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물리첫으나
그후에 미국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이곳으로 처들어 와서
분전을 거듭했으나 무기의 열세로 패하여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자결하여 순국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당시의 장군이 어재연이었고
이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를 1976년에 복원하였고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와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고
장열하게 전사했거나 자결로 생을 마감한
당시의 애국지사나 그 자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보다
후한 보상이 길이길이 자손만대에 주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농촌 풍경과 감나무를 찍기로 했으니..
이곳의 감은 무수히 많이 달렸고 이뿌나
사람이 먹기에는 내 고향의 감보다 작고 맛도 없을 것 같다.
고향에서는 이런 감을 돌감이라 불렀고
곶감을 만들 수 없고 얇게 잘라 말려 아이들 간식거리로 쓰거나
무서리가 내리고 난후에 연시가 되어서야 따 먹을 수가 있었다.
이런 감도 없어서 못먹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곳에서도 이런 감은 따지도 않고
겨우내 그냥 방치해 두는 듯하고 까치밥이 되고 있다.
힘들게 딸 인력도 없고 상품 값어치도 없고
금방 홍시가 되어 떨어지며 오래 보관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빛이 좋은 날 꼭 다시 찍어 보아야겠다.
강화도는 어딜가나 감이 흔하고 문전옥답이 펼처져 있다.
경지정리가 잘된 비옥한 땅이 넓기도 하며
항상 풍년이 보장되는 것 같고 농로가 좋아 농사짓기도 수훨해졌다.
또한 섬이니 사면이 바다가 펼처져 있으며
내가 보기엔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이나 다름이 없는데
강화도가 고향인 친구 시키는 그기에 뭐가 볼게 있느냐며 항상 핀잔이다.
친구의 옛집에도 감나무가 많으니
감을 몽조리 따올 요량으로 주소를 문자로 보내라 했더니 주소가 왔다.
논가운데 하얗게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은
추수를 끝내고 짚을 말아놓은 것으로 겨우내 소먹이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런 논에서 재배된 쌀은
분명히 극약인 농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쌀인 것이다.
농약을 뿌린 논의 볏짚을 먹인 소는 임신이 되지 않는다 한다.
길옆에 호젖한 외딴집 한채 있고
뒷쪽 둔덕에 감이 무성하게 많이 달린
감나무 한그루가 비를 맞으며 무심히 서 있는듯 보이는게
비가 와서 내 마음이 서운한 탓인 모양이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이고
감나무 아래에는 추수를 긑낸 논과 푸성귀를 거두어 들인 밭과
옹골차고 실하게 많이 달린 감이 내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든다.
이 감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마알간 홍시가 된
감만 오롯이 남아 있다면 저욱 보기에 좋을 것 같다.
제사상에 꼭 곶감을 올리는 이유는....
이 감나무 같이 많은 자손을 퍼트리라는 뜻이란다.
요건 이미 달콤한 홍시가 된듯하나
갓을 고처 썻다가 행여 오해나 사서
창피를 당할까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돌아설려니 너무 아깝다.
아마도 저절로 떨어져 노래기의 밥이 될 것 같다.
낼도 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