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참선의 요령 (반성은 자기개발의 지름길이다)
반성은 자기 개발의 지름길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만일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면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은 거울과도 같아서 매일 닦아야 빛을 발한다.
시기 질투 노여움 비난 험담과 같은 감정을 버리고
물질과 욕심에서 비롯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성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
반성은 자신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고,
단점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반성을 통해서 마음과 육체가 조화로워지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다.
붓다는 반성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살피고 반성한 후,
잘못된 성격을 수정했다.
자연의 섭리에 비추어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바른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만일 옳지 않다면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모든 상념과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어렵다.
그러려면 자신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반성은 엄하면 엄할수록 좋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엄격하게 대할 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다.
반성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해서
이미 저지른 실수가 없어질 리 없다.
하지만 신지 스승은 말씀하셨다.
상념대에 기록된 잘못은 반성을 통해서 황금빛으로 수정된다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반성을 하고,
또 반성으로 인해 밝혀진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은 좋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계속 후회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구속하는 것이 된다.
집착이라는 어리석음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반성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자세를 흔히 중도, 중용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나름대로의 중도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다른 한쪽의 기능이 마비된다.
세상은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이 상대적으로 있듯이
모든 것이 균형이 잡혀 있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반성은 마음의 조화는 물론 자기 개발의 지혜를 안겨준다.
반성 없는 참선은 없고, 마음의 조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신지 스승의 강연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사업과 가족의 발전,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정체성에 관한 의문 때문에 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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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먼저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사용하지 않던 낡은 창고를 개조하기로 하고,
퇴근을 하면 곧바로 재료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톱질과 못질을 하고 전기배선을 깔았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작은 책상 하나를 놓았다.
드디어 다다미 석장을 넉넉히 깔 수 있는 넓이의 선방이 완성되었다.
그날 이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선방에서 반성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밤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우선 반성하는 습관을 익히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부좌를 틀었다.
등이 굽어지면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에 허리를 곧추 세웠다.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조용해지지 않았다.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끼어 들었다.
명상은 어느새 잡념으로 바뀌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이 세상 너머 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발동하여
끝까지 가보고 싶어 다시 명상에 들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자 산만하기만 했던 반성이 조금이나마 몸에 붙게 되었다.
신지 스승의 가르침대로 먼저 한 살에서 다섯 살까지,
다섯 살에서 열 살까지. 5년 단위로 묶어서 반성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열 살에서 스무 살, 스무 살에서 서른 살..
10년 단위로 반성하면 된다.
처음 단계인 한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반성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하는 정도로 그치고 만다.
더욱이 세 살 이전의 기억들은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지랑이처럼 환상이 떠오르다가 사라지고 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5년 단위로 반성하겠다는 다짐은 무너져버리고,
이리 저리 헤매고 있는 마음에 이끌려 어느새 오늘의 매상이나
내일 있을 일들에 붙들리게 된다.
'사람이 과연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은 어지럽게 흩어지고,
참선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미로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반성 참선이 잘 되고 안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물결같이 흔들리는 마음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저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참선을 하겠다는 마음만은 버리자 말자.
단지 처음 반성을 시작했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이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이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참선을 하는 일은
내 인생에서 불가사의한 일이다.
신지 스승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사건이라도
노트에 기록하면서 반성하는 방법이 좋다고 했다.
나는 실행에 옮겼다.
간단하게 생각하고 덤벼든 반성이었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좀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필사적으로 반성 명상에 몰두했다.
그러자 그 동안 기억하기 힘들었던 세 살 이전의 일들이
단편적으로나마 떠올랐다.
그것은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이었다.
' 메모! 메모! 메모! '
또다시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노트에 메모했다.
그날 이후 어떤 기억이 떠오르면 반드시 메모를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단상이 떠오르면 걸음을 멈추고 수첩을 꺼냈다.
월말이 되면 한 달 동안 적어두었던 글을 정리해서 반성노트에 적었다.
노트에 적힌 사건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환경, 분위기,
등장인물들을 떠올리며 내가 무슨 생각, 어떤 행동,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분석했다.
반성 명상을 거듭한 결과
30년 전의 일들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반성은 깊이 하면 할수록 후회되는 일이 많았다.
기억 속에 나는 불효자였다.
아버지께서 형제들을 불러 모아 꾸중을 할 때도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귀를 닫았다.
딴 짓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 이단아처럼 굴었다.
" 너도 여기 와서 앉아! '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반성이나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화를 내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웃음보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성난 마음에 휘발유를 뿌린 것이다.
나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맨발로 도망쳐 나왔다.
밤이 되어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창고에 숨어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인데도
어머니께서는 음식을 들고 와서 나를 감싸주었다.
50년이나 지난 일을 반성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좀처럼 흘리지 않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두 방울, 세 방울....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반성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반성을 시작한 후에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본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연령별로 등장인물들을 떠올린 후.
그들로 인해 생긴 많은 사건들을 차례차례 반성하기 시작했다.
출처; 부처님 손바닥에서 30년 - 쿠치키 다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