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를 꺼내보니 애 엄마가 보낸 메일이 있었다. 불러오는 글이 온통 영문이라 무슨 뜻인지 몰라 물었다. 내용인즉 백신 추가접종 안내문이란다.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신문에 관련기사들이 있나하고 살펴보았다.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60~74세 구간의 연령대 중 질환이나 다른 사유로 의사는 있었으나 접종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추가 접수 사항이었다.
그런데 어느 기사에선가 예약자와 접종자 등의 구분에서 백신거부자라는 단어가 있었다.
'백신거부자?'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접종거부란 구체적인 개개인의 의사가 나타나야 그런 용어를 쓸 수 있을텐데...
자세히 내용을 살폈다. 그러니까 예약자와 접종완료자를 제외한 기회를 넘긴 사람들을 두고하는 말이었다. 입맛이 썼다. 꼭 이렇게 갈라치기를 해야 기분이 좋을까? 백신반역자는 어떨까?
누가 나에게 안맞을 거냐고 물은적이 있었나? 아니, 절대로 없었다. TV도 보지 않고 언젠가 백신접종 접수에 대한 문자멧세지 한번 받은적이 있을뿐, 거부의 의사는 없었고, 제때 접수를 하지 못한 사실외엔 기억에 없다.
정보에 민감한 사람도 있겠으나 휴대폰 문자 한번 못보았다고 배신자 취급은 심하다. 누군들 이 무더위에 마스크를 한시라도 더 오래 쓰고 싶겠는가?
살다보면 이런저런 사정도 있고, 더구나 백신이 남아넘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서 서로 맞으려고 아우성인 현실에서 그런 용어를 만든다니.
9시가 되어 콜센터와 지역보건소에 전화를 하였다. 통화중 대기신호가 아니라, 아예 2~3초내에 연결을 끊어버린다. 그만큼 접속자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외출준비를 하고 나서니, 애 엄마는 몸 컨디션이 좋지않으면 천천히 맞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백신거부자란 단어가 거슬린다.
병역거부자, 납세 거부자...그러한 부정적인 단어가 자꾸만 연상되었다. 사는게 뭐라고? 맞고 죽어도 더러운 소리 듣지말자.
보건소 앞마당 천막아래엔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70년대 논산훈련소 대기장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잘한다.그렇게라도 먼저 맞아야지!
나는 그동안 바깥 출입을 자제하면서 은행 창구 등에서 젊은이들을 볼때마다 백신접종 여부를 물었다. "나이많은 우리는 집에서 안나오면 그만인데,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자식 세대들이 빨리 맞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었다.
하긴 이 나라는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양보를 하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는게 오래된 관행이란 걸 모르는바 아니다.
보건소에 도착 2층 담당부서에 들어서니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앞쪽 60대 여성 몇이 직원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이게 말이 돼요? 누가 접종 예약하라고 이야기 해주었어요? 백신도 제대로 못 구하면서 하는 짓이 뭐이래?"
그말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 듯하다. 벡신이나 제대로 확보하고 제떼 맞지 않는 사람들 질책해도 늦지않다.
그럼에도 나처럼 알고도 사정상 기회를 늦추었거나, 정말 뉴스나 휴대전화상의 멧세지를 놓치고, 예약시기를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마음속으로 세금도 이렇게 느긋하게 거두었으면 얼마나 살림에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증도 풀렸기에 고생하는 직원들이 안스러워 한마디 거들었다.
"여기 있는 직원들 잘못이 뭐 있겠어요?누군가가 판단을 잘 못한 탓이겠지요."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백신도 부족해서 난리고, 집에만 있어 양보를 한답시고 예약을 늦추었는데, 백신거부자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합니다. 맞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맞을테니 다음 시기나 알려주세요."
이럴땐 정말 하고싶은 산속의 자연인이 생각난다. 혜택도 간섭도 받지않고, 세상과 멀어져 생각이 좁혀지는 삶이 좋아 보였다.
보건소를 나오다 뒤를 돌아다 보았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이다. 저들이 무슨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까? 갈수록 힘드는 삶, 설사 코로나가 끝난들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당장은 야간 택시도 두명만 타야하고, 런닝머신 음악도 빠르면 안되고.. 문득 떠오르는 조지오웰의 '1984'. 바탕이 다른 것은 거대 권력이라기 보다, '코로나'라는 광범위한 질병의 공포일 뿐이다.
마치 로또인양 자정부터 백신예약 클릭전쟁이 벌어져서 새벽에 끝났는데, 해당 사이트가 마비 되었단다.
세월이 지나고 이 시기를 회상하면 온통 코로나 사태의 악몽으로만 기억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