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 6시 40분발 고속버스로 광주에 갔습니다.
졸다 졸다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졸다 보니 광주. 11시경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과 만나 바로 담양에 가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근처에서 장터국밥을 맛나게 먹고, 다시 광주로 와 5·18 묘역을 둘러보고 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오기가 아쉬워 정읍에 산다는 후배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들렀습니다. 정읍에 오면 '피리매운탕'을 대접하겠다는 카페에 올려놓은 글에 혹해서였지요. 피리매운탕의 피리가 피리 소리가 나는 물고기는 아닐 거라는 것쯤은 짐작했지만 그래도 피리매운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언젠가 대학에 초대되어 갔을 때 확실하게 쓴 소리를 한 후배라 근황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피리매운탕에서는 다른 매운탕처럼 보글보글 끓는 소리 외에는 역시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정읍에서는 피라미를 피리라 부른다고 했는지, 피라미 새끼가 피리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생 멸치 같이 생긴 자잘한 물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피리와 미나리와 시래기를 넣고 고추장을 많이 풀어 걸쭉하고 끓인 좀 특이한 매운탕이었습니다. 피리매운탕을 안주로 후배는 소주를 저는 맥주를 마시며 좀 떠들며 놀았습니다. 중간 중간 저는 매운탕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피리 소리는 아니더라도 왠지 그 작은 물고기가 무슨 소리라도 낼 것 같아서였습니다.
후배의 '거시기' 소리가 처음에는 그저 매운탕의 감칠맛 나는 양념 정도로 들렸는데, 나중엔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가 매운탕마저 텁텁하고 제 맛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걸 후배는 알까요? 알았다 해도 어쩌겠어요? 이미 습관이 되었다는 걸. 아니 제가 보기엔 그곳이 전라도라는 걸 그리고 자신이 전라도 토박이라는 걸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땐 창피해서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머리가 크고 나서는 떳떳하게 쓰게 되었다며 또 거시기를 연발했습니다. 그 몇 시간 동안 평생 동안 들을 거시기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아아, 후배. 거시기 뭐시냐. 듣는 거시기도 좀 거시기 해줘라잉.)
광주에서 만난 제 나이 또래의 시사 만화가는 5·18 묘역에서 느닷없이 개혁이냐, 보수냐를 물었고, 정읍에서 만난 후배는 '역사적 공작'(촘스키의 말이라더군요)이란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경험을 들어 경상도와 전라도의 미묘한 감정 싸움이 그릇된 고정관념이라는 걸 이야기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일정한 지역에 오래 뿌리를 내린 적이 없어 전혀 부담감은 없었으나,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그래서 고향에 대해 말할 땐 톤이 달라지는 사람들을 오래 부러워했습니다. 특히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고향 이야기를 할 때면 저는 그만 주눅이 듭니다. 그래서 주눅든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별것 아닌 그야말로 사소한 신변잡기에도 제 웃음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는 걸 번번이 경험해 왔습니다.
무시로 노란 불만 깜박이는 불필요한 신호등을 몇 개 건너(차나 사람이 적어 굳이 신호를 보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먼 미래를 위해 너무 일찍부터 나와 떨고 있는 신호등들이 얼마나 심심할까, 뭐 이런 동시 같은 생각도 했습니다) 정읍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끊고, 1시간 가량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후배는 역 앞에 있는 조그만 감자탕 집으로 갔습니다. 돼지 등뼈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으며 또 후배는 소주를 마시고 저는 맥주를 마셨습니다. 옆 테이블에 귀대하는 군인이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불콰해진 후배는 제대한 예비역답게(?) 어느 사단이냐, 고향이 어디냐 등등을 물어보았습니다(군대 갔다 온 사람 치고 옆에 앉은 군인에게 이런 것 물어보지 않는 사람을 내 보덜 못했네 참말로!)
이십 년 가량 아래인, 그러나 등단은 비슷한 시기에 한 후배 작가와 전라북도 정읍에서 그렇게 인생의 어느 한때를 보내고, 저녁 7시 51분 정읍발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 전라도를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 지도를 펴면 정읍이라는 지명에도 반짝 하고 불이 켜지겠지요.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행은 기차 여행이 좋고, 기차 여행은 혼자가 좋고, 혼자 하는 기차 여행은 서너 시간이 최적입니다. 다행히 실내도 적당히 따뜻했고 쾌적하여 기분이 좋았는데, 옆 좌석의 남자는 이미 자고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후배의 작품이 실린 월간지를 조금 읽는데 차가 너무 흔들려 포기하고 멍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4시간 가량을 기차 안에서 보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까닭 중 하나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기다리는 것인데, 번번이 한두 역을 남겨두고 "호두과자 아직 없어요?" 묻곤 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잠시 딴 생각을 하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잊어버려 물건 파는 분에게 또 물었습니다. "아직 천안 멀었나요?"
이번엔 호두과자를 세 상자나 샀습니다.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호두과자 세 상자를 들고 인천행 전철로 바꿔 타자 여독에 눈꺼풀이 감겨왔습니다. 짧았지만 기분 좋은 당일치기 여행이었습니다!
(한 상자는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 샀는데, 꼴랑 그거 하나 들고 댁을 방문하는 것도 어색하고 하여 포기하였답니다. 마음으로 드시옵소서^^)
첫댓글변변히 대접도 못 해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정읍에 대해, 이 후배에 대해, 좋은 기억만 품고 계시길 바랍니다^^ 거시기는 줄이도록 노력하지요. 허지만 군대에서도 고참들한테 맞아가면서도 썼던 말이라 어찌 될랑가 장담은 못허겄습니다. 남은 겨울 잘 건너가십시오.
첫댓글 변변히 대접도 못 해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정읍에 대해, 이 후배에 대해, 좋은 기억만 품고 계시길 바랍니다^^ 거시기는 줄이도록 노력하지요. 허지만 군대에서도 고참들한테 맞아가면서도 썼던 말이라 어찌 될랑가 장담은 못허겄습니다. 남은 겨울 잘 건너가십시오.
이 내용을 읽고 거시기한 생각이 들었다. 기행문은 자세해야 된다고~ ^^`
나는 뺑파의 뒷문장을 처음에 '자제'해야 한다고로 읽어서리 앗, 자제해야지, 했는데 아니로군.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