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즈음-쯤, 생기기는 비슷해도
부산일보 | 기사입력 2007-10-02
문법이 복잡하고 어렵고 귀찮다는 사람이 많다. 이건 문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말과 글을 쓰다 보니 일정한 법칙이 보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 문법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면 앞뒤가 바뀐 셈이다. 실제로 문법 규정엔 예외 조항이 너무 많고 해설을 봐야 알 수 있는 규정도 제법 있어 언중은 지레 질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문법만큼 편하고 쉬운 것도 없다. 어차피 그 많아 보이는 예외란 것도 모든 경우를 하나하나 외우는 것보다는 쉽게 마련이다. 결국 '문법이 어렵다'는 엄살은, 투자하지 않고 그냥 얻겠다는 심보라고 해도 될까.
'호랑지빠귀가 울쯤이면 겨울 나그네새들이 모두 돌아갈 때입니다.'
도연 스님의 산문집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에 나오는 구절인데 표현 하나가 우리말 원칙을 어겨서 어색해졌다. '울쯤'이라는 말이 그렇다. '쯤'은 접미사다. 일부 명사나 명사구 뒤에 붙어 '정도'의 뜻을 더한다. '모레쯤, 25일쯤'같이 쓴다. 그러므로 '울쯤'처럼 관형사형 어미 '-ㄹ, -을' 뒤에 올 수 없다. 관형사형 어미 뒤에 올 수 있는 건 명사나 의존명사다. '먹을 때, 달려갈 사람, 할 수 없이'처럼 쓰면 된다.
'울' 뒤에 올 적당한 말은 '쯤'이 아니라 '즈음'이다. 즈음은 '일이 어찌 될 무렵'이라는 의존명사. 어미 '-ㄹ, -을' 뒤에 쓰인다. 그래서 '울 즈음, 할 즈음, 먹을 즈음'으로 쓴다.(물론 '이 즈음, 그 즈음, 요 즈음'처럼 관형사 뒤에 쓸 수도 있는데, 이 말들은 많이 쓰이다 보니 '이즈음, 요즈음, 그즈음'으로 한 단어가 돼 버렸다. 게다가 '이즈음, 요즈음'은 '이즘, 요즘'으로 줄어들기까지 한다.) 그러니 '울쯤'은 '울 즈음'이나 '울 때쯤'이면 좋았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접미사 '쯤'은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의존명사 '즈음'은 앞말과 띄어 쓴다. 그리고 관형사형 어미 '-ㄹ' 뒤에는 접미사가 붙을 수 없다. 이것만 알면 훨씬 덜 헷갈릴 것이다.
'…나를 보시고도 별 말이 없으시다가, 커피 한잔을 주시곤 일어설 쯤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강금실 산문집 <서른의 당신에게>에 나온 구절인데, 이 '쯤'도 '즈음'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