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영 화백과 김용옥 선생과 나.
현재 93수의 하반영 화백께서는 전북 군산의 화실에서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전주의 수필가이자 시인인 김용옥 선생님의 시아버님이시다.
"아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두 분의 대화를 어깨 너머로 물끄러미 쳐다본 적이 있는 나.
감히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는 범접함을 느낀 나는 돌아와서 졸작 한 편으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할 수 밖에.
- 축하할 일은 얼마 전 김용옥 선생님과 하반영 선생님의 작품이 담긴
畵詩集 <빛·마하·生成>이 출간되었다.
손수 전해주신 김용옥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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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도 젊다
김 정 화
세월을 잊은 모습이다. 뇌종양 수술 이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노화공이지만 남은 눈빛만은 여전히 당당하고 꼿꼿하다. 일곱 살에 잡은 붓을 망백의 나이까지 놓아본 적 없는 화가. 한 세기의 역사를 몸에 담은 그분은 오늘도 화실에 앉아 붓을 고르고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공의 눈과 가슴을 거쳐 길어 올려진 분신들이다. 명태 한 마리가 입에 낚싯줄을 꿴 채 바다로부터 들려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바다. 고향을 잃은 설움이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돋아 올랐다. 검은 산 가운데 빛을 머금고 선 고목을 들여다보면 그분이 고목이 되고 고목이 그분이 된다. 이러한 그림 앞에 서면 누구든 일출을 맞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질 게다. 화가의 방에는 산과 바다와 우주까지도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캔버스의 강렬한 붉은색이 돋보인다. 색채 상징주의의 말을 빌리자면 청색은 헌신과 결백을, 보라는 향수와 기억을, 녹색은 풍요와 동정심을 나타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은 청색과 보라와 녹색으로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기에 부족함을 느꼈을 게다. 캔버스 가득 적색의 열정을 쏟아 부어 생의 환희를 노래하려 했지 않을까. 감히 감상조차 하기 어려운 붓 자국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또 담아 본다.
언젠가 그분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지인이 선물 받았다는 그때 그림은 마치 동양화의 장생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자궁 모습을 한 산등선 아래로 봄꽃과 물오른 나무가 평온했고 빛을 머금은 태양이 들판을 물들이고 있었다. 하늘을 가르는 흰 새의 날갯짓과 봄 길을 걷는 여인들의 흰옷 행렬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분의 그림에는 유난히 ‘무제’가 많다. 감상하는 이의 생각을 헤집지 않으려는 작가의 배려이지 싶다. 화가는 의도하는 대로 그리고, 작품을 만나는 이는 제각각 느낌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분의 작품을 마주하여 마음을 적시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것을. 처음으로 방문한 화가의 방에서 미완성 작품까지 낱낱이 눈에 넣다 보니 과욕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불쑥 그림 하나를 내민다. 귀한 만남을 허락하여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예상치 못했던 그림까지 선물로 받았다. 몇 해 전, 일본 스케치 여행을 하고서 그린 화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탕지가 화선지나 캔버스가 아니다. 두꺼운 종이에 붉은 색지로 단단히 덮인 모양새가 종이봉투의 밑동이거나 포장 상자의 한쪽 모서리를 자른 것이지 싶다. 빈곤한 시절에 겪은 궁색한 버릇이 몸에 밴 까닭일 게다. 배고픈 설움을 거쳐 온 그분은 작은 물건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상품광고지, 냅킨, 포장상자까지 그분 앞에서는 마침맞은 화지가 된다. 젊었을 때 이중섭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하는 데 돈이 없는 이중섭 또한 길거리에 떨어진 종이와 담뱃갑, 담배를 싼 은박지 등에 그림을 그렸지 않는가. 적당한 크기로 오린 폐지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분의 소박한 마음이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붉은 바탕 위에 검정과 연노란색으로 어둠과 빛을 묘사했다. 빨강이 불덩어리일 테고 검정이 암흑이라면 노랑은 자유롭게 하늘로 승화하는 모습이 아닐까. 적과 흑의 강한 대비가 눈을 옭맨다. 새 생명이 부여된 그림에서 활화산 불길이 치솟으니 보는 이의 가슴 속으로 빛이 옮겨 붙는 듯하다. 그림의 뒷모습을 펼친다. ‘빛은 하나’라는 제목 아래 쓰인 숫자 ‘92’가 또렷하다. 내 나이 곱절인 숫자가 그분의 인생이다. 그분의 필적에서조차 삶이 묻어나는 것을.
그분의 곁에는 항상 빛이 머문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그림 속에 해가 들어 있다. 빛이 있어야 생물이 존재하고 성장하고 또 태어나게 되니 빛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겠다. 어둠이 빛을 이겨낸 적은 없지 않은가. 산이 불변하고 장생할 수 있는 거라면 그 이면에 반드시 빛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노 화백이 그림 인생의 마지막 극점을 가기 위해 빛의 길을 따르는 것은 아닐까.
그분의 그림에는 동서양이 꿈틀댄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풍경화를 그린 것은 물론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을 돌며 이국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놀라운 사실은 일흔 나이에 남미 스케치 여행을 했을 정도였으니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화실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마치 꿈길을 걸어 긴 여행을 마친 듯 현실이 새롭다.
작별인사에 화필을 놓고 두 손을 꼭 잡아 배웅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을 깎아 남에게 바친다고 했던가. 거칠어진 손에서 온기가 흐른다.
“나 이제 구십이 넘었어. 가는 길이 멀고 멀거든…….”
음성조차 듣는 이를 쭈뼛하게 한다. 그분의 이름을 떠올린다. ‘냇가 논 반 마지기에 어룽거리는 그림자’라는 뜻을 가진 노 화백의 이름은 하. 반. 영.
검은 바탕에 배산일홍(排山一紅)의 빛이 찍혀진다.
그분의 아흔은 아직도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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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마하·生成
시간은 누가 운행하는가? 인연은 어떻게 맺고 풀어지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그 정답은 무엇이며 있기는 한가? 이런 질문에 대해 누가 나에게 대답해 줄 것인가? 이런 화두를 놓아본 적 없이 인생의 애간장을 녹이며 나는 이순에 이르렀다. 이순의 육신은 허공에 발을 디디는 듯이 무기력하고 두뇌는 흙탕이 뒤집혀진 개천물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아무런 의식작용 없어도 호흡하듯이, 의무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저 살아있는 생물체 같다. 그러나 아직 살아야 한다. 나보다 앞서 머나먼 여행길 떠나야 할 분이 있기 때문이다. 성장한 자식이야 늙은 부모 떠나시면 휴우 한숨 한번 내뿜고 걱정근심을 덜겠지만, 늙으신 부모는 자식을 앞세우면 기력을 잃기 쉽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이 무덤이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슴이 무덤이라지 않은가. 하반영 화백은 세상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륜의 아버지지만, 그 예술혼과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붙들어 주시는 유일한 분이다. 내 삶에 대하여 묻지 않아도 나를 이해하고 때리지 않고도.채찍질하신다. 어쩌면 내 인생을 가슴아파하며 지켜보는 마지막 어른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며 쪼금 지혜로워진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샅면 인생의 무상함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인생의 변화 덕분에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배운다. 삶을 조정하는 힘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어도, 빈자貧者 시인의 십일조를 들고 아버지의 화실에 간다. 건강과 심정의 어떤 상태에서도 아버지와는 화기애애해진다. 나는 '아버지'라는 역사책에서 여기저기 펼쳐지는 대로 읽고 요점정리를 한다. 아버지의 기억력과 대화는 정확하고 생생한 인생정보 파일이다. 내가, 겪어온 세상일과 기억=과거를 버리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저장창고는 녹이 슬지 않았다. "아가, 내년이 엄마 회갑인데, 너는무슨 계획을 하고 있냐?" 장손에게 지나가듯이 물으신다. 멍 하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씀을 하실 땐 대답이 아니라 그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내가 너에게 이적지 해 준 것이 없어. 넌 뭘 달라고도 안 하니께. 니 회갑을 맞아 내가 틈틈이 그림 100점을 그려줄 거여.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너는 그림이, 예술이 뭔지 알잖냐" 묵묵부답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왜? 싫으냐?" 물으신다. "나는 니가 시인인 것이 창으로 좋아. 니 시는 철학이고 인생이여. 내 인생에 김용옥 시인을 만난 것이 제일 잘한 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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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람을, 아니 나를, 내 삶을 읽으신다. 나이가 들면 현실이 고통을 주기 때문에 환상을 계속할 수가 없다. 내가 나이를 먹으며 지쳤다는 것, 어떤 의욕도 없다는 것을 아버진 간파하고 위로하시는것인지 모른다. 막막해하는 미래를 여는 열쇠를 주고 싶으신 거다. 화실의 저 벽에, 열쇠를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의 제목을 보라. <지智, 력力, 진進>이다. 지혜와 살려는 힘과 내일을 향한 전진만이 곧 인생의 열쇠라는 것이다. 탐독자인 내가 읽은 어느 책에서도 인지 못한 명구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을 돌아다보기 싫어하고 미래에 대하여 막막해하는 나에게 내리는 준엄한 명령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여는 열쇠를 주셨다! 세상의 나쁜 것도 선한 것도 다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것에 등을 돌리거나 도망가거나 숨어선 안 된다. 그것은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지혜를 스:스.로 갖고 있다. 스스로의 안에서 우러나오게 하면 된다.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데, 아버지가 그 열쇠를 주신다. "아가. 내 그림 100편에 네 시를 얹어서 화시집畵詩集을 내고 싶어. 흔히 아는 시화詩畵가 아녀. 그전에, 오지호 선생께서 한하운 시인을 도우려고 화시집을 낸 적이 있어. 그림도 추상이고 시도 추상이었지. 전람회를 열어 그 판매수익을 한하운 선생에게 몽땅 주었어. 화가가 한 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어. 그뒤로 그런 일을 한 화가가 없어. 김용옥 시인 환갑에 아버지가 바치는 거여.오지호 선생처럼 내가 너를 도와주고 싶어." "한하운 선생의 그 이야긴 처음 듣는데요?' "그 팜프렛이 동산동 집 창고 어디에 있을 거여. 한하운의 시 <전라도길>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 소록도로 찾아가면서 보니께 정말로 전라도는 산도 길도 벌건한 거여."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기에 소록도로 한하운 선생을 찾아가셨단다. "하도 멀쩡해서 '뭍으로 가십시다'며 잡아끌었지. 그랬더니 '세상이 받아주관데? 손가락 둑 떨어졌다고‥‥' 그러셨어. 한하운의 시들이 기가 막혀." 한하운의 시편을 한 도막 두 도막 읊조리신다. 깊이 침묵했다. 이런 사랑과 이해를 받는 시인이다, 나는. 아버지, 하반영河畔影 화백께서 몇 점씩 새로 그림을 그려주시는 동안, 나는 밭표하지 않은 시를 쟁여두었다. 행여나 '세계의 화가'인 아버지의 그림에 누가 되는 '시 나부랭이'가 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파란만장한 역사와 인간과 세기를 건너온 노老 화백 한 분의 사랑과 이해받음만으로도 질곡의 인생에 만복萬福을 채우는 심정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겨우 심신을 추스를 만하여 퍼뜩 아버지출 바라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어느 새 93수의 아버지. 한국 최고령 현역화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의 화가. 백발인 채로 백수白壽를 향해 이승의 끈을 붙잡고 있는 노령의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는 심사는 착잡하고 애가 탄다. 깜냥에 후회할 일 없으려고 애쓰건만···. 아무튼 어서 화시집을 발간해야 한다. 일본에선, 하반영 화백께 그곳에 오셔서 만년을 지내라고 문 열어놓고 있다. 세계의 화가와 조각가들의 꿈인 일본의 <이과전二科展> 제91회에 아버지는 세계의 쟁쟁한 화가들을 제치고 최고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 <생성>(검은 산을 배경으로, 한 그루 고목이 일출을 받아 하얗게 빛을 발하는 그림)은 일년간, 세계 각국에 순회전시되었다. <이과전>은 동양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세계의 미술가들이 진정한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응모전이다. 한국의 미술가로는 일제강점기 때 천재화가 이인성 화백이, 해방 직후에 권진규 조각가가 특선을 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불굴의 예술정신을 가진 하반영 화가가 최고상을 획득한것이다. 1979년, 아버지는 환갑 연세에 시작한 프랑스 유학과 함께 서양미술을 현지체험하면서 자신의 미술정체성을 확립했다. 프랑스에게 미술의 본향이라는 명예를 선사한, 400년 전통의 <르 살롱 공모전>에서 우수상, <꽁파르죵 공모전>에서 <바르비종의 가을>로 금상을 수상하셨다.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금상을 수상하는 자리에는 우리나라 인상주의 화풍의 대가 오지호 선생께서 동석하셨다. 500여 점의 그림을 남긴 유럽생활의 종점시기인 1985년에 '뉴욕초대전'을 하고, 1987년엔 '미국평론가협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가 하반영 이름은 이미 미국에도 알려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에 중국 문화부중외문화교류중심 주관으로 <하반영 90세 북경전>초대전을 열었다. 그 수익으로 요녕성 '장애인의 집'을 마련하는 데와 사천성 지진피해 구조비에 기부했다. 난관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의 비애를 가슴아파하는 인류애의 정신을 실천하신 것이다. 아버지의 예술정신의 궁극은 사랑과 빛의 구현인 것이다. 이런 인류애의 화가인 아버지가 보고싶어하는, 어쩌면 마지막 화시집이 될지도모른다. 하반영 하백은 20세기 한국미술계의 산 역사다. 미술의 예술성을 꾸준히 탐구하고 모색하는 활화산 같은 예술혼을 가진, 이 나라의 진객珍客 하河 반畔 영影. 아버지 앞에 서면 외경심이 먼저 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아버지가 주신 열쇠그림이 내려다보고 있다. <지智, 력力, 진進>! 나아가라!
― 김용옥, 화시집을 위한 수필(책머리글) <빛·마하·生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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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의 연속입니다~ 요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 늦은 시간, 아직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입가에 물집을 여럿 달고서도 응시하던 눈길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