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 홀머
우베 홀머(Uwe Holmer)가 열네 살이 되던 1943년에 애국심 강한 이 십대 소년은 지역 히틀러 소년단에 적극 가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서 나치 친위대가 펴내는 간행물을 발견했다. 우베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절대 친위대에 들어가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엄마, 그들은 가장 강한 군인들이에요. 그들은 끝까지 싸워요.”
그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들은 죄수들과 유대인들을 총살하는 사람들이다. 네가 인생을 바쳐 죽도록 충성하고 싶은 조직이 바로 이런 거니?”
이 질문이 우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일 년 뒤 전세가 독일에게 불리해지자, 독일군은 열다섯 살 된 소년들을 군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베가 속한 히틀러 소년단의 지회에서 소년 백 명이 나치 친위대에 자원했다. 그러나 우베는 자원을 거부했다. 그러자 지부장이 그를 불러 가입하라고 명령했다. 우베의 서류는 서명란만 빼놓고 다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우베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일로 우베는 전체 단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모든 특권을 박탈당했다. 그래도 우베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베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내게 진실을 가르쳐 주시려 했던 어머니의 용기가 내가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우베는 동독에서 결혼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간질병 환자들과 정신 장애인들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를 세웠다. 그 후 오랫동안, 특히 호네커 정부 아래서, 그의 가족들은 목회활동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1989년에 배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호네커가 권좌를 버리고 도망쳤을 때, 죽음의 위협과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면서도 우베와 그의 아내는 이 불쌍한 폭군 호네커를 받아들였다. -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멩이 생각 : 사회적 상식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으로 아들을 만류한 어머니의 위대함을 본다. 더불어 진실과 양심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중심에 둔 우베에게 존경을 느낀다. 자신을 억압했던 과거의 독재자에게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며 도피처를 제공하는 그의 아량과 인간애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