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의 화음을 듣다가 소름이 돋는
나이 든 피부를 조용히 문지른다.
양쪽 뺨부터 시작해 두 팔에까지
털을 세우는 절실한 자국을 남긴다.
아직도 미개한 내 피부여,
소름은 공포의 표시일 텐데
음악과 공포가 다른 것을 모르다니!
아니면 오페라의 청아한 아리아가
추위로만 느껴져서 문을 닫으려는
정신 나간 미욱한 행보라니!
그래도 가끔은 고맙기도 하게.
지난밤엔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셔
내 뺨을 조용히 만져주신 것,
반가움이 넘쳐서 한 올씩 느껴지던
이 나이에까지 함께 사는 섬세한 소름,
잠 깨어도 내 감각은 팔팔했었지.
그래, 때때로 딴소리를 해도 괜찮다.
매끈한 이 동네에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내 소름이 살아온 시대는 험난했지만
세상의 피부를 늘 따뜻하게,
부드럽고 착하고 곱다고 착각해라.
전쟁에 광분하는 핵무기의 폭발을
「루살카」의 「달빛」 정도로 보고 듣거라.
이 저녁녘 음악을 듣다가
감동을 공포로 해석하고
추위와 무서움을 똑같다고 느끼는
진화하지 못한 내 피부여, 언제쯤에야
무서움 날고 빛나는 것이 있다는,
역사의 큰 이치를 내가 배우겠느냐.
착각의 진정과 아름다움도 느끼겠느냐.
=========================
소름은 춥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울 때 살갗이 오그라들며
겉에 좁쌀 같은 것이 도톨도톨하게 돋게 하지만,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 때에도 피부가 반응합니다.
눈, 귀, 살갗으로 전해오는 강한 전율.
성악가 조수미 씨가 공연 마지막에 부친이 돌아가셨음을 고백하며 귀국하지 못하고,
아베마리아를 부를 때,
마종기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드보르 작곡 오페라 루살카, 달의 노래를 들을 때,
싱어게인2, 33호 가수 김기태가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시청할 때,
저녁에 공동묘지를 지날 때 아무런 소리도 없지만 왠지 걸음이 빨라지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오늘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입니다.
추위나 무서움이 아닌, 감동과 기쁨으로 소름이 돋는
기분 좋은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적토마 올림=
첫댓글 추위와 무서움을 똑같다고 느끼는 진화하지 못한 내 피부여
마종기 시인님은 어찌 이리 느끼셨을까요?
적토마님 좋은시 감동으로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