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옥사를 처단함에 윗 사람은 살리기 좋아함을 덕으로 삼고 아랫 사람은 법을 집행함을 직분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요(堯)는 세 번 용서하라 하였고 고요(皐陶)는 세 번 죽이라 하였다.
정말이지 이는 소씨(蘇氏)의 억설1)이다.
요와 고요의 실상이 아니다.
살리기 좋아함은 본디 인군(人君)의 덕이다.
유사(有司)는 본디 임금의 덕을 펼침으로써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자이다.
인군에게 살리기 좋아하는 덕이 있는데 유사된 자가 도리어 가로막아 행하지 못하면 옳겠는가?
인군에게 덕이 되는 것과 유사에게 직분이 되는 것, 그 도가 둘인 적은 없었다.
각각 이치에 합당하게 할 뿐이다.
만약 이치로 보아 죽는 것이 합당하다면 비록 인군이 살리기 좋아한다 하더라도 어찌 이치를 어기며 살릴 것이며, 만약 이치로 보아 죽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면 이치가 있는 곳이 법이 있는 곳이니 법을 집행하는 자가 다시 어찌 죽일 것인가?
소씨의 말대로라면 이는 역적질한 신자(臣子)나 사람을 죽인 도적에게도 요가 모두 차마 법을 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뚜렷한 근거 없이 악행의 오명을 쓴 자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을 행한 자에게도 고요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어찌 요와 고요라 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말하리라. 이를 일러 죄의(罪疑)2)라고 한다.
죄가 의심스러우면 형을 가볍게 하라 했으니 유사가 감히 독단할 바가 아니다.
아아! 이는 후세 인신(人臣)이 혐의를 피하고 스스로 편하게 하려는 설이고, 인군이 영예를 구하고 아름다움을 독점하려는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세(聖世)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요는 대성인이다.
고요도 성인의 무리이다.
의심스러워도 합당함을 얻지 못했다면 어찌 족히 성인이라 하겠으며, 이미 합당함을 얻었다면 요의 합당함이 곧 고요의 합당함이다.
어찌 요에게는 용서해야 합당한데 고요에게는 죽여야 합당한 것이 있겠는가?
요가 마음 속으로는 용서함이 합당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용서한다고 말했다면 이는 빈 말로 은혜를 파는 것이다.
고요가 마음 속으로는 죽임이 합당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면 이는 아름다운 이름을 임금에게 귀결시켜 아첨하면서 자신은 온 천하를 각박함으로 통솔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도 옳지 않다.
더구나, 죄가 의심스러운 자에게 형을 가볍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나는 성군이 위에 있는데 합당하지 않은 정치가 있음을 들은 적이 없다.
만약 가볍게 해야 합당하다면 유사된 자가 임금을 인도해 그렇게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임금이 용서하기를 원하는데 유사가 기꺼이 따르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의 아름다움을 막고 임금에게 불인(不仁)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인군이 모두 요와 같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후세의 인신은 무고한 사람이 형장에서 처형됨을 좌시하기만 하고 감히 한 마디도 발언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이 말일 것이다.
아! 그 또한 인자(仁者)의 말이 아니로다.
그러면, 옛날 어진 재상이 ‘은혜는 자기한테 나오기를 원하지만 원망은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라고 했던 말이 아닐까?
아! 이는 쇠세(衰世)의 신하가 시극(猜克)의 임금을 섬기면서 하는 일이다.
인신이 되어 자기를 온전히 하고 화를 멀리 피할 계책으로는 좋지만 인주(人主)의 복은 아니다.
무릇 인주가 위에서 단정히 두 손을 모으고만 있으면 사해의 사람들이 모두 덕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어서 집집마다 은혜로 여기고 사람들마다 은혜로 여기는데 어째서일까?
공경대신(公卿大臣)과 온갖 집사(執事)들이 분주히 사방을 다니며 임금의 인덕을 펼치는 것을 자기 일로 삼지 않음이 없어서, 사방의 백성들이 그 은혜를 받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백성들이 그 은혜를 받지 않음이 없어야 인주가 치평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만약 반드시 공경대신과 온갖 집사들에게 모두 백성에게 은혜를 보이는 것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인주가 일일이 몸소 직접 하게 한다면,
저녁에도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밤중에도 잠들지 못할 것이니, 그 형세가 반드시 사방에 두루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인군이 번거롭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고를 해도 백성이 덕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반드시 이 말일 것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소씨의 설은 참으로 틀렸다.
그러나, 그 설의 근원이 『예기(禮記)』에 있다.
『예기』에서는 “공족(公族)에게 죽을 죄가 있어 유사가 ‘아무개의 죄가 사형입니다.’라고 공에게 아뢰면, 공은 ‘용서하라’고 말하고,
유사가 다시 ‘사형입니다.’라고 아뢰면, 공은 다시 ‘용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 번째 용서하라는 말에도 따르지 않고서 밖으로 나가 전인(甸人) 사이에서 사형을 집행하려 한다면,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그래도 반드시 용서해 주라’고 한다.
그러나 유사는 끝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무릇 공족은 본디 인군이 의당 친친(親親)의 은혜를 가해야 하는 사람이다.
비록 법을 굽혀 용서해도 좋지 않은가?
이는 본래 주관(周官)에서 의친(議親)하는 뜻이다.
그러나, 의논해서 용서할 만한 것이 있고 의논해서 용서하지 못할 것이 있다.
의논해서 용서할 만한 것은 죄가 가벼워 은혜로 법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의논해서 용서하지 못할 것은 죄가 무거워 은혜로 의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지당한 천칙(天則)이 존재하는 것이니, 의가 있는 곳을 인군이 어찌 사의(私意)로 가릴 수 있겠으며, 은혜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을 유사가 어찌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공족은 일반 사람과 다르니 세 번 용서하는 은혜가 있어도 오히려 괜찮다.
생각건대 세 번이나 용서하라 했는데 대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전인들 사이에서 형을 집행하게 한 것은 그 잘못이 또한 심하다.
무릇 살리고 죽이는 것은 천자의 큰 칼자루이다.
조예(皂隸)나 필서(匹庶) 같은 천인도 어명을 기다려 죽이는데 하물며 공족이랴!
환온(桓溫)이 사마혁(司馬奕)을 폐위시키고 간문제(簡文帝)를 세운 다음 무릉왕(武陵王) 사마희(司馬晞)가 죄가 있다고 꾸며내 죽일 것을 청했다.
간문제가 허락하지 않자 환온이 굳게 청하니 간문제가 마침내 손수 조서를 지어 이렇게 전했다.
‘만일 진의 운수가 영원하다면 의당 전조(前詔)를 봉행해야 한다.
만약 대운이 떠났다면 현로(賢路)를 피하기를 청한다.’
환온은 두려워 땀흘리며 감히 다시 말하지 못했다.
환온의 강성함으로도 진(晉) 간문제에게 감히 행하지 못했는데, 삼대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공족을 제거해서 불령한 시도를 이루려는 후세의 간흉한 신하가 이 설을 얻어 핑계거리로 삼으니 그 화가 다시 이루 다할 수 있겠는가?
만약 임금이 본디 죽이려고 하는데 다만 차마 자기가 먼저 죽이자고 할 수 없어 우선 유사가 하는 말을 들어 보려고 했을 뿐이라면, 이는 밖으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은혜를 보여주고 몰래 유사에게 대신 죽이게 시키는 것이다.
참되지 않음 중에 이 보다 큰 것이 무엇일까?
옛말에 ‘의지보다 참혹한 무기는 없으며 막야(鏌鎁)의 명검은 아래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죽이려는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 우선 용서하라 했다면 이는 참혹함이 칼을 쥔 것보다 심한 것이다.
그러면, 『예기』는 믿을 것이 못 되는가?
이것은 「문왕세자(文王世子)」 편에 보인다.
무왕몽령(武王夢齡)3)의 황당함과 주공천조(周公踐阼)4)의 거짓됨이 모두 이 편이다.
『예기』에서 믿을 수 없는 것이 이 편처럼 심한 것도 없다.
오호! 후세의 유자가 성인의 생각을 얻지 못하고 가볍게 들은 바를 믿어 학설을 짓는다면 만세가 되도록 전해지는 재앙이 많을 것이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 소씨(蘇氏)의 억설 : 소식(蘇軾)의 글 「형상충후지지론(刑賞忠厚之至論)」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 소식은 “전에 이르기를 상을 내릴 때는 의심스러워도 주는 쪽으로 따르는 것은 은혜를 넓히기 위함이다. 벌을 줄 때는 의심스러우면 내리지 않는 쪽으로 따르는 것은 형벌을 신중하게 하기 위함이다. 요가 있던 당시에는 고요가 옥사(獄士)가 되어 사람을 죽이려 하는데 고요는 죽이자고 세 번 말했지만 요가 용서하자고 세 번 말했다. 그리하여, 천하는 고요가 굳건하게 법을 집행함을 두려워하였고, 요가 관대하게 형벌을 사용함을 즐거워하였다.(傳曰賞疑從與,所以廣恩也, 罰疑從去,所以慎刑也. 當堯之時,皋陶為士,將殺人,皋陶曰殺之三,堯曰宥之三,故天下畏皋陶執法之堅,而樂堯用刑之寬.)”라고 하였다. 2) 죄의(罪疑) : 『서(書)』 「대우모(大禹謨)」에 “죄가 의심스러우면 형을 가볍게 하고, 공이 의심스러우면 상을 무겁게 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느니 법대로 하지 않는 잘못을 한다. (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는 구절이 있다. 3) 무왕몽령(武王夢齡) : 『연천집』의 원문은 문왕몽령(文王夢齡)인데, 몽령은 일반적으로 무왕몽령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원문은 무왕몽령의 오기로 판단하였다. 『예기』「문왕세자」에 따르면, 주 무왕이 천제로부터 구령(九齡)을 받는 꿈을 꾸었는데, 주 문왕은 구령의 뜻을 나이, 곧 90세로 해석해 주었다. 문왕 자신은 100세를 살고 무왕은 90세를 살텐데 자신이 세 살을 주겠다고 하였고, 그 결과 문왕은 97세, 무왕은 9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4) 주공천조(周公踐阼) : 주공이 보위에 올랐다는 뜻이다. 주공은 주 무왕의 아우로 주 무왕을 도와 은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예기』「문왕세자」에 따르면 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주공은 성왕이 너무 어려서 천하가 분열될까 염려하여 보위에 올라 성왕을 대신해 정사를 섭행하고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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