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는 진짜 이유
조수현
육아휴직 이후 나는 더 알뜰해졌다. 한 달에 두 번꼴로 애용했던 배달앱 주문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고, 주말마다 습관적으로 했던 가족 외식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한다. 값나가는 농산물과 고기 등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밭과 냉동실을 통해 공급받고 있어서 친정 방문이 잦아졌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 주유비를 뽑고도 남는 장사다. 의식주 전반에서 낭비되는 것을 찾아 줄이고, 아끼며 외벌이 남편의 월급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이렇게 절약 외치는 내가 유일하게 아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꽃을 사는 데 쓰는 비용이다. 휴직 전에도 늘 연구실 테이블 꽃병에 꽃이 끊이지 않게 해 두었고, 집 식탁에도 제철 꽃을 꽂아두곤 했다. 평소 꽃과 커피는 정신건강 유지의 최소 조건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나이기에 휴직이라도 이 원칙을 바꿀 순 없다.
직장에 다닐 때는 꽃을 사러 갈 시간이 없어서 주로 인터넷으로 부피가 큰 꽃다발을 주문했고, 소소하게 식탁에 꽂아둘 꽃은 파머스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같이 샀다. 휴직 이후 우연히 둔산동 꽃시장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퇴근하고 방문했던 꽃시장에 꽃이 너무 없어서 실망한 이후 발길을 끊었는데, 알고 보니 꽃시장엔 월, 수, 금 딱 3번 꽃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꽃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꽃시장에 가니 과연 예쁜 꽃들이 넘쳐나서 저절로 지갑이 열렸다. 특히 금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시민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면서 집에 오는 길에 꽃시장에 들르는 루틴이 생겼다.
꽃시장에 여러 도매상이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입구에 있는 딱 한집에서만 꽃을 산다. 많이도 아니고 꽃과 소재를 섞어서 2만 원에서 3만 원 사이 금액으로. 이 가격에 싱싱한 생화를 사 와서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고 꽃병 2개에 나누어 꽂아도 남을 만큼이라니! 이건 휴직자의 특권이다. 드문드문 한 3개월쯤 다녔을까? 꽃집 사장님이 내 정체를 궁금해하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고, 한가할 때 이런저런 꽃에 관해 물어보거나 적당한 가격의 꽃을 추천받는 사이가 되었다.
생각보다 꽃을 선물할 곳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 가까운 사람의 생일이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등. 특히 올해 휴직은 했지만, 연구모임 수업 촬영을 돕게 되면서 회원 선생님들의 학교를 6곳 방문했다. 촬영 전날 시간이 되면 꽃시장에 가서 선생님과 어울리는 꽃을 사서 포장한 후 들고 학교에 들고 간다. 지인 집에 초대받거나 오랜만에 만날 때에도 역시 미리 꽃을 준비한다. 상대의 분위기와 어떤 꽃이 어울릴까? 진열대를 여러 바퀴 돌며 진지하게 꽃을 고르고 포장하는 시간은 전혀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 조기 퇴직한 선배 언니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도 꽃을 들고 갔다. 차와 과일을 내어준 뒤 꽃이 시들세라 포장을 풀어 다듬고 꽃병에 꽂던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커피 내릴 때와 꽃을 다듬을 때인데 너무 짧아서 아쉽다고 했던 말은 언젠가 내가 쓴 글에 꼭 집어넣어야지! 다짐하게 했다.
현 남편이 옛날 남자 친구였던 시절. 생일날 아침 자췻집으로 빨간 장미 백 송이 꽃바구니를 보냈다. 여름방학이라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화들짝 놀라며 인터폰 화면을 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 몸보다 큰 꽃바구니를 들고 서 계셨다. 꽃바구니를 받아 현관에 내려놓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걸 왜 집으로 보냈냐고 했다. 그가 예상한 반응이 전혀 아니어서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꽃은 나 혼자 살고 있는 원룸에 보내는 게 아니라고, 앞으로는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자랑도 할 수 있는 직장으로 보내라고 강조했다.
나는 홀로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에는 큰 흥미가 없다. 오히려 여러 사람과 꽃을 함께 보고 그 예쁨을 공유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꽃을 선물을 받는 것보다 선물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우리 집 식탁보다 여럿이 사용하는 연구실 탁자에 꽃을 꽂아두는 것이 더 좋다. 성탄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더글라스와 편백나무 사이사이에 새빨간 전구 불빛 같은 낙상홍을 꽂은 화병을 만들어 예배당을 장식해야겠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꽃이 주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첫댓글 아름다운 꽃으로 삶을 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