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5년 2월 7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무인도
정숙자
서푼짜리 친구로 있어줄게
서푼짜리 한 친구로서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어줄게
동글동글 수너리진 잎새 사이로
가끔은 삐친 꽃도 보여줄게
유리창 밖 후박나무
그 투박한 층층 그늘에
까치 소리도 양떼구름도 가시 돋친 풋별들도
바구니껏 멍석껏 널어놓을게
눈보라 사나운 날도
넉 섬 닷 섬 햇살 긴 웃음
껄껄거리며 서 있어줄게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젊은 날
아껴아껴 살아도 금세 타 내릴
우리는 가녀린 촛불
서푼짜리 한 친구로
멀리 혹은 가까이서 나부껴줄게
산이라도 뿌리 깊은 산
태평양이 밀려와도 끄떡없는 산
맑고 따뜻하고 때로는 외로움 많은
너에게 무인도로 서 있어줄게
♦ ㅡㅡㅡㅡㅡ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물질은 우위를 다투어 사회적 정의와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과 사람사이가 멀어져간다. 스스로 섬이 되고, 각각이 무인도가 되어간다.
‘아껴아껴 살아도 금세 타 내릴 우리는 가녀린 촛불’ 서푼 엽전처럼 보잘것없는 마음들이지만 외로움 많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자는 것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후박나무 그 투박한 층층 그늘에 까치 소리도 양떼구름도 가시 돋친 풋별들’ 지금이 생애의 가장 젊은 날, 언제든 쉽게 닿을 수 있는 자연을 아껴가며, 맑고 따뜻한 친구삼아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자는 것이다.
지금이 생애의 가장 젊은 날, 서푼 엽전처럼 보잘것없는 마음이지만 거리와 상관없이 언제나 서로에게 힘이 되고, 변치 않는 친구가 되자는 것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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