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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확☆]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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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이은자 시집 / 도서출판 문화의 힘(2013.09.28)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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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이은자
‘확’이란 말이 얼마나 뜨거운 말인지 아시나요
‘확’이라는 말 속에는 우주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확’이란 말 속에는 들끓어 어쩌지 못하는
짐승 같은 마음이 있어요
맺힌 데가 한꺼번에 확 풀렸으면 좋겠어요
기다리던 세월은 더디 오고
찬란한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질지라도
확 하고
한번쯤은 우리의 생도 뜨거워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확 끌어안으며 살 수 있다면
낙타의 생
이은자
이제 내려놓아라
등에 한 생애를 얹고
흔들리며 가는 낙타
낙타여, 너의 고난이 이제
멈추기를 나는 갈망한다
세월을 견디는 법
가난을 견디는 법
오래 서 있는 법을 가르쳐줬던
낙타여
혼자 바람을 맞고 있다가
짙고 긴 눈썹에 해가 걸렸다고
길고 가느다란 목으로 울지 마라
사막에 가지 않아도
늘 고비를 만나는 나는
나를 끌고 갈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단
이은자
열무 한 단
소금에 잘 절여 놓고 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는 일처럼 시들해진다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생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재간이 없어
가만히 부려놓은
쌉싸름한
걱정 한 단
선운사 동백꽃
이은자
서둘러 봄을 데리고
찾아갔더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생이 더디게 간다고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내게 야단을 친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아주 잠깐이라고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동백꽃
등짝의 무게
이은자
그녀의 등은 외롭다
기댈 곳 없는 그녀의 등은
한쪽으로 기울러져 있다
그녀의 등은 자주 아프다
울음이 겹겹이 아프다
착한 그녀의 등은 자주 결린다
그녀의
전생은
낙타였을까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다가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 한 미리를 보았다
혼자 가는 길
이은자
어둑어둑 해가 진다
쓸쓸해서 고맙다
쓸쓸하지 않고서야 어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프지 않고서야 어찌 생을 견딜 수 있을까
혼자 가는 길
저물 날만 있어도 고맙다
바람의 손
이은자
나는 절을 지나며 처마끝
풍경을 흔들었을 뿐
가끔 나는 당신의 마음 속 닫힌
문을 두드렸을 뿐
한번은 심심해하는 바다를 깨워 물결을
만들었을 뿐
그만 피어나겠다고 잎을 떨군 꽃에게
간지럼을 태웠을 뿐
바람인 나는 손이 없다
봄이 오는가
이은자
상처 없이 봄이 오는가
상처 없는 깊은 사랑이 있을까
외롭지 않고서야
세상을 견딜 수 있는가
나무들도
혼자씩
젖고
있다
봄은 순식간에 우리 곁에 왔다 가고
상처를 견디며 꽃을 피우는 일은 참 더디다
아프지 않고서야
어찌 봄이 오는가
벼
이은자
고난 없이 자라는 게 있을까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린 벼들
태풍에 쓰러졌다가 포기까지 묶어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서로 기대어 일어난다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듯
쓰러진 내 인생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밤알 속에 들어 있는 햇살과 바람을
가만히 따라가면
해질 무렵 구부정한 논길로 삽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늙은 아버지가 보인다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나를 본다
꽃이 피네요
이은자
꽃이 피네요
당신도 없는데
꽃이 피네요
아프니까
비로소 꽃이 피네요
놀라워라
이은자
저도 한번은 올라가고 싶었던 거다
저렇게 나폴나폴
하늘이 되고 싶었던 거다
생기가 흐르는 온몸으로
하늘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다
한바탕 꿈을 꾸고 있듯
비를 품고 있는
놀라워라 저 구름
부처
이은자
손가락에도 눈이 있다
발가락에도 눈이 있다
이마에도 눈이 있다
온 몸이 다 눈동자다
나이에 대하여
이은자
완벽하게 자신을
가두며
또 하나의 길을 내는 일
물들다
이은자
물들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며 있다
물들다는 말 속에는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쪽빛 같은 맑은 향내
오래 문대어 스며들 때까지의 진한 기다림이 있다
몰아세우고 닦달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가슴을 들이밀어 오래 적시는 것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뿌리
이은자
세 살짜리 아이
우식증으로 치과에 갔다
삭아서 붜지고 충치까지
파고들어
흔들리는 뿌리들
자식이란 게
본래 부모의 뿌리가 아니던가
내 몸에서 떨어져 간 뿌리 하나가
바르르 떨고 있다
어둡고 긴 땅속을 헤집다가
뿌리 뻗지 못한 내 삶
풍치처럼 자주 흔들린다
거울
이은자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섰더니
낯선 중년의 여인이
내 앞에 서 있다
젊음은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터 늙음이 성큼
찾아왔을까
거울도 내 얼굴이 낯설다고는 듯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햇살처럼 비춰주는 거울 앞에서
그냥 혼자 소리 내어 웃는다
가벼움에 대하여
이은자
이른 아침
풀잎 위에 이슬 한 방울
가볍게 앉아 있네
인생 그거 한나절 꿈같은 거리고
한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이라고
살아서 버리지 못하면
죽어서도 가벼워질 수 없다는 듯
무거운 내 삶도
저렇듯 가볍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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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의 말|
사람은 때때로 자시 삶을 어는 순간에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시는 내가 살아있는 모든 사물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내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준 것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것도 바로 시였으니
시는 내 인생의 도반이자 스승인 셈이다
세상과 사람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세상과 사람들이
온전히 나를 받아주었기 때문이라고
모든 인연들께 늘 감사하다
2013년 가을
이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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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자 詩集 [※확※]
[ 해설 ] -
고독에 근거한 떨림의 시학
- 이은자의 시세계
신익선
1. 시에의 초심, 또는 순정성
몸, 보다도 시인의 마음은 특히 연약하다. 천성적으로 고독한데다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에 휩싸이길 잘한다. 일쑤 스스로가 스스로를 타격打擊하길 즐겨 스스로 몸 상하기 십상이다. 몽환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무릇 시인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화상火傷을 입히는 일도 마다 않는다. 실제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어느 여류 시인은 자기의 서재에서 원고지에 불을 질렀다. 화염에 휩싸인 불길 속에서 시인은 자기 얼굴을 태우며 운명했다. 일견 무섭고 떨리는 일이다. 이글거리는 화마에 목숨을 내거는 저 무모하거 어이없는 일은 그러나 시인 자신에게는 황홀경의 극치일 수도 있었으리라. 이처럼 정신의 고산준령孤山峻嶺을 오르는 일이란, 시인에게 있어 서슬 시퍼런 빙벽을 오르는 일이거나 깨침의 무아지경無我地境에 서는 일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홀로 아득한 허공을 떠돌고, 홀로 천길 벼랑과 맞서는 일에 익숙하다.
고독, 그리하여 시인은 저 매서운 고독을 마주한다. 고독이라는 매의 날개와 발톱에 기꺼이 찢기길 마다치 않는다. 삶의 허방다리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흡입하며 홀로 천지의 가장 어두운 바위에 짓눌리어 시어를 생산하며 연명해 가는 시인의 삶이란 기실 강제로 찢기고 자의적으로 찢는 일상의 연속이다.
시인의 삶이란 그러므로 처절하게 망가진 상한 몸과 상한 영혼의 허울을 붙잡고 지상의 삶을 감내해야 한다. 그 증표로 지난날의 우리 시사詩史에 있어 젊어서 요절하는 시인이 좀 많았던가. 끝이 안 보이는 모더니티한 터널을 걸어 먼지만 켜켜이 쌓이는 남루한 일상의 고달픔을 달게 감내하며 언어의 기표를 붙잡고 평생 신음 속에 살아가는 삶,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시를 쓰는 외길을 가는 저 집요한 집착은 어디서 오는 영원한 형벌이란 말인가. 세상에 두 번 다시 없을 천형天刑의 순례를 거듭하면서도 스스로 전율하며, 스스로 울며, 스스로 대견해 하다가, 스스로 고꾸라져 쓸쓸히 영원에 희귀하여 사라져 버리는 삶이 또한 시인의 삶 아니던가.
이은자 시인의 시편을 읽다 보면 그런 형벌, 그런 천형, 그런 전율, 그런 울음, 그런 대견스러움, 그런 운명적인 흐름이라는 고독한 실존과 조우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뱉어 내는 폐병 환자의 모진 각혈처럼 목울대를 치는 절대고독을 느끼게 된다. ‘뭉크’의 <절규>에서 전해오는 검붉은 피의 소외감이 절규 이상의 고독한 피를 뿌리며 현실을 사막화하는 그 자리에 모습을 감춘 고독한 실존이라는 떨림이 내밀한 숨을 쉰다. 이 실잠자리의 첫 날갯짓 닮은 떨림이라는 시에의 순정성이 날개를 파닥이며 심장을 후려치는 걸 여러 번에 걸쳐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숨겨진 이은자 시세계의 에너지이며 시가 주는 감미롭고 웅혼한 아름다움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시가 시로 머무르면서 정신의 산맥에 청신한 깃발을 펄럭이는 일, 여기서부터 이은자의 시세계는 이은자만의 초심初心을 드러낸다. 이 초심이란 바로 이은자의 고독한 자화상이면서 동시에 이은자가 시에 헌신하고자 하는 시에의 순정성이다.
2. 외로움의 존재, 내면의 외로움
이은자 시에서의 근원적인 기저基底는 외로움이 밀어 올리는 어떤 존재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내면에 홀로 존재하는 고독자의 문제다. 고단한 현실에 접하면서 결코 현실에 순응하거나 동화되지 않는 자신만의 존재 확인은 고독의 심화로 나타난다. 고독의 정감이 주정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부딪치게 되는 현실과 이상세계와의 단절, 또는 고적한 꿈의 세계와 삭막한 현실에서의 소외를 원형질로 이은자 시세계의 내밀한 관념이 자리한다. 줄기차게 자아라는 자화상을 찾아 몸부림치며 오르는 험난한 산길과 인생길이 이은자 시편의 곳곳에서 시정의 정서를 채색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은자 시인에게 있어 본연의 태생적 또는 유전적 외로움과도 밀착되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① 외롭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중략…
지는 날만 남아 있어도
생의 전부이듯
온 힘을 다해 힘껏 밀어 올리는 꽃대를 보라
비가 내려도 젖지 않을
꽃잎 하나 애틋하게 피었나니
괜찮다고 괜찮다고
이제 견딜 만하다고
혼자 피는 꽃
-「혼자 피는 꽃」부분
② 어둑어둑 해가 진다
쓸쓸해서 고맙다
쓸쓸하지 않고서야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
아플 수 있어 다행이다
아프지 않고서야 어찌 생을 견딜 수 있을까
혼자 가는 길
저문 날만 남아 있어도 고맙다
-「혼자 가는 길」전문
이은자의 시에서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앙금으로 가라앉아 빛나는 고독의 세 모래이거나 고독의 별빛이다. 광활한 우주의 만물은 다 개별자이며 단독자인 것이다. 사람은 물론 돌멩이 하나까지 동일한 실물체가 없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의 내면은 단독자의 내면화의 일단이 아닐 수 없다. 만물의 내면의 풍경은 혼자라는 것이다.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논의대로, 시가 역사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라는 문화사회학적 관점이나, 시가 시인의 무의식에 깊이 내재한 정치적 무의식의 결과물이라는 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은자 시인의 작품 내에서 언어를 특수하게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태도를 표현하는 이른바 융Jung의 시적 퍼스나per-sona는 혼자, 또는 홀로 대별되는 외로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즉 이은자 시에서 화자의 태도는 지속적으로 이 외로움의 세계에서 추출해 내는 생의 의지라는 독특한 엑기스다.
먼저 ①의 시에서 이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의 첫 행인 ‘외롭지 않은 게/어디 있으랴’ 주정적 서정이랄 수도 있는 이 외로움의 주조에는 그러나 ‘지는 날만 남아 있어도/생의 전부이듯/온 힘을 다해 힘껏 밀어 올린 꽃대를 보라’는 ‘꽃대’가 담겨 있다. 꽃이 피는 그 순간의 찰나, 그를 위하여 꽃은 자신의 전 생애를 건다. 그러나 ‘지는 일'만 남아 있대서야 얼마나 쓸쓸한 물상인가. 그럼에도 꽃은 꽃을 피우기 위하여 꽃대를 밀어 올리지 않는 일은 없다. 꽃나무가 꽃대를, 꽃이 꽃대를 올려 반드시 꽃피우는 것은 ’지는 일‘일 뿐이라도 하나 하나의 개체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일, 곧 ’꽃잎하나 애틋하게 피워‘ 내기 위함일 터이다. 한 송이 꽃이 핀다는 것은 겨울이라는 혹한의 추위와 폭풍우를 견디어 낸 인고의 자연 산물이듯이, 사람의 생애 역시 온갖 환란과 아픔 속에서도 외롭게 단독자로서의 일회성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고를 견뎌야 하는 비극성이 이 시편에 들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곧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이제 견딜만하다고/혼자 피는 꽃‘이란자위성 결구를 던진다. 이는 결국 삶의 체념성의 표식이자 깨달음의 층위이기도 하다.
시 ②에서 역시 혼자라는 외로움의 내면적 물상을 외적인 쓸쓸함의 정경인 ‘어둑어둑 해가 진다’로 표정을 내세워 사라져가는 인간의 숙명성과 깨달음의 철학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형상화한다. 이은자 시의 가장 아름다운 시편 중 하나가 분명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주체가 세계와 가지는 응시라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주장에 맞닿아 있다. 라캉은 응시를 일러 말하길, 보여지는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긴밀한 의사소통, 다시 말해서 보기만 하는 일방적 시선이 아니라 보여짐이 함께 존재하는 시선의 교환이라 정의한다. 즉 라캉은 자아가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임을 부정하고 비로소 욕망하는 주체이자 결핍된 주체임을 인정할 때 응시의 실체와 행복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둑어둑 해가 진다/쓸쓸해서 고맙다’에서 ‘해가 지는’ 현상을 말함은 ‘쓸쓸해서 고맙다’라는 내면의 탐구를 적시하고자 함이다. ‘해가 지는 일’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때 욕망하는 주체, 결핍의 주체인 나에게 ‘쓸쓸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고마움’이라는 행복한 상태로의 인도引導에 연결된다. 이러므로 이 고마움은 다시 제3행인 ‘쓸쓸하지 않고서야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에 다가선다. ‘해가 지는 일’이 ‘쓸쓸함’으로, 이 쓸쓸함이 다시 ‘사랑’으로 전이되는 현재진행형의 연결고리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음미하는 일처럼 그윽하지 아니한가.
대저 사랑이 무엇이던가. 찬란하고 화려하며 아름답기만 한 것이던가? 그윽하고 현란하며 어여쁘기만 한 것인가? 환희에 찬 축제이기만 하던가?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고약한 전염병이다. 내가 사랑에 빠짐으로 인하여 상대방을 전염시킨다. 여기서 전염병이란 반드시 치명적인 몹쓸 병을 지칭함이 아니다. 서로가 상처를 열어 보이며,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며, 결국에는 서로가 상처 받을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이다. 이게 사랑의 전염병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사랑이란 본디 통증, 곧 아픔이 많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스베덴보리가 말한 ‘사랑이 본질은 정신의 불’이란 말은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와의 정신의 합일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이란 것은 강렬한 뜨거움의 표식이지만 그 본질은 생살을 찢는 아픔이 필연이다. 누구보다도 이은자의 시적 퍼스나는 이 부분에 예민하다.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아프지 않고서야 어찌 생을 견딜 수 있을까/혼자 가는 길/저물 날만 남아 있어도 고맙다’의 결구에 도달하는 강줄기가 ‘어둑어둑 해가 지는’ 현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지는 날만 남아 있어도 힘껏 꽃대를’ 밀어 올리는 ①의 시편이나, ‘저물 날만 남아 있어도 고마운’ ②의 시편은 다 고요에 기인하는 운명적 외로움의 존재를 내면화한 존재론적 탐구의 심화이다. 성숙한 사회인식과 의식인 ‘꽃대’로 대별되는 자연계와 ‘쓸쓸함’으로 대별되는 세상사 존재의 본성을 저녁강의 고요한 풍정으로 녹여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본시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외로운 짐승일 것이다. 위 두 편의 시편에서 이은자는 고즈넉이 그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3. 숙肅, 고요에 닿는 비밀의 길
이은자 시에서 드러나는 성찰의 요소는 숙肅, 즉 고요함이다. 이은자의 시적 정서를 관통하는 하나의 특성이 분명히 외로움에 근거한 숙은 궁극적으로 고독이다. 이 고독에 닿는 고요함의 둘레는 지상과 하늘에 공통으로 편만한 ‘생혈 같은 사랑이 내 핏속에도 숨어 있다’는 자가진단이 가능한 생혈生血, 즉 살아 있는 피의 외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외침에 이르기 전에 시인은 적막을 뜻하는 혼자만의 숙肅, 곧 적막에 닿는 고요, 그리하여 고요에 닿는 숙에 이른다.
…전략…
이봐요
생혈 같은 사랑이 내 핏속에도 흐르고 있어요
은밀한 일들이 혈관 속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제 피를 뽑아가세요
아직 식지 않았으니
헌혈해 줄게요
-「B형 여자의 독백」부분
무릇 생명의 원천은 ‘피’다. 피는 사람이 아닌 신령한 하늘의 일이며, 성서에서는 이 피가 하나님의 생명관이라는 사상이 지배적이다. 모든 동물의 생명은 이 피의 흐름이 관건이다. 피가 생성되어 전신을 감싸며 흐르는 한 살아 있는 것이며, 피 흐름이 멈추면 생명은 사라진다. 그러나 이 ‘피’라는 현상체는 몸이라는 구조적 요소에서의 필수불가결한 물질이지만, 이 ‘피’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은 따로 존재한다. 이 ‘피’는 곧 ‘사랑’이다. 거꾸로 ‘사랑’이 곧 ‘피’이기도 하다. 이 ‘피’ 또는 ‘사랑’은 ‘B형’ 여자의 외로움의 절규이면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보이지 않는 내밀한 자기 주시, 자기 성찰, 자기 생명성의 확인에 다름 아니다. 이는 시적화자의 자기 성실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있어, 그리고 삶에 있어 ‘만일 사랑이 손상된다면 그 자리에 대체할 수 있는 게 그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시편에서 발현하는 물상의 놀라움들은 그 대상이 ‘구름’에게까지 닿는 연유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도 한 번은 올라가고 싶었던 거다
저렇게 나폴나폴
하늘이 되고 싶었던 거다
생기가 흐르는 온몸으로
하늘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다
한바탕 꿈을 꾸고 있듯
비를 품고 있는
놀라워라 저 구름
-「놀라워라」전문
생명이란 반드시 생명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극심한 자본주의의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시인들이 그의 무용한 시편들을 붙잡고 허덕이면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은 생명의 부름에 있다. 더 직접적으로 생명의 탄생인 이름의 부여에 있다. 이 세상의 그 화려한 많고 많음의 ‘놀라운 것’중에서 시인이 ‘놀라는’ 것은 겨우 ‘구름 밖에’ 안 되는 저 천진무구한 시인의 태연함을 보라. 세상의 터전을 누비며 무수한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땅의 넓이며, 집의 크기, 옷의 화려함, 음식의 성찬이 아닌, 기껏해야 ‘구름’을 보고 그를 ‘놀라워하는’ 저 어이없는 어이없음을 보라. 그러나 시인은 그 ‘어이없음’에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시인만의 무용의 변별력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이 무용한 변별력으로 시인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뿐더러, 생명 탄생의 저 위대한 열락을 느낀다. 역설적이지만 아마도 시가, 무수한 재화의 원천이라면 이 세상은 시인으로 혼잡할 것이다.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 저 무용한 시적 특성으로 인하여, 조롱 속에서도 그나마 시인들이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상은 그래서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현상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기가 흐르는 온몸으로/하늘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다’라는 이것으로 세상을 형성하는 근원지를 밝혀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생기’는 생명이다. 생명의 저 위대한 법열은 대상의 재화財貨로만 가치를 따지는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재화가 아니다. 생명이다. 그 생명의 근원을 캐는 것이 대상의 응시에서 오는 시화詩化의 위대한 덕성이자 시의 가치이다. ‘비를 품고’ 있다는 것은 곧 생명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하찮은 ‘구름’ 한 조각에서 생명의 신비를 이끌어 내는 이것, 이것이 바로 ‘구름’처럼 자유를 희구하는 정신의 시인 이은자의 내밀한 시세계의 일단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이 생명의 육화는 ‘홀로’, ‘외로움’이라는 극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 주위, 여럿에의 공존, 공영을 꿈꾼다. 이것이 이은자 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둘레둘레
여기저기 둘러보며 가야 하는 길이 있다
꼭 껴안으며 더불어 세상 속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나 보다 내 둘레의 사람들에게 길이 될 때
비로소 둘레길이 된다고
그렇게 인생의 길을 삼아보라고
내게 보여주고 있는 길
-「둘레길」전문
어떤 대상을 적시하여 거기에서 교시적이거나 자체 흥분으로 광적인 외침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은자의 시세계는 외로움이라는 기본 주정 위에 구축되는 단단한 뼈다귀가 있다. 이들은 뼈이되 딱딱하지 않다. 부들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공감의 광장으로 뿌리를 얽어 내리는 견고하면서도 주술적인 도발성이 있다. 시가, 인간의 존재론적 탐구에 대하여 가장 근접성을 띄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능과 함께 언어미학적 예술성을 필연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으로 본다면, 이은자의 ‘꼭 껴안으며 더불어 세상 속으로/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둘레길」은 불경의 경전 같은 울림을 준다. ‘둘레길’이란 ‘길’이면서도 ‘도덕’이고, 땅의 길이면서 하늘의 길을 명시함이 분명한 이은자 시세계의 아름다운 지향점이다.
4. 결어
이은자의 시를 읽으면 우선 편안하다. 엉터리 말을 급조하여 엉터리 언어를 가당찮은 수식어로 나열하여 길고 고통스럽게 끌고 가는 억지가 없고, 공연히 들떠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흥얼거리는 꼬락서니도 없다.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운운하는 고약한 제스처가 없으면서도 서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뭉치고 서로 언약함을 이해하고 감싸면서 힘을 합치게 하는 진정이 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공명이 크다. 또 조금만 주의 깊게 이은자의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시편들은 거의 모두 외로움, 고독감 등이 합일된 내면성을 근거로 강인한 처방들이 내재되어 있다. 여류 시인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현실 극복 의지, 또는 ‘둘레길’ 같이 둘레를 포용하는 사랑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내면적인 성향의 사람은 겉보기에는 유약하고 나약해 보여도 그 내면에는 강철 같은 기개와 불길 같은 열기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이은자의 시는 보편적으로 내면의 불길의 응시가 불러일으키는 폭풍의 언덕에서의 일화들이다. 시편들이 보여주는 세계인식의 무게 중심에는 언제나 이들이 서로 연결하고 서로 충돌하면서 소용돌이치는 ‘떨림’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은자는 문단의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어디에도 나서지 않는다. 숨어 있는 시인이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상처에서 진주를 토해내는 보석 같은 견고한 고독과 아름다움과 정신의 황홀경이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담백하게 살아 숨 쉰다. 시세계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시 작품들이 시대의 고발이나, 외향의 분개나 일상에 대한 격한 응전의 기록이 아닌, 한 순진하고 순수하며 따스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내면 기록이기 때문이다. 곧 이은자의 시세계는 고독한 영혼이 뿜어내는 고독에 근거한 여러 ‘떨림’들이 모여 시편을 이끌고 나가며, 이 힘이 인간 본연이 자유의지와 생명의 고기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고독에 빠져 시를 써 감으로써 부단히 시인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깨워감의 전법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은자는 단지 자신의 시편들을 내세워 이 시대의 순전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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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이은자의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시편들은 거의 모두 외로움, 고독감 등이 합일된 내면성을 근거로 강인한 처방들이 내재되어 있다. 여류 시인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현실 극복 의지, 또는 ‘둘레길’ 같이 둘레를 포용하는 사랑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내면적인 성향의 사람은 겉보기에는 유약하고 나약해 보여도 그 내면에는 강철 같은 기개와 불길 같은 열기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이은자의 시는 보편적으로 내면의 불길의 응시가 불러일으키는 폭풍의 언덕에서의 일화들이다.
시편들이 보여주는 세계인식의 무게 중심에는 언제나 이들이 서로 연결하고 서로 충돌하면서 소용돌이치는 ‘떨림’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은자는 문단의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어디에도 나서지 않는다. 숨어 있는 시인이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상처에서 진주를 토해내는 보석 같은 견고한 고독과 아름다움과 정신의 황홀경이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담백하게 살아 숨 쉰다. 시세계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시 작품들이 시대의 고발이나, 외향의 분개나 일상에 대한 격한 응전의 기록이 아닌, 한 순진하고 순수하며 따스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내면 기록이기 때문이다.
곧 이은자의 시세계는 고독한 영혼이 뿜어내는 고독에 근거한 여러 ‘떨림’들이 모여 시편을 이끌고 나가며, 이 힘이 인간 본연이 자유의지와 생명의 고기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고독에 빠져 시를 써 감으로써 부단히 시인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깨워감의 전법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은자는 단지 자신의 시편들을 내세워 이 시대의 순전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 신익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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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자 시인∥
∙ 충남 보령 출생
∙ 농민문학 신인상
∙ 시집으로『여울처럼』『사람들의 거리에 서면』『인간의 사막』『쓸쓸한 중심』『아름다운 탁발』
∙ 충남예술대상, 충남발전대상 수상
∙ 충남문인협회, 충남시인협회, 내포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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