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손바닥만한 섬이라서 대학 다닌 총각이 미조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어느 날 옆 동네 선주집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배를 여남은 척이나 가진 부자라 했다. 송정에 있는 그 집은 솟을대문에 한문으로 입춘대길 먹글씨 크게 붙여놓았다. 대문에 있던 체격 당당한 황구는 맘씨 좋아 사람 보고 꼬리부터 친다. 동네 사람 다 모였다. 가마솥에 탕수국 냄새 진동하고, 뒤집은 솥뚜껑에 파전 굽는 소리 요란하다. 유과 튀기는 사람, 시금치와 고사리 다듬는 사람, 등에 애기 업은 소녀, 저고리 고름 풀고 애기 젖 먹이는 여인, 뛰어다니며 뭘 얻어먹는 아이들 모습이 한 폭 풍속화다. 남정네는 장작 패고, 군불을 지핀다. 노인네는 담뱃대 입에 물고 대청마루에 앉아있다.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왔고, 삼베옷 주머니에 풍년초 봉지 들어있다. 가랑이 널찍한 베잠방이 사이로 칡뿌리 같이 시커먼 다리가 보인다. 선주는 촌스러운 양복을 입었다. 그러나 대청에 넥타이 메고 앉은 모습 당당하다. 그는 나에게 '서울서 공부한다는 그 총각인가?' 하고 묻고 '이쪽으로 오소' 자기 앞자리를 권했다. 노인들도 눈치 하나는 빠르다. 마치 진사시 합격한 도령을 만난 듯 잽싸게 자리 비켜준다. 선주 앞 교자상 위에는 밤, 대추, 곶감, 강정, 약과, 잡채, 전골, 신선로, 탕수 국, 실고추 얹은 도미찜이 놓여있다. 내가 왜 이런 귀빈 대접을 받는가 하는 까닭은 나중에 알았다. 부자집 만냥판 수연(壽宴)의 백미는 헌수(獻壽)이다. 그런데 부모님께 잔 올리는 헌수 잔 들고 나온 처녀 가슴팍에 숙대 배지가 달려있었다. 숙대라면 알만하다. K대 응원가에 '이대생은 우리 것, 숙대생도 양보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안암골 축제의 단골 파트너인데, 그 숙대생이 날 초대한 것이다.
딸은 마치 중세 서양 장원의 공주 같았다. 외동딸이라 했다. 선주는 잔 비우고 첫 잔을 내게 돌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명딸이 초청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때 마신 술은 내 평생 마신 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술이다. 안주인이 목욕재계하고 담근 비전의 술이라 한다. 정성이 지극하면 도를 이룬다고 한다. 재료가 수수라는데 색은 거무티티했지만, 맛이 그리 달콤하고 시원할 수 없다. 찰랑찰랑하게 대접 가득 채운 술이 단숨에 목을 넘어간다. 이럴 수 없다. 그런 명주가 그 바닷가 외진 마을에 있을 줄이야. 소동파 말대로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다.
그날 밤 취한 술도 깰 겸 자정 넘어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달빛은 야트막한 돌담 위를 비치고 있고, 물속에는 '망운산'호 등불이 어리어 있다. 등댓불이 일 이초 간격으로 바다를 지나간다, 금순이는 잠이 든 모양인데,무화과나무 밑에 목욕하는 사람이 있다. 금순이 엄마다. 허름한 옷으로 가려졌던 시골 여인 몸매기 그렇게 탄력적일 줄 몰랐다. 몸 뒤챌 때 가슴의 융기와 젖은 겨드랑이가 보였다. 철썩철썩 나는 물소리가 자극적이다. 나는 여인이 목욕 끝내고 다리를 올려 팬티를 입고, 치마 걸치고, 젖은 머리 만지며 방으로 돌아가는 전 과정을 다 보았다. 그가 일부러 날 보라고 그렇게 한 것일까. 하기사 백석의 시를 보면,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 매어 죽은 밤도, 묵은 초가지붕 위 박이 달같이 하얗게 빛나는 밤'이라고 했다.
'물 마시려고요?' 내가 부엌에 들어가자 여인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컴컴한 곳에서 여인의 몸 냄새와 쌔근쌔근 내뿜는 숨결이 느껴졌다. 바가지를 건네는 여인의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마당의 무화과나무만 달빛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메셋 모음의 소설 <면도날>에서는 주인공 래리가 참전 중 자신을 돕기 위해 전우가 총상으로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도 쌩쌩하던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보자,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삶이란 눈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낸 비극적 실수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직면한다. 그래 광산 노동자, 생선장수 같은 블루칼라 속으로 들어가 일도 하고, 인도의 고산지대를 방랑하기도 한다. 그러다 라인강을 도보여행할 때다. 어느 농가 건초더미 위에서 잠자다가, 자기보다 연상인 여인이 입술로 자기 입에 키스하고, 팔로 목을 휘감고, '조용히 해요' 숨 가쁘게 속삭이던 경험도 한다. 그때 래리는 겨우 스물셋 이어서, 여자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해주기 바라는 행동을 해주었다고 한다. 나 역시 막 제대한 스물셋이라 여자가 원하는 행동을 해줄 나이다. 그러나 나는 래리가 아니었다. 1966년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여자와 손목만 잡아도 결혼해야 하는 줄 알던 때다.
키엘케골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있어 보라. 역시 그대는 후회하리라. 결혼을 해도 하지않아도, 그 어느 편이던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연애를 해보라.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연애하지 말아보라. 역시 그대는 후회 하리라. 연애해도 안 해도, 그 어느 쪽이던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키엘케골 말이 옳다. 나 역시 키엘케골과 생각이 같다. 연애하려고 남해에 간 게 아니다. 친구가 자살하여 자원입대했고, 재대 후 남해로 간 것이다. 세상이 허망해서 갈매기처럼 섬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래 금순이한테 노트와 학용품 몇 가지 사서 손에 쥐어주고 미조리를 떠났다. 갈매기처럼 날라가는 남자를 이튿날 여자는 아쉬운 눈길로 돌담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남해 미조에서 이것 저것 재미 보면서 철수자살로 심란한 감정을 달래야 하는데 별반 소득이 없었지만 글감을 얻은 것이 평생의 추억이다
옆종네 사는 선주집에 초대받고 숙대생을 훔쳐보고 마음의 여유를 즐겼던 시절이 행복이다
술 한 잔에 몸이 뜨거워진 만큼 무슨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건데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고 헛물만 켰지만 그것이 잘 된 것이 아닐까
미조를 떠날 때 순이가 아련한 눈빛으로 숨어서 지켜보던 장면이 달빛이 고운 날은 떠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