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못 본지 벌써 며칠째 인지 모릅니다. 노아의 홍수 땐 얼마나
끕끕 하고 무서웠을까요? 유리창엔 빗방울이 튀겨 빗물로 마룻바닥을
도모하고 있고 하늘은 적당히 밤입니다. 비가 오는 날은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어제 먹은 냉면과 물만두가 생각이 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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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문자를 보낼까 하다 그냥 참았어요. 정강이 위 사타구니가
가려워서 크림을 발랐고 소피를 빈 후 습관적으로 정수기 커피를 탔어요.
250개짜리 커피가 달랑달랑 합니다. 앗, 식전 커피라서 위가 싫대요.
반 모금인데 싱크대에 쏟아버렸고 문득 끽연을 하고 싶었지만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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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뭘 할까? 뭘 해야 심심하지 않을까요?
그래, '비상선언' 오늘이 개봉일입니다. 타이밍 기가 막힙니다.
티케팅하고 5분 만에 입장을 했어요. 진접 롯데시마가 웬 일로 핫한
영화를 대 방출하네요. 송 강호, 이병헌, 임시환, 전 도연 등등 모두
국가대표 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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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림은 어떻게 역대 급 배우들을 한데로 모았을까나? 시작부터 스릴과
드릴 서스펜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 번 ‘한산‘ 때 잠을 잔 건 내 탓이
아니란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2022년 여름 신상 두 개를 제치고 단박에
‘비상선언’이 박스오피스1위를 탈환했어요. 1000만을 열열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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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행 비행기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비상선언’의 큰
줄기는 처음부터 거대한 딜레마를 예상하게 합니다. 고소공포증 환자인
저는 KAL기 폭파, ‘탑-건’이 동시에 오버랩 되었고 영화 보는 내내 공포
속에서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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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바이러스 감염 환자 혹은 감염 의심 환자를 거둬야 하는가.
국민 대다수인 비감염자를 보호하려면 탑승객을 받지 않는 편이 맞는가.
상황윤리라는 것이 객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일이 아니질 않습니까?
내 새끼가, 내 가족이 있으면 무조건 비상착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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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적인 질문 가운데서 ‘비상선언’은 안전하지만 실망스러운 선택을
합니다. 재난에 가까운 비상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등장인물들의 눈물 바람 속에 희미해져요. 바로 이 절체절명의 시퀀스에서
미국-일본이 '착륙 불허' 때 열 받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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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서조차 입국 거부를 하는 시위대를 보면서 곧 사그라졌어요.
한 재림 감독은 “10년 전 영화를 기획했을 땐 실제 재난이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지만, ‘보호받지 못한 이들’과 ‘보호받지 않기로 한 이들’이
포개지는 순간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도 탑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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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제 몫을 해내는 승무원들의 모습은 전염병 시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민성이 무엇인지 일깨워줍니다. 제발 조국의 방역관계자들은
이 영화를 꼭 보시라.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 복이 예쁜 것인지, 여성 승무
원이 섹시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무장으로 나오는 김 소진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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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확 들어오더이다. 제 눈엔 단아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보였습니다.
단어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상선언’은 항공기의 정상적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기장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언하는 비상사태, 즉
비상계엄선포 상황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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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gonna attack a plane”(나는 곧 비행기를 테러할 것이다)라는 한
남성의 영어 독백은 빈 라덴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 죽은 Zawahirri
같기도 합니다. 왜 저는 비행기 테러 하면 알카이다가 생각이 날까요?
이윽고 비행기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360도 회전하는 비행기 속 공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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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린 탑승객들, 사투를 벌이는 승무원과 기장의 모습. 그리고 지상에서
항공재난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송 강호)와
국토 부 장관 숙희(전 도연), 청와대 위기관리 센터 실장 태수(박해준)가
재난 상황에 빠진 항공기를 지켜보며 피 마르는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 재혁(이병헌)이 진작에 히어로인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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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중에 종종 닥터가 히어로가 되는 건 봤는데 파일럿은 처음 봅니다.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나선 부기장 현수(김 남길)와 사무장 희진
(김 소진) 그리고 혼란한 상황을 주시 중인 탑승객 진석(임시완). 누구도
절망을 향해 질주하는 비행기를 멈출 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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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으로 나오는 임 시환 이놈아도 연기 끝내줍니다. 영화 보면서 제가
욕을 두 번이나 해줬어요. 비상선언 제작진들은 영화의 주 배경이 된
미국의 보잉 777 항공기 세트장을 할리우드에서 직접 공수해 자체 제작
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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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내내 비행기 상황에서는 이 병헌, 지상 상황은 송 강호가 끌고
나갔는데요. 조연들도 하나같이 엑설런트 합디다. 저는 이번에 다시 한 번
병헌이 이놈이 최고라는 것을 느꼈어요, 대한민국에서 연기의 스펙트럼은
이 병 헌 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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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조폭), '미스터선샤인'(미군), ‘내 마음의 풍금’(선생님), 이 미연의
'중독'(멜로) 하다하다 이제 파일럿이라니. 병헌이 이 놈, 너는 도대체 누구냐?
Who the hell a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