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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우거지는 계절
모처럼 고향 경북 의성의 어릴 적 놀던 하천을 찾아가 걸음 한다.
하천(河川)
힘들거나 어렵다는 한국의 하천 3840길은 천년만년 숨겨진 보물 같아 나만 꺼내 속살을 보면 되고
나와 같은 또 다른 경쟁자가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 걷게되는 숨은 명소이며 진흙속의 보석같은 길이다.
이번 하천은 경북 의성군 안평면과 신평면의 경계지역인 검실재로 향하는데
아주 오래전 고향 의성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던 제자의 부모님이 개인택시를 하셨어
잠시지만 학부모님께 신세를 지기로 한다
코 흘리던 제자는 지금 성인이 되어 소백산 아래 풍기역 인근에서 경찰로 근무 중이라고 하셨고
소백산에 가시면 연락 해보라며 연락처를 주셨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어느덧 검실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낙동강 지류인 위천의 테두리인 보현지맥길인데 마을은 물론 산줄기도 두 번 정도 다녔던 터라
어디가 어딘지 훤하게 보일 정도다.
저의 고향 의성군은 18개 면(面)이 있으며 그 속에 마을 어르신분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마을 경로당은 485개가 자리하는데
구석구석에 마을이 만은 많큼 전국 최고의 인구 소멸지역이기도 하다
위천 북쪽 지역 울타리인 지맥길에서
고개 넘으면 의성군 신평면이며 그 너머 광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를 하는데 낙동강 너머에는 경상북도 도청이 자리하는 예천땅이다.
예천땅 하면 모래강인 내성천이 있고 그 너머에는 백두대간 소백산 자락인 저수령쯤 되겠다.
이 길을 지나는이 후대까지 만사형통을 알리는 ok나무가 반갑게 서 서있고
오래전에 붙여둔 시그널은 회수하고
예전에 붙여둔 시그널은 모두 회수하는데
이번길에는 한 장만 보여 주머니에 집어넣고
산길에 이보다 더 향기로운 꽃이 있을까
향수를 대표하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구찌가 있지만 조선의 산에서는 이 녀석한테는 안될 일이다.
향기가 너무 좋아 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쉬었다 가기로 한다.
음!~ 콧속을 지나 목을 넘어 심장까지 전해지는 느낌
가슴속 깊은곳까지 한가득 넣어 진행한다.
지맥길에서 안평천 발원지 440봉에 찾아오니 100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은 상처 입은 소나무가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라며 " 말을 건다.
사람 앞 일을 모르니 "오늘 갈 길 무사히 내려가게 해 달라"며 꼭 안아 드리고
때는 바야흐로 4월 초
천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니
앙상하던 나무들은 일제히 "너도 푸르고, 나도 푸르다"며 그린 그린하게 초록빛을 내민다.
조용한 산속에 홀로 들어 가끔 들리는 산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좋고
어딘가 모르게 예전의 성터(城)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뭔지
심심산골(深深山) 깊은 곳에 예전에 사람이 살았나
옛사람들의 고달픈 흔적을 찾아본다
돌축대가 보이는 걸 보니 사람이 거주했던 곳 같긴 한데
주위를 살펴보면 산능선은 마치 흙을 쌓아 올려 말발굽 같은 성을 만든듯한 모습이다.
나무는 그늘과 낙엽을 떨구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하고 사람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알린다.
해발 400미터 지점에 길게 이어지는 돌축대의 용도는 뭘까? 하며 주위에 돌절구와 샘터가 있나 살펴본다.
이런 곳에 살았다면 샘터 하나 정도는 꼭 있기 마련이니
이곳은 묵은 밭으로 보이고
집터인가 밭인가 그곳 아래에 허물어진 샘터를 찾았는데
물의 수량이 많고 이곳이 고향땅으로 흐르는 안평천의 발원지 되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 굽혀 두 손으로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선다
역시나 고향의 물맛은 냉장고의 물맛과 비교된다.
행여나 보현지맥길에 물보충 하러 오고 싶어도 참으시구요
샘터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으며
물은 땅속으로 부터 끝없이 솟구쳐 올라 오지만 훗날 다시 찾아오면 흔적마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은 이곳 무지장골에서 아래로 흘러 안평면을 지나 봉양면 사무소 뒤에서 의성 남대천과 합류하여(발원지로부터 22km 지점)
약 2,5km를 흘러가 더 흘러 군위군에서 흘러온 위천에 합류한다.
위천은 군위군 고로면 762봉 신기리 석간수에서 발원해서 군위군 고로면-군위읍-소보면-의성군 비안면-안계면-단밀면-상주시 중동면 우물리-낙동강합수점까지 113km를 흐른다.
어느 바람에 뭔가 썩는 냄새가 역겹게 나는데
찾아보거나 고개를 돌리기도 그렇고
정신 바짝 차리고 앞만 보고 걸음 하는데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다.
한편으로는 뭐지하는 궁금증도 생기는데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걸음을 빨리해서 내려오니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고
깊은 산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많아 마을로 내려가면 꼭 알아봐야 할 것 같고
처음 이곳에 터를 잡으셨던 분들은 천년만년 터를 이루고 사셨을 것 같지만
결국은 자연의 섭리대로 흔적만 남기고 떠나가셨다
가지런하게 쌓아 올린 집터의 흔적
물이란 아래로만 흐르는데 전국의 하천은 3840개
내가 대한민국의 하천을 모두 다 걸을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0%는 아니다.
모든 의욕은 배낭에 넣고 걷다 보면 어느 집 담벼락에 쌓여있는 돌처럼 쌓일 날도 있지 않겠나
수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조금 전에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다시 올라가 볼까 하여
잠시 올라갔다가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서
사람이 지나다녔던 얘길이 보이고
어느 어르신의 힘겨운 일상이 되어버린 돌축대의 흔적이 보이고
이런 곳에서는
"발아!~ 발아!~ 오늘은 절대 나대지 말자" 천천히 걸어가며
숱한 고생을 하며 땅을 일구던 분들을 생각해 보자고 발을 다스려 본다.
물은 예나 지금이나 소리 없이 흐르건만 사람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이런 날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가 놀랄 일이긴 하다
이제 묵은 밭과 돌축대 그리고 경치가 괜찮은 계곡으로 접어들었고
나도 폭포일까 하는 곳에서 보이는 돌을 쌓아 만든 건 용도는 뭔지
계곡을 거의 다 빠져나오니 눈앞으로 저수지가 나타난다
난감하다고 생각 드는 건 저수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안평면 삼춘리 춘생 저수지
멀리 보이는 능선은 보현지맥길이며 저곳에서 계곡 따라 내려와
이제부터 길은 임도길이며 마을 어르신을 만나야 할 시간이니
마을에 회관이 있으면 염치불고 하고 들어가 이 골짜기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고
최근에 언제까지 살았는지 꼭 알아봐야겠다.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한 저수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저수지 따라 내려가면 안평면 삼춘리가 나오는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산들의 지세를 보아하니
오래전에 골골 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고단하고 억척같은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느 석공의 작품인가?
계곡의 물을 막는 데 사용했을 보(洑)가 보인다.
하(下) 춘생지가 상춘생지 아래에 자리하고
춘생지에서 흐르는 물은 시멘트 방수포 따라 아래 나도폭포로 이어지는데
원래 물길은 여기가 아닌 반대편에 있었을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삼춘리 마을에 들어와
골짜기 따라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마을분 만나기도 힘들고
물길이 가는 곳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 한 분을 만나서 먹으려고 가지고 왔던 성주 참외 하나 꺼내 드리며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시골에 살아서 그러신가 피부가 엄청 좋으신데
저!~ 백두의 끝자락 곤륜산 깊은 곳에서 만 자란다는 복숭아를 드셨나
그것도 아니라면 압구정동에 노니는 젊은 영혼들의 기를 많이 받으셨나...
어릴 적에 일본에서 자라서 이곳 마을로 들어와 산 지 80년쯤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내려온 깊은 골에 대해 여쭈어 보니 오래전에는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는데
70--80년대에 모두 떠나고 지금은 터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하신다.
사진을 한 장 담아 드리려니 할머니께서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잡아 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삼춘리 마을을 지나며
삼춘 2리 마을도 지나고
당진 -영덕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오랜 친구가 이곳 인근에 안평면 금곡리에 땅을 사서 귀촌한 친구가 있어
오늘 찾아가겠노라 했더니 친구는 멀리 출타를 가고 와이프만 집에 있다고 한다.
친구 와이프는 저의 후배이며 결혼 못해서 늘 안절부절이던 친구에게 중매를 서서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낳고 잘살고 있다.
하천길을 걸으며 지척에 있는 친구집에 가서 오래전 이야기와 함께 커피 한잔 얻어 마신다.
이곳에 정착하며 사는 친구의 고향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로 주논개님의 고향 마을(대곡저수지)이고
가끔 전해 듣는 주논개님의 고향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친구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는 아기염소
여름이면 멋진 수염을 달고 산으로 기어나갈 녀석이다.
개는 자기 물건이 세상에서 가장 큰 줄 알고
닭은 자기 벼슬이 가장 높은 줄 알고
염소는 자기 수염이 가장 멋진 줄 아는 짐승들이다.
후배를 엄마인 줄 알고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아기염소를 뒤로 하고 이제 다시 내 갈길로 걸음 한다.
친구집은 저짝에 있고
안평면 창길리 마을 앞
지난해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에 서 있던 버스 승강장은 속절없이 하천 속에 용왕님 놀이터로 변해 버렸고
따뜻한 햇볕아래 할머니 한분이 안평 소재지로 나가시려고 버스 오기만을 기다린다
나른한 오후의 시골 풍경에 할머니분들 없으면 향기 없는 꽃이라...
지난해 의성에 비가 엄청 내려서 마을 앞 버스 승강장이 물속에 대부분 잠겨 있고
지난해 수해를 입은 곳이라 부분적으로 공사 중인데
물이 맑은 건지 흐린 건지...
어째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으니
이 녀석들이 다들 마실 나가셨나
의성은 마늘과 자두로 유명한 동네죠
산으로 본다면 끝과 끝부분에 비봉산이 존재하는데 의성을 대표하는 산들이다.
안평면 소재지에 들어와
소재지를 걸으며
고등학교 동창집도 이 근처인데 지금은 서울에서 포졸 하는 중이라 얼굴 본 지 꽤 오래되었고
안평은 공기 좋고 들(田)이 좋아 강남에서 제비들이 엄청 날아와 집집마다 집을 지었고
보이지는 않지만 제비란 녀석은 보통 흙집 속에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부화하고 키운다.
제비란 녀석은 뭇 날짐승과 비교하면 착함의 대명사요 새끼들끼리도 절대 다툼 없이 먹이를 받아먹는다.
어미는 작은 집을 지을 때 한 번에 물고 오는 진흙이 양은 0, 3g정도이며 보퉁 일주일이면 어느 도편수가 만든 집보다 더 견고하게 만든다
흙집 속에 평균 5개의 알을 낳아 2주 뒤에 부화시키는데 조그만 알이 부화하면 그때부터 어미는 5만 마리의 곤충을 잡아 새끼를
먹여 살리는데 하루 평균 350회 비행을 하며 2-3분에 한번 먹이 사냥을 한다
어미 제비는 잠자는 시간 빼면 거의 대부분 먹이를 잡아 집까지 배달하는데 다른 날짐승과 다르게
새끼들끼리는 먹이에 대한 욕심은 부릴지언정 다툼은 없고 어미는 다섯 마리의 새끼의 노란 입모양과 소리를 듣고 어느 녀석이
배가 고픈지 알고 먹이를 넣어준다.
강남 가기 전에 호박씨라도 하나 물어 주면 고맙겠는데 사는 곳 주소라도 적어 주고 갈까 생각도 해본다.
동네어르신을 만나고
제비에 대해서 좀 듣고 커피도 한잔 얻어 마시고
거다가 집을 지으면 어쩌냐
카메라 앞에다 집을 지어야 보호를 받지
제비는 절대 사람이 살지 않은 곳에는 집을 짓지 않으니
온 동네에 제비가 모여 살아 어지간한 가정집에는 모두 별도로 처마아래 꼬마 흙집이 한 채씩 더 있다.
내려가야 할 하천길
저짜 보이는 산은 안평면 중앙을 지키는 매봉산이고 북쪽으로 가면 지맥길에 삼표당(三標堂) 산이 있다.
흔하게 부르는 산이름이 아닌 삼표당은 의성군 안평면, 신평면 그리고 안동시 일직면 세 고을을 뜻하는 말이며 군(郡) 경계지역이다.
의성 마늘이며 봄햇살을 받아 잘 크고 있는데 5월 하순이면 모두 캐내고 모내기를 할 곳이다.
내려가야 할 하천길
오우!~ 안평면 대사동 인근의 하천가에서
켄 깡통이 자루 속에서만 있다가 답답했는지 구멍을 뚫고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중이다.
나름 버림의 미학으로 버린 듯한데
저 정도면 꽤 훌륭하다고 볼 수 있겠다.
드디어 저의 고향 봉양면에 들어와
내려온 곳이고
벚꽃 피는 계절인지라
봉양면 사부리 마을 앞을 지나고
지나온곳
가야 할 곳인데
어릴 적에는 수영하며 내려가던 곳
저짜 제가 다니던 봉양 중학교가 보인다.
봄날이라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바람결에 자식들을 모두 날려 보낸 민들레가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가냘픈 몸매로 서있다
인간은 태어나 후손을 남겨야 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야 하고, 자신이 지은 건축물을 남겨야 한다는데...
제가 다녔던 중학교인데 그 시절과는 많이 다르게 변해있고
그 뒤로 탑산이 보인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교회와
하천가에 바위가 보이는군요
초등학교 때 여름이면 아이들과 수영하며 뛰어내리던 곳인데
물 색갈이 너무나 많이 다르게 변해있고
그때는 모래뿐이었고 아주 투명한 물색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더럽기만 하다.
제가 다니던 도리원 초등학교 건물
하천가로 수영 버들과 오동나무가 가득했었지만
지금은 낯설게만 느껴지고 흐릿한 기억 속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된다.
휴!~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아!~
세월이 너무 흘러 찾아왔구나 생각에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뿐이다.
송사리나 작은 세우를 잡거나 같이 수영하며 놀던 모습이 그려지고
그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모두 다 건강하게 지내는지...
다리 위에 이런 것도 설치되어 있고
봉양면 사무소
의성군(義城郡)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67.1㎢. 13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 의성읍(義城邑), 서쪽으로 비안면(比安面), 남쪽으로 금성면(金城面), 북쪽으로안평면(安平面)에 접한다.
- 면의 북부는 100-300m의 구릉성 저산지를 이루고, 북동쪽에서 흘러오는 남대천(南大川)과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쌍계천(雙溪川)이 면의 중앙부에서 합류하여 봉천(鳳川)이 되어 서쪽으로 흐른다.
- 본래는 신라 소문국(新羅 召文國)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의성부 하천면(義城府下川面), 조선조에는 의성현(義城縣)이라고 불렀다.
- 1910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질 당시 본 면의 봉천(鳳川)의 형상이 양지(陽地)바른 곳에 봉이 앉은 모양과 닮았다 하여 봉양면으로 개칭하였다.
잇달아서 1914년 3월 1일에 전국의 지방행정구역이 크게 통폐합되면서 금뢰면(金磊面)을 통합하여 12개동으로 개편하였으며
1961년에는 24개 행정동으로 세분하였고 1983년 비안면 안평 1,2동을 병합 26개 행정리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며
원예작물로 배추, 수박 등 채소생산이 수위를 차지하고 과일로 자루생산이 군내 1위로 명성을 떨치며 관광지 로 탑산온천,
생산시설로 논공단지 17개업소, 화성산업 등이 활성화 되고 있다.-봉양면지에서-
의성 남대천과 안평천이 만나는 곳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고향집에 들러 어머니를 뵙고 마을 회관에 들러 사가지고 온 막걸리 몇 병과 바나나를 아주머니들께 드리고 나와
다음날이 아버지 기일이지만 화사 일로 충주 형님댁에 제사 지내러 가지 못하기에
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사드립니다.
고향은 언제나 심장 뛰게 만드니...
여느 하천길 비슷하게 물빛이 예전의 그 물빛이 아니라는...
첫댓글 ^&^
여전한 발걸음에 힝상 응원합니다. 사진,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향땅의 하천길을 걸음하시고 아버지 산소도 찾아 뵙고 오신 길이었네요.
상상을 자극하는 제비의 꼬마흙집 이야기며
마늘 자두가 유명하다는 의성
저는 마늘 캐고 난 밭에 벼를 심어 이모작을 하는 의성 땅
물놀이하던 하천이며 초등학교의 추억들
걸음걸음 감미롭게 이야기 한자락 구경 잘 합니다.
물빛이 예전의 물빛이었다면 참 좋았을것을... 조금 아쉽긴 하며
후기 잘 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제는 중산리에서 비실이보고 왈!!
산행40년으로 뻥튀기해갓고 산길졸업하라더마는
우째 방장은 또~ 물퍼로 갔을까?
물바가지 깨지기전에 그만퍼시라.
쪽박조심하시라요,
안평천 발원지 고향 의성을 찾아봤군요
모교 중학교 건물은 학교같이 않게 특이하고 초등학교는 하천가변 상당히 크게 보이니 학생수가 많은 큰학교인가 봅니다
아버님 산소는 잘다녀오셨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도 강남간 제비을 종종봅니다
늘 건산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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