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여행블로거기자단
 
 
 
카페 게시글
전라도 추천여행지 스크랩 가야금 병창의 최고봉 오태석 명인의 생가는 낙안읍성 ?
바람흔적 추천 0 조회 156 11.11.03 16: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안읍성을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초가 지붕때문에 좋아한다.

 닥딱한 슬라브주택이나 아파트에 살다보니

 자연에서 얻는 볏짚으로 만든것이 거부감없이 좋은것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어머니품같은 포근함을 주는곳이 낙안읍성이라고 한다. 

이런 낙안읍성에 초가집 민속마을이 있는것으로만 알고있다. 

임경업장군 살았으니 당연히 임경업장군 유적과 성곽이있으니 성문이 있다.

그래서 성곽따라 한바퀴돌아 보는것이 여행의 필수코스는 물론이다.

 

객사 건물도 보고, 동헌과 구치소도 둘러보고 민속주점에 들러 점심을 먹고

오는 여행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낙안읍성내에 가야금병창의 최고봉인 오태석 명인의 생가가 있는데

대부분의 여행객은 같은 초가집으로 취급하고 지나치는 분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가야금병창 최고봉이 이곳 출신이라니 그럼 가야금은 어디서 누가 만들었나?.

  

    가야금의 시조우륵은  대가야 사람이였다  지금의 고령이 대가야였다

   고령 성일현에 살다가 가실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악사가 되고 가야의 음악과 춤,

   노래 등을 통합발전 시켰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명주실로 12개의 줄을 만들어져 있다는것은

   모두 알고 계실것이며, 가야금의 형태가 윗판이 둥글고 아랫판을 평평한데

   이는 둥근하늘과 평평한 땅을 본딴 것이며 그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은  하늘과땅

   사이 빈공간을 의미한다. 줄이 12개인것은 일년12달을 나타낸것이라고 한다.

            

 

 

                 고령 우륵기념탑                                                  .

 

   가야금 속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과 시간관이 담겨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는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이루는 조하와 균형이

     가야금의 선율이 되는것이다.

 

     550년 대가야도 나라가 어지러워 지자 가야금의 나라 대가야에서

      우륵도 신라로 떠나 진흥왕을 만나  가야금을 대성시킨 것이다..

 

 

 

         고령 우륵영정을 모신사당

      

                낙안읍성출신 가야금병창의 최고봉 오태석명인 누구인가 ?

 

            오태석 선생은 (1895.7.29-1953.9.7)은 낙안읍성 민속마을내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398번지에서 조선말기 판소리고수,

            가야금산조및 병창의 대명인인 오수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살고 있었던 판소리의 대가 국창 송만갑선생으로 부터 판소리 ,

            박덕기선생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운 오태석선생은 판소리,창극에도 남다른 재주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가야금병창을 국악의  한장르로 정립한 명인으로 병창의   최고봉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태석선생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박귀희, 경북 무형문화재19호로 지정되었던

             장월중선등이있다.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안숙선,강정숙과 전수조교 정예진,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주영희,광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명자 그외 많은 중요문화재 이수자들이 가야금 병창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태석 명인의 생가

 

                                                                                  오태석 명인 영정

      오태석(吳太石)은 일제 강점기 때 가야금 병창 명인이다..

      가야금 병창은 본래 가야금 산조 명인이 여기(餘技)로 하는 것이었고 병창의 성음은 '석화제'라는 병창 특유의 제로 부르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그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 아니면서도 타고난 성량으로 판소리 성음을 가야금 병창에 얹은 개혁자였다. 크고 고운

      목과 맛있는 목구성과 재치있는 너름새로 청중의 심금을 울리었다. 전통적인 석화제(制) 위에 오태석 제(制)를 개발하였다.

      

      서울에서는 그의 대중적인 인기는 판소리보다 오히려 높았으며 수많은 음반(音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성악연구회와 기타 많은 창극 단체에서 연주활동을 하였다. 일제 때 취입된 많은 음반이 남아 있는데 <흥보가> 중에서

       박타령과 <심청가> 중에서 심청모 출상하는 대목이 걸작이다.

 

 

 

 

     장월중선 선생 (1925-1998)은 1925년 전남 곡성군 오곡면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 장도순,백부장판개, 송만갑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1941년경 16세 무렵 임방울 단체 협률사에 다니면서 여러 명인명창을 수행하며,

    낙안읍성 출신인 오태석선생에게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1993년에는 오태석류 가야금병창 경상북 무형무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자로는 현재 경북 무형문화재인 주영희등이 있다.

 

                                     향사 박귀희 선생이 1962년 세계파리예술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박귀희 (1921 -1993)선생은1921년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서 태어나 13세에 오태석선생의 제자인 이화중선의 대동가극단에

   입단하면서 예인의 길로  들어섰으며, 1941년부터 3년간 오태석으로부터 가야금병창을 전수 받아 가야금 병창을 대중화한

    오태석선생의 대표적인 제자로써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23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자로는 오갑순,안숙선,강정숙 이외도 많은

    이수자가 있다.

 

                 YzA1NmIyMTg4YzIxNTMwMmU1NGZhMWZhYzYzZDJkMWY=

 

  정원을 도시로 끌어 들인다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순천만의 갈대밭과 갯벌도 좋지만 낙안읍성과 같은 우수한 민속고유

  한국인의 삶을  잘 준비하여 여행객들에게 보여주는것도 중요하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귀로 듣는 즐거운도 중요한 것이다.  순천만 갈대밭과 낙안민속마을도 갈 가꾸었으면 좋을것 같다.

 오늘은 어려운 판소리,병창 이른 단어로 글을 쓰다 보니 서툴기만하다. 그래도 낙안읍성에 이런 판소리 병창의 영인의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여행정보

      1. 위치 :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남내리

      2. 전화  : 낙안읍성관리사무소 061-749-3860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