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역마차(驛馬車)
가평읍과 보납산(寶納山) /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 백령도(白翎島) 두무진(頭武津)
윤사월(閏四月)<박목월(朴木月)의 시(詩)>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네.
나의 인생항로(人生航路)에 대해 생각하면 상당히 신기한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약술해 본다.
①출생지: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魯岩洞/안땔/內月). 현재는 강릉시 강남동(江南洞)이다.
②자란 곳: 역사의 고장 강원도 강릉 학산(鶴山)의 금광평(金光坪)으로 우리나라 선상지(扇狀地)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명소(?)이다. 내가 2살이던 1948년 이곳으로 이사.
우리 집은 금광평 마을의 중심부로, 넓은 벌판에서 제법 높은 언덕 위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마당 가에 서서 기지개를 켜면서 바라보면 동해(東海)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日出)가 눈앞에 보이던 곳.
구정초등학교(18회), 관동중학교(1회), 강릉고등학교(4회)
③초임 발령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물리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서울 명문대학 입학수준은 되지 못해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인천교대(仁川敎大)로 갔는데 졸업 후 첫 발령지가 경기도 가평읍 가평(加平)초등학교였다.
그곳은 청정지역으로,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중간지역인데 남이(南怡)장군 묘가 있는 남이(南怡)섬이 있고 명필(名筆) 한석봉의 벼루를 숨겼다는 보납산(寶納山)이 있는 곳이니 명소이다.
④초등학교 교감 초임(初任) 발령지: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아래에 있는 화도초(華道初)였다.
마니산(摩尼山)은 우리나라 역사의 명소이자 성산(聖山)으로 불리던 곳이고, 이곳은 예전에 하도(下島)로 불리던 작은 섬이었으나 강화(江華) 본 섬과 연결되면서 화도(華道)로 개칭(改稱)된 곳이다.
화도초에서 마니산 뒤쪽으로 돌아가면 서해(西海)로 해가 떨어지는 곳을 볼 수 있어 낙조(落照) 마을로 불리는 장화리(長花里)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러지’로도 불리며 바로 앞에 소렴섬(疏簾島)이라는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바로 그 옆으로 해가 떨어져 아름다운 낙조(落照) 풍광을 보러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觀光) 마을이다.
⑤교장 초임지: 서해의 끝 백령도(白翎島) 북포(北浦)초였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최서단(最西端)이자 최북단(最北端)에 있는 외로운 섬으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222km, 북한 장산곶의 몽금포(夢金浦)까지 12km이고 중국 산뚱(山東) 반도까지는 159km이며 가장 가까운 섬인 남쪽 대청도(大靑島)까지는 8km이고 연이어 소청도(小靑島)도 있다.
⑥퇴임(退任): 인천 연수구 청량(淸凉)초등학교로, 당시 인천에서 1번지 학교로 불리던 명문(名門)교였다.
나의 인생항로(人生航路)를 되돌아보면 가장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놓고 볼 때, 남북(南北)으로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동서(東西) 방향으로 가장 넓게 펼쳐진다.
태어난 곳은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던 아침, 말년(末年)은 서해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던 강화도 낙조(落照/교감) 마을과 백령도 두무진(頭武津/교장) 서해안이다.
그리고 정년으로 퇴직(退職)을 한 연수구 청량초(淸凉初)는 당시 인천에서 첫 번째로 꼽히던 학교였으니.....
고등학교 재학시 우리나라 해외여행의 선두자로 불리던 김찬삼(金燦三)씨가 강릉에 내려와 시민회관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우리 강릉고 전교생이 가서 들었는데 나는 듣는 순간 완전히 퐁당 빠져버리고 말았다. 강연이 끝난 후 앞으로 나가서 김찬삼씨의 싸인도 받고 손도 잡아보았으니 신기한 내 인생항로의 출발점이라고 해야할까??
현직(敎職)에 있는동안 열심히 영어공부에 몰두했다. 동료들은 내 손에 영문원서(英文原書)가 항상 들려있는 것을 보고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2009년 2월,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세계배낭여행에 들어섰다.
바야흐로 전 세계 낭만여행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다. 내 스스로 붙인 내 호(號)가 여랑(旅浪)- 여행(旅行)의 낭만(浪漫)..
많은 나라들을 둘러보는 여행의 꿈을 이루었음은 물론, 아시안 게임의 영어통역사(英語通譯士), 일본여행객들을 모시고 다니는 일본어 통역사까지.... 비록 출간은 하지 않았지만, 기록으로 남긴 여행기록도 책 수십권 분량이다.
자식 농사는 하느님 복으로 남매를 두었는데 미국사는 딸은 미국에서 언어학 석사취득, 언어병리학 전공으로 언어치료사, 사위는 텍사스주립대 교수, 딸은 손녀 둘을 낳았는데 모두 천재로, 큰 손녀는 텍사스 영재대학 4년 전액장학금에다 매달 용돈까지 받으며 공부하고 금년 졸업, 뉴욕주에 있는 제약회사에 취직했다.
인천 청라지구에 사는 아들은 고려대 경영, 뉴욕주 코넬대 대학원 경제학석사학위 취득, 여의도에 있는 대펀드회사 이사(理事)로 활동 중. 아들만 둘 낳았고 아직 초등학생으로 인천영재원 영재로 추출... 며느리도 서울대학교 출신.
현재 나의 일상(日常)은 경로합창단 하이테너, 가톨릭 노년합창단 지휘, 가톨릭 성가대 하이테너로 활동 중이다.
사람의 인생항로는 정말, 정말로 알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고 있다. 할렐루야~
소렴(疏簾)섬 낙조(落照) / 고려궁궐(복원) / 손돌목 여울
장화리 낙조(落照)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은 어디인가 / 주홍색 물길은 추억처럼 일렁이고
황금빛 나래 깃으로 / 점점이 나르는 갈매기는 / 차마 말못할 내 첫 사랑의 아픔인가
너는 어느 날 / 거짓말처럼 내 곁에 / 설레임으로 다가와서는 / 주체할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기고
저 황금빛 물길 따라 / 신기루마냥 기억의 그늘로 / 그렇게 멀어져 갔었지
노을에 젖은 억새꽃이 / 밀물처럼 내 가슴으로 밀려오고 / 잔광殘光을 가로지르며
이름 모를 산새 몇 마리가 / 첫사랑의 추억처럼 / 소렴疏簾 검은 숲 그늘로 날아든다.
<나의 자작시 감상 노트>
♧ 장화리 - 강화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 해안에 대섬(일명 소렴<疏簾>섬)이 그림처럼 떠 있다.
※ 장화리(長花里)의 옛 지명은 장곳(長串)- 마리산 줄기가 길게 뻗어나간 끄트머리<일명 버드러지>
고려궁궐지(高麗宮闕址)
그날
몽고의 거센 흙바람 염하鹽河하늘 뒤덮고 / 쏟아지는 화살은 / 살곶이矢串 언덕 메웠으리
휘몰아치던 거친 바람이사 / 세월이 잠재웠는가 / 님의 한숨 배어나는 이끼 푸른 돌담장 밑
햇빛 따슨 양지녘에 앉아 / 가슴 속을 스치는 / 역사歷史의 바람소리를 듣는다.
님은
구중궁궐九重宮闕 육조六曹 넓은 마당 / 저기 버려두시고
강화나루 찬바람 가슴으로 받으시며 / 손돌목 휘돌아치는 여울 / 눈물로 건느셨으리
전장戰場의 아우성 쓰린 가슴 붙안고 / 강화 북산北山 가파른 언덕배기
지친 몸 누이시며 / 시름을 달래시던 그 모습이 / 이토록 가슴 저미는 아픔일 줄은...
황톳빛 스산한 바람이 / 뜰 안을 가로지르고 있다.
<나의 자작시 감상 노트>
♧ 염하(鹽河/짠 내) - 강화와 김포(金浦)의 경계를 이루는 좁고 긴 바다(마치 강처럼 보인다.)
♧ 손돌목 - 손돌노인, 손돌바람의 전설이 배어있는 물살이 거센 여울
♧ 북산(北山) - 궁궐지(宮闕址) 뒤에 있는 산
<손돌 전설> 고려 때 강화로 피난을 오던 임금이 탄 배의 사공인 손돌이 풍파를 피해 빙글빙글 돌자 의심을 받고 억울하게 죽게 되었는데 손돌은 죽으면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라고 해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음력 10월 20일 무렵이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하게 되었고, 그가 죽은 여울목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