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미장 49재법문
계미년(癸未年) 시월 말 무렵(양력10월28일:음력9월14일) 양 씨 미장 할아버지 49재를 지냈다. 양 미장은 화엄사 초입 언저리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덕분에 오가는 길에서 대면이 잦았을 뿐 아니라 신도이기도 해서 교분이 무척 두터웠다. 게다가 화엄사 경내의 공덕전(옛 공덕사) 중창 불사에 1등 공신이다. 공덕전은 도량을 확장할 요량으로 매입했는데 원인불명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잿더미로 변한 전각을 재건할 때 미장일을 모두 맡아서 했기에 잊을 수 없다. 범패 하는 스님을 불러 염불 소리도 그윽하게 바라춤을 곁들인 전통 의식으로 재를 베풀어 드릴까 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도 문제려니와 천도를 받는 양 미장 영가(靈駕)*의 마음도 편치 않아 저승을 향한 걸음걸음이 꽃길만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이유에서 빈승이 홀로 차분하게 정성껏 염불하고 깨달음을 얻도록 법문을 활짝 열어드림이 분수에 맞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어떤 법문이 적합할까?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때마침 A 종단 부산 종무원 부원장인 T 스님이 화엄사를 찾았다.
차를 마시며 담소하다가 문득 소속된 종단의 법계(法階) 고시에 초점이 맞춰졌다. 소의 경전인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쓰세요”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당시에 시험 감독관을 했더란다. 그런데 몇몇 스님들은 단 한 구도 쓰지 못하고 쩔쩔매더란다. 그 얘기를 듣다가 기막혀“허! 허!”하며 혀를 차다가 무엇인가 뭉툭한 것이 목구멍에 걸려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서 나도 몰래 흠칫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속으로 화엄사에 살며‘화엄경 사구게’를 제대로 꿰고 있는가? 라고 반문해 봤다. ‘사구게’란 무엇을 뜻한 것인가? 불교의 경전은 산문체로 설해졌다. 하지만 독송하다가 보면 사행시(四行詩)가 나온다. 이 사행시는 묘하고 아름다운 운문이며 경전의 핵심을 시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이것이‘사구게’이다.
조촐하기 그지없는 법상에 올라앉아 법문을 시작했다.“심여공화사(心如工畫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五蘊實從生),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라고 목청을 가다듬어 낭랑하게 큰 스님이라도 된 듯이 ‘화엄경 사구게’를 읊었다. 그리하자, 유족과 대중이 빈승과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동음으로 염불했다.
화엄사는 대광명전 낙성식 때 은사이신 성수 큰스님께서 첫 법문을 여셨다. 법문을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와 빈승에게 다가오시더니 상좌를“대사~”라고 부르셨다. 그러고 나서“아무나 이 법상에 앉히지 마소”라고 당부하셨다. 그 후로 큰스님 유지를 받들어 화엄사 법상엔 그 어느 스님도 함부로 앉히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다시 말해 빈승을 법기(法器)로 인정하신다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법문을 듣는 사람은 유족과 몇몇 지인뿐이었다. 하지만 영혼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법당이 비좁도록 모인 느낌이었다. 이윽고 법문을 시작했다. ‘화엄경 사구게’에서 이르는 네 개의 구(四句)였다.
먼저 1구(一句)는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이며‘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라는 뜻이지요. 화가는 화판이나 화선지에 자유자재로 붓을 그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양 미장은 붓 대신 흙손으로 중생의 집을 아름답게 미장했습니다. 폭넓게 생각해 봅시다. 중생이 부처님입니다. 다만 삼천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뤄 성불하셨고 양 미장 영가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부처님일 따름이지요. 아기나 강아지가 태어나면 곧바로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눈을 뜨고 눈뿌리에 기운이 돌아야 비로소 사물을 보고 분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구(二句)는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으로‘마음이 능히 모든 세상을 그린다’는 뜻이지요. 오늘 이 자리에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처럼 마음은 능히 모든 세간사를 그려냅니다. 오늘날의 문명과 과학도 마음이 이룬 것이며, 세계의 모든 종교와 신앙도 마음이 그려낸 한 폭 한 폭의 동양화 서양화가 아니겠습니까. 신원적(新圓寂)* 남원양씨 양 미장 영가여 저승 어디쯤에서 흙손으로 법왕 궁을 짓고 계십니까.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하심은 오랜 세월 욕심을 버리고 도를 닦은 공덕이요. 중생이 불난 집에서 윤회함은 탐욕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삼구(三句)는 오온실종생(五蘊實從生)인데‘오온이 모두 마음을 쫓아 나왔다’라는 의미이지요. 오온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다섯 가지로 나눈 지도의 좌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흙 • 물 • 불 • 바람(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색(色)이라고 합니다. 춥고 덥고 맵고 짜고 시고 달고 쓴맛을 감각 하는 신경 작용 등을 일러 수(受)라고 하며, 기쁨과 슬픔 그리고 좋고 나쁨 등 또는 성취와 패배 등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을 일러 상(想)이라고 하고, 앉고 서고 보고 듣고 행동하는 의지작용을 일러서 행(行)이라 하며, 마음을 작용하는 심(心)의식을 일러서 식(識)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 색 • 수 • 상 • 행 • 식이 모두 마음을 쫓아 생겨난다는 뜻이지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보시고 참 아름답다고 하셨지요. 이 그림만큼 아름다운 불화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야밤의 강가에서 물속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月影)를 수월(水月)이라 하지요. 얼마나 아름답더이까. 창공에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구름이 흐르면 달도 구름을 따라 흐르고 그리하다가 미풍이 불면 물결이 미소를 짓고, 바람이 잔잔해지면 온 세상이 열반에 든 듯이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더이까.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이미 양 미장이 부인과 함께 그려온 삶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살아생전 젊을 때 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시며 아들과 딸을 낳아 키우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이보다 멋진 그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일생이 수월관음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구(四句)는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로서‘마음이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극락도 천국도 마음이 만들며 우주 허공도 인간의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천지창조를 하신 신도 인간의 마음에서 나왔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마음인 자성(自性), 불성(佛性)은 언제부터 있었으며 언제까지 존재할까? 이 마음은 하늘이나 땅보다 먼저 있었고 땅과 하늘 온 우주 허공이 없어질지라도 끝까지 존재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떴습니다. 달이 있으면, 달빛이 있고, 강물에는 달그림자 뚜렷하겠지요. 달 타령은 이쯤에서 쉼표를 찍고 부처님 얘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몸이 셋인데 첫째는 법신, 둘째는 보신, 셋째는 화신입니다. 이를 간단히 정의하면 달은 진리이고, 달빛은 진리의 작용이며, 달그림자는 진리의 작용에 의지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달은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이고, 달빛은 원만 보신 노사나불이며, 달그림자는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을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원적(新圓寂) 남원양씨 양 미장 영가는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제 마음속의 붓이나 흙손을 잡고 부처님 세계를 이루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왕생극락하세요.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空)이므로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무생(無生) 법인(法印)을 깨달으시고 동명(同名) 동호(同號) 대자대비를 이루소서! 부처님을 이루시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濟度)하시라고 축원하며 법문을 마치고 법상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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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 :영혼(靈魂) 다시 말하면 불교에서 육체밖에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를 말한다.
*신원적(新圓寂) :불교에서 갓 죽은 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濟度 :고해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