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옛 절터(폐사지 廢寺址)를 자주 찾게 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느끼는 게 더 많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닌 거다.
폐사지에는 대부분 돌무더기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기왓장이었거나 주춧돌, 석축 등으로 쓰였던 돌들이다. 절을 알리는 당간지주, 부처상을 올려놓았던 좌대, 사리를 모신 석탑이나 승탑이 남아 있다면 그나마 구색 갖춘 폐사지가 된다.
강릉 굴산사지에는 승탑(보물 제85호), 당간지주(보물 제86호)가 남아 있다. 석조 좌불, 석천, 학바위 등도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1936년 대홍수가 나서 한 번, 2002년 태풍 루사가 불어와 또 한 번 굴산사지를 알게 됐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사적 제448호 강릉 굴산사지는 배산임수 背山臨水 지형을 이룬다. 서쪽 칠성산(976미터)에서 이어진 낮은 능선이 북쪽으로 길게 펼쳐지고 동쪽 어단천이 북류하고 있다. 어단천 너머에는 당간지주가 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굴산사의 옛 모습과 위상을 짐작게 한다.
[출처] 2022년 4월, 강릉 굴산사지 범일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작성자 검정알나무